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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JK - 미르 제이케이 라고 읽습니다. :)

배나무의 꿈(P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irrJK
작품등록일 :
2015.05.08 21:55
최근연재일 :
2015.05.08 22:03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391
추천수 :
11
글자수 :
44,568

작성
15.05.08 22:00
조회
255
추천
1
글자
9쪽

2장 : 안(2)

DUMMY

나는 영준이의 배웅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며칠 째 내리던 비는 아침 일찍 그쳐서, 햇살이 지나는 길을 구름들이 비키고 있었다. 이런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면 아무리 성질 나쁜 것들이라도 모두 온순해질 것 같았다. 뭐, 그렇게 된다면 참 평화로울텐데.


집에서 고속버스 터미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교통수단을 탈 것도 없이 걸어서 가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엄청난 후회를 낳고 말았다.


30분을 만만히 봤다가,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 때문에 불쾌지수가 화창함을 내 쫓고는 머릿속을 점령하고 만 것이다. 나는 등짝에 자꾸 들러붙는 옷의 촉감이 불쾌해서 가슴을 잔뜩 내밀고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건물 안은 에어콘을 틀어둔 덕에 시원했다. 평일이라서 손님이 별로 없는데도 이렇게 냉방을 해주는 관리자가 너무도 고마웠다. 나는 얼른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고는 대기실의 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냈다. 아직 출발시간까지 여유가 있었기에 어제 통화를 했던 김 아무개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뚜루루- 대기실에 착신 음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리고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금 거신 번호는 수신이 불가능한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주시길 바랍니다.]


착신음이 울린지 세 번만에 들린 목소리였다. 잠깐동안 사고의 흐름이 끊겼다. 마치 프라모델을 순조롭게 조립하고 있던 도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부품 하나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넣어뒀던 두번 접힌 메모지를 꺼냈다. 아니, 이렇게 대조할 필요도 없이 어제 걸려왔던 전화의 발신번호를 가지고 그대로 전화를 건 거였으니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내 사고는 작은 돌부리 하나 때문에 걸려 넘어져 구르는 상태였다.


메모지에 적혀진 아랍어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연락처가 적힌 대목을 찾은 뒤 휴대폰을 메모지 옆에 나란히 놓고 번호를 비교해 봤다. 지역번호, 가운데 번호, 마지막 번호······.


당연하지만 번호는 모두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 뚜루루- 뚜루루- 찰칵-.


[지금 거신 번호는······.]


"......"


난 멍청히 휴대폰 케이스를 닫았다. 점차 불안감이 엄습하는 바람에 초조해지고 말았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하지만 제대로 고민할 시간도 없이 상념을 깨야했다. 정류장 앞에서 내가 타야할 버스가 출발 준비를 다 갖춘 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복잡해진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어쩔 수 없이 버스에 승차했다.



******




버스는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막히는 일 없이 시원하게 달리는 속도감이 좋았고 창문 밖으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경치도 좋았다. 게다가 빵빵하게 틀어주는 차내 에어콘도 시원했다. 하지만 내 기분은 매우 안 좋았다.


나는 배터리가 절반이나 닳은 휴대폰의, 액정화면을 보았다. 최근 통화목록에는 김 아무개 씨의 번호만이 화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것도 죄다 수신불가번호라며 어느 여성의 딱딱한 목소리를 여러번 들은 것들이었다.


정말 난감했다. 비록 내가 피곤했다 하더라도 걸려온 전화의, 적어도 상대방이 하는 말에 대한 진위는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직접 만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세세한 사고까지 읽을 수 없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표를 끊기 전에 연락을 하든가 하는 건데. 왜이리 멍청할까, 나는.


공중전화로 걸은 걸까, 아니면 오늘부로 전화를 끊은 걸까?


이러저러 잡생각에 빠져있던 중에,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에서 멈췄다. 막무가내 심정으로 내리고 보니 정거장은 광활한 사막 안의 오아시스처럼, 앞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 중간에 있었다. 그리고 나를 등진 채 출발한 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서서히 바퀴부터 가라앉았다.


일단은, 약속시간까진 10분 남았기 때문에 시간 내에 의뢰인이 온다면 좀 따질 생각으로 정거장 지붕의 그늘이 닿는 곳에 앉았다.


아스팔트에 복사된 태양열은 후끈거렸고 그로 인해 곳곳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5분 남았다. 하염없이 아지랑이를 바라보던 중, 나는 저 멀리서 흔들거리는 환각을 발견하고 말았다. 아니, 내 머리가 잘못 될 리가 없지. 저 멀리서부터 내게 다가온 환각은 사람 형체로 바뀌었고, 그 형체는 정중한 미소를 띤 남자로 탈바꿈했다.


“진오님 맞으시죠?”


대뜸, 그는 나를 보고,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사내의 머리 속을 훑었고 금방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이 자는 내 속을 썩였던 김 아무개가 아니었다.


나는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모든 불만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 아무개 씨는 어디 계십니까?”


“네?”


안내자로 나온 것 같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게 전화를 걸었던 분 말입니다. 좀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나는 질문을 하면서 다시 한번 남자가 떠올리는 생각을 읽었다. 그리고 허탈해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린 뒤, 미소를 지으며 내게 언행일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마쳤다.


“모르겠습니다.”



사막에 한 줄로 찍힌 낙타의 발자국을 이정표 삼아 걷듯이 나는 고개를 숙이고는 안내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정류장에서부터 이 남자는 고객을 맞이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종업원처럼 정중하게 나를 이끌었다. 단 한가지, 쉴새 없이 수다를 떤다는 점 빼고는 말이다.


"음, 날씨가 많이 덥네요. 이런 날은 계곡에서 하루종일 쉬어야 하는데 말이죠."


"......"


대체 누굴까? 연락조차 안 되고 마을 사람이 존재조차도 모를 뿐더러, 말하진 않았지만 벌써 선수금으로 의뢰비를 몽땅 지불한 인물이······.


그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건, 알려주지도 않은 내 이름을 앞 서 걷고 있는 처음 본 사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건가? 그것도 지도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이런 산 속 마을에서 알아줄 정도로 말이다.


쉬지 않고 걸어서 옷이 나무가지에 긁혀 더러워질때쯤에 이르러서 도착한 마을은 산간의 화전 마을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입구에서 본 마을 광경은 매우 한적해 보였고 집은 듬성듬성 분포돼 있었다. 그 사이사이마다 대부분이 밭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런 오지마을 같은 곳에서 어떻게 내게 전화를 걸 수 있었을까. 나는 답답했다.


그러나 위화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옥수수 밭을 지나 마을 깊숙이 들어오는 동안 사람은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고, 난 그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만난 사람이란 건 나를 자연스럽게 대하는 안내자 한명뿐이었고, 직접 의뢰를 한 김 아무개는 내가 꿈이라도 꾼 것처럼 존재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마을에는 가꿔진 밭이 있는데도 인기척이 하나도 없다.


여긴 무슨 민속박물관이라도 되는 거냐? 초등학생 때나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 견학숙제 따위나 하러 여길 온 게 아니라고! 나는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심정을 간신히 억누르고는 이 상황과 유일한 매개체인 남자를 붙잡고 이것저것 물었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왜 마을에 사람이 없는지,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지 등을 말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씀이신지?”,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나 남자는 게임 속 NPC처럼 미소를 띤 채 상투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것은 그의 머리 속,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내 의문에 대한 답은 그가 내뱉은 말과 오차 0.1밀리리터 정도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앞장을 서며 시시껄렁한 수다를 이어나갔다.


그래, 어디 뜻대로 해주마. 나는 꼭두각시 같은 안내자의 뒤통수를 잠시 노려봤다. 그리고 더 이상 이 남자에게서는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아 신경을 껐다.


결국 폐가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고 건물은 겉에서 보기에도 어두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마을 깊숙한 곳, 아직도 해가 지려면 멀었건만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빽빽이 그늘에 삼켜진 폐가는 문자 그대로 컴컴했다. 그리고 문 앞까지 다가간 안내자는 길을 터주듯 옆으로 비켜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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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3장 : 만남(1) 15.05.08 219 1 11쪽
10 2장 : 안(5) 15.05.08 204 1 11쪽
9 2장 : 안(4) 15.05.08 132 1 9쪽
8 2장 : 안(3) 15.05.08 161 1 8쪽
» 2장 : 안(2) 15.05.08 256 1 9쪽
6 2장 : 안(1) 15.05.08 276 1 11쪽
5 1장 : 바깥(4) 15.05.08 205 1 10쪽
4 1장 : 바깥(3) 15.05.08 260 1 8쪽
3 1장 : 바깥(2) 15.05.08 247 1 9쪽
2 1장 : 바깥(1) 15.05.08 108 1 9쪽
1 프롤로그 15.05.08 324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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