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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JK - 미르 제이케이 라고 읽습니다. :)

배나무의 꿈(P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irrJK
작품등록일 :
2015.05.08 21:55
최근연재일 :
2015.05.08 22:03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397
추천수 :
11
글자수 :
44,568

작성
15.05.08 22:01
조회
132
추천
1
글자
9쪽

2장 : 안(4)

DUMMY

"으음."


눈이 반짝 뜨였다. 나는 벽에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져 자고 있었나 보다. 과열된 엔진이 결국엔 다운 먹고 말았음을 느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콜록콜록, 기절해 있는 동안 먼지를 많이 마셨는지 목에는 가래가 잔뜩 걸려 있었다.


나는 지끈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받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사념들을 모두 해소한 뒤에 정리할 여유도 없이 기절한 모양이었다. 아직도 잔류중인 사념은 없었다.


기절하기 직전의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았다. 수십 개의 사념들, 개개의 입장이 되어서 죽는 순간을 체험하는 건 정말 불쾌했다. 그리고 그건 그들로부터 느낀 감정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미치광이들, 난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방법으로 죽어갔다. 기쁜 마음을 얼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근육을 사용하여 나타낸 뒤, 두 손으로 손잡이를 포함한 길이 30센티미터쯤 되는 칼을 거꾸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리쳤다. 목표는 자신의 배였다. 엄청난 고통속에서도 그들은 얼굴 근육을 조형 틀로 고정 시킨 듯, 웃고 있었다. 그래, 소위 말하는 할복 자살이었다.


정말 역겨웠다. 마지막의 마지막일 것 같은 순간까지 내 뒤통수를 갈겨주는 구나.


괜한 기억을 떠올린 탓에, 조금 전부터 사념들의 할복하던 장면이 쉬지 않고 눈 앞에서 맴돌았다. 제길, 쿨럭. 이번엔 기침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갈비뼈 부근이 아팠다. 안 되겠다. 밖으로 나가서 맑은 공기를 마셔야 겠어.


들어왔을 때랑은 달리 출입문은 타이밍 좋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 비쳐오는 조명으로 보아 초저녁 아니면 새벽일 듯 싶었다. 아마, 내가 오래 기절해 있었던 것 같으니까 말이야.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통화불능 표시가 떠 있었다. 시간은 5시 48분, 참고로 곧 있으면 무용지물로써 설정해 둔 내 방의 자명종이 울릴 시간이었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놀라고 말았다. 새벽빛을 받으며 문 옆에 안내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보스가 결재를 완료하길 기다리던 비서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마침 눈에 아른거리는 사념이 그와 겹쳐보이는 바람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중, 그는 정중한 미소를 띤 채 아침 인사를 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진오님."


알긴 아는 군. 그 고생의 90퍼센트가 당신들 때문에 생긴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면 좋겠지만. 물론, 이제와서 사과한다고 해서 난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잘해주셨습······."


"아뇨. 괜찮습니다.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새벽 첫차가 정류장을 지나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하던 중, 안내자는 주어진 대본을 낭독했다.


"···라는 게 그 분의 전언이십니다."


뭐라고? 그 분이라니? 아무개, 그 자식이 여기에 있었던 건가. 나는 휘청거리 듯 뒤돌아 안내자를 봤다. 계속 눈에서 거슬려대는 사념은 그와 겹치고 있었다.


어느 새 준비 해뒀는지 몰라도 안내자는 발 밑에 떨어져 있던 칼을 주워들고 잇었다. 갑자기 불안이 엄습했다. 이런 제길, 그 칼가지고 뭐하려는 짓이냐!


"크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갑작스럽게도 사념들이 머리 속에서 날 뛰기 시작했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위기 의식을 느껴 본능적으로 비틀거리며 뒷 걸음질 쳤지만 그와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안내자는 여전히 정중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슨 짓입니까?"


시야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막 진정되었던 엔진이 타의에 의해 급회전을 시작했다. 남자는 대답 없이 들고 있던 칼을 거꾸로 쥐고는, 처키의 인형처럼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지척까지 다가와서 내게 속삭였다.


"이것으로 완성이군요. 저는 매우 기쁩니다."


높이 치켜든 칼이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


내가 내 능력에 대해서 자각하게 된 시기는 최근에 이르러서였다. 중학교 입학 전까지, 철없이 놀던 때까지만 해도 나는 누구나 다 다른 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매번, 잘못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을 할 때마다 나는 부모님이 내 생각을 읽으실 까봐 전전긍긍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끝내는 울면서 달려가 진실을 고했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자세히 기억하지는 않지만 몇 번 무당을 부른 적도 있었다. 주변의 사념을 아무 저항 없이 이해해 버리고는 받아들이고 말았으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아무 쓸모도 없는 무당의 굿판 옆에서 용케도 제정신으로 돌아온 걸 보면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우린 골목 안에 있었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쉰 것을 마지막으로 상념을 깨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실은 망설임이 많았던 것이다. 적어도 핏자국 같은 흔적과 흉기로 쓰인 증거물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더라도 부작용이 없는 [읽기]를 택했을 텐데.


아무튼, 부디 죽는 순간의 두 분의 한이 깊기를 바랐다. 잔류한 사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또렷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에 대한 부작용을 감수해야하지만 말이야.


몇 걸음 뒤에서는 영준이가 작게, 아주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이곳은 살인의 흔적이 거의 다 사라져버린 지 오래인, 영준이의 부모님의 존재가 마지막에 다다른 종점이었다.


"영준아."


"······."


"내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절대 신경 쓰지 마."


"···그래."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골목길 안은 조용해졌다. 나는 눈을 감고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따로 능력을 쓰는 데 주문 같은 건 없다. 그래, 이미지를 떠 올림으로써 스위치를 켜는 느낌이랄까? 머릿속에서 시동 걸린 엔진이 막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아아악!]


중년인의 비명.


[꺄악! 여보, 그러지 말아요!]


중년 부인의 애절한 외침.


그것은 말 그대로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쿨럭, 쿨럭. 초저녁의 골목 안에서 병에 걸린 듯 고통스러워하는 청년과 이를 보고는 못 지나친 한 쌍의 부부로부터 생긴 일.


[이봐, 학생. 괜찮은가?]


[······.]


조금 꺼려하는 부인에게 미소를 지은 아버지는 쓰러진 청년에게 다가갔다. 어깨에 따끈한 촉감을 느낀 청년은 고개를 돌렸다. 걱정 어린 시선을 마주친 청년은 그저 어깨에 손을 얹은 아버지를 노려볼 뿐이었다. 아니, 살짝 입술을 움직였으니 무언가 중얼거렸을 터이다.


사건은 이제부터 일어났다. 갑자기 아버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뒷걸음질 쳤다. 청년은 싱긋 웃으며 멀쩡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품에 손을 넣은 청년은 곧 이어 신문지로 쌓인 작은 식칼을 꺼냈다. 청년은 칼을 아버지 발치에 던졌다. 아버지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심하게 떠는 손으로 그 칼을 주웠다.


남편의 상태가 안 좋은 것을 깨달은 부인이 골목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여보?]


아버지는 대답을 못했다. 겨우 움직일 수 있는 건 얼굴 근육, 경악에 찬 표정이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온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분명히 몸은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칼은 거꾸로 쥐어져 있었고 작은 날이 닿은 곳은 복부였다. 천천히, 작은 날이 옷을 뚫고 살갗을 파고들었다.


[으아아악!]


청년은 남의 고통을 마약처럼 즐기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부인은 놀라서 남편을 만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꺄악! 여보, 그러지 말아요!]


절반 정도 들어간 칼이 다시 뽑혀 나왔다. 피가 튀듯 흘렀다. 아버지는 한 움쿰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부인은 발을 동동 굴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래, 119. 부인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청년의 목표는 부인으로 옮겨졌다. 부인 또한 쓰러진 남편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부인은 휴대폰을 떨어트리고는 이미 피를 머금은 작은 칼을 휴대폰 대신 주웠다.


[영준아-! 영준아! 아-악, 영준아!]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해 공포를 느끼며 마지막 순간까지 떠올린 것은, 등교를 하던 아들의 뒷모습이었다. 머리를 크게 저며 아들을 외치던 부인은 남편이 했던 할복을 반복하고 말았다. 눈물을 흘리면서 부인은 쓰러졌다. 그제야 가위눌린 것에서 벗어난 것처럼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었다. 부인은 피가 흘러나오는 속도 만큼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바닥을 긁던 손가락은 그만 멈추고 말았다.


마침 얼굴을 내민 달에 비쳐 그림자를 만들고 있는 존재는 청년 하나뿐이었다. 그는 연신 기침을 해대며 자리를 떴다. 남은 건, 서로가 두 손을 뻗어 맞잡으려던 중년 부부의 싸늘해진 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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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장 : 만남(1) 15.05.08 220 1 11쪽
10 2장 : 안(5) 15.05.08 205 1 11쪽
» 2장 : 안(4) 15.05.08 133 1 9쪽
8 2장 : 안(3) 15.05.08 161 1 8쪽
7 2장 : 안(2) 15.05.08 256 1 9쪽
6 2장 : 안(1) 15.05.08 277 1 11쪽
5 1장 : 바깥(4) 15.05.08 206 1 10쪽
4 1장 : 바깥(3) 15.05.08 260 1 8쪽
3 1장 : 바깥(2) 15.05.08 247 1 9쪽
2 1장 : 바깥(1) 15.05.08 109 1 9쪽
1 프롤로그 15.05.08 324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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