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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JK - 미르 제이케이 라고 읽습니다. :)

배나무의 꿈(P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irrJK
작품등록일 :
2015.05.08 21:55
최근연재일 :
2015.05.08 22:03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394
추천수 :
11
글자수 :
44,568

작성
15.05.08 21:59
조회
205
추천
1
글자
10쪽

1장 : 바깥(4)

DUMMY

잠에서 깼을 때, 무언가 가슴을 압박하는 바람에 속이 거북했다. 잠들기 전 열어 놨던 창문은 어느새 닫혀있었는지,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속삭이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린 뒤 땀에 섞여서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깨까지 걸쳐져 있던 무언가가 허리 근처까지 내려와서야 느껴지는 감촉을 보니 그건 두꺼운 이불이었다. 자상한 아버지께서는 출근하기 직전에 곤히 잠들어 있는 딸이 한 여름에 감기라도 걸릴까봐 덮여놓으신 것이다.


두꺼운 이불을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억지로 해석하고 나서 방문을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힘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로 보아, 나는 해가 중천이 되서야 잠을 깬 것 같았다.


문득 갈증이 났다. 마시는 거든 뭐든 간에 시원한 것을 찾고 있던 터라 베란다 창문에서부터 거실을 지나 정면으로 불어온 여름 바람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단, 땀이 식어가면서 내 몸 안과 밖 모두의 수분이 증발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에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한 걸음, 두 걸음. 손으로 벽면 거울을 더듬고, 형광등 스위치를 건들고,


"아야!"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찧고 나서야 나는 부엌으로 나올 수 있었다.


몇 년간 계속 생활해 온 집 안이었지만, 역시 시력을 잃은 채로 활보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목적대로 물을 마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이번에는,


"아, 씨."


냉장고 모서리에 반대쪽 발가락을 찧고 말았다.


‘후우······. 슬리퍼가 어디 있더라.’



TV를 라디오대신 틀고 나서, 겨우 신발장에 내버려 두었던 슬리퍼를 찾아냈다. 왠지 손에 집히는 대로 꺼내는 바람에 짝짝이가 된 것 같지만 괜찮았다. 내 예쁜 발의 보호가 우선인 것이다. 이제 소파에 앉아서, 제대로 안전을 확보하는 거야.


“캉! 캉! 캉!”


자기 집에서 걸어 다니는 것마저도 긴장을 해야 하는 서러움 속에서 한 걸음을 옮기려는데, 마당에서 기르던 삽살개, 복슬이 녀석이 갑자기 짖기 시작했다. 평소엔 먹을 때 건드려도 얌전하던 녀석이 웬일일까. 손님이든, 잡상인이든 간에 볼일이 있으면 초인종을 누르겠지.





*****



대문 앞에는 상현이 멍하게 서 있었다. 입고 있던 작업복은 온통 - 이미 말라버렸지만 - 붉은 액체로 얼룩져 있었고 악취도 심하게 풍기고 있었다.


어제 저녁, 점심 먹을 시간에 맞춰 이수네 집으로 오기로 형과 약속했던 그는 축 늘어진 낡은 인형처럼 기운이 없었다. 피로한 듯 반쯤 감긴 눈엔 공허함이 있었다. 이내 그가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그 전부터 경계태세 중이던 삽살개가 와락 달려들었다.


“캉! 캉!”


앞을 막아선 삽살개가 그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졌지만 힘으로 역부족이었다. 작은 털북숭이는 바지 끝자락에 매달려 현관으로 이어지는 계단 앞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계단의 높이는 복슬이 덩치보다 두 배는 높았다. 끝내 작은 송곳니는 물고 있던 것을 놓치고 말았고 상현은 좀 전까지 삽살개가 벌인 퍼포먼스엔 관심조차 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문 옆에 달려 있는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


대체 무슨 심보일까?


뭐라 말을 걸어도 싹 다 무시하고 말이야. 5분 째 셀 수도 없이 초인종을 눌러대는 통에 급성 노이로제라도 걸릴 지경이었다. 어릴 때 초인종 있는 집이 없는 동네에서 살아온 걸까. 그래서 지금 내가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는 거냐! 그런 장난이라면 지금 미리 도망가는 게 좋을 걸. 주인에게 얼굴을 들키지 않는 것이 규칙이란 걸 모른다면 별 수 없지만 말이야.


“누구십니까?”


딩동-


“누구세요?”


딩동-


후우, 한 번 더 형식적으로 물어봤지만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래, 난 장님이고 넌 벙어리다 혹은 귀머거리든가. 이런 여름날에 소름끼치게 하다니, 더위를 잊게 해준 건 고맙지만 이젠 질린다. 경찰에 신고 할 거야. 아빠한테 연락해서 제일 무서운 후배를 보내달라고 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뒤 전화기를 향한 짧은 모험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열려져 있던 베란다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문득, 문밖의 그 사람이 베란다를 통해 들어왔다면 하는 상상을 해버렸다.


그 직후 곧바로 초인종 소리가 멈췄다. 설마 진짜로 베란다를 노리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내 귀가 마비된 탓에 듣기만 해도 냉면 사리를 잘라버릴 가위같은 소음이 들리지 않게 된 걸까. 그러나 상상의 줄기는 가지를 뻗고 꽃봉오리를 피우기 직전에서야 멈췄다.


초인종 대신에 이번엔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향하던 모험을 한 발짝만 옮긴 것으로 끝낸 채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손을 더듬으며 현관문의 잠금 쇠를 찾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상현이 삼촌이었다.


*****


어느 새 상현의 눈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는 어리둥절하게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해 놀랐다.


'어라?'


입고 있던 작업복이 그대로인 걸 봐서 자신은 작업실에 있어야 했다. 그는 자리에서 한바퀴 빙 돌았다. 계단 아래에서는 으르렁대던 삽살개가 갑자기 돌변해 혀를 내밀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한쪽 문이 열려진 대문과 풍성하게 자란 배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왠지 이 상황에 금방 적응해 버린 상현은 앞에 있는 낯익은 문을 두드리며 반쯤잠긴 목을 헛기침으로 풀면서 말했다.


“이수야. 안에 있니?”


곧바로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 열렸다. 문틈은 작은 사슬 때문에 그 이상 벌릴 수 없었다. 그 사이로 이수가 얼굴을 빼 꼼이 내밀었다.


"상현이 오촌 아저씨가 맞습니까? 제 이름은 영희입니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목소리였다. 상현은 이수가 어릴 때 연극 공연에서 연기를 하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그 때 분명 대사를 착각한 탓에 세트장을 장식하던 나무가 멋진 혼잣말을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그보다도 상현은, 문을 반쯤 열은 채 혹이라도 마주한 사람이 못 쓸 놈이었다면 하는 생각은 못한 걸까 하고 생각했다. 지금 그가 문 사이에 발만 갖다 대도 이수는 다시 굳건한 성문을 닫지 못할 것이다.


"뭐가 오촌이냐. 바보야. 얼른 문이나 열어줘. 온 몸에 땀이 차서 돌 것 같아."


그리고 3초 뒤 잠깐 읽던 국어책은 내던져졌다.


"후우……. 삼촌이 맞구나."


스스로는 그럴싸한 거짓말 테스트였다고 생각했는지 이수는 얼굴에 안도감을 떠올리며 잠금 쇠를 마저 다 풀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짝 물러났다. 곧 이어 상현이 들어오면서 페인트가 눌러 붙은 손으로 이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저분한 운동화가 벗겨지면서 페인트 가루가 흘러내렸다.


“우엑. 냄새 나. 옷 벗은 거는 세탁기에 꼭 넣어둬.”


상현은 옷걸이를 향해 손을 휘젓는 이수를 보며 웃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그보다도 수건은 어디 있냐?”


“글쎄- 아버지가 열흘 전 그대로 집안을 방치해 뒀다면야, 세면대 옆의 선반에 있을걸.”


상현은 작업복을 벗어 세탁기에 넣고는 자연스럽게 속옷 바람으로 이수 앞을 지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세기를 최대로 올린 샤워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수는 움켜쥐고 있던 코를 놨다. 집안은 고요함이 찾아와 긴장감을 풀었고, 이수는 한숨을 쉬면서 어기적어기적 소파를 찾아갔다. 벌써 20분 동안, 한 가지가 빠진 오감에 온 신경을 썼더니 피곤했다. 그 중에서 이수가 싫어하는 페인트 냄새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상현은 옆머리에 묻은 샴푸를 마저 헹구고 고약한 내를 몰아낸 비누거품을 씻어냈다. 그리고 샤워기를 제자리에 둔 뒤에 수건을 꺼내기 위해 선반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나 그는 샤워하기 전에 미리 수건을 확보했어야 했음을 깨닫고 말았다. 눈에 물이 들어간 탓에 더듬거리던 그의 손가락은 선반 바닥을 긁을 뿐이었다.


마저 눈을 비벼 눈을 뜬 상현은 난감함에 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이수를 부르려다가 멈칫했다. 수건을 찾아 모험을 하는 것은 좀 난이도가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안 보일 테니까······. 상현은 몸에 남아 있는 물기를 대충 털어내고는 용기 있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에취!"


하지만, 잠시 후 그는 금방 문을 닫아야 했다. 더위 때문에 창문을 몽땅 열어둔 집안은 바람에 점령당하고 만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의 용기도 풍전등화처럼 사그라졌다. 평소엔 땀방울 하나도 식히기 힘겨운 약한 바람만 불더니 오늘은 웬일인가 싶었다. 게다가 벌거벗은 채로 수건을 찾아다니는 걸 이웃 사람이 본다면 그야말로 변태 취급이겠지.


별 수 없이 상현은 젖은 채로 꺼내둔 속옷을 입고 나왔다. 이수는 소파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 베란다로 나온 상현은 텅 빈 건조대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탁기로 발길을 돌렸다.


세탁기 뚜껑은 열려 있었다.


'에이 설마······.'


그는 1m앞까지 풍겨오는 정체 모를 냄새 때문에 불안해졌다. 만용을 부려서 그 안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리고 상현은 십수 년간같이 지냈던 형을 일주일간 혼자 놔두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새삼스레 깨닫고 말았다.


거실에서는 이수가 이 상황을 즐기듯이 키득거리는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상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곤란할 때마다 머리를 긁는 버릇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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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장 : 만남(1) 15.05.08 219 1 11쪽
10 2장 : 안(5) 15.05.08 205 1 11쪽
9 2장 : 안(4) 15.05.08 132 1 9쪽
8 2장 : 안(3) 15.05.08 161 1 8쪽
7 2장 : 안(2) 15.05.08 256 1 9쪽
6 2장 : 안(1) 15.05.08 276 1 11쪽
» 1장 : 바깥(4) 15.05.08 206 1 10쪽
4 1장 : 바깥(3) 15.05.08 260 1 8쪽
3 1장 : 바깥(2) 15.05.08 247 1 9쪽
2 1장 : 바깥(1) 15.05.08 109 1 9쪽
1 프롤로그 15.05.08 324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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