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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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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2.17 10:53
최근연재일 :
2023.04.2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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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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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랑교회(8)

DUMMY

어두운 천막 안.

희끄무레한 연기들에 둘러싸인 채 램프의 미약한 빛을 받고 있는 김민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는 것으로 봐서 어떤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간 그 모습을 관찰하다가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쳤다.


천사의 권위를 나타내는 화려한 제복.

불편하긴 해도 천사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이다.

그대로 천막을 나서자 주변을 청소하고 있던 신자들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가볍게 손을 흔들어 대답해준 뒤 지하를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 움직였다.


얼마간 걷자 제단이 보였다.

곧바로 어제 열린 예배가 떠올랐다.

어제는 나를 소개하기 위해 아주 이례적으로 목사가 직접 지하로 내려왔었다.

아직 사람들과의 유대가 없는 나를 위해 배려해 준 것이 틀림없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님이 직접 주관한 덕인지 어제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한 마디 한 마디를 꼼꼼히 경청했다.

마침내 내가 천사로 임명되던 순간에는 약간 광적인 분위기까지 맴돌았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군중 속에서 다른 분위기의 사람이 있긴 했다.

김민지만은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하게 서 있었지.


잠시 후 제단에서 몸을 돌려 다시 다른 곳으로 향했다.


천사라는 숭고한 계급에 올랐지만 막상 천사로써 해야 할 것들은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다.

박천사에게 몇 시간 동안 인수인계 받은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 역할은 단순히 사람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낮에는 식량을 구하러 밖으로 나가는 남자들.

그러니까 거룩한 성전에 참여하는 남자들이 이탈하거나 다치지 않게 관리한다.

그리고 저녁에 지하로 돌아오면 교리에 반하는 신자들이 있지 않은지 감시하면 된다.


오늘 같은 주말은 신성한 날이므로 성전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니 평소에 업무를 끝내고 하던 것처럼 지하를 느긋하게 산책할 수 있다.

도중에 계속해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고작 이틀을 보냈을 뿐이지만 썩 나쁘지 않은 생활이다.

아니, 세상이 이렇게 돼버린 상황에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생활이라고 해야겠지.


이전 세계에서 목사의 말대로 외롭게 지냈던 것은 결국 상처 받기 싫어서였다.

복잡한 인간관계.

미묘한 한 마디로 맺어지고 틀어지는 그 복잡한 관계의 그물들.

다시 떠올리기도 귀찮은 그런 세상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모든 도덕성과 윤리는 교리에 적혀 있었다.

그렇게 옳은 일과 그른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으니 굳이 그른 일을 하려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모두가 웃는 낯으로 지낼 수 있으며 어떤 분쟁이 일어날 여지도 없다.

교리를 따르기만 하면 어떤 걱정도, 고민도 없이 그저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천사라는 계급은 생활 자체도 상당히 풍족했다.

천사에게 봉사할수록 업보가 줄어드니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좋은 음식이나 물건이 생기면 곧장 내게 들고 왔다.


몇 번은 너무 볼품없는 물건을 가지고 와서 역정을 냈더니 그 후부터는 자잘한 물건은 들고 오지도 않았다.

진작 그렇게 행동했으면 불필요하게 화를 내지 않아도 됐을텐데.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수록 공양했을 때 더 많은 업보가 줄어든다.

굳이 거짓말을 해봤자 자신들의 업보가 그대로 남을 뿐이다.

거짓말은 죄악이고, 죄악을 저지른 놈들에게는 적절한 형벌 역시 필요한 법이다.

천사를 기만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 본보기로 몇 사람에게 엄한 벌을 내렸었다.


뭐, 그래도 신자들은 아직 교리에 미숙한 인간들이다.

그들을 계도하고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도 결국 천사로써 해야 할 나의 업무겠지.

무지한 것은 죄가 아니니 이쪽에서 아량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마음에 드는 곳이다.

실질적인 풍요로움과 더불어 사람들을 계몽하고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니까.

거기에 더해 천사에게만 허락되는 특권까지.


그저께 내 전속 자매로 지정된 김민지는 이틀 내내 같은 천막에서 머무르고 있다.

처음에 선생님의 말대로 서투른 솜씨였던 김민지는 날이 갈수록 더 훌륭하게 업보를 청산해내고 있었다.


이제 목사님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어떤 여자들은 남자를 더없이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업보를 씻는다는 표현을 쓸 것도 없다. 그저 느낄 수 있다.


거기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처음에 나와 같이 교회를 방문했던 두 사람이 떠올랐다.

이곳에 온 지 3일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한창 교육을 받는 중일 것이다.


아마 그 훌륭한 교육을 받고 나면 두 사람도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대해 전부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둘은 금방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순응한 채 살아갈 수 있게 되겠지.

남자들의 업보를 청산해주는 고귀한 일을 하면서.


산책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불현듯 악취가 코를 찔러와서 자연스레 얼굴이 찌푸려졌다.


생각해보니 완벽한 것 같았던 이곳에도 불편한 점이 있기는 했다.

다름 아닌 이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


목사는 이곳이 전쟁 때 지어진 방공호라고 했었다.

그렇게 들으니 이렇게 크고 견고한 건물이 지하에 있다는 것이 납득이 갔었다.


하지만 너무 예전에 지어진 탓에 세세한 부분들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았다.

대표적으로 이 하수구와 환기 시스템 그리고 조명 따위의 생활 전반적인 부분들이 그랬다.


바닥보다 조금 낮게 파여있는 하수구에는 허리 정도까지 올 것 같은 구정물들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물결의 시작과 끝 부분에는 격자 무늬의 커다란 쇠창살.

그 쇠창살 앞에 온갖 쓰레기들과 오물이 뒤섞여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쇠창살 안 쪽을 들여다보자 얼마나 깊은 것인지 진득한 암흑이 깔려 있었다.

불현듯 그 깊은 암흑 속에서 뭔가 반짝거린 것 같았는데, 눈을 깜빡이자 곧바로 사라졌다.


뭐, 조금 불편한 부분들은 하나씩 보수해 나가면 될 일이다.

이미 조명 같은 경우는 목사에게 제의해 놓았다.

낮과 밤이 없으니 성전에서 조는 남자들이 생겼기 때문에 제의한 것이다.

몸이 건강하다면 더 많은 물품을 챙겨올 수 있을테니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그럼 마찬가지로 이 하수도 역시 개선하면 된다.

이 곳에는 작업에 필요한 노동력이 얼마든지 있다.

어떤 작업을 시켜도 불만은커녕 오히려 감사해 하는 그런 편리한 노동력이.

게다가 천사에게 봉사하는 것이 곧 신자들의 행복이니 윈윈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완벽하고 멋진 관계다.


계속해서 구린 냄새가 올라와서 자리를 옮겼다.

이 하수도는 산책의 마지막 코스라고 할 수 있었다.

냄새 덕에 사람들이 없다는 점 때문에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냄새가 더 심한 것 같아서 이만 산책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평소보다 조금 길었던 산책을 끝내고 천막으로 다가갔을 때 문득 어떤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려다가 돌연 호기심이 생겨 천막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내 천막 앞에서 어떤 젊은 남자와 김민지가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그 녀석은 뭐야? 불쑥 여기에 나타나서는 널 전속 자매로 지정한다고?"


톤이 높고 치기어린 남자의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봤던 목소리다.

하지만 이 지하를 산책하다 보면 어차피 하루에도 몇 십 번씩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고작 3일 만에 그 목소리를 일일이 다 기억하는 일 따윈 불가능하다.


"최서준 너 진짜 미쳤어? 천사님께 그 녀석이라니..! 알았으니까 일단 목소리부터 낮춰!"


남자의 말에 김민지가 어이없다는 투로 얘기했다.


최서준이라는 이름. 그래, 기억난다.

내가 천사로 임명되기 전 매일 하릴없이 김민지의 천막 앞에서 어슬렁대던 젊은 놈.

이제 김민지가 계속 이 천막에서 머무르니 결국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잠시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보는 것 같았다.

펄럭거리는 옷의 끝자락이 보일 것 같아서 조금 더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조금 후에 김민지의 달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반 신자가 여기 들어오면 안된다는 거 너도 알잖아 빨리 나가!"

"전속 자매를 그만둘 수는 없는 거야? 그래.. 네가 싫다고 하면 최목사님도 이해해주실 거야 그러니까 저런 놈이랑은.."


짝-


손과 뺨의 마찰음 소리가 들려왔다.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지금 생활에 만족해. 여기 뚱뚱하고 냄새나는 다른 아저씨들보다 고트 천사님이랑 있는 게 훨씬 더 나아."


최서준은 그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금 기가 죽은 듯한 최서준이 낮게 읊조린다.


"그럼.. 나랑 같이 도망치자고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어? 너도 여기를 벗어나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나는.."

"어린애처럼 굴지 마. 밖에 역병이 잔뜩 퍼져있는데 우리 둘이 무슨 수로 살아가? 그래, 그 때는 그런 마음이 있었어 이곳 생활이 지긋지긋했거든. 근데 이젠 아냐 그러니까 그만 돌아가."


거기까지 대화를 들은 후에 천막 뒤편에서 몸을 움직였다.

천천히 두 사람 앞으로 걸어가자 두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고트 천사님..! 저.. 그게..!"


김민지가 당황하며 뭐라 말하려 했고 최서준의 경우는 너무 놀란 나머지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리기 시작했다.


"같이 도망치자니, 그런 계획이 있었군요 서준 형제님. 그렇다면 계획을 들어버린 이상 천사인 제가 좌시하고 있을 수는 없겠지요."

"아뇨... 그게 아니라.. 그게, 저는... 그러니까..."


내 말에 최서준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듯 횡설수설거렸다.


그 당황스러운 마음은 알겠지만 이 녀석은 천사 앞에서 당연히 취해야 할 태도마저 취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무심한 표정으로 최서준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으니 김민지가 내 반응을 눈치챈 것인지 황급히 최서준의 머리를 깊게 눌렀다.

그제서야 최서준은 자신이 천사와 빤히 마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인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서준 형제님은 아무래도 특별 교육이 필요할 것 같으니 일단 천막 안으로 들어오세요."


특별 교육이라는 말에 최서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내 최서준은 바닥에 꿇어 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무덤덤하게 그 벌레 같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샌가 천막 근처로 다른 신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아마 소동이 일어나자 무슨 일인가 싶어 천막에서 나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천사의 구역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멀리서 우리의 모습을 관찰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최서준은 천막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있었다.

예의가 없고 뻔뻔한데다 천사의 명령까지 따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다.


철컥-


곧장 허리 춤에서 더블 배럴을 꺼내 최서준의 머리통을 조준했다.

김민지가 울먹이며 한번만 봐 달라는 식으로 내 바짓단을 붙잡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서준 형제님은 천사의 거주 구역에 침범한 것도 모자라 명령에도 불복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심각한 죄인의 경우 즉결 처분할 권한이 있습니다."


그제서야 최서준은 혼이 빠진 듯한 표정으로 바닥에서 스르륵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비틀거려서 김민지가 그를 황급히 부축해야 했다.

턱짓으로 천막 안을 가리키니 김민지가 거의 떠밀듯이 최서준을 천막 안으로 집어 넣었다.

나 역시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천막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말 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자 최서준이 벌벌 떨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김민지는 불안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었다.


최서준의 어벙한 얼굴을 보자 주체 할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놈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평소에 김민지와 함께 산책할 때마다 힐끔힐끔 훔쳐보는 것 정도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불경한 태도와 탈출이라는 계획까지.


죄인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최서준의 경우에는 엄벌을 받는 것이 불가피할 것이다.

구제가 불가능한 죄인에게 벌을 내리는 것도 천사로써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이니 성실히 임해야겠지.


그렇다면 내 손을 더럽힐 수 밖에 없다.

이 무례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아주 특별한 교육을 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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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거미(3) 23.03.30 111 1 13쪽
35 거미(2) 23.03.30 1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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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4) 23.02.26 20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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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2) 23.02.23 205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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