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누구 덫이 더 정교하지? (2)
결과적으로, 고도진이 옳았다.
내 혈색을 본 간호사도 보자마자 분주해졌다.
몇가지 검사까지 받은 뒤 주사까지 맞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됐다.
일종의 쇼크라는데, 아까 숨 막히던 느낌이 이거였나 보다.
큰일날 뻔 했다고 또 혼났다.
‘그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고도진이 찍어서 보여준 내 안색이 백지장 같아서 조용히 누워 있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그냥 멍하기만 하다.
약기운에 온몸이 나른해져 잠이 들 때쯤.
“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좀만 자고 얘기하자···.’
***
아주 깊은 잠을 잤다.
간만에 푹 잤더니 오랜만에 개운했다.
창밖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잠깐 잔 거 치곤 되게 개운하네.’
느낌이 이상해 시간을 확인했다.
하루가 훌쩍 지나있었다.
“···뭐야. 내 하루 어디 갔어.”
목소리가 푹 잠겨 갈라졌다.
병실 안이 조용해 낯설다.
다들 집에 갔나 하는데 화장실 문이 열렸다.
“계하태!”
젖은 앞머리를 손으로 털던 고도진이 날 발견하자마자 달려왔다.
“괜찮아??? 어디 이상한 데 없어???”
“어, 멀쩡한데.”
“다행이네. 확실히 얼굴이 훨씬 좋아지긴 했음.”
살면서 그렇게 핏기 없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중얼거린다.
“담부턴 절대 그러지 마. 목숨이랑 증거 맞바꾸면 무슨 소용임???”
“안 그럴게.”
“그 XX 감옥에서 썩을동안 넌 행복해야지!!!”
고도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그건 그런데, 너 왜 이렇게 흥분했냐···?”
조문혁 어깨 뜯을 때도 기백이 남다르더라.
“친구가 다 죽게 생겼는데 화 안 나게 생겼어?!”
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눈을 세모꼴로 뜬 고도진이 이젠 날 혼내기 시작했다.
“넌 내가 이런 일 당하면 안 그럴 거야?! 어???”
“아니··· 그러겠지···.”
“그러니까! 내가 이러는 것도 당연하지!!!”
고도진은 조문혁 이야길 할 때보다 더 흥분해 열변을 토했다.
‘아니, 너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이래도 심드렁, 저래도 심드렁.
세상 무심하던 녀석이 사자후를 내지르는데 당연히 낯설지······.
“야, 너 한 시간이나 죽어 있었잖아.”
“어···”
“솔직히 그 정도면 엄청난 기적이잖아?”
“그렇지···?”
“하늘이! 네 억울함도 풀고! 아직 올 때 안 됐으니까 남은 인생 XX 멋지게 살아보라고! 되돌려 보낸 건데! 왜 그랬냐!!!”
“그런가······?”
그냥 여태 없었던 운이 그 순간에 몰빵된 거 아닐까.
“그런가는 무슨!!! 넌 지금부터 인생 XX 잘 풀릴 거야!!!”
쉬익.
덕담을 악담처럼 하는 고도진이 거세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하자.”
“······뭘?”
***
뉴스프롬에서 새로운 기사가 나왔다.
[[단독] 블랙밤 태하, 추락사고 재조명]
[···처음 본지가 태하의 사고 소식을 취재할 때만 해도 본 사건은 발 헛디딤에 의한 낙상사고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심층취재 결과 해당 사건은 외력에 의한 추락사고였음이 밝혀졌다.
기자는 원활한 설명을 위해 태하의 하루를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1. 태하는 사건 당일 저녁, 예능 <수다나 떨까?>의 본방송을 시청 중이었다.
<수다나 떨까?>에서 태하는 문혁에 대한 비판을 했다.
2. 방송 직후 태하는 문혁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두 사람은 4분 가량 통화를 했다.
통화 후 태하가 집에서 나온 시각은 11시 30분경.
프로그램이 끝나고 20분 뒤다.
3. 태하가 회사에 도착한 시각인 12시 경.
목격자에 따르면 태하는 사건장소인 옥상이 아닌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 30분 가량 머물렀다가 나갔다는 증언에 따르면 태하가 옥상에 간 시각은 최소 12시 30분이다.
4. 해당 시각 문혁도 회사에 있었다.
출입구 CCTV로 확인한, 문혁의 차량이 들어간 시각은 10시 2분.
문혁은 옥상으로 향하는 복도 CCTV에도 포착되었다. 당시 시각은 11시 21분.
옥상에서 나오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
해당 CCTV가 문혁이 옥상으로 향한 직후 먹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태하가 옥상으로 향하는 장면도 포착되지 않아 정확한 시각은 알 수 없다.
5. 문혁의 차량이 나온 시각은 2시 18분이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차량에는 운전자 한 사람만 타고 있었다.
6. 의식을 잃은 태하를 매니저가 119에 신고한 시각은 새벽 1시 27분이다.
태하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7. 과다출혈 및 두부손상으로 인해 심정지 상태로 이송된 태하는 응급처치 끝에 소생했다.
응급수술 후 괜찮은 듯 했으나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
“···엄청 자세하네.”
나도 정확히 모르는 이야기들이 기사에 상세히 나와있다.
우리는 패드 하나에 머리를 맞대고 기사를 읽었다.
[사고 당일 타임라인으로 미뤄볼 때, 문혁이 태하의 사고를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경찰은 태하의 사고를 조사중이다. 단순 낙상사고라면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경찰은 이 사고에서 무엇을 조사하고 있는 것일까?
···
기자는 해당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현재 수사중인 사안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Q : 외력에 의한 사고가 맞습니까?
A : 용의자들이 있다는 것만 밝히겠습니다.
그렇다. 경찰은 용의자‘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
그날 이후 블랙밤의 매니저 A씨는 갑자기 고가의 차량을 구입했다.
원래 구매 계획이 있었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당사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A씨 주변 지인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래 대화는 익명으로 진행된 점 양해 부탁드린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 중인 지인 1과의 대화다.
Q : A 매니저가 평소 차량 구매 계획에 대해 얘기한 적 있나?
A : 전혀 없다. A는 매일 돈이 없다, 박봉이 짜증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Q : A가 차를 산 것에 대해 아는 바 있나?
A : 없다. A가 매주 로또와 연금 복권을 구매하는데 그 주부터 사러가자고 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또 다른 지인 2의 답변도 주의를 끌었다.
Q : A가 평소 차량 구매 계획에 대해 얘기한 적 있나?
A : 사고 싶어 하는 차가 있었다. P사의 스포츠카였는데, 가격이 억대라 그림의 떡이라고 종종 말했다. 한번 시승한 뒤로 사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Q : A가 차를 산 것에 대해 아는 바 있나?
A :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로또라도 당첨됐나, 어떻게 드림카를 사게 됐나 궁금해 물어봤지만 일이 잘 풀렸다고만 했다.
Q : 무슨 일인지는 물어봤나?
A : 당연히 물어봤다. 운이 좋았다고 할 뿐 구체적인 얘기는 한 적 없다. 정말로 뭐가 잘 풀렸는지 못 보던 시계도 좋은 걸로 차고 다니고, 씀씀이가 커졌다.
···
그날 밤. 대체 태하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행히도 태하는 의식을 회복해 현재 치료에 전념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태하의 완쾌를 기원한다.
뉴스프롬 강진서 기자.]
“추측은 넣지 말라고 했더니···. ···이러다 고소당해도 내 책임은 아니지.”
기사 자체는 좋았다.
곳곳에 심은 암시성 발언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팩트만 잘 정리해놓았다.
대체 회사 CCTV를 어디서 어떻게 공수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취재 수완이 대단하다.
‘대단하네. 회사 사람 인터뷰는 또 어떻게 한 거야?’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할텐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모르겠다.
소속사 직원들은 죄다 기자라면 치를 떠는 거 아니었나?
매니저도 주위에 어지간히 잘 못한 모양이다.
아무리 퇴근길에 검거해 소문이 쫙 퍼졌다고 해도, 바로 인터뷰애 응하는 사람이 나오는 걸 보면.
“왜 인터뷰 하는지 숨겼으면 충분히 가능할 지도.”
재이에게서 박진수가 횡령 때문에 잡혀갔단 소문이 돈다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
지금도 다들 그렇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젠 진상을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소문이 워낙 빨리 퍼지는 바닥이니 모를 일이었다.
기사가 올라온 지 한 시간 남짓 지났는데, 벌써 댓글이 꽤 많이 달렸다.
- 와씨 현실이 더하네 이거 ㄹㅇ임? ㅈㄴ 어지럽네
- 이해안가 둘이 한패면 신고를 더 빨리했어야지 죽으면 살인이잔음 껴맞추기쩌내;;;
┕ㅃㄷㄱㄹ냐? 딱봐도 일부러 늦게한 거 안 보임???
- 태하님 쾌유를 기원합니다 (기도하는 이모티콘)
- 말세다,,, 지가잘못해놓고 남을해치려고,,, 쯧,,,,
기사 아래에 달린 <화나요>가 벌써 800개다.
<후속 기사 원해요>도 300개를 넘었다.
“내 이름 들어간 기사 중에 제일 반응 뜨겁네.”
5년 전에 이런 반응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관심 많아서 다행인데, 기분 이상함.”
“나도···. 형 재판에 도움되니까 다행인데······.”
다들 같은 생각이었나보다.
관심 받고 싶을 땐 그렇게 외면하더니.
사고 난 뒤로는 관심이 쏟아진다.
“조문혁 때문에 인생 장르가 자꾸 바뀌네.”
칠전팔기 노력 서사에서 미스터리로.
미스터리에서 서스펜스 스릴러로.
스릴러에서 기억도 안 나는데 온 세상이 날 주목해로.
다음 차례는 무슨 장르냐?
“그래도 마지막에 해피 엔딩이면 되지! 다 나아가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형 앞으로 꽃길만 남았어. 걱정마!”
유재이가 씩씩하게 외친다.
“오우, 씩씩해졌네. 계하태 흰색된 날 옆에서 대성통곡하더니.”
“······.”
재이가 양손으로 고도진의 입을 꽉 눌렀다.
“흐즈므르그 흐쓸튼드.”
말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간에 싸움이 벌어지고.
나는 딴생각에 잠겼다.
‘재판까지는 이대로 순조로울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기 막히다는 게 무슨 느낌인 이번에 확실히 체험한 것 같다.
머리도 깨져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도 세게 맞아봤다.
처음 겪어보는 일 투성이인 매일이지만, 그래도 해야할 일은 있다.
‘고도진이랑 유재이,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일.
슬슬 준비해야 할 때다.
- 작가의말
오늘도 감사합니다.
틈틈이 쓰고 있는데 올리기 전에 한번 다듬는 게 자꾸 미뤄져서 업로드가 들쑥날쑥하네요.
열심히 올리겠습니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