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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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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2.17 10:53
최근연재일 :
2023.04.26 13:51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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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글자수 :
241,033

작성
23.04.10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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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거미(5)

DUMMY

녀석은 아직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와...!"


그리고 옥상에 있는 만큼 웬만큼 크게 말해도 목소리가 닿지 않겠지만 최대한 두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만 낮게 소리쳤다.


옥상에 있는 기괴한 생물을 보고 얼빠진 사람처럼 서 있던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이쪽을 쳐다봤다.


곧 두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왔고 나는 운전석에 몸을 집어 넣었다.


저게 목사가 말한 거미의 정체겠지.

오해할 수도 없을 만큼 지나치게 정확한 묘사였다.


쾅-


뒷문이 거세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황조롱이가 소리쳤다.


"출발해 고트!"


악셀에 발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녀석의 모습을 확인해두려 고개를 들었다.

옥상에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쿵.


어떤 불안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바닥에서 미약한 진동이 전해져 왔다.


이어서 고라니의 울음과 사자의 울음을 섞어 놓은 것 같은 괴상한 소리가 정면에서 들려왔다.


"키익. 키이익-"


거미 녀석의 덩치가 크다는 걸 감안하더라도 아지트는 4층 높이의 건물이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거미 녀석은 메이의 앞에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저걸 '서 있다'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녀석은 마치 달리기의 준비 자세처럼 수족을 모두 바닥에 딛고 있었고 몸통은 바닥과 평행하게 띄운 상태였다.


멍하니 관찰하던 도중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제각각 움직이던 여섯 개의 기분 나쁜 눈이 한 곳에 모아지더니 정확히 우리를 향해 뭉쳤다. 끔찍한 모습이다.


"고트! 뭐해!"


부웅-


황조롱이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악셀을 밟았다.


"성아씨! 한 발만 먹여줘요!"


"설마 뚫고 가려는 거에요?"


"그 방법 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는 아지트 앞 좁은 골목길에서 녀석과 마주하고 있다.

옆에 늘어져 있는 담벼락을 뚫지 않는 이상에야 도망치려면 당연히 앞이나 뒤로 빠져나가야 한다.


물론 시간을 주면 조금씩 방향을 돌릴 수야 있겠지만 저 녀석 앞에서 그런 식으로 꾸물거리며 유턴을 한다는 건 언어도단처럼 느껴진다.


"해볼게요!"


임성아가 곧장 창문 밖으로 몸을 빼내 놈을 조준했다.


조금 더 속력이 빨라지면 아무리 근력이 뛰어난 임성아라도 제대로 조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전에 한방 먹이는 게 중요하다.

만약 저놈이 생김새 뿐만 아니라 습성까지 거미의 것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생각대로 반응할 것이다.


팡-!


몇 번의 개량을 거친 샷건이 거센 파공음을 내며 발사됐다.


"키에엑-!"


쇠구슬이 눈에 박혔는지 녀석이 그 긴 앞 발로 눈을 가리더니 곧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예상한 대로다.

녀석이 위로 올라간 틈에 악셀을 세게 밟고 그 밑으로 질주했다.


와중에 녀석의 다리를 보자 팔다리 끝 부분은 손가락이 아닌 날카로워 보이는 뿔이 달려 있었다.

그 송곳 같은 면으로 저 무거운 몸체를 네 개의 꼭짓점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저걸 생물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좋아 벗어났어! 잘했어 이 근육녀야!"


임성아는 그 호칭에 어이없어하며 황조롱이에게 뭐라 대꾸했지만 나는 두 사람의 말싸움에 신경 쓸 재간은 없었다.


백미러로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빤히 쳐다보던 녀석이 건물들 사이로 스르륵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일단 급한 불은 껐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을 때 임성아가 골목 옆의 어떤 건물을 가리키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고트씨... 저...저기요...!"


쭉 뻗은 손가락은 그곳을 보라는 의미겠지만 어떤 사실은 구태여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뭐야 저게..! 말이 되는 거냐고!"


황조롱이가 믿기 어렵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결국 고개를 돌리자 거미 녀석이 어떤 주택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바라보며 핸들을 꺾자 녀석은 우리의 움직임에 맞춰서 지붕을 뛰어 넘거나 건물의 옆면을 타고 쫓아왔다.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녀석은 엄청난 속도로 말도 안되는 거리를 도약하거나 기괴한 수족으로 모든 장애물을 가로질러 직선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골목을 벗어나지 못해서 우리가 속도를 내지 못한 것을 감안해도 말이 안되는 속도다.


저것이 목사가 말했던 변종들의 진짜 모습이라면 예전에 우리가 만났던 녀석은 상당히 양반이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그 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좀 해봐!"


황조롱이의 말투에서 다급함과 절박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저런 놈을 어떻게 하라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


긴장으로 땀이 배어 나온 손으로 핸들을 붙잡고 있다가 문득 계기판에 시선이 머물렀다.

계기판에서 깜빡거리며 신호가 울리고 있다.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


우리가 사는 동네에 도착했을 때부터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아지트에 거의 다 도착했다는 생각에 굳이 기름을 채워두지 않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다음 수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역겨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하고 보니 광적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해가 간다.

사람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면 마지막에는 결국 초월자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란 더없이 나약한 존재다.

욕설이 새어 나올 것 같다.


임성아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계기판과 내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핸들을 꺾어 큰 도로로 나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추격전을 지속할 수 있을까.

연료 부족으로 계속해서 깜빡이는 계기판이 신경 쓰여서 깊게 생각할 수가 없다.


처음 불이 들어왔던 건 약 십분 전.

보통 기름이 십 분의 일 정도 남았을 때 계기판에 나타날테니 지금 속도로 달린다면 십분 정도는 더 갈 수 있을까.

확실하지 않다.


옆을 바라보니 녀석은 여전히 건물들 위를 타 넘으며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십분 안에 녀석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때 문득 어떤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윌마트. 비마트 보다 훨씬 큰 초대형 마트다.

황조롱이는 진행 방향을 보고 내 계획을 눈치챈 것 같았다.


"혹시 윌마트로 가는 거야?"


"다른 방법이 없어."


대로 한 가운데에서 기름이 떨어지는 순간 녀석은 우리를 덮쳐올 것이다.

이쪽이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샷건 세 정.

이런 걸로 녀석을 제압할 수 있다는 망상을 할 정도로 정신이 무너져버리진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메이의 기름을 채운 후 먼 곳으로 도망치는 것 정도다.


녀석은 샷건을 정통으로 맞은 탓인지 아직까지는 공격해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중하게 우리를 탐색하는 것인지 혹은 고양이가 흔히 그러듯 궁지에 몰린 생쥐를 가지고 놀기 위해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진로를 가로막거나 직접적인 방해를 해오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윌마트까지는 오분 정도.

그 사이에 기름이 먼저 떨어진다면 게임 오버다.

이건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오분이라는 시간은 내가 머리를 짜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등 뒤에서 트럭처럼 거대한 거미가 쫓아 오는 상황에서는 명확한 사고가 힘들지 않을까.

그래도 해야 한다.


나는 두 사람의 불안안 눈빛을 받으며 핸들을 꽉 쥐었다.



**



끼익-


마트 앞에 메이를 세우자마자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신속하게 마트 입구로 달렸다.


도착 전 미리 정비해둔 덕에 뭉그적거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임성아는 커다란 샷건 한 정, 나는 황조롱이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손에 완전히 익숙해진 소형 샷건을 챙겼다.


마트 안은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거기에 더불어 음식물이 썩는 듯한 냄새가 진동했다.

하긴, 애초에 우리가 이곳 대신 비마트를 애용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윌마트는 황조롱이의 합류 당시부터 이미 전기가 끊겨 있었다.


휴대폰을 빼 들고 손전등처럼 활용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매장이 얼마나 넓은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닿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곳들은 아예 깜깜해서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2층으로 가죠."


마트 입구에 있던 안내판을 떠올리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안내판에는 층 별로 어떤 상품이 있는지 적혀 있었다.

2층에는 전자 제품과 자동차 용품 코너가 있다.


보통 마트에서는 팔지 않겠지만 윌마트는 외국계 매장이니 어쩌면 휘발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메이에 기름을 충전해서 도망쳐야 한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쿵-


어둠 속을 뚫고 얼마간 전진했을 때 매장의 입구 쪽에서 미세한 진동이 발 끝으로 전해져 왔다.

본능적으로 거미 녀석이 땅으로 내려 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준다면 오히려 고맙다.

이곳에서 녀석이 헤매고 있을 때 몰래 빠져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진동을 느낀건지 두 사람이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한가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을 여유는 없으니 그 옆의 비상구 문을 밀고 들어갔다.

뛰듯이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도달했다.


건물 전체에 전기가 끊겨 있기에 2층 역시 마찬가지로 사위가 어두웠다.

몇 번 와본 적 있는 곳이라 곧바로 자동차 코너로 향했다.


흩어져서 매대를 누비며 휘발유를 찾고 있었을 때 건너편 매대에서 작은 비명이 들려왔다.


"꺅-!"


황조롱이의 비명.

설마 녀석이 나타난 걸까. 하지만 녀석은 그 거대한 덩치 탓에 움직일 때마다 큰 소리를 동반한다.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옆에 있던 임성아도 비명을 들었는지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

우리는 곧바로 황조롱이에게 달려갔다.

황조롱이는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아 미안, 별거 아냐."


우리의 불안과는 달리 황조롱이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를 올려다 봤다.

휴대폰 빛을 비추자 바닥에서 뭔가 스스슥하고 움직였다.

작은 벌레들이다.

벌레들은 빛을 받자 곧장 매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설마 이것 때문에 비명을 지른 건가.


황조롱이는 우리의 허탈한 표정을 보더니 부끄럽다는 듯 발목을 비비던 손을 거두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꺄악- 이라니, 은채 언니도 의외로 소녀 같은 구석이 있었네요."


"시끄러 이 근육녀야."


임성아가 비명 소리를 놀려 대자 황조롱이가 곧바로 발끈하며 맞섰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긴장이 누그러든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불현듯 이상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마트 안에 벌레가 있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두운데다 썩어 있는 식자재들이 가득한 이곳은 벌레들에겐 더없이 알맞은 장소일테니까.


그래도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다.

기우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불안감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매대 밑으로 몸을 숙이고 휴대폰의 헤드 부분을 집어 넣어 불빛을 비췄다.

그러자 매대 밑에 모여 있던 몇 마리의 벌레들이 빛이 닿자마자 몸을 움츠리며 뿔뿔이 흩어졌다.


작은 벌레들은 몸통에 비해 지나치게 가느다란 8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거미처럼.


"젠장...!"


몸을 일으키고 황조롱이의 다리를 붙잡았다.


"왜... 왜 이래? 갑자기!"


"고트씨?"


두 사람이 뭐라 하든 나는 붙잡은 다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분명 처음에 황조롱이는 발목을 쓰다듬고 있었다.


발목 부근을 보자 아주 작은 피가 한 방울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 주변의 피부는 검붉게 색이 변해가고 있다.


그리고 불길하게 어두운 그 피부 색은 좀비들의 피부색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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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거미(3) 23.03.30 111 1 13쪽
35 거미(2) 23.03.30 1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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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참사랑교회(7) 23.03.21 136 2 12쪽
29 참사랑교회(6) 23.03.20 134 2 12쪽
28 참사랑교회(5) 23.03.18 13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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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참사랑교회(2) 23.03.12 157 3 12쪽
24 참사랑교회 23.03.09 17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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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위치(witch)(4) 23.03.08 161 2 11쪽
21 위치(witch)(3) 23.03.07 184 2 13쪽
20 위치(witch)(2) 23.03.03 188 3 13쪽
19 위치(witch) 23.03.02 196 2 16쪽
18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6) 23.03.01 201 2 12쪽
17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5) 23.02.28 199 2 13쪽
16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4) 23.02.26 202 3 14쪽
15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3) 23.02.24 209 3 11쪽
14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2) 23.02.23 205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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