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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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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7,324

작성
19.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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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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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바이칼 2)

DUMMY

볼셰비즘 확산을 우려한 연합국은 하바롭스크의 제정 러시아 망명정부를 지지했고 그 지지는 옴스크의 백군지원으로 이어졌다.

깔끔한 군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국제연합군에 비해 산적처럼 지저분한 복장의 체코군단은 옴스크의 백군 사령관인 고상한 귀족 콜챠크의 기분을 잡치게 했다. 그래서 연합군은 예우 받은 반면에 떨거지 용병집단으로 취급된 체코군단에게는 불편한 잠자리에 부실한 보급이 돌아갔다.

시베리아 최강의 무력집단을 괄시한 그 어리석음은 수개월 후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자신이 체코군단에 체포되어 붉은 군대로 넘겨지는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터이니....


갈등은 연합군 진영 내부에도 싹트고 있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다른 나라들보다 현격히 많은 병력을 보낸 일본의 저의를 의심하고 있었다.

하바의 망명 정부를 장악해 괴뢰국을 세우려는 속셈 아닐까?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꿰뚫어 본 자못 예리한 통찰이었다. 연합국 외교관들 역시 개연성 있다며 끄덕였다. 그래서 옴스크 공방전에 나선 연합군은 소극적이었다. 연합군 참모부는 심지어 체코군단을 전투에서 열외시켜 버렸다. 보다 못한 일본군이

“왜 체코군단을 투입하지 않는가?” 항의하자

“체코군단을 콜챠크와 바꿀 수는 없다.”는 싸늘한 답변만 돌아왔다.

출병목적은 어디까지나 체코군단 구출이지 적백내전에 끼어들어 백군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원칙을 재확인한 셈이었다.


그 동안 옴스크의 백군이 상대해온 것은 혁명 초기의 허약한 적위대에 지나지 않았다. 파르티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중화기로 무장한 러시아 정규군과 막강 코사크 기병대로 편성된 백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당연히 백군은 승승장구했고 사령관 콜챠크에게는 불패의 제독이라는 찬사가 바쳐졌다. 그 명성에 혹한 귀족들과 정교 사제단, 지주들은 가족과 패물을 챙겨 옴스크로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망명정부가 있는 극동의 하바롭스크는 너무나도 멀었기에 막강 백군의 아성, 옴스크는 붉은 재앙의 피난처였고 믿음직한 노아의 방주였다. 덕분에 호황을 맞은 옴스크 시가지는 소비에트의 박해를 피해 몰려든 제정러시아 고위인사들로 성시를 이루며 연일 흥청대고 있었다.


그러나 10월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프룬제 장군의 붉은 군대가 옴스크를 포위한 것이다. 볼셰비키의 독보적 군사이론가 프룬제는 트로츠키와 함께 부실한 적위대를 재편해 붉은 군대를 창설한 핵심당원이었다. 그리고 1개월 남짓한 공방전 끝에 옴스크는 붉은 군대에 함락된다.

국제연합군 8만과 체코군단이 가세해 한층 막강해진 진용에도 불구하고 지휘체계 혼란이라는 자중지란을 맞은 백군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체코군단이 장악한 시베리아 열차덕분에 간신히 옴스크를 탈출한 백군 고위층과 연합군 수뇌부는 이르쿠츠크로 피신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패전책임이 거론되면서 연합군과의 관계가 사뭇 불편해진 콜챠크는 일본군의 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콜챠크에게는 일본군 역시 믿기 어려운 상대일 뿐이었다.

그래서 군자금인 황실금화를 실은 마차는 기차를 타지 못한 백여만 명의 피난민들, 그리고 25만의 장병들과 함께 한파가 밀어닥친 시베리아 벌판으로 떠났다.


또 하루의 지옥 같은 밤이 지났다.

굼벵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던 피난대열은 이윽고 바이칼호수 기슭에 이르렀다. 마차가 다녀도 끄떡없을 만큼 두텁게 얼어붙은 호수는 갈라진 구름 사이로 쏟아진 아침 햇살을 반사하며 눈부시게 반짝였다. 묵묵히 멈추어 선 사람들은 드넓게 펼쳐진 투명한 얼음벌판 너머로 두려움에 찬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삐에르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벌판들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었다. 그런데 왜 호수에는 쌓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호수에서 몰아친 사나운 광풍에 얼굴을 한 차례 얻어맞자 의문은 바로 풀렸다. 드센 바람이 쓸어낸 것이었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를 휩쓰는 바람이 맹렬한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큼지막한 눈더미에 연마된 빙판은 톱밥으로 연마한 뻬쩨르부르그의 무도회장처럼 매끄러웠다. 그 위를 걷기는 땅보다 배는 힘들 것이리라.


호수에 서린 냉기는 옴스크를 떠난 이래 겪어온 어떤 추위와도 달랐다. 그것은 이 세상의 기운이 아니었다. 악의에 찬 사신死神이 뿜어내는 독하고 음습한 저승의 냉기였다. 과연 이 속을 무사히 지나 호수를 건널 수 있을까? 서리로 하얘진 눈썹과 고드름이 주렁주렁한 수염으로 덮인 얼굴들에 절망과 두려움이 서서히 번져간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 지옥을 경험해온 그들에게는 이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자라나 있었다.

설마...!

지금까지 겪어온 그 지독한 고난보다 더 심한 고난이 설마 또 있으랴!


“아악...!!”

두려움에 찬 침묵을 깨뜨리며 새된 비명이 귀청을 울린다. 타티아나였다. 화들짝 놀란 삐에르가 썰매를 들여다보며 외쳤다.

“겁내지 마, 타냐. 나 여기 있어.”

“아으~ 흐흐흐 여보, 아기가... 아기가 지금 나오려고 해요.”

고통과 두려움에 지친 타티아나는 아이처럼 소리 내 울고 있었다.

드디어...!

내내 두려워하던 순간이 드디어 닥치고 말았다. 혹한 속에서 맨살을 드러내면 바로 동상.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삐에르는 절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사람들은 안타까운 표정만 지을 뿐 말을 아꼈다. 저만치 떨어져있는 짐마차 부대가 삐에르의 눈에 확 들어왔다. 나무궤짝을 잔뜩 실은 마차 호위대의 코사크 기병들은 출발 이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마차 주변에는 얼씬도 못하게 막아서곤 했다.


삐에르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불을 피워야 한다. 불을...! 저 궤짝들을 태운다면,“

삐에르는 코사크 기병에게 다가갔다.

“따와리쉬(동무), 6 연대의 삐에르 대위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아내가 산통을 겪고 있소이다. 어떻게 땔감을 좀 구할 수 없을까요...?”

눈만 껌벅이던 코사크 장교는 난처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애원하는 삐에르와 통곡하고 있는 타티아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코사크 지휘관 이반 대령이 뚜벅 말했다.

“막심, 짐마차 하나를 비워라. 땔감으로 해체한다.”

놀란 표정의 장교가 나서려하자 손을 들어 제지한 대령은 단호하게 말했다.

“책임은 내가 진다.”

지옥에서 부처를 만난들 이보다 더 반가울까?

“고맙습니다. 대령님”

감격한 삐에르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순식간에 해체된 짐마차는 땔감이 되어 타냐의 썰매 옆에 쌓였다.

“상자들로 바람막이 벽을 쌓아라.”

이반이 지시했다. 모닥불이 지펴지자 사람들은 먹이를 본 아귀 떼처럼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진통을 겪는 산모가 있어요. 제발 좀 물러서주세요.”

삐에르가 호소했지만 군중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병사들이 공포까지 쏘며 위협하자 겨우 물러섰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모닥불에 겨우 몸을 녹인 타티아나는 모피외투를 벗겨달라는 시늉을 했다. 이미 말조차 어려운 중태였다.

“출산을 도와주실 분이 계시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삐에르가 외치자 병사들에게 밀려났던 군중 속에서 주춤거리며 부인 두 명이 나섰다. 잠시나마 곁불을 쬘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그녀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돈다.

“철모에 눈을 담아 와라. 물을 끓여야 한다.”

막심이 코사크들에게 일렀다.


산통은 좀체 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며 추위에 시달린 탓이리라. 아니, 어쩌면 아기는 고통으로 가득 찬 이 세상으로 나오기 싫은 것인지도 모른다. 짐마차 한 대를 부순 땔감이 바닥날 때까지도 아기가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무 궤짝들을 땔 수는 없을까? 하지만 아마도 귀중한 무엇이 들어있겠지.’

절망에 빠진 삐에르는 대령을 힐끗 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반 대령도 차츰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윽고 신음하듯 명령했다.

“막심, 짐마차 한 대를 더 비우게.“

“대령님!”

지켜보던 부관 드미트리가 비명처럼 외쳤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대령님.”

이반은 부관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봐, 책임은 내가 진다 하지 않았나?”


그러나 차돌처럼 야무지게 생긴 드미트리는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형식상 그의 직책은 부관이지만 진짜 임무는 콜챠크의 심복장교들로 편성된 직할대를 인솔해 수송대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대령님, 저는 특명을 받았습니다. 이 임무에는 제국군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이반 대령은 허탈하게 웃었다.

“콜챠크의 특명... 이란 말이지? 수십만의 인민들을 얼어 죽게 한 콜챠크 각하의... 흐흐흐”

존칭조차 붙이지 않으며 자신의 우상인 콜챠크를 비아냥대자 격분한 부관은 대뜸 권총을 뽑아들었다.

“이반 대령, 사령관 콜챠크 각하의 이름으로 당신을 체포한다.”

기병총을 장전한 제국군 장교들이 순식간에 이반을 에워싸며 총구를 겨누었다. 동토 속의 가녀린 희망처럼 타오르던 작은 모닥불 주변은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귀청을 쩌렁 울리는 노성이 터져 나왔다.

“어떤 곰 투가리 새끼가 감히 우리 아타만을 체포한다는 거냐!”

덮개가 벗겨진 짐마차에서 모습을 드러낸 맥심 기관총이 드미트리와 장교들을 겨누고 있었다. 그 뒤로 5연발의 모신나강 소총을 꼬나든 막심과 코사크 대원들이 살기를 뿜으며 버티고 서 있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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