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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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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2.17 10:53
최근연재일 :
2023.04.26 13:51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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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0
추천수 :
105
글자수 :
24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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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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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거미(4)

DUMMY

"아..."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을 향해 쇄도하고 있는 녀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엎어지고 넘어져 모래밭을 뒹굴면서도 그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맹목적이고 저돌적인 기세로 접근하고 있다.

해변가 한 편을 가득 채운, 일견 장엄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압도적인 광경.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아직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여전히 해변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모래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상황을 인지한 후에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렸다.

그 바람에 낚싯대가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다.

왜 하필 지금, 저런 모습으로 우리를 덮쳐오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녀석들이 우리에게 올바른 피서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정신없이 방파제를 거슬러 달려가던 도중, 임성아와 황조롱이가 이쪽을 눈치챘는지 한가하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뒤! 뒤를 봐!"


미친놈처럼 두 사람을 향해 소리 질러봤지만 내 목소리가 닿기에는 거리가 너무 먼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나는 목소리만 이용해서 의사를 전달하려고 했던 내 멍청함을 저주했다.


인간에게는 세상 어느 곳에 던져지더라도 확실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단이 있다는 걸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곧장 팔을 뻗어 두 사람의 뒤쪽을 검지로 여러 번 찌르는 일종의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임성아와 황조롱이가 내 필사적인 몸짓에 반응했다.

천천히 몸을 돌린 두 사람은 이내 그 수 많은 좀비떼를 발견한 것인지 제 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었다.

어떤 심정일지는 알겠지만 이 상황에선 너무 치명적인 주저함이다.


어서 자리를 벗어나라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곧 두 사람이 어느 순간 해변의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 기도가 닿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미신적인 것보다는 생존 본능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메이로 와!"


팔을 휘젓는 새로운 수신호를 보내며 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방파제가 너무 길었던 탓에 아직 메이를 주차해 놓은 곳까지 거리가 꽤 남아 있었다.


그때 해변가를 달리던 임성아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게 보였다.

고운 모래 탓에 발이 푹푹 빠지는데다가 임성아는 무거운 장비까지 착용하고 있으니 당연한 귀결일까.

황조롱이는 넘어진 임성아를 황급히 부축하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메뚜기떼처럼 보이는 좀비 녀석들은 저런 지극히 인류애 넘치는 장면에 어떤 관심도 없다는 듯 처음과 같은 기세로 질주하고 있었다.

저희들끼리 부딪혀 상당 수가 넘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더없이 맹렬한 기세로 두 사람에게 접근한다.


욕을 내뱉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먼저다.

임성아처럼 매일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한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매일 아침 꾸준히 러닝머신을 달렸다.

그래서인지 예전이었다면 어림도 없을 속도를 유지하며 메이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부아앙-!


서둘러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악셀을 밟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두 사람의 앞까지 메이를 끌고 가고 싶었지만 모래 속으로 들어갔다가 바퀴가 빠지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결국 해안의 경계선에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다가가 메이를 댄 후에 뒷좌석에 있던 샷건을 꺼내 들었다.


메이의 문을 열고 나가자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꽤 가까운 거리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둘의 뒤에는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좀비 몇 마리가 바로 뒤까지 바짝 따라 붙어 있었다.


"타!"


두 사람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나가 신중하게 샷건을 조준했다.

곧 임성아와 황조롱이가 마치 멀리뛰기를 하듯 내 옆을 지나갔다.

미세한 바람이 양 뺨에 스치는 걸 느끼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팡-!


뒤따라오던 좀비 몇 마리가 중심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샷건을 머리에 직격으로 맞은 몇몇 녀석들만 쓰러졌을 뿐이다.

몸통이나 팔 다리에 맞은 녀석들은 쇠구슬이 박힌 상태로 아주 잠시 비틀거리다가 다시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물론 나 역시 여기서 녀석들을 몰살시킨다던가 하는 망상에 취해 있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시간만 벌어도 충분하다.

어차피 여기서 더 시간을 끌었다간 저 놈들의 뒤에서 달려오는 놈들이 합류할 게 뻔했기에 처음의 한 발을 쏜 직후에 나는 몸을 구겨 넣듯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악셀을 밟고 핸들을 꺾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닷가의 상가 지역까지 도달했다.

일단 급한 위기는 넘긴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나도 모르게 백미러 쪽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차라리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이만큼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우리가 처음 이곳에 들어 왔을 때 좀비는 없었을텐데.

도대체 어디 숨어 있었는지 모를 녀석들이 건물 사이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고트씨 앞이요!"


임성아의 다급한 외침에 백미러에서 시선을 돌리자 어느새 정면에서 두 놈이 메이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방향을 바꿀 만한 공간도 없었고 자칫 잘못해서 시간이 더 끌린다면 이곳에 갇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순간적으로 이런 여러가지 가능성과 해결 방법들에 대해 생각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거의 본능적으로 악셀을 밟은 발에 힘을 줬다.


쾅-


두 놈을 거세게 들이박으면서 그대로 전진한다.

기분이 상당히 더럽다.

인간만큼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들이박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이걸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아직 한 놈이 완전히 나가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

녀석은 본네트 위에 들러붙어서 앞 유리를 가로막으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놈이 맨 손으로 정면 유리를 부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야를 가리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백미러를 바라보자 어느새 셀 수 없을만큼 수가 불어난 놈들이 미친 듯이 이쪽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꽉 잡아!"


악셀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힘차게 밟았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메이의 앞에 매달린 녀석이 반작용으로 튕겨져 나갔다.

꽉 잡으라고 하긴 했지만 뒷좌석의 두 사람은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에 앞 시트에 거나하게 몸을 처박았다.

시트에 기대고 있는 등에 퍽-하고 충격이 전해져 왔다.


본네트에 집요하게 들러붙던 녀석이 저 멀리 떨어져 나간 걸 확인한 후에는 재빨리 다시 악셀을 밟았다.

황조롱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뒤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고트 빨리..!"


다행히 그 후에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좀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대로 상가 지역을 빠져나가 큰 도로에 메이를 올렸다.

스스로 긴장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서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속도를 조금 줄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황조롱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저 새끼들 갑자기..!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확실히 예전보다는 흐물해졌을테니 머리가 어떻게 됐다는 건 정확한 지적이겠지.


그보다 처음에 놈들의 모습을 보고 느꼈던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저 놈들은 최서준과 비마트에 갔을 때 우리를 향해 지나친 살의를 보이던 그 녀석과 너무 닮아 있다.

차이가 있다면 그 때는 단순히 한 놈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녀석들이 무더기로 있다는 것 정도일까.


"일단... 아지트로 돌아가서 생각하자."


뒷좌석에 앉은 두 사람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말없이 메이를 몰았다.

바닷가에 올 때 보았던 풍경들이 반대로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풍경이 반대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분 역시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올 때 잔뜩 들떠서 신나게 조잘거리던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이제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든다.

녀석들에게 인간적인 감정이 없더라도 이런 피크닉 분위기 정도는 파악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놈들이다.


그렇게 푹 가라앉은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사는 동네가 보였다.

흘끗 계기판을 쳐다보자 어느새 기름이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름을 채우는 것보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게 있다.

차를 몰고 오며 쭉 들었던 불안한 상상.


좀비들이 갑자기 광폭하게 변했다.

이것 자체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좀비가 등장했다는 시점부터 일상과는 아득히 멀어졌기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리 놀랍지는 않다.

다만 내가 쭉 걱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지트에 남아 있던 김민지와 최서준 쪽이었다.


물론 우리 쪽도 위험하긴 했지만 메이가 근처에 있었던 덕분에 도망칠 수 있었다.

그 두 사람의 경우는? 김민지와 최서준이 평소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산책이라도 나섰다면.

그리고 그 상태에서 우리가 바닷가에서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을 맞이했다면...


최악의 장면을 상상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지만 가정을 하면 할수록 더 마음이 조급해질 뿐이었다.


잠시 후 골목길로 들어서게 되어서 속도를 낮췄다.

이제 눈 앞의 골목만 돌면 아지트 앞이다.

제발 두 사람이 아지트 안에서 얌전히 있었길 바래본다.

아무튼 우리가 강화한 그 요새 안에만 있으면 안전할 것이다.

좀비들이 아무리 사납게 날뛴다고 해도 그 바리케이드를 뚫고 문을 부수거나 할 수는 없을테니까.


천천히 모퉁이를 돌아 메이를 세웠다.

그러자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어서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듯 메이에서 내리더니 현관 쪽으로 움직였다.

나 역시 운전석에서 빠져나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그때 문득 알 수 없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나는 그제서야 아지트가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민지와 최서준이 살고 있는 3층 베란다 창문이 죄다 흉측한 모습으로 부서져 있었다.


"안으로... 둘 다 차 안으로 들어가..!"


본능적으로 두 사람을 향해 읊조리듯 낮게 소리쳤다.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현관 앞에서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에게 어떤 설명을 해 줄만한 여유가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미세한 전류 같은 것이 온 몸으로 서서히 찌릿찌릿하고 퍼진다.


아지트 3층에 기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구름의 그림자라고 하기에는 삐죽삐죽 솟은 부분들이 너무 많았고, 새의 그림자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너무 거대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기괴한 모양의 그림자.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과 함께 3층의 위, 건물의 옥상 쪽으로 고개를 조금 더 치켜 들었다.


그곳에, 도무지 형용하기 어려운 괴상한 형체가 있었다.


성인의 세 배는 될 법한 거대한 몸집.

그 크기에 맞지 않는 비교적 작은 얼굴에는 좌우 한 쌍인 눈이 세 쌍, 총 여섯 개의 눈이 밑으로 나란히 늘어져 있다.


그리고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녀석의 신체 구조는 기이할 정도로 긴 팔다리다.


녀석은 도저히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 파악도 할 수 없는 길고, 기괴하게 비틀린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이용해 4층과 옥상의 한 부분에 몸을 지탱하고 매달려 있는 모습.


메이의 앞에 멍청하게 서서 녀석을 관찰하다가 문득 저 생물이 어떤 것을 닮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녀석은 거미와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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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거미(3) 23.03.30 11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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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6) 23.03.01 201 2 12쪽
17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5) 23.02.28 199 2 13쪽
16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4) 23.02.26 202 3 14쪽
15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3) 23.02.24 209 3 11쪽
14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2) 23.02.23 205 3 14쪽
13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 23.02.22 21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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