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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완결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2.17 10:53
최근연재일 :
2023.04.26 13:51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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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8
추천수 :
105
글자수 :
24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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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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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참사랑교회(10)

DUMMY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최서준에게 눈빛으로 대답해준 뒤 하수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그 옆으로 이동했다.

임성아와 황조롱이는 아직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멀뚱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서준 형제님. 준비는 확실히 끝냈겠죠."

"여부가 있겠습니까 천사님. 그보다 막혀 있던 거 뚫느라 이틀 간 개고생 했다구요. 지금도 허리가..."

"고생했어요."


엄살을 피우는 최서준의 말을 가로막고 옆을 쳐다봤다.

쓰레기들이 뭉텅이로 쌓여 있는 곳.

거기에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파이프가 교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황조롱이와 임성아 역시 파이프를 보고서 내 계획을 눈치챈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김민지에게는 미리 설명해뒀던 터라 그리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까이에서 파이프 속을 살피던 황조롱이가 곧바로 인상을 잔뜩 구겼다.


"고트.. 탈출로를 찾아낸 건 좋은데... 정말 여기 밖에 없었어?"


어떤 심정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는 모습이다.

파이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나고 더러운 검은 덩어리들이 잔뜩 끼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천국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임성아와 김민지 역시 말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황조롱이와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결국 세 여자 모두 파이프를 보며 미간을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에 김민지가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전.. 들어갈 거에요. 언니들은 남고 싶으면 여기 남아요. 여기서 남자들의 업보나 씻으면서 사는 것도 그리 나쁜 생활은 아니니까요."


옆에서 듣기에도 꽤나 당돌한 말투다.

이 녀석,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뭐? 너 고트가 좀 귀여워 해줬다고 상황파악이 잘 안되나 본데 우리는 말야...!"

"그만해. 민지씨 말이 맞아. 그보다..."


한 마디 쏘아붙일 듯한 기세의 황조롱이를 말리고 나서 최서준에게 눈빛을 보냈다.


"예,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어차피 여기서 더 더러워질 것도 없으니까요."


최서준이 자신의 몸을 한 번 훑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말했다.

황조롱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민지를 한 번 노려봤지만 일단은 참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래, 부탁할게."


최서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철없고 어리숙한 모습이었던 최서준은 고작 이틀 만에 훨씬 진중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김민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왠지 그 급격한 성장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서준이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

파이프 안을 한 번 비춰보더니 그대로 상체를 집어 넣으며 들어간다.

최서준의 체격이 그리 큰 편이 아니었음에도 파이프는 여유 없이 아슬아슬한 크기였다.

김민지는 걱정과 초조함이 담긴 시선으로 최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됐어요!"


잠시 후에 파이프 깊은 곳에서 최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럼 두 번째는 누가..."

"제가 들어갈게요!"


곧장 김민지가 파이프 옆으로 다가갔다.

꽤 진지한 상황이라고 해야겠지만 다급한 김민지의 모습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갈 것 같았다.

이 두 사람, 서로 투덜거리기는 해도 어쩌면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닐까.


김민지는 심호흡을 한 번 깊게 하는 듯 하더니 이내 파이프 안으로 몸을 집어 넣었다.

그 후에는 불안한 표정의 임성아가, 마지막 주자는 황조롱이였다.


황조롱이는 들어가기 전에 뭔가 떠올랐다는 듯 방공호의 거주 구역을 쳐다보며 말했다.


"젠장.. 나가기만 해 봐라. 특히 저 늙은 년 내가 가만 안둘 거야."


선생에게 뭔가 단단히 맺힌 게 있는 듯 그렇게 중얼거린 황조롱이는 역시 처음과 마찬가지로 인상을 잔뜩 쓰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파이프에 몸을 넣으려던 순간.

문득 깜깜하던 주변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당황도 잠시, 이내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 알 것 같아서 자연스레 표정이 굳는다.


파이프 속을 들여다봤다.

다행히 파이프의 각도 덕인지 이미 들어가 있는 네 사람은 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희미한 빛을 받으며 꿈틀거리는 황조롱이의 다리를 확인한 후에 천천히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하수구 위에는 최목사와 박천사가 서 있었다.

곧 목사가 내 모습을 내려다보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아아! 고트 형제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는 당신을 믿고 있었는데요!"


목사는 비무장.

박천사는 원래 황조롱이의 것이었던 그 무거운 샷건을 들고 있었다.

총구는, 당연하게도 나를 향하고 있다.

다시 목사가 크게 외쳤다.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십시오 고트 천사님! 제 눈이 틀릴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분명 이쪽 사람이란 말입니다!"


목사의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망설이고 있자 문득 그 두 사람의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가장 먼저 목사 옆에 붙어 다니던 두 소녀가 나타났고, 곧이애 지상에서 봤던 모든 천사들과 이곳 지하에 거주하고 있는 죄인들까지.

인원 수로 봐서 교회의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것 같았다.


그 수백 개의 시선이 내 모습을 내려다 보기 시작했다.

안타깝고, 또 측은하다는 듯.

이러면 확실히 이쪽이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십시오. 다시 돌아오겠다고 하시면 저는 언제든 받아들이겠습니다. 당신은 제 뒤를 이어야 합니다!"


나를 후임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고맙지만 사양이다.

나는 그저 내 좁고 지저분한 아지트에서 두 사람의 요리사로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권력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목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 업보가 너무 큰 탓인지 이곳에서 청산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네요."

"그런 것쯤이야 알고 있지요! 그래서 같이 오신 두 자매님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래, 그리고 교육이 끝난 뒤에는 이곳 남자들을 상대하게 되겠지.

냄새나는 아저씨들을 상대로.

업보를 씻어낸다는 숭고한 미명 아래에서 서서히 시들어가겠지.


"아니요! 고트 천사님은 지금 상당한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오해라니요?"

"두 자매님들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신거라면 번지 수가 틀렸다는 말입니다."


이내 목사는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더니 마치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그 두 자매님들을 조금도 강제하지 않았습니다. 교육에 관해서도 설명을 충분히 드렸고 이곳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정중하게 안내해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두 자매님이 이곳에 남은 건 오롯이 자매님들의 선택이었다는 말입니다."


순간 정신이 조금 아득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거짓말이다. 그 둘이 여기에 남고 싶어 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려 한참동안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목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고트 천사님... 당신은 지금 크게 착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아두거나 하지 않습니다. 여기 모이신 형제 자매님들도 모두 스스로의 의지로 여기에 있는 거란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순간 휘청이며 쓰러질 뻔해서 하수구 벽을 짚고 중심을 잡아야 했다.

하수도의 미약한 물살 때문인지 자꾸만 몸이 한 쪽으로 쏠렸다.

조금씩, 조금씩 파이프에서 멀어졌다.


"게다가 고트 천사님! 당신이 저와 무엇이 다르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그 두 사람과 함께 지내며 이미 저와 똑같은 방법으로 업보를 씻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목사의 말에 그 옆에 있던 두 소녀가 조소하며 나를 쳐다본다.

똑같은 방법이라.

그래,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나는 같이 살았을 뿐 그 두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최목사와는 다르다. 너희들과는...


내 반응에 목사는 조금전보다는 작게, 하지만 훨씬 더 깊은 웃음을 띄었다.


"하하하! 설마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이곳에서 업보를 청산하는 행위는 겉치레일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중요한 것이지 행위 자체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다리가 풀린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다리를 바로 세웠다.

목사와 박천사는 이런 내 모습을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아마 고트 천사님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그게 어떤 형식일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 작은 소녀들에게 구원 받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니 돌아오십시오! 장담하건데 어차피 당신이 여기에 남기로 결정하면 두 자매님은 반드시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걱정이 되신다면 두 분을 전속 자매로 고트님 곁에 두게 해드리겠습니다."


더없이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렇게 된다면 임성아와 황은채에게 어떤 해가 가는 일도 없을 뿐더러, 나는 여전히 평생 받아본 적 없던 존경과 권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정말로... 내 착각이었을까.

모든 사람들이 악의를 가지고 접근해 온 것이라고 나 혼자 착각해서 벌인 지독하게 우습기 짝이 없는 촌극이었던 걸까.


"천사님 돌아오세요!" , "고트 천사님!"


목사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성전 도중에 내가 위기에서 구해준 남자.

계속해서 나를 유혹하던 젊은 여자.

그리고 항상 천막을 청소해주던 사람들과 같이 이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순간 위장이 쓰리고 욕지기가 치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틀거리며 움직인 탓에 어느샌가 나는 쇠창살 근처까지 흘러와 있었다.

오물 냄새에 뒤섞여서 희미하게 짐승의 냄새 같은 것이 풍겨와서 머리가 어지럽다.

목사는 여전히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사님...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질문하십시오."

"만약.. 당신에게 역병을 막아주는 그 허브가 없었다면.. 그때도 사람들이 여기에 머물렀을까요."


온화하던 목사의 얼굴이 대번에 구겨졌다.


"당신이 말하는 선택과 그.. 교육은.. 이미 허브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행해지는 것이겠죠. 당신이 진정으로 사람들의 자유 의지를 존중했다면 그런 건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 허브는..."

"그만!"


목사가 노기를 띄며 호통을 치자 주위가 일순간에 잠잠해졌다.

이글거리는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목사는 잠시 후에 다시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예의 그 양 팔을 좌우로 넓게 벌리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안타깝게도 고트 천사님은 이미 역병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그 사실을 숨기고 이곳에서 천사 행세를 한 것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목사와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곧 한 사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어떤 단어를 내뱉었다.


"사탄... 사탄이다!"


그 말이 기폭제가 되기라도 한듯 분위기가 일순간에 험악해졌다.

조금 전까지 호의를 보이던 사람들이 비난과 함께 욕설을 퍼부어댔다.

거대한 방공호 안에 지독한 악의가 담긴 말들이 둥둥 울린다.


불현듯 목사가 한 팔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한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밀폐된 공간에서 여기저기 떠다니던 옅은 소리까지 모두 사라지고 난 뒤 목사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과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목사가 박천사의 어깨를 툭하고 가볍게 두드렸다.

박천사의 샷건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나를 조준했다.


그래, 결국 이런거겠지.

어떤 허울 좋은 시스템으로 유지한다해도 결국 이 천국은 모래 위에 지어졌을 뿐이다.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다.

한 순간이나마 목사 당신을 이해할 뻔했으니까.

그렇게 나왔으니 지금부터 내가 벌일 행동에 대해서 당신은 어떤 불평도 해선 안되겠지.


목사와 박천사는 내가 비틀거리자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었다.

실제로 머리가 어지럽긴했지만 나는 그런 이유로 비틀거렸던 것은 아니다.


뒷짐지듯 감추고 있던 손에서 자물쇠의 한기가 느껴졌다.

쇠창살에 달린 크고 무거운 자물쇠.

여기에 신경을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비틀거리는 척 이동하며 대화로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정말 마지막까지 쓰고싶지 않았던 방법이다.

백 명의 목숨과 한 명의 목숨은 값어치가 다를테니까.

하지만 그 한 명이 나일 경우에는 명백하게 얘기가 다르다.


찰칵-


쇠창살에 달려 있던 크고 무거운 자물쇠를 연 후에 철창을 확 열어젖혔다.


그르르- 캬악-


그러자 곧바로 짐승의 낮은 울음소리가 방공호 안에 울렸다.

귀에 지독히 거슬리는 그 소리에 목사와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어떤 형체가 불쑥 철창안에서 튀어 나왔다.


얼핏 보기에는 검은 개였다.

하지만 입주둥이 근처에 제 멋대로 솟아있는 날카로운 이빨과 찢어진 피부 아래의 검은 장기들.

그리고 흰자위만 번득이는 그 끔찍한 눈은 그것이 일반적인 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녀석은 그동안 통과할 수 없었던 철창을 빠져나오자 어리둥절한 것인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불현듯 높은 소리로 짖어댄다.


캬아아-!


그 소리를 기점으로 철창 안에서 수 많은 낮은 울음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목사가 눈을 동그랗게 뜬 그 순간.

순식간에 몇 십 마리나되는 시궁쥐와 개들이 철창 안에서 튀어나왔다.


"이..이런 미친!"


박천사가 크게 당황하며 총을 움켜쥐는 걸 보고 곧장 구정물 속으로 몸을 담궜다.

너무 서두른 탓에 입 안으로 구정물이 벌컥 들어왔다.

가장 밑까지 잠수한 후 그대로 파이프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물 속에서 몸을 일으키자 눈 앞에 파이프가 보였다.

내게서 풍기는 악취 때문인지 이쪽으로 시선을 보내는 개들은 한 마리도 없었다.

가리는 음식이 없다지만 먹기에는 너무 더럽다는 거겠지.


곧장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려다가 알 수 없는 기분에 잠시 몸을 돌렸다

방공호 안은 지옥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한때 나의 친절한 이웃이었던 사람들 중 몇 명은 이제 자신들의 이웃을 물어 뜯고 있었다.


이것은 전부 내가 만든 풍경이다.

내가 자물쇠를 열지 않았다면.

지옥과 맞닿아 있는 그 쇠창살을 열지 않았다면.


문득 최목사와 눈이 마주쳤다.

목사는 처음의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도망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


나를 비난하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던 목사는 이내 만족한 사람처럼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예의 그 사람 좋은 미소.


"하하! 자 보십시오 고트 천사님! 결국 제 사람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지금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전부 죽이려 하고 있는데도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목사가 소리치자 개 몇 마리가 시선을 홱 돌리더니 목사에게 뛰어들었다.

팔과 다리, 몸통에 개가 매달렸지만 목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마침내 그중 한 마리가 크게 도약해 목을 물었다.

목사는 휘청거리더니 마치 발악하듯 소리쳤다.


"당신은... 케헤엑... 저를 기회주의자라 생각하겠지만...!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상황에.. 캬악.."


뭔가 더 말하려던 목사는 끝을 맺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후 곧바로 파이프에 몸을 집어 넣었다.

몸에 힘이 빠져 있었고 파이프의 겉면이 미끌거렸던 탓에 하수도로 떨어질 뻔했다.

필사적으로 몸을 우겨 넣은 후에 앞으로 전진했다.


파이프 속은 좁고 어둡고 차갑고 냄새가 심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농밀한 어둠 속에서 아득히 멀리 보이는 점 같은 희미한 빛을 향해 기었다.

애벌레처럼 몸을 좌우로 비틀면서 천국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은 저 안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마 무리겠지. 저 안에는 변변한 무기도 없는데다가 지상으로 올라가는 해치는 너무 좁고 가파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제 평생동안 그 칙칙한 도시에서, 종내에는 어떤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그저 영원히 아무 의미도 없이 저 천국을 배회하게 되겠지.

내게 존경을 보냈던 사람들과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줬던 모든 사람들이.


처음엔 목사가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괴물은 내 쪽이 아닐까.

목사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줬고, 나는 그들 모두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신세로 떠돌게 만들었다.

어느 쪽이 더 옳은 삶의 방식인지는 명백해 보인다.


최목사의 말이 떠오른다.

나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그래, 이제서야 그 남자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아마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혼자인게 싫어서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깊은 심연에 빠져버리는 인간 유형이 있다.

결국 목사의 말대로 우리는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처음에 바늘의 끝처럼 작았던 빛이 어느새 점점 커지더니 둥그스름한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트!"

"오빠!"

"고트씨!"


황조롱이와 김민지, 그리고 임성아의 목소리가 좁은 파이프 안에 울렸다.


그 목소리에 기어가던 걸 멈추고 바닥의 더러운 오물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이대로 여기서 나가도 되는 건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괴물이 있을 자리로는 저기 밝은 빛 아래가 아닌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저 죽은자들의 도시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두 사람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그렇게 잠시 얼굴을 바닥에 묻고 있자 애타게 들려오던 목소리가 어느새 사라졌다.


그래, 나 같은 건 차라리 이 어두운 관 안에서 이대로 사라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럼 임성아와 황은채는 앞으로 조금 맛 없는 식사를 하게 되겠지만 고작 그 정도의 일일 뿐이다.

고작 그 정도의 일...


"뭐해?"


문득 코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황은채의 목소리였다.

왜 여기까지 들어온 걸까. 이곳에는 추잡한 괴물이 한 마리 있을 뿐인데.

나는 고개를 바닥에 박은 채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황은채가 갑자기 내 얼굴을 양손으로 붙잡더니 강제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기라도 할 것처럼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왠지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황은채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가자. 데리러 왔어."


고개를 숙인 채 황은채를 따라서 앞으로 기었다.

밖으로 나오자 태양이 온 사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치 어둡고 긴 밤은 원래부터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눈부시게.


온몸으로 빛을 받고 있는 네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나 같이 오물과 흙먼지로 뒤덮인 꾀죄죄하고 볼품 없는 모습.

밤의 흔적들이 그대로 묻어 있는 모습이었다.


"풋..."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모습을 둘러보던 김민지가 불현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임성아와 황은채 그리고 최서준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웃음을 참아보려 노력하던 황은채는 결국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다.


"하하 뭐야, 왜 갑자기.. 아하하 웃는 거야 바보 같아."

"그러는 은채 언니도 웃고 있잖아요 하하."


그래, 이게 내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이 바보 같은 웃음을 지키기 위해서 그토록 발버둥 친 것이다.


고개를 돌리자 시야 한 편에 높게 솟은 교회의 첨탑이 들어왔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지상에서 이들과 함께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살아가고 싶으니까.


"이제 돌아가자."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빨리 씻고 싶어."

"저두요. 돌아가자마자 우리 목욕부터 해요!"


황조롱이의 말에 임성아가 맹렬하게 동의했고 그 후에는 김민지까지 합세했다.

김민지가 뜨거운 물로 목욕할 수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자 왠지 모르게 황조롱이의 어깨가 올라간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기분 좋은 햇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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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거미(4) 23.04.05 110 1 12쪽
36 거미(3) 23.03.30 111 1 13쪽
35 거미(2) 23.03.30 154 1 12쪽
34 거미 23.03.29 134 1 11쪽
» 참사랑교회(10) 23.03.27 134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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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참사랑교회(8) 23.03.22 12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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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참사랑교회(6) 23.03.20 133 2 12쪽
28 참사랑교회(5) 23.03.18 13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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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참사랑교회(3) 23.03.14 151 1 11쪽
25 참사랑교회(2) 23.03.12 15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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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위치(witch)(4) 23.03.08 161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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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위치(witch)(2) 23.03.03 188 3 13쪽
19 위치(witch) 23.03.02 196 2 16쪽
18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6) 23.03.01 201 2 12쪽
17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5) 23.02.28 199 2 13쪽
16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4) 23.02.26 202 3 14쪽
15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3) 23.02.24 208 3 11쪽
14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2) 23.02.23 205 3 14쪽
13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 23.02.22 219 4 12쪽
12 아포칼립스에 편의점에 갇히게 되었다(4) 23.02.21 2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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