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 제2화
"자.. 선화씨와 민정씨의 입사를 축하하면서 건배.."
다들 맥주 잔을 들어 올린다.
나 역시도 구석 자리에 앉아 동참해준다.
하지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회식이란 건..
참 재미가 없다.
남자들끼리 모여 군대 얘기.여자 얘기..
그러다 질리면 야구나 축구 얘기..
그나마 이젠 여자들이 들어왔으니 좀 달라 지려나..
이젠
2차로..
향락이 넘치는.. 생판 모르는 여자들과 유희와 가무를 즐기는..
그런 곳은 안 가겠지?
늘.. 지연이 생각에..
첫 술자리가 끝나면 홀로 집으로 향하던 나였다.
"어이 봉구씨.. 왜 이렇게 혼자 궁상맞게 앉아있어?"
역시나 나를 아는 척 해주는 건 상진씨 밖에 없다.
"아뇨.. 같이 노는데요 뭘.."
"이리 와봐.."
나를 끌고.. 선화씨와 민정씨가 있는 테이블 앞으로 간다.
"자.. 자.. 여기는 김봉구.. 저랑 입사 동기죠.."
상진씨가 그녀들에게 내 소개를 해준다.
"네.. 안녕하세요 봉구씨.. 반가워요.."
선화씨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 네.."
"아.. 안녕하세요.."
역시나 민정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간단한 인사만 건넨다.
"네.."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냥 간단한 인사만 건냈다.
"어머 봉구씨.. 그 옷.. 멋있네요? 센스 있으신 거 같아요.."
뭔가 적극적인 선화씨..
확실히.. 뭔가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그런가요? 하하.. 제가 원래 옷빨이 좀 받아서.."
오랜만에.. 뻔뻔한 조크 한 번 날렸다.
.............
분위기가 급 썰렁해진다.
아.. 오랜만에 유머 하려니.. 감을 잃었나?
"호호홍.. 봉구씨 의외로 재밌으시네요.. 별로 말 없으셔서 조용하신 분 일줄 알았는데.."
"하하하.. 봉구씨 알고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친구라니까요.."
상진씨도 거들어준다.
고마운 상진씨..
"민정씨는 어때요? 봉구씨 재밌을 거 같죠?"
선화씨가 옆에 조용히 안주만 먹고 있던 민정씨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아.. 네?.."
..............
"민정씨 안주 먹느라고 정신 없으시네.. 봉구씨 어떻냐고요.."
"아.. 그게.. 전 그냥 좀 .. 별로 같은..데.."
..................
잉?
잘못 들었나?
지금 내가 별로라고 한 거?
뭐지?
"어머.. 민정씨..호홍.. 재밌네.. 봉구씨 재미없어요?"
..............
뭐야.. 내가 지금 별로라는 거야?
아니.. 아무리 별로여도 그렇지.. 대놓고 저런 말을 해?
"아.. 아뇨.. 그게 아니고.. 저 옷.. 옷이 좀 별로라고.."
엥?
이 아가씨는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하하하.. 민정씨.. 은근히 캐릭터 있으시네.."
상진씨가 수습하느라.. 재치를 발휘한다.
뭐야..
대화에 집중도 안하고...
답답하다 답답해..
그나저나 이 옷이 별로라고? 이게 얼마짜린데..
"자.. 우리 건배나 한번 하죠.."
상진씨가 잔을 들어올린다.
"건배.."
나와 상진씨.. 선화씨와 민정씨..
테이블에 마주 앉아..
부서내의 가장 막내들로서.. 의기투합을 하고 있었다.
벌컥벌컥 원샷을 한다.
회식 하면서.. 이렇게 관심 받아 본 것도 참 오랜만인듯..
상진씨와 선화씨가..
내내 고마울 따름이었다.
"민정씨도 한잔 마시세요.. 아까부터 한잔도 안 마시시던데.."
"아.. 저.. 전 술 못 마시.. 는데.. 죄송해요.."
.............
술까지 못 마시는군..
앞날이 참 암울해보인다.
매주 마다..
아니 2-3일에 한 번씩.. 술자리가 생길텐데..
끔찍하겠네..
술도 가르쳐야 되나?
아니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있긴 한 거야?
"에이.. 못 마시는 게 어딨어요.. 원래 다 첨엔 그런 겁니다."
라며.. 잔을 들어 민정씨와 건배를 하려는 상진씨..
"자자.. 딱 한잔만 해요 우리.."
"정..정말 죄송..해요. 전 못 마시겠어요.. "
...........
"어이 이봐요.. 당신.."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못하는 게 어딨어요? 누군 처음부터 잘 마신 줄 알아요? 해보지도 않고 못 하는 게 어딨습니까?"
목소리가 커지며.. 결국 그녀를 향해.. 뜻하지 않던 화를 내버리고 만다.
"네?"
민정씨는 나의 이런 뜬금없는 행동에 무척이나 놀란 듯.. 갑자기 목소리를 떨기 시작했다.
상진씨와 선화씨도 이런 내 모습에 당황을 한 건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잔 들어요 빨리..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아나.."
나 지금 뭐 하는 걸까..
이래도 되는 건가?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팀원들의 시선도 온통 나와 민정씨에게 쏠려있었다.
순간..
맥주 잔을 들더니.. 벌컥벌컥 마시는 그녀..
힘에 겨운지..
겨우 겨우.. 원 샷을 하고야 만다.
"오~~~~~"
순간 함성..
뭐야.. 다들.. 이럴 땐 또 함께 즐겨주네..
순간이었지만.. 팀원들에게 살짝.. 고마움이 느껴진다.
그나저나..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거겠지?
"거봐.. 하면 되잖아요.."
의기양양해진 나..
"자 한잔 더 받아봐요."
그녀의 잔에다 맥주를 따른다..
"저.. 저기요.."
"왜요?"
"저.. 저.. 도저히.. 욱~~~~"
갑자기.. 입을 틀어 막고 화장실로 뛰쳐나간다.
"민정씨~"
선화씨가 놀라며 급히 그녀를 쫓아가 준다.
.........
뭐야..
한잔 먹고 왜 저래?
"봉구씨.. 오.. 박력 있었어.."
옆 테이블에서 박대리가 농담인진 진담인지.. 웃으며 한마디 건넨다.
...............
"처음 봤어.. 봉구씨 이런 모습.."
"에휴.. 그냥 답답해서요.. 어쩌다 저런 아가씨가 들어온 건지.."
"그러게 말야.. 봉구씨 처음 왔을 때 같구만.."
...............
그래도 난 술은 잘 마셨는데...
"저.. 차장님.."
선화씨가 화장실에서 나와.. 차장님을 부른다.
"왜요?"
"저.. 민정씨 좀 바래다 줘야겠어요. 너무 취해서 지금 몸을 못 가누네요"
.............
"민정씨가? 아니 술도 안마셨는데 왜 취해?"
"모르겠어요.. 지금 정신도 거의 못 차리고 밖에 앉혀 놨는데.. 빨리 데리고 가야겠어요.."
..............
뭐야..
겨우 500CC 한잔인데..
그걸 먹고 취하는 게 말이 돼?
회식 분위기가 싫어서 집에 가려고 거짓말 하는 거 아냐?
"아.. 안됩니다. 선화씨마저 가면 어쩝니까.."
"맞아요.. 오늘 회식을 왜 하는 건데.. 선화씨마저 보낼 수 없습니다!!"
"옳소.. "
다들.. 선화씨 붙잡으려고 안달이다.
남자들이란..쯧..
이것들아.. 밖에 팀원이 쓰러져있다..
제발.. 그 친구한테도.. 관심 좀 가져봐라.. 이 인간들아!
"어이 봉구씨.."
차장님이 나를 부른다
"네.."
"봉구씨가 민정씨 좀 데려다 줘.."
"네?"
"봉구씨가 민정씨.. 집에 데려다 주라고.."
"제가 왜요?"
"왜긴 왜야? 봉구씨가 먹였으니까.. 봉구씨가 책임져야지.."
................
아니.. 먹일 땐 같이 환호해 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네..
"저기 그래도.. 전 남자고.."
"남잔데 뭐?"
"아니.. 뭐 그냥 좀.."
"여기.. 민정씨 주소에요.. 민정씨 좀 잘 부탁해요.. 봉구씨.."
선화씨가.. 메모지를 건내며 씽끗 웃는다
................
그리곤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건배를 한다.
...............................
"상진씨.. 저 두사람 은근 잘 어울릴 거 같지 않아요?"
"누구요? 봉구씨랑 민정씨?"
"네.. 성격도 왠지 비슷할 거 같고.. 제 눈엔 잘 어울리는데.. 상진씨는 어때요?"
"하하.. 봉구씨 여친 있어요.."
옷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하는 내 뒤에서 둘이 속삭이듯 얘기를 한다..
하지만 다 들려버린다 젠장..
.......................
내가 어딜 봐서 저런..
에휴..
지연이 귀국하면 선화씨한테 일단 먼저 보여주리라..
"아저씨.. 신길동이요.."
겨우 끌고 나와 택시에 태웠다.
그녀는 정신을 완전 잃은 거 같다.
...........
거참 이상하네..
맥주 한잔에 인간이 이렇게 정신을 잃을 수도 있나?
이거 혹시 병원 가야 되는거 아닌가?
갑자기 긴장된다.
설마 아니겠지?
한참을 지나..
택시가 내린 곳은..
..............
웬 달 동네?
서울에 이런 곳도 있었나?
아니.. 여기서 이 주소를 어떻게 찾으라는 거?
택시 기사도 차가 못 들어간다고 이 길에 세워 놓고 떠나 버린 것이다.
하...
미치겠다.
혼자서도 힘들게 찾아야 될 거 같은데..
정신마저 잃은 이 친구를 데리고 집을 찾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 일단 근처 여관에 재우자..
...........
하지만.. 어째 이놈의 동네는..
휑~하다.
도로 말고는 보이는 게 없다.
네온 싸인도 거의 안 보인다.
아..
"저.. 저기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 대고 있던 와중에
정신이 깬 그녀..
감사합니다..
"깼어요?"
"네.. 저기.. 저 이제 괜찮으.. 욱..."
뭔가 오바이트를 하려던 그녀..
매너상 고개를 돌려주었다.
"괜찮아요?"
"네.. 저 괜..찮으니까.. 이제 돌..아가세요"
오호..
다행이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을 한다.
"네.. 저 조..조금만 가면 집..이니까.. 혼자 갈 수 있어요.."
"아.. 그러실래요?"
때마침 멀리서 택시가 온다.
저거마저 놓치면 한참을 그녀와 있어야 할 거 같은 예감이 들어
후다닥 일단 택시를 세워 놓고 본다.
"택시..."
"저.. 고마워요.. 데려다.. 줘서.."
"고맙긴요.. 그럼 조심해서 가요.. 푹 쉬고.."
"네.. 내일 뵈요.."
후다닥 택시를 탄다..
"아저씨.. 여의도요.."
좀 냉정하긴 하지만..
더 이상 그녀와 엮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여기까지.. 데려온 것도..
너무 엮여 버린 것이다.
이 끈마저도 잘라내고 싶었다.
슬쩍.. 빽미러로.. 그녀가 돌아갔는지 확인을 해본다.
...............
"아저씨.. 저 잠깐만요.."
급히 택시를 세운다.
"죄송한데.. 저기.. 뒤로 빽 해주세요.."
"예?"
"뒤로 돌아가 달라고요.. 저기로.."
그녀가 쓰러져 있다.
아무도 없는.. 차한대 다니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길 한복판에서..
마치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린 듯..
평온한 표정을 지은 채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