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아포칼립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완결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2.17 10:53
최근연재일 :
2023.04.26 13:51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8,374
추천수 :
105
글자수 :
241,033

작성
23.03.01 07:37
조회
200
추천
2
글자
12쪽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6)

DUMMY

이미 해가 꽤 높게 걸려있던 터라 아침과 점심은 한 번에 해결하기로 했다.


어제 먹고 남은 냉동 소고기를 잘게 썰어 넣고 미역국을 끓였다.

기름이 배어 나와 척 보기에도 고소해 보였다.

다음으로는 미리 해동시켜 놓았던 생선을 구우면서 그 동안에 원래 냉장고에 들어 있던 반찬들을 그릇에 정갈하게 옮겨 담았다.

이 정도로만 했을 뿐인데도 순식간에 그럴듯한 정식이 완성된다.


임성아의 체력과 근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내 요리 실력 역시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다는 게 체감되는 순간이다.

왠지 역할이 좀 바뀐 것 같지만 사소한 부분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이전과 달리 큰 식탁이라 세 명분을 차려 놓아도 널널했다.

내가 한 쪽에 앉자 곧 두 사람이 맞은 편에 앉았다.


잠시 후 얌전히 밥을 먹다가 힐끗 임성아를 쳐다봤다.

평소라면 가장 즐거운 시간일텐데 지금은 약간 기가 죽은 채로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황조롱이는 그런 임성아와 확실히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음.. 조금 짜긴 하지만 일단 국은 합격. 생선은 좀 더 바싹 굽는 게 내 취향이긴 한데 이 정도면 괜찮네. 자 한 그릇 더 줘."


황조롱이는 원래 자기 집인 것마냥 아주 편한 자세로 나를 부려 먹고 있다.

대체 뭐가 합격이라는 걸까.

결국 요구대로 다시 그릇을 채워주자 황조롱이는 거의 처음과 같은 기세로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맛있게 먹어주는 건 기분이 좋지만 그래도 이 녀석 지나치게 넉살이 좋은 것 아닐까.


임성아는 자신의 옆에 있는 불청객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태도가 여실히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식사 도중에 황조롱이가 한 번씩 매섭게 쏘아볼 때마다 겁먹은 강아지마냥 어깨가 움츠러들고 있다.

옆에서 보기에 상당히 애처로운 모습이다.


결국 잠시 후에 두 그릇을 깔끔하게 비운 황조롱이는 이내 만족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나와 황조롱이는 식사를 끝낸 시점이었지만 임성아는 눈치를 보느라 그런지 아직 밥이 한참 남아 있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을 위해서 조금 도와주기로 마음먹었다.


"천천히 먹어요. 우리는 잠시 방에서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임성아가 구해줘서 고맙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황조롱이가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자 임성아는 곧바로 식탁으로 고개를 내리 깔고서 묵묵히 젓가락만 놀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으니 마치 고양이와 생쥐의 관계 같이 느껴진다.

물론 이 경우에는 생쥐 쪽의 덩치가 더 크긴 하지만.


아무튼 더 이상 이 둘을 같이 두면 임성아가 제대로 밥을 못 먹을게 뻔하니 황조롱이를 붙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오자 황조롱이는 볼 것도 없는 작은 방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인지 즐거운 표정으로 이불을 들춰보거나 옷장을 열어보거나 했다.


내가 바닥에 앉은 채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때 방을 탐색하고 있던 황조롱이가 문득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말릴 새도 없이 마우스를 움직이더니 생전 처음 보는 사이트에 접속한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곤란하다.

남자 혼자 사용하는 컴퓨터를 멋대로 조작하지 말아줬으면 싶다.

그렇게까지 양심에 찔릴만한 건 없지만 나도 일단은 보통의 남자들처럼 컴퓨터 속에 평범한 비밀 몇 가지는 있는 법이니까.


"뭘 하려고?"

"걱정하지마 네 비밀스러운 취향이 가득 담긴 폴더를 열거나 하진 않을테니까."


그것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 녀석. 역추적해서 여기를 알아냈다면 분명 그 과정에서 내 pc를 해킹 했을텐데, 설마 이미 다 훑어 본 것은 아니겠지.


황조롱이는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음흉한 웃음을 지은 후에 주머니를 뒤지더니 usb를 꺼냈다.


"너도 궁금하잖아?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거 말하려고 방으로 부른 거 아니었어? 아니면 혹시 다른 목적? 뭐, 나는 그것도 상관 없긴 한데."


다른 목적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황조롱이는 내 어색한 반응에 씨익 웃은 뒤 곧이어 본체에 usb를 꽂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뭔가 조작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에 모니터에 로딩창이 뜨는 걸 확인하고서 의자를 돌려 내 쪽을 쳐다본다.

그나저나 황조롱이의 등 뒤로 Warning 이라는 단어가 대문짝만하게 보인다.

이거 위험한 건 아니겠지.

혹시 FBx나 CIx가 갑자기 찾아온다거나.


"걱정도 많다. 그리고 찾아오면 걔네가 뭐 어쩔건데? 주변에 깔린 좀비들 치워주면 오히려 고맙지. 근데... 그것보다 정말 너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무슨 일을 말하는 걸까.


"쟤는 누가 봐도 지나치게 예쁘잖아. 몸매도 그렇고.."


거기까지 말한 뒤 황조롱이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잠시 훑다가 곧 우울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왜 저러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

뭐, 확실히 처음에는 황조롱이의 말대로 임성아가 예쁘다는 사실을 자각하기는 했다.

지금은 계속 같이 생활한 탓인지 무덤덤하긴 하지만.


"그래...?"


내 대답에 황조롱이는 왠지 모르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더니 결국 미묘하게 즐거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녀석, 처음에도 그렇고 왜 이렇게 임성아에게 집착하는 걸까.

혹시 이전 세계에서 팬이기라도 했던 걸까.


로딩이 꽤 걸리는 것 같아서 그동안 우리는 각자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얘기를 나눴다.


황조롱이는 애초에 손재주가 좋았기에 우리 둘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탄 것 같았다.

좀비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고 근처의 좀비들을 학살하고 다녔다고 한다.


원래도 괴팍한 성격이었던데다가 나와 마찬가지로 떨어지는 사회성을 생각해보면 황조롱이에게는 아마 좀비 아포칼립스가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비들을 상대로 스트레스를 풀다니 여러모로 무서운 녀석이다.


그 후 서로의 추억을 꺼내며 즐겁게 얘기하던 와중에 어느샌가 로딩이 완료됐다.


"다 됐어. 봐."


모니터를 들여다보기 위해 바닥에서 일어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러자 황조롱이가 몸을 한 번 움찔거렸다.

조금 신경 쓰이는 반응이긴 했지만 곧 모니터 속에서 더없이 자극적인 영상이 나왔기에 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영상은 어떤 실험실 같은 곳에서 시작되었는데 곳곳에 적힌 언어로 봐서는 국내가 아니라 서구권인 것 같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가 어떤 것에 쫓기고 있는 것 마냥 연구실 내부를 미친듯이 달리고 있었다.

거친 호흡과 불안정한 발놀림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서 보는 사람이 다 초조해진다.

남자는 통로를 몇 개 지나치고나서 마침내 건물의 입구에 도달했는지 걸치고 있던 하얀 가운에 손을 집어 넣었다.


잠시 후 벌벌 떨리는 손이 인식 카드로 보이는 것을 떨어뜨렸을 때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올 뻔했다.

영화라면 정말 박진감 넘치는 연출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남자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후 곧장 그 앞에 펼쳐진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뒤에는 나무에 처박히고, 뿌리에 걸려 진흙탕에 구르면서 필사적으로 달리다가 이윽고 체력이 한계에 달했는지 큰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시간이 꽤 흐른 후에 위 아래로 흔들리던 앵글이 조금씩 진정되었다.

남자는 숨을 다 고른 것인지 마침내 나무를 벗어나려 움직였다.


그때 거대한 좀비가 화면에 불쑥 나타났다.

우리 동네의 좀비들이 귀엽게 보일 정도로 크게 부풀어 오른 근육과 선명한 핏줄.

남자의 비명이 들리고, 이어서 푹푹- 쏟아져 나오는 피가 카메라의 렌즈를 덮으며 영상이 끝났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황조롱이가 곧바로 물어왔다.


"어때?"


어떠냐니. 상당히 찝찝하다.

영화라고 하면 아주 잘 만든 영화겠지.

감독을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방금 본 영상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기에 찝찝하다.

그보다 황조롱이는 혹시 이게 좀비 사태의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전형적인 얘기지, 어느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실험 도중에 감당이 안되는 괴물을 만들어 버렸다던가?"


잠시 생각해보다가 곧바로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있을만한 일이다.

예전에 좀비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해봤을 때 후보에 있던 것들 중 하나기도 하고.

결국 사태의 원인은 바이러스를 영상 속의 놈들이라는 말인가.


뭐, 그다지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저주해봐야 지금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지금의 생활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어차피 이전에도 밖에 나가지 않았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거기에 덤으로 불규칙한 생활까지.

지금은 규칙적인 생활과 더불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까지 곁에 두고 있다.

어쩌면 이 쪽이 객관적으로 봐도 더 나은 생활이 아닐까.


"역시 당황하지 않네. 고트 너라면 그럴 줄 알았지."


황조롱이는 만족스럽다는 듯 씩 웃었다.


"그런데 황조롱이 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글쎄, 일단 차차 생각해봐야지. 그보다 오늘 저녁은 불고기가 땡기는데 혹시 가능해?"

"냉동은 있지만 생고기는 없어. 잠시만.. 저녁까지 먹고 간다는 얘기야?"

"새삼스럽게 무슨 소리야. 내일 아침도 같이 먹을 거고 가능하면 일 년 뒤에도 여기서 네 요리를 먹을 생각인데."


게임에서도 가끔 그랬듯이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는데 눈빛을 보니 진심이었다.

그러니까 황조롱이는 지금 이 아지트에서 같이 살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녀석이 옆에 있으면 우리는 훨씬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기가 있으니 좀비들의 습격에도 더 안전할테고, 무엇보다 황조롱이의 손재주가 있다면 생활이 전반적으로 윤택해지겠지.


그러니까 손해는 전혀 없다. 아니, 철저히 이득밖에 없다.

게다가 집은 어차피 두 사람이 살기에 차고 넘칠 만큼 넓으니까 한 사람쯤 더 있어도 전혀 관계없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뭘 망설이고 있는 걸까.


"혹시 주인 마님의 허락이라도 받아야 해?"


주인 마님이라니 임성아를 말하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진 표현인데.


"살려주고 재워주고 꼬박꼬박 밥 해서 바치니까 마님이지 뭐. 그래, 대충 보니까 둘이서 지금까지 어떻게 생활했는지 뻔하다 뻔해.. 좋아, 그럼 내가 허락 받고 올 테니까 기다려."


내가 뭐라고 대꾸 하기도 전에 황조롱이는 곧장 거실로 뛰쳐나갔다.


뒤를 따라 움직이자 부엌 한 구석에서 황조롱이가 임성아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임성아는 설거지 도중이었던 듯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그 차림으로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모습이 마치 시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는 며느리 같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여기서 같이 살게 됐어 이름은 황은채. 너보다 한 살 많으니 편하게 언니라고 불러. 이의없지?"

"네.. 네..!"


한숨을 쉬며 두 사람에게 다가가자 황조롱이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이제 임성아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너만 허락하면 된다는 태도였다.

사실 처음부터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어서 결국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런데 상관은 없지만 방이 두 개 밖에 없는데."

"아, 나는 성아랑 같이 자면 돼. 둘이 같이 자면 성아 네 말대로 밤에 춥지도 않겠지. 그렇지?"


임성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왠지 순간적으로 아쉬운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뭐, 나처럼 시커먼 놈보다는 어떻게 생각해도 황조롱이 쪽이 더 나을테니 아마 잘못 본 거겠지.


내가 허락한 후에 황조롱이는 이제 완전히 즐거워 보이는 모습으로 바뀌어버렸다.


"좋아, 그럼 같이 사는 건 확정됐고. 그보다 내 입맛에 맞게 아지트를 좀 바꿔야겠어. 당연히 도와줄 거지?"


그리고 조금 얼떨떨하게 쳐다보는 우리들을 향해 이 아지트를 어떻게 개조할 것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너무 현실적인 아포칼립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1 (에필로그) 남겨진 것 +4 23.04.26 138 6 15쪽
40 거미(7) 23.04.25 91 1 20쪽
39 거미(6) +3 23.04.19 104 1 13쪽
38 거미(5) 23.04.10 98 2 12쪽
37 거미(4) 23.04.05 110 1 12쪽
36 거미(3) 23.03.30 111 1 13쪽
35 거미(2) 23.03.30 154 1 12쪽
34 거미 23.03.29 134 1 11쪽
33 참사랑교회(10) 23.03.27 133 1 20쪽
32 참사랑교회(9) 23.03.23 128 1 11쪽
31 참사랑교회(8) 23.03.22 128 1 13쪽
30 참사랑교회(7) 23.03.21 136 2 12쪽
29 참사랑교회(6) 23.03.20 133 2 12쪽
28 참사랑교회(5) 23.03.18 136 2 12쪽
27 참사랑교회(4) 23.03.15 141 2 11쪽
26 참사랑교회(3) 23.03.14 151 1 11쪽
25 참사랑교회(2) 23.03.12 155 3 12쪽
24 참사랑교회 23.03.09 177 2 13쪽
23 위치(witch)(5) 23.03.08 164 3 12쪽
22 위치(witch)(4) 23.03.08 161 2 11쪽
21 위치(witch)(3) 23.03.07 182 2 13쪽
20 위치(witch)(2) 23.03.03 188 3 13쪽
19 위치(witch) 23.03.02 196 2 16쪽
»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6) 23.03.01 201 2 12쪽
17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5) 23.02.28 199 2 13쪽
16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4) 23.02.26 202 3 14쪽
15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3) 23.02.24 208 3 11쪽
14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2) 23.02.23 205 3 14쪽
13 아포칼립스에 무법자가 되었다. 23.02.22 219 4 12쪽
12 아포칼립스에 편의점에 갇히게 되었다(4) 23.02.21 210 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