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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JK - 미르 제이케이 라고 읽습니다. :)

배나무의 꿈(Pre)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MirrJK
작품등록일 :
2015.05.08 21:55
최근연재일 :
2015.05.08 22:03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401
추천수 :
11
글자수 :
44,568

작성
15.05.08 21:58
조회
247
추천
1
글자
9쪽

1장 : 바깥(2)

DUMMY

“저, 따님에게는 별 다른 이상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지금 애가 앞이 안 보인다고 합니다. 어떻게든 알아볼 방법이 없겠습니까?”


현도는 의사의 바짓가랑이를 잡든, 멱살을 잡든, 어떻게든 붙잡아서 이수의 시력을 되찾을 방법을 얻고 싶었다. 그러나 얄밉게도 의사는 손사래를 칠뿐이었다.


“저희로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차후 경과를 보고 나서 결정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도는 의사의 차분한 말이 상투적으로 느껴져 신경질이 났다. 의사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온 그는, 딸이 있는 304호실로 향했다. 들어가기 전 문 앞에서 그는 병실 안이 조용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대한 천천히 손잡이를 돌려서, 소리가 안 나게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서는 이수가 베갯잇을 꼭 끌어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멍한 듯, 초점이 없는 그녀의 시선에 현도는 한숨을 쉬었고 이수는 무언 갈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약간 어긋나긴 했지만 현도를 향했다.


“아빠? 삼촌?”


“아빠야.”


이수의 높았던 목소리 톤은 현도의 말 한마디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다행히 웃었다.


“아-. 놀랬잖아. 근데 상현이 삼촌은?”


그러고 보니 이수는 깨어난 후부터 삼촌을 만나지 못했다.


“상현이는 일 나갔지. 별 다른 상처도 없으니 빠질 순 없대.”


“그렇구나.”


살짝 미소를 짓던 이수는 입 꼬리가 무거워진 것 같았다. 뭔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아빠. 나 이대로 집에 들어갈래.”


“응? 뭐라고?”


현도는 뜻밖의 말에 놀랐고 이수는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눈 말고는 아무데도 이상이 없다고 하잖아. 솔직히, 입원비만 해도 계속 들어갈 텐데······.”


그는 굳어진 인상을 쉽사리 필 수 없었다. 적어도 딸 앞에선 팔불출 노릇을 하던 현도는 이런 그녀의 상태에 감사했을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말고, 기운 내.”


"포기 안했어! 뭐······. 삼촌만 일하고 아빠는 일 안해? 그럼 나 보고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으란 소리잖아."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안돼. 좀 더 검사하다 보면 나을 방법이 있을 거야.”


“아냐, 됐어. 머리 손질도 못하다보니 기분 나빠. 그래, 그러면 되겠다. 어차피 여름인데 시원하게 머리 좀 자르는 거야.”


이수는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고는 반대쪽 손을 가위처럼 만들어 머리 자르는 시늉을 했다. 입가엔 다시 한번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이를 안쓰럽게 여긴 현도는 침대 맡으로 다가가서 딸의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괜찮아. 목욕은 내가 직접 할 테지만······. 머리 감는 것 정도는 아빠한테 맡길게. 응? 그러니까……. 그러니까……. 흑, 흐흑.”


“그런 게 아니잖니.”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고 이수는 고개를 더욱 더 숙여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악을 지르는 듯한 괴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가 태어난 후로 계속 산 집이야! 눈 하나 안보여도······.”


“이럴 때 네 엄마가 있었다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한단다.”


현도는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감춘, 태연함 속의 처절함을 벗겨냈다. 후우- 이상하게도 병실 안은 가슴이 갑갑할 정도로 숨을 쉬기 힘들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었다. 커튼에 가려져 있던 태양의 온기는 아무런 여과 없이 쏟아져 내려왔고, 비록 이수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빛의 가닥들은 그녀를 감쌌다.


“바람이 부네. 햇빛은 안 보이지만.”


하루 만에 생기를 잃은 듯한 이수의 머리카락이 얕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가에서 그친 눈물은 다이아몬드처럼 빛을 냈다.


“음-.”


현도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딸의 손은 너무도 차가워서 아버지는 가슴이 아팠다. 그는 부드럽게 손에 힘을 주었다.


“ 오늘 하루만 지내고 내일 집에 돌아가자. 어때?”


“어?”


"손이 많이 차갑구나."


"……."




이수는 직감적으로 현도가 희미하게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도 덩달아 웃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녀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 *




이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한번 겪었던 경험을 두뇌가 재구성하여 연출하는 영화 속에서, 그녀는 현실에서 볼 수 없었던 시력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꿈이란 걸 자각할 새도 없이, 그녀는 급히 달릴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달려야 하는지 의문을 느낄 때 쯤, 그녀는 뒤를 보고 말았다. 어두운 연기 덩어리. 그 것은 퀭한, 눈이 있음 직한 부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수의 시선이 그 것의 시선과 마주친 직후, 그녀는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었다. 뚜렷한 형체가 없는 그 것은, 이수의 눈에는 절망이라는 단어로 비쳐졌다.


“살……. 살려주세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엔 그녀의 말이 메아리 칠뿐이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더욱 공포감에 휩싸였다. 헐레벌떡 달리던 끝에 결국에 그녀는 힘이 빠져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주위가 어두 캄캄해지더니 그녀는 관성의 느낌을 받게 되었다. 어느 새 그녀는 검은색 소나타, 그것도 사고가 나기 전에 앉았던 자리로 옮겨진 것이다. 헉. 헉. 겁에 질린 이수가 운전석을 흔들며 삼촌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자, 이번엔 삼촌의 얼굴을 비추던 백미러 속에서 그 괴물이 기어 나왔다. 이수는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그리고 그녀는 상체를 튕기듯 일어나 앉았다.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꿈에서 깼구나. 이수는 얼굴, 목, 손 그리고 옷에 가려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모두 식은땀으로 젖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숨은 계속 거칠었고 그 바람에 감정이 울컥 북받친 이수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사실, 그녀가 집에 가고 싶다고 조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뒤로 이틀 동안, 그녀는 두 번 연속 똑같은 악몽을 꾼 것이다. 새벽빛이 커튼 사이를 지나며 작은 시계를 비추었다. 시간은 그녀가 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 시간이었다.


"흑……. 흑."


이수는 고통스러웠다. 꿈속에서 쫓기던 공포감은 가슴에 그대로 남아, 그녀를 옭아매었다. 손을 뻗어, 더듬으며 자신이 베고 있던 베개 잇을 움켜잡았다. 식은땀에 절어 축축했지만 혼자서 떨고 있는 가슴을 감싸 주기엔 충분했다.


잠을 자면 악몽의 연속이었고, 깨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녀의 좌절감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지금 그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그녀를 안심시켜줄 수 있는 아버지의 미소였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앞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실감할 뿐이었다. 현재 그녀의 마음은 어느 한번이라도 편히 놓질 못하여, 갈가리 찢겨지는 중이었다.


그대로 이수는 아침 식사를 들고 온 현도가 발견할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그런 딸의 모습을 본 현도는 더 이상 망설임 없이 곧바로 퇴원 소속을 밟았다. 그의 요청에 담당 의사는 손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도의 부탁에 따라 몇 번이고 진단을 해봐도 이수의 눈은 의학상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


병원 현관을 나서며 현도의 손을 잡고 조심스레 걷던 이수가 말을 했다.


"음. 왜?"


"잠깐 고개 좀 숙여봐."


그녀의 말에 현도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숙였고, 이수는 더듬거리며 그의 얼굴을 만졌다.


"아야야. 뭐 하는 거냐."


그녀는 현도의 양 볼을 위로 잡아 당겼다. 그리고 남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만졌다.


"휴……. 이제 됐어."


이수는 만족해하며 손을 놨다. 현도는 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얼얼한 볼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의 미소는 눈이 없더라도 느낄 수 있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계단을 잘못 디디는 바람에 넘어질 뻔한 순간에도, 그녀의 몸을 부축하는 따뜻한 온기 덕에 이수는 웃을 수 있었다.





8월 3일. 이 날은, 더 이상의 마음고생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이수에게 시련이 시작 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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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장 : 안(2) 15.05.08 256 1 9쪽
6 2장 : 안(1) 15.05.08 277 1 11쪽
5 1장 : 바깥(4) 15.05.08 206 1 10쪽
4 1장 : 바깥(3) 15.05.08 260 1 8쪽
» 1장 : 바깥(2) 15.05.08 248 1 9쪽
2 1장 : 바깥(1) 15.05.08 10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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