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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JK - 미르 제이케이 라고 읽습니다. :)

배나무의 꿈(P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irrJK
작품등록일 :
2015.05.08 21:55
최근연재일 :
2015.05.08 22:03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395
추천수 :
11
글자수 :
44,568

작성
15.05.08 22:00
조회
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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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2장 : 안(1)

DUMMY

7월 23일.


방학이 시작한 지 4일 만에 쓰는 글이다.

3년 동안 계속 해왔던, 바로 그 일을 올해도 시작할 것이다.

지금 내 상태는 매우 괜찮다. 앞으로 내 두뇌가 견뎌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몇 번씩이고 반복해서 쓰지만, 이후의 내가 일기장을 펼쳐볼 때 어떠한 기억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든 간에,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기억만은 진실이다.

나는 자아를 잃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지이며 신념이다.

꽤 말은 번드르르하게 썼지만 실로 자신은 없다.

앞으로 있을 두뇌의 혹사에 내가 버텨낼 수 있을지 두렵다.

이러는 동안에도 조금씩 눈치를 못 채고 내가 변하는 중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는 일기를 계속 써나갈 것이다.

어떻든 간에 나는 계속 써나갈 것이다.

이런, 바보 같이······. 같은 문장을 두 번 쓰다니······.

뭐, 쓸 말이 다 떨어진 모양이다.

이만 일기를 마쳐야겠다.

아참, 마지막으로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를 먹었다. 맛은 괜찮았다.


7월 29일


드디어 첫 번째 의뢰를 마쳤다.

곧바로 돌아와서 일기를 쓰는 탓에 지금 머리가 매우 어지럽다.

지금 의뢰를 실행하면서 읽혀온 기억이 감히 내 머릿속에서 주인이었던 것처럼 행세하려 한다.

얼른 능력을 쓰기 전까지의 상황을 기억해내고, 그 후에 억지로 받아들이게 된 기억, 그리고 지금까지의 기억들 모두를 순서대로 연결하여 어울리지 않는 기억을 골라내자. 그리고 가라앉히자.

이런 일은 몇 번이고 있어왔고 나는 그때마다 자아를 붙잡았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그리고 할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다.

아- 머리가 아프다. 이만 줄여야겠다.


난 방금 채운 페이지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난 뒤 일기장을 덮었다. 아주 오랫동안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지우기를 반복한 컴퓨터 하드처럼, 노이즈가 낀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뇌는 더 이상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지, 눈을 뜨는 것조차 두통으로 이어져 신음을 내고 말았다. 이마를 만져보니 잔뜩 달아올라 있었다. 조금이라도 체온을 내리기 위해 폐 속의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잠시 후 잠에 들기 직전의 실 날 같던 의식은 머리맡에서 울린 전화벨소리 때문에 팽팽해지고 말았다. 난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저기, 안녕하세요. 닉네임 Realcrow 맞습니까?”


상대는 머뭇거리는 어떤 남자의 목소리였다. 자신 없는, 그리고 조용히 떨리는 목소리로 내 닉네임을 불렀다. 의뢰가 들어왔군. 난 수화기를 든 손을 바꿨다. 순식간에 머릿속은 다른 것으로 꽉 차서 두통에 대한 것은 잊어버렸다.


“네, 맞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음, 그게 저기······. 그게, 다름이 아니고요.”


내게 전화를 건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용건을 말할 때 뜸 들였다. 지금 전화를 받은 사람이 과연 자신의 걱정거리를 해소해줄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이 들었거나. 아니면 의뢰를 하는 자기의 걱정거리가 말하기 창피한 것, 혹은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것일 수도 있겠지.


“어떤 근심거리인지 알기 전에 먼저 이름부터 물어도 될까요?”


작업 개시다. 원래 한번 일이 끝난 후에는 삼일을 푹 쉬어줘야 하지만, 방학 같이 실컷 노는 기간에는 다르다. 최대한 많이 일을 해서 넉넉한 생활비를 마련해야 할 테니까. 발신인의 이름은 김 아무개. 앞으로 이 사람과 볼일은 별로 없을 테니 편의상 아무개로 부르자.


“김 아무개님. 사시는 곳은 강원도시군요.”


“아? 네,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당연히 알고말고. 핸드폰 액정에 강원도 지역번호가 떴으니까 말이야.


“그보다도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어떤 일이신가요?”


“저, 그러니까 제 말을 믿기 어렵겠지만, 마을에 귀신이 돌아다니는 것 같거든요.”


“어떤 일들이 있었는데요?”


“......”


그 이후의 대화에 대해선 간단히 위치와 만날 시간 등으로 요약해서 메모 했다. 꼬불꼬불한 글씨체, 여러 가지 해독하기 힘든 악필들을 견학해봤지만 이번의 내 글씨는 만족스러울 정도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한 번 더 메모한 내용을 훑은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신경을 다른데 쓰고 있던 덕분에 두통을 좀 사그라져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곧 이어 하품이 나왔고, 대자로 누운 채로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잠에 들었다.


* * * * *


“진오야. 밥 먹어라.”


“으음-.”


나는 이불 속에서 온 몸을 웅크린 채 베게를 꼭 끌어안았다. 따뜻한 바다 속에 빠져 버린 나는 허우적대는 게 전부였다.


“아직도 자냐? 그만 자고 이제 일어나라니까.”


“아 그래-. 알았다. 좀만 더······.”


온 힘을 다해 이불을 걷어내고 휘청거리면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기지개를 피다가 반쯤 뜨인 눈, 플러스 눈곱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채로 어제 밤 머리맡에 메모했던 종이를 쳐다봤다. 나는 멍하니 내가 언제부터 아랍어를 배웠었는지 잠시 생각했다.


아니, 그럴 리 없지. 알아보기 힘들지만 한 줄은 이름, 두 번째 줄은 장소, 나머지 줄은 연락처를 나타내고 있었으니까. 나는 내 글씨를 보고 피식 웃었다. 하여간, 글씨는 자신의 얼굴이라는 속담은 근거가 없다니까 하고 생각 하던 중, 끝내는 문 밖에서 들려온 성화 때문에 엉거주춤 일어나 방에서 나오고 말았다.


주방엔 간단한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식탁 앞에는 나를 깨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릇을 꺼내고 있었다. 녀석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름은 주영준이라 하고 내 제일 친한 친구이면서 같이 자취를 하는 룸메이트다.


“하암-. 너도 어지간하다. 방학인데 여유 좀 가져봐.”


“여유는 충분히 있어. 네가 게으른 것뿐이지.”


“이제 겨우 9시인데? 사나이라면 아침 따윈 걸러도 돼.”


“사나이기 전에 넌 청소년이야. 나보다 키도 작은 주제에 규칙적으로 생활하라고.”


나는 피식 웃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그래봤자 키 차이는 3cm 정도밖에 안 나면서‘ 라고 중얼거렸다.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한 뒤 샤워기를 틀어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쏴- 하는 소리와 함께 미지근한 물이 두피를 적시고 볼을 타고 내려오는게 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빠르게 샴푸를 묻혀서 마구 거품을 낸 뒤에 헹구는 도중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비비면서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수건 안 가지고 들어갔지? 문 밖에 걸어둘게.”


“오오. 역시 내 훌륭한 부하구나.”


쿵-

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영준이가 퉁명하게 말했다.


“나오면서 바닥에 물 흘렸다간 맞는다, 너.”


······. 나보다 소중한 게 장판 바닥이란 말이냐. 나가자마자 헤드뱅잉을 해 버릴까보다. 하지만 굽힐 때는 굽혀야 하는 법.


“예이 형님. 조심 하겠습니다-.”


대충 머리를 헹군 뒤 욕실 바닥에 침체 되있는 거품들을 씻어냈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잠깐 이것저것 폼을 잡았다. 화장실 조명은 언제나 사람의 미를 향상시켜주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기에 내가 거울을 보고 만족해하는 건 화장실에 있을 때뿐이다.


잠에서 완전히 깼는지 배에서 제일 먼저 봉화를 터트렸다. 나는 군침을 삼키며 밖으로 나왔다. 문에는 수건처럼 생긴 것이 걸려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머리에 문질렀다. 그러나 코 속으로 들어오는 향기가 샴푸 향뿐만이 아닌 낯 설은 썩은 내까지 함께인 걸 알아채고는 멍청해져 버렸다.


“야! 걸레를 여기다 왜 걸어 놔!”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다른 손으로는 걸레 끝을 잡은 채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갔다. 크게 소리칠 것도 없이 둘이서 살 정도로 적당히 좁은 이 집에선 두 세 걸음의 동선이면 끝이다.


영준이는 벌써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녀석은 내 말에 놀랐는지 손가락 끝에 걸린 것을 보고 식사 때 소화불량에 걸릴듯한 표정을 지은 내 얼굴을 보다가 뒤쪽의 화장실 입구를 쳐다봤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뭐가 웃기냐."


"미안."


미안한 줄은 아는군. 얼굴은 웃음을 참지 못해 밥알을 내뿜을 것 같지만 말이야.


"진오야. 뒤를 봐봐."


대체 뭔 소릴 하는거야- 하고 인상을 찌푸리던 중, 녀석의 생각이 내 뇌리에 스쳐졌다. 이런 제길. 그런거냐. 나는 확인차원에서 뒤를 돌아봤다.


역시나 다를까, 발 걸레 하라고 놓아둔 것은 내가 자주 쓰는 수건이었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건 수건으로 쓰라고 걸어둔 건 발 걸레였다.


“에라이 둔탱아. 어찌나 둔하면 발 걸레를 거기다 걸어놓냐.”


재빨리 자리에 앉아서 뒤늦게 밥숟가락을 들며 영준이에게 핀잔을 줬다.


“걸레와 수건을 냄새를 맡고 나서야 분간할 줄 아는 놈이 더 둔하지, 바보야.”


녀석은 시선을 다른데 둔 채 내 말에 대꾸했다. 아침부터 말꼬리 잡기를 계속하면 밥을 먹지 못할 것 같아서 나는 여기서 물러났다. 사나이 답게, 사소한 건 양보할 줄 알아야지.


그리고 자동적으로 우리는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반찬은 김치, 계란프라이, 멸치볶음밖에 없는 간단한 차림이었다. 나는 영준이 밥그릇 근처에 있는 김치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영준아."


"응?"


어제밤에 적었던,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읽었던 메모를 떠올리며 물었다.


"너 오늘 어디 나갈 일 없지?"


"글쎄 네가 집에 있는다면 공부에 방해될테니 도서관에나 가는 정도."


얼씨구 원래부터 공부를 잘했던 것처럼 말하기는.


"그래? 나 어디 다녀올 데 있으니까 그럼 집에서 공부하든가."


"또 며칠 걸리는 거야?"


영준이 다 비운 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으면서 말했다.


"글쎄, 일단은 가봐야 알 거 같아. 그리고 이번에 갔다오고나면 아마 당분간은 집 비우는 일 없을테니 걱정마."

나는 '아마' 라는 말을 가슴속에서만 강조한 채 웃었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거니까.


"뭔진 모르지만 조심해라. 게을러하지 말고 밥도 다 챙겨 먹어."


"그래 고맙다."


나도 다 비운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는 영준이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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