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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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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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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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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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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황포 군관학교 2)

DUMMY

1923년 9월,

36세의 장제스가 이끄는 쑨이센孫逸仙 박사 대표단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3개월간 소련의 당과 군, 행정기구 운영을 배우며 공장과 소비에트, 사관학교도 견학했다.

혁명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소련을 둘러보는 귀한 경험이었다. 신해혁명의 와중에 잔뼈가 굵은 장제스의 보스 기질이 마음에 든 스탈린은 공산당 입당을 권유했다.

“중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구시대 인물보다는 귀하가 적역이다. 공산당에 입당해 코민테른 활동에 참여하라...!”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생각을 지닌 그들로서는 별 문제없는 발언이었지만 의리를 중시하는 청방 기질의 장제스에게는 배신을 부추기는 간사한 말로 들렸다. 게다가 송씨 가문과 공씨 가문 등 중국의 유수 자본가들의 후원을 받는 입장의 장제스에게 공산당은 거북했다.

병상의 레닌이 위독한 상태였던 소련은 차기 대권을 놓고 트로츠키과 스탈린이 대결 중이었다. 공산혁명의 중국전파를 자신의 공으로 삼으려던 스탈린은 장제스에게 군자금과 무기도 약속했다.

그러나 입당을 보류하고 돌아온 장제스는 쑨원에게 보고했다.

"소련의 제도는 전제와 공포를 바탕으로 한다. 삼민주의와는 가는 길이 서로 다르다."

비록 입당 권유에는 실패했지만 스탈린은 지원 약속을 지켰다. 군벌들에 비해 부실한 국민당의 무장을 위해 군사고문단과 함께 자금과 무기를 보냈고 국민당은 이를 바탕으로 광저우 주변의 섬, 황포에 사관학교를 창설했다.


붉은 군대의 산실, 프룬제 사관학교에서 강한 인상을 받은 장제스는 북양군벌의 뿌리였던 북양 무비학당을 비롯한 중국의 군사학교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후청의 봉천군관학교도 그 리스트에 들어있었다. 봉천을 찾은 장제스는 북양 무비학당에 제식훈련을 도입했던 나를 방문했다.

“신군의 대선배님을 뵙습니다. 풍옥상 장군을 통해 선배님에 대해 들은 바 있습니다. 부디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천치메이와 쑨원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는 장제스로서는 드문 겸손한 태도. 그것은 후청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장제스를 맞은 나 또한 만감이 교차했다. 대륙통일에 성공하지만 쫓겨나는...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달라지리라. 아니 달라지게 해주리라.


비운의 영웅에 대한 측은지심이 드러난 내 표정은 호의적인 미소로 가득했다.

“남북으로 서로 떨어져있지만 쑨원 선생과 장대인의 선성은 우레와 같이 들어왔습니다. 풍옥상 장군도 칭찬하시더군요.”

만남은 우호적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장제스는 군사고문단과 함께 자금과 무기를 보내온 소련의 지원을 자랑했다. 그리고 광저우의 섬, 황포에 설립할 사관학교 계획을 설명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공동운영하는 형태. 바로 그것이 훗날 1차 국공합작으로 불리게 되는 이유였다.

내용인즉슨 스탈린의 원조였지만 공식 파트너는 코민테른. 공산당의 참여는 당연했다. 그러나 교장 장제스는 공산당이 아니었고 기백 명에 불과한 중국 공산당에는 학교 운영에 참여할 인력도 빈약했다. 그래서 학교 운영에 참여한 공산당원은 소련과 프랑스 유학파들로 채워졌다. 이것이 초기 중국 공산당을 유학파들(28인의 볼셰비키)이 장악한 배경이었다. 국내파였던 모택동의 당내 서열은 유학파인 주은래보다 뒤졌다.


나는 원래 역사에서 장제스의 행적을 짚어보았다.

독선적 리더인 그에게는 적이 많았다. 그는 적을 포용하는 대신 방대한 첩보조직을 운용해 제압한다. 천치메이의 조카인 진씨 형제가 이끄는 CC단, 황포 졸업생 대립이 이끄는 남의사 등등.

장제스의 측근은 대부분 황포군관학교 출신이었고 황포 졸업생이 아니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국민당 정권의 기반이었다. 그는 황포 졸업생들에 친절했고 혜택과 특권을 부여했다.

장개석은 연설할 때면 더듬었다. 에··· 말하자면··· 식으로 지루하게 만든다. 그러나 측근을 훈계할 때는 청산유수였다. 사이사이 끼어드는 냥시피 란 욕설만 빼면 내용도 잘 째인 연설. 한바탕 퍼붓고는 돌아갈 때 벽돌을 한 장씩 들려 보냈다. 금 벽돌. 그의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나는 장제스의 신설 사관학교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공산당과는 칠천지원수인 백러시아의 동맹국, 청나라를 소련이 반길 리 없었다. 그래서 풍옥상에게 연락했다.

“신설 사관학교에 교관과 학생을 보내는 게 어때?”

원래 역사에서 풍옥상과 장제스는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장제스는 고전했고 한때 사면초가에 몰려 패망을 각오했을 정도. 그 덕분에 장제스의 북벌도 늦어졌다. 1929년의 대공황 여파로 불황을 맞은 일본은 그 틈을 비집고 대륙진출을 결행한다. 상해사변.

풍옥상과 장제스가 협력한다면 일본의 남경진출을 막을 수 있으리라. 둥베이는 청나라가, 상해는 장제스가 막으면 밀본의 대륙진출을 무산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1924년 6월 16일, 신설 군관학교 개교행사가 거행되었다. 소재지가 광저우에서 40여리의 황포도黃埔島였기에 국민당 육군군관학교라는 정식 명칭대신 황포군관학교로 불리게 된다. 6개월의 속성 훈련과정을 운용한 이 학교는 5년간 6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31년 10월에 폐쇄된다.

일단 개교하자 양산박을 방불케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전국에서 몰려왔다. 1924년 봄, 잡지 신청년에 황푸군관학교 학생모집 공고가 실렸다.

“광저우에서 15㎞ 떨어진, 초목이 무성한 작은 섬이 중국 혁명을 완수할 열혈 청년들을 기다린다.”

신청년은 인기잡지였다. 발간되기 무섭게 서점에 달려가는 청년들이 널려 있었다.


소련과 함께 군관학교 설립을 주도한 쑨원도 각 지역대표들에게 우수학생 추천을 당부했다. 근거지가 남방인 국민당은 북방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반면에 공산당은 미미하나마 북방과 남방에 산재해 있었다. 전국 당원들에 통지문을 보냈다.

“건전한 청년들을 선발해 황푸로 보내라.”

중국에 공산주의를 처음 소개한 이대조는 베이징에서 황푸행을 권했다. 후난성의 마오쩌둥은 상하이에서 응시자격을 심사했다. 입소문 빠른 나라가 중국이다. 국·공 양당이 함께 군관학교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금세 퍼졌다.

“황푸로 가자. 到黃埔去”

는 구호가 전국에 요란했다. 북방군벌 오패부가

“황푸 응시생은 발각 즉시 총살해도 좋다”

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난세의 청년들이다 보니 열정이 어마어마했다. 조국의 미래, 민족의 미래가 자기 어깨에 있다 자부했다.

“신해혁명은 미완이다. 군벌을 타도하지 않는 한 혁명은 요원하다”

모든 것을 군벌 탓으로 돌렸다. 혁명의 성공이 새로운 군벌을 탄생시킬지 모른다는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대륙에 풍운을 몰고 올 괴짜들이 광저우로 몰려들었다.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산시山西성에서 중학을 갓 졸업한 두율명은 신청년에 난 군관학교 설립소식에 흥분했다. 아버지는 하나뿐인 아들을 군인으로 만들 수 없다며 창고에 가둬버렸다. 평소 두율명만 보면 얼굴이 빨개지던 젊은 과부가 사다리를 들고 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훗날 국민혁명군 최초의 육군상장은 다른 사람 몫이었다.


사람은 가끔 자신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허시河西촌 소학교 교사 쉬샹첸徐象謙은 상한 돼지고기를 먹고 복통에 시달렸다. 밖에 있는 시간보다 화장실에 쭈그리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책이라도 보지 않으면 악취를 견디기 힘들었다.

하루는 엉덩이와 씨름하며 신청년을 뒤적거리다 군관학교 모집기사를 읽었다. 몇 달 전 수업시간에 신해혁명을 소개했다는 이유로 사퇴압력이 심할 때였다. 쉬샹첸은 사직원 대신 똥물을 끼얹고 교단을 떠났다. 양자강을 건너는 배에서 소동파의 시를 읊조리던 중

“이제부터 미래를 향해 전진하겠다”며 향전向前으로 개명했다. 상하이에 도착해 생도 선발위원 마오쩌둥 앞에서 예비시험을 치르고 본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광저우로 향했다.


예쁜 유부녀에게 ‘방앗간 뒤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냈다 마을에서 쫓겨난 후베이 소년 린뱌오林彪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군인이나 되겠다” 며 형들과 함께 광저우행 열차를 탔다.

교장이 된 장제스도 환골탈태 했다. 일기에 금주, 금연, 금색禁色을 다짐했다. 금색은 실패했지만 술 담배는 죽는 날까지 입에 대지 않았다.

교장 취임 8개월간 46차에 걸쳐 학생과 교관들을 모아놓고 군인의 의무와 책임, 혁명군의 신앙, 군인이 총을 소지하는 이유, 기율과 복종, 군인의 단체생활’ 등을 강의했다.

중공 원수 쉬샹첸의 회고에 의하면 종이 한 장 안 보고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강의에 학생들은 숨을 죽였다고 한다.


소련의 지원으로 세워진 학교라는 특성에도 불구하고 무산계급 훈련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도의 75%가 지주와 중농, 관료 자제였다. 상하이의 지원자들은 천치메이의 조카 천궈푸를 비롯하여 우익이나 청방 조직원이 대부분이고 학교 내부에는 소련고문들의 바람과는 달리 쑨원주의 연구회를 비롯한 반공그룹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생도들은 교장 장제스에 충성하면서 장제스 파벌에 힘을 실어주었다.


신생 군관학교는 생도들뿐만 아니라 행정부와 교관단 역시 역동적 움직임을 보였다. 대외적으로는 합작을 선언했지만 국민당과 공산당은 저마다 세력 확장에 골몰하고 생도들 역시 쑨원주의 연구회와 청년군인 연합회로 갈라져 대립했다.

풍옥상 계열 등 중립을 취하는 무리에는 후청의 군통 요원도 있었다. 중도파 교관단이 맡은 것은 제식훈련과 전술 등 정치색이 없는 과목들. 혁명과 고담준론에 식상한 사람들은 중도파를 찾았다. 그 곳에 가면 과학기술과 해외소식 등 무언가를 얻는 생산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생도 진 두수는 군통 요원이었다. 상해 출신인 그의 장기는 청방시절의 무용담. 예나 이제나 싸움 이야기는 어디서나 인기였다.

“조계 경찰은 말입니다. 대개가 방회 소속입니다요. 프랑스 조계의 경찰간부 황금영은 청방회원입니다. 영국 조계 경찰은 대도회에서 쥐고 있고... 사건이 생겨도 서로의 피해를 줄이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 마련이지요.”

사건 해결은 뒷전이고 조직 보호가 우선인 이들은 애꿎은 범인을 만들고 진짜 범인인 조직원은 빼돌린다 했다. 일단 은혜를 입은 자들은 충성을 맹세하고...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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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39 발주나
    작성일
    19.06.17 06:41
    No. 1

    필력은 좋으신데 내용중 실제 역사의 부연 설명이 좀 기네요.
    스토리 전개보다 실제 역사 설명이 80%는 되는거 같은데 이부분 좀 줄여 보시는게..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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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상해. 봉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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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황포 군관학교 4 (완결) +14 19.06.24 1,239 29 5쪽
55 황포 군관학교 3) +2 19.06.19 1,053 33 6쪽
» 황포 군관학교 2) +1 19.06.17 1,119 49 11쪽
53 황포 군관학교 1) 19.06.12 1,346 45 6쪽
52 천하대란 시대 7) +3 19.06.10 1,645 42 9쪽
51 천하대란 시대 6) +3 19.06.08 1,515 42 7쪽
50 천하대란 시대 5) +3 19.06.07 1,531 48 8쪽
49 천하대란 시대 4) +1 19.06.05 1,678 56 9쪽
48 천하대란 시대 3) 19.06.03 1,908 46 9쪽
47 천하대란 시대 2) +7 19.05.25 2,309 56 7쪽
46 천하대란 시대 1) +10 19.05.24 2,483 55 14쪽
45 바이칼 4) +5 19.05.22 2,201 44 11쪽
44 바이칼 3) +9 19.05.20 2,379 52 8쪽
43 바이칼 2) +4 19.05.18 2,533 53 10쪽
42 바이칼 1) +13 19.05.17 2,664 65 11쪽
41 자치주 +7 19.05.15 2,748 86 7쪽
40 둥베이 4) +9 19.05.13 2,764 67 7쪽
39 둥베이 3) +14 19.05.09 2,698 76 7쪽
38 둥베이 2) +27 19.05.08 2,890 67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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