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계약은 지장 찍기 전엔 모른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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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웨애애애앵!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렸다.
혼이 달아나게 커다란 소리에 잠깐 멍해졌다가 바로 정신이 들었다.
“빨리 안 꺼?!”
층간 소음 뭔지 몰라?!
<안 돼!!! 안할 게! 해코지 안 해! 쟤만 날 보는데 내가 왜 그래! 안 해! 안 한다고!>
귀신은 내 말 따윈 들리지도 않는 듯, 영문 모를 소리만 해댔다.
사이렌 소리는 끊이지 않고 요란하게 울렸다.
<미안!!! 잘못했어!!! 너한테 절대절대절대 털끝도 손 안 댈게!!! 야 너 내 사과 받은 거다?!?!?! 빨리 알았다고 해! 어서!!!!>
‘??? 왜 당황했지.’
형체가 보였다면 분명 두손에 불이 나게 빌고 있을 것만 같은 어조로 애걸복걸한다.
일단 소리부터 끄자 싶어서 동조해주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바로 사이렌 소리가 사라졌다.
<아 머리 아파.>
글자일 뿐인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넌 그걸 사과라고 하냐. 사이렌 소리는 뭔데? 네가 한 거 아냐?”
<내가 미쳤어? 그걸 내가 왜 해? 이게 다 표현의 자유도 모르는 새···님들이 하는 짓이거든? 시대가 어느 땐데 하는 말마다 일일이 검열하는 개꼰···님들 때문에 진짜 너무 피곤하다.>
언제부터 협박이 표현의 자유였냐···?
어쩐지 많이 순화된 듯한 문장을 읽으면서 점점 어이가 없어졌다.
<야 근데 너 뭐 돼? 겨우 이걸로 난리야 왜??? 저번엔 그냥 경고로 넘어가더니 왜 너한테 한 것만 이래??? 너님 혹시 인간 아니야? 뭐 이쪽 높으신 분 쯤 되고 그래? 나 지금 살살 기어야 할까?>
저번엔???
‘이거 완전 상습범 아냐.’
저 태도 전환 봐라.
언제 그랬냐는 듯 뻔뻔하게 되묻는 모습에 기가 찬다.
‘아무튼 다른 사람한테 들릴 리는 없단 거네.’
쟤한테 하는 경고면 다른 사람한텐 안 들리겠지.
아랫집 주민이 관대하긴 해도 사이렌은 선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사람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가. 너 말 너무 많다. 귀찮아.”
<야야야! 내 말 좀 들어봐. 일단 알았다고 해준 건 고맙긴 한데 나도 다 사정이 있거든? 나중에 혹시 감독관새···님들 찾아오면 내가 너한테 해코지 안 했다고 말해줄 수 있어?>
“···감독? 너 무슨 사고쳤어?”
뭔 짓을 해야 사고 안 치는지 감시까지 받냐?
더 엮였다간 나만 개고생할 것 같단 예감이 강하게 든다.
<나도 몰라? 아무튼 나 벌 주려고 눈에 불 켜고 다니는 또라이들···>
삐-익!
<X발. 지들 욕하면 귀신같이 아네. 아무튼 넌 산 자라서 아무 짓도 못 해. 잘 부탁한다?>
삐-익!
욕해서가 아니라 모른다고 해서 경고주는 것 같은데.
하는 걸 보면 각 나온다.
자기 죄도 모르면서 감시 당할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맡겨놓은 듯 당당한 태도에 헛웃음만 나왔다.
허공에 대충 손을 휘저으며 대꾸했다.
“부탁하긴 뭘 부탁해. 무당한테 가라니까. 오면 안 했다고는 해줄테니까 꺼져.”
느낌이 온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처음엔 무해한 척 소원 들어달라고 한 뒤에 얼마나 진상짓을 했을지···,
안 봐도 뻔히 그려졌다.
<아!!!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살려줘라! 어? 너 내가 얼마나 유능한 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너 연예인이지?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보여줄게! 이 몸이 직접 나서 주겠다니까? 보고 나서 말해!>
“넌 귀신이고 난 인간인데 네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관리자가 그러지 않았나.
저승은 이승에 개입할 수 없다고.
남의 발목 잡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아냐. 돼. 무조건 돼! 너! 너랑 같이 라디오한 지연오! 걔네 제로스 박살난 건 알아??? 리더가 솔로하겠다고 나대서 사장이 계약금 쎄게 주고 잡아두려는 거, 지연오가 그저께 안 거 있지?!>
‘이게 무슨···.’
솔로 잘 되면 재계약 안할 생각이라던 지연오의 말이 떠올랐다.
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어···.”
<놀랄 줄 알았어!!! 인기로 따지면 지연오가 원탑이잖아????? 근데 걔한테 훨씬 좋은 조건으로 대우해준다고 약속해서 지연오 개빡쳤어! 나 같아도 뒤집어 엎지!>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대고 이 정도로 상세하게 나진 않는데.
이건 꼭 옆에 앉아서 같이 들은 것 같은-
“너 혹시, 사람들이 하는 말 엿듣고 다니냐···?”
<엿듣는다니!!! 니들이 우릴 못 봐서 그렇지!!! 우리가 먼저 거기서 쉬고 있는데 니들이 조용한 데라고 들어와서 숙덕거리잖아!!! 가만히 쉬다가 시끄러워져봐! 뭣 땜에 그러는지 궁금하지 않겠어?!?!?!>
엿듣는 단 표현에 갑자기 길길이 날뛴다.
들은 건 확실하네.
잠시 따져보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 지 맞추면 네 부탁 들어는 볼게. 들어준단 건 아니니까 헛꿈 꾸진 말고.”
‘귀신은 왜 나쁜놈 안 잡아가냐.’
<어? 진짜? 음! 너 지금 귀신이 이런 것도 못 맞추냐? 그 생각하지!!!>
‘생각을 읽는 건 아니네.’
“너 진짜 드럽게 못 맞춘다. 됐고. 그 얘기 네가 직접 들은 거야?”
<뭐? 진짜 하나도 못 맞췄어? 이상하다. 다들 이 얘기하면 놀라던데. 어디서 듣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속담 고쳐야겠다.
낮말은 새가 듣는 게 아니라 귀신이 듣고 있네.
“내가 그 얘길 지연오한테 들어서 알거든. 아는 대로 다 얘기해봐. 사실이랑 같으면 네가 진짜 그 자리에 있었다고 인정할게.”
<헐. 너 지연오랑 친해????? 이상하다? 그 날 모임 들어오라고 하지 않았어? 이제 막 친해지는 단계인 줄 알았는데? 왜 친하지? 걔가 남한테 계약 얘길 막 할 애가 아닌데?>
지연오랑 아는 사인가.
되게 잘 아는 척 말하네.
“너 혹시 지연오 팬···이냐?”
<어????? 티 나????????>
왜 네가 당황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친구는 아마 아닐 테고- 그럼 ···팬이겠지.”
일반적인 팬 같진 않다만.
보아하니 어쩌다 들은 게 아니라 대놓고 따라다니다 엿들은 것 같은데.
말투도 좀 내가 쟤에 대해 이만큼 많이 안다고 자랑하는 느낌이다.
묘하게 우쭐대는 느낌이랄까.
‘···내가 신경쓸 건 아니지.’
<네 눈에도 그렇게 보여????? 너 사람 볼 줄 아는구나. 맞아. 내가 그래서 지연오를 좀 자주 따라다니거든. 잘생겼잖아. 지난달엔 하루종일 걔만 따라다녔어. 매일 봐도 안 질리더라???>
보통은 그걸 사생이라고 하거든.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참으며 물었다.
“···그래서 뭘 아는데?”
<지연오가 공평하게 계약금을 높여서 다 같이 계약하던가, 갈라설 거면 자기를 대우해주던가 둘 중 하나 선택하라고 했어. 리더 때문에 팀이 갈라질 거면 자기가 여태 몸 갈아가며 일했던 것도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던데? 하긴, 거기 리더가 곡 쓰고 프로듀싱도 하는데 나가면 타격이 크겠지. 팀 박살나면 자기 몫은 알아서 챙기는 게 당연한 거니까~>
다른 능력들은 평범하지만 곡은 잘 뽑는 리더가 솔로를 하겠다고 나가면, 보컬도 춤도 괜찮지만 제작 능력은 없는 지연오가 난감해질 거다.
1집부터 프로듀싱한 리더가 그룹 색을 만들어 놨을 테니까.
‘알아봐야겠네.’
“너 그거 다른 귀신한테서 들은 얘기 아냐?”
<내가 그걸 왜 거짓말 해? 진짜야!!!>
“진짜지?”
<어! 하늘에 맹세! 거짓말이면 지금 당장 벼락 맞을게!!!>
“그럼, 그 얘기 말고 뭐 더 들은 건 없어?”
<있지! 당연히 있지! 왜? 궁금해? 일단 걔네 리더는->
툭 던진 질문에 답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거 꽤 괜찮은 기회일지도.’
이 진드기는 어차피 떼놓을 생각이지만.
지연오와 안면을 터두는 건 우리 미래에 꽤 유용할 것 같다.
내게 한 번 이 문제를 언급한 적도 있으니까.
접근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겠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이록이에게 연락했다.
[록아 너 지연오 선배 연락처 알아?]
[어 왜]
[그 선배한테 내 번호 알려주면서 연락 좀 달라고 해주라 급하게 물어볼 게 생겨서]
[ㅇㅋ]
[참 너 그 선배랑 모임같은 거 하냐? 나한테 모임 들어오라던데]
[ㅇㅇ 너도 와 근데 재미는 없음]
[어쩐지 니가 말한 적 없다 했다···]
[그냥 정보 공유하는 덴데 딱히 쓸만 한 얘기도 별로 없고 잘난척만 해 다들 장점 하나 있긴 한데 아이돌 친구 있는 척 가능 다들 서로 친구인 척 해 ㅇㅇ]
[ㅋㅋㅋㅋㅋ담에 보고 구경 한 번 가보던가 할게 연락만 지금 넣어줘(부탁해 이모티콘)]
[(오케이 이모티콘)]
곧 지연오에게서 연락이 왔다.
[지연오인데]
[이록이한테 들었어요]
[많이급해요?]
[제가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선배님 관련한 거라··· 혹시 시간 되십니까?]
띠리리릭---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 하태씨, 무슨 일인데 그래요? 내가 지금 좀 바빠서-
“선배님, 제로스 해체한다는 말이 돌던데 사실인가요?”
- ···어디서 들었어요? 그때 들은 말로 떠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목소리에 날이 바짝 섰다.
경계하는 투에 톤을 좀더 부드럽게 바꿔 말했다.
“출처는 걱정 안하셔도 돼요. 절대 어디 가서 떠들 사람은 아니라서요.”
입이 있고 떠들고 다닐만큼 성격도 안 좋아보이지만 들어줄 사람이 저 밖에 없어서.
지연오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 ···후. 말이 슬슬 돌긴 하나보네. 맞아요. 하긴 그 난린데 말 안 도는 게 이상하지···.
“···헛소문이길 바랐는데···, 다른 회사랑 컨택 중인 것 같더라고요.”
진드기에게 들은 이야기를 소문인양 포장해서 말했다.
- 미치겠네···. 아. 미안해요. 하태씨한테 자꾸 이런 모습만 보이네요. 친해지고 싶은데 자꾸 이런 소리나 하고.
“아뇨. 그럴만한 상황인데요. 괜찮습니다. 저, 그것 말고도 다른 이야길 더 들었는데, 사실이면 선배님께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전화로 하긴 좀 그렇고 덜 바쁘실 때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 어···.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 내일 시간 괜찮아요?
수락이 떨어졌다.
통화 내내 옆에서,
<진짜 지연오다!!!!! 와 진짜야!!!!!>
하던 진드기가, 전화를 끊자마자 들러 붙었다.
얼굴 가까이 붙은 말풍선이 불쾌하다.
<나도 데려가. 내가 알려준 정보로 약속 잡았으니까 나도 데려가!!!!!>
“보고.”
좀 있으면 너 데려갈 분이 오실 거란다.
내가 가자고 해도 못 가.
‘근데 열두 시면 늦은 밤 아닌가. 왜 안 와?’
말과 동시에 세상이 희게 번쩍였다.
<날씨 XX 맞은 게 딱 너 같다. 왜 또 변덕인데? 들어줄 것처럼 그러더니 치사한 XX. 씻다가 욕실 바닥에 확 자빠져라!!!>
“왜. 아주 죽으라고 빌지.”
<훙, 그럼 내가 못할 줄 알고?! XX하고 XXXX! 이런 XXX XX가 XXX XX XXX XXX XX!>
대충 같이 가자는 말을 늘어놓는데.
우르릉- 하늘이 울렸다.
동시에 사이렌도 함께 울렸다.
삐-익!
웨애애애앵!
<야 이 나쁜 새끼야!!! 니가 시켰잖아!!! 아 내가 안 했어!!!!!>
[5회 경고 누적.]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더니.
갑자기 바닥에서 새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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