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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완결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2.17 10:53
최근연재일 :
2023.04.26 13:51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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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7
추천수 :
105
글자수 :
241,033

작성
23.03.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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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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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참사랑교회(5)

DUMMY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코앞에 있는 낯선 여성의 얼굴이었다.


얼굴이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던 탓인지 여성은 내가 눈을 뜨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한 번 소스라쳤다.

하지만 놀란 것도 잠시, 눈 앞의 여성은 곧바로 고혹적인 미소를 짓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김민지입니다. 그럼 잘 부탁 드릴게요."


이 여자는 왜 갑자기 자기 소개를 하는 걸까.

그리고 잘 부탁한다니.

지금의 상황도, 여성이 말하는 의도도 전혀 알 수 없어서 잠시 어리둥절하게 쳐다보고 있자 김민지가 배시시 웃었다.


"오빠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김민지는 그렇게 말하더니 곧장 내 목덜미에 입을 가져다 댔다.

곧, 후텁지근한 숨결이 목을 간지럽히듯 쓸고 지나갔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감각에 약간 소름이 돋았다.


김민지는 이어서 내 귓볼을 잘근잘근 깨무는 것과 동시에 몸 여기저기를 부드러운 손길로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그 사소한 몸 동작 하나하나가 내 몸에 그대로 느껴졌다.

그제서야 지금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김민지가 내 몸 위에 완전히 포개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손길에 저항하기 위해 팔을 들어 올렸지만 이상하게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보다 나는 어째서 이런 곳에서 이 여자에게 희롱당하고 있는 걸까.

머릿속이 뿌연 안개로 덮여 있는 것처럼 기억이 희미했다.

그리고 뿌연 것은 머릿속 뿐만 아니라 실제로 침대 주변의 공기 역시 불가해한 연기들로 흐려져 있다는 걸 알아챘다.

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연기가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아주 조금씩 몸 안으로 들어와서는 내부에 들러붙는 것 같았다.


눈을 뜬 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든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방해 요소가 너무 많다.

들이마실 때마다 조금씩 정신이 흐려지는 공기와 더불어 끊임없이 집중을 흐뜨려버리는 김민지의 손길까지.


어느 순간엔가 얼굴을 매만지던 김민지의 손이 점점 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 가슴 부근을 몇 번 더듬고 배 쪽으로 내려가더니 애태우듯이 허벅지 부근을 쓸었다.

지나치게 부드럽고 정교한, 마치 뱀 같은 손놀림이다.


"업보가 너무 쌓여있네요 빨리 정화시키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마침내 김민지의 손이 뱀이 기어가듯 허벅지 안 쪽으로 향했을 때 간신히 한쪽 팔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을 덥석 움켜쥐자 김민지가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래요? 업보를 씻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지나치게 간드러지는 얇은 목소리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릴 것 같았다.

태곳적에 뱃사람들을 유혹하던 세이렌들의 노랫소리가 아마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제대로 업보를 씻겨드리지 않으면 제가 목사님께 혼나는데..."


김민지가 인상을 약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내용보다는 그녀가 말한 어떤 단어가 내 모든 신경을 쏠리게 만들었다.


목사.

그 단어를 듣자마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서져라 이를 맞대고 필사적으로 온 몸에 힘을 주기를 몇 번인가 반복하자 드디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김민지의 상체를 밀어 내려다가 이내 그녀가 나체 상태라는 걸 깨닫고 조심스레 어깨를 밀쳐냈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런 내 행동에 김민지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일단 그 시선을 무시하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어떤 방안인 것 같긴 한데 너무 어두워서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었다.

어차피 낯선 곳을 이렇게 둘러보는 것 만으로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마찬가지로 침대에 앉아 있던 김민지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약간 자존심 상하네요. 저 상당히 매력 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김민지는 매력이 넘치는 편이다.

음흉하고 뇌쇄적이고 요염한 그런 매력을 지금도 옆에서 잔뜩 풍기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김민지가 아직까지 나체 상태였기에 애써 시선을 돌리며 재차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긴 교회 밑의 지하에요. 아직 천사가 되지 못한 인간들이 업보를 씻으며 살고 있는 곳이죠."


천사와 업보.

처음부터 그랬지만 김민지의 말에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섞여 있었다.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여자일까.

아니, 남에게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겠지.

지금 내 머리야말로 누구보다 어지럽게 꼬인 상태일 테니까.


그보다 이 매캐한 연기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연기 속에서 은은하게 그 기분 나쁜 허브향이 맴돌고 있었다.


방안을 둘러보자 탁자 위의 램프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예상대로 비닐 하우스에 있던 식물의 말린 이파리 같은 것이 놓여져 있었다.


램프를 끄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민지가 내 하반신 쪽으로 묘한 시선을 보낸다.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무시하고서 탁자로 다가가 램프를 껐다.

마침 그 밑에 내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어서 서둘러 그것을 주워들었다.


천천히 옷을 입으며 아직까지 침대에 앉아 있는 김민지에게 설명을 요구하자 의문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상하네요 보통 남자는 이곳에 오기 전 지상에서 교육을 받고 오는데.. 오빠는 안 받았어요?"


천사와 업보에 이어 이번엔 교육인가.

어떤 질문을 해도 뜻 모를 단어들이 불쑥 등장해버린다.

결국 질문은 잠시 미룬 채 최대한 쓰러지기 전의 상황을 스스로 상기해보려 노력했다.


그 기묘했던 티타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 티타임에서 목사는 차에 전혀 입을 대지 않았었다.


목사는 그것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차라고 했었지.

그래, 다른 건 몰라도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인정해야겠다.

덕분에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는 허브향이 맴도는 연기를 들이마신 지금도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어지러운 것과는 별개로 기분 좋은 몽롱함이 맴돌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나와 같이 차를 마셨던 임성아와 황조롱이도 지금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그 두 사람도 분명 차를 마셨었다.

빌어먹게 달달한 케이크와 잘 어울리는 탓에 찻잔을 말끔하게 비웠었지.

고개를 홱 돌려 김민지를 쳐다봤다.


"이제와서 왜 그래요? 아까는 그렇게 싫다더니."


여전히 헐벗고 있던 김민지는 내 시선에 장난스럽게 대꾸하면서 양 팔로 가슴을 가리듯이 모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반응에 신경 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나랑 같이 있던 두 사람은.. 지금 어디 있지?"


최대한 침착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막상 말을 내뱉고 보니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김민지가 이런 변화를 알아챘는지 작게 웃음 지었다.


"그 언니 임성아죠? 여태 카메라빨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박.. 오히려 실물이 더 예쁘더라구요 거기에 몸매까지.. 사실 지금껏 외모에 꽤 자신 있었는데 딱 보는 순간 저는 안되겠다 싶더라니까요."


김민지는 호들갑 떨며 자신의 감상을 신난듯이 떠들어 댔다.

연예인을 처음 본 사람의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었어."

"뭐야.. 같이 내려와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요? 하긴 그렇게 예쁜 언니들이랑 사는데 나 같은 건 눈에 안 차는 게 당연하네요."


김민지가 조금 자조섞인 웃음을 지으며 침대 밑에 있던 옷을 주워들었다.

천천히 속옷을 입던 김민지는 이내 내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흠칫 놀란 얼굴이 되었다.


"뭐에요 그 무서운 표정은. 모처럼 잘생긴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마요. 알았어요 대답할게요. 그 두 사람은 아마 이곳의 교육 시설에 있을 거에요."

"교육 시설?"

"남자는 지상에서 받고 오는 게 보통이지만 여자들은 이곳에서 교육을 받거든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는지 김민지가 말을 이었다.


"여자들이 받는 교육이란 남자들에게 쌓인 업보를 정화 시켜주는 과정을 말해요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여자들도 천사가 될 수 있죠. 저도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 받았어요."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설명이다.

그나저나 어서 옷부터 마저 입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 굴곡진 몸에서 관능미라는 단어가 지극히 어울릴만한 묘한 분위기가 계속 풍겨와서 대화 중에 시선을 둘 곳이 없다.


임성아와 황조롱이 두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난 후 여실히 느끼는 것이지만 여자란 지극히 촉이 좋은 생물이다.

김민지는 이런 내 생각을 알아챈 것인지 약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오빠네요. 근데 정말 이대로 끝내도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엉겨 붙어오는 김민지를 다시 한번 차분하게 밀쳐내자 이내 뾰로통한 얼굴이 되어서는 옷을 마저 입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나는 여태 얻은 정보들을 취합해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이곳의 위치.

김민지는 여기가 참사랑교회의 지하라고 했다.

물론 그 외 천사니 업보니 교육이니 하는 말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두 사람이 이 지하에 있다는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임성아와 황은채, 두 사람을 떠올리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양 손에 힘이 꽉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는 새 팔이 떨릴만큼 주먹을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정보 다음으로는 최목사의 사람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호의라고 생각했던 그 미소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더없이 추악한 것이었다.

어째서 그 안에 담긴 악의를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전부 내 탓이다.

교회에 들어가자고 했던 것도 내 판단이었고 티타임을 가진 것도 내 판단이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셋이서 바보 같은 농담이나 하면서 즐겁게 생활하면 그것으로 충분했을텐데.

내 부주의와 멍청함으로 인해 두 사람을 위험에 빠트려버렸다.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잃게 해버렸다.


"무슨 생각해요 오빠?"


어느새 옷을 다 차려 입은 김민지가 옆으로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김민지는 처음에 느낀 인상과 다르게 상당히 어려 보였다.

그리고 목사 옆에 꼭 붙어 다니던 그 두 명의 소녀와 꼭 닮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김민지에게 들었던 말들은 거의 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목적은 모르겠지만 김민지가 나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라는 것.


대답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었을 때 김민지가 불쑥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의도를 알 수 없어서 멍하게 쳐다보자 해맑게 웃는다.


"악수요 악수. 우리 이제 친구잖아요?"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머뭇거리고 있으니 김민지가 다그치듯 허공에서 손을 위 아래로 흔들었다.

어서 손을 뻗으라는 무언의 신호인가.


하지만 지금에와선 더 이상 내 판단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는 멍청하고 우둔한 판단으로 아무런 잘못이 없는 두 사람을 여기까지 몰고 왔다.

그렇다면 지금 내밀어진 김민지의 손을 정말로 마주 잡아도 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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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거미(4) 23.04.05 110 1 12쪽
36 거미(3) 23.03.30 111 1 13쪽
35 거미(2) 23.03.30 1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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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참사랑교회(6) 23.03.20 13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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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4) 23.02.26 202 3 14쪽
15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3) 23.02.24 208 3 11쪽
14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2) 23.02.23 205 3 14쪽
13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 23.02.22 21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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