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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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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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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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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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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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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글자
8쪽

바이칼 3)

DUMMY

짐마차의 궤짝들은 짜르의 군자금인 로마노프 금화였다.

보안유지에만 급급했던 콜챠크는 정규군 대신에 코사크 병들을 수송대로 차출했다. 그러나 이는 코사크들의 기질에 무지한 해군제독 콜챠크의 치명적 실수였다. 코사크들은 주로 강을 낀 마을에 거주했기 때문에 강 이름 또는 강 근처 도시이름으로 부족을 구분한다. 우크라이나에는 자포로제 코사크들이 살았고 러시아에는 돈 코사크, 볼가 코사크, 예니세이 코사크, 시비르 코사크 등이 있었다.

인근 또는 같은 마을출신인 부대원들은 거의가 친인척 아니면 친구 사이기 마련. 따라서 유사시에는 조직보다 혈연이나 지연을 더 우선시하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부대장 이반을 대령이라는 계급대신 아타만(두목)이라고 불렀다. 이 또한 끈끈한 정으로 결속된 코사크식 문화의 표현이었다.

살아온 배경과 문화가 판이한 그들과 정규군의 귀족장교들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 게다가 옴스크 출발 이래 벌어진 참상을 목격한 코사크들의 마음은 이미 백군 수뇌부로부터 천리만리나 멀어져 있었다.


기관총을 겨누며 포위한 험악한 기세에 질린 직할대 장교들은 얼어붙었다. 그러나 드미트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항명은 군법회의 감이다. 너희는 돌아갈 곳마저 사라진다.”

막심은 가소롭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건 댁네들 사정이지. 백군이고 적군이고 우리한텐 다 그놈이 그놈이야. 의리없는 새끼들. 노는 꼬라지를 보니 콜챠크는 싹수가 노래. 인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식이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성과 함께 기관총좌의 병사가 썩은 짚단처럼 폭삭 무너졌다. 다음 순간 날쌔게 달려든 직할대 장교들이 쓰러진 병사를 밀쳐내고 기관총좌를 차지했다.

“수미노프!!”

몇몇 병사들이 절규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붙인 코사크들이 기관총좌의 장교를 겨누는 순간 맥심이 불을 토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댓 명의 병사들이 말굽에 채인 것처럼 펄쩍 튀어오르며 쓰러진다. 격분한 병사들의 대응사격.

그러나 엄폐물 하나 없는 벌판에 노출된 그들이 분당 8백발을 쏟아내는 기관총에 맞서기는 도저히 무리였다. 다급해진 코사크들이 짐마차 뒤로 몸을 숨기자 우박처럼 쏟아진 총탄이 짐마차의 궤짝들을 박살냈다. 삽시간에 산산조각이 된 나무파편들과 함께 반짝이는 노란 금속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다음 순간...

총성이 뚝 그치며 벌판에는 정적이 잦아들었다. 무더기로 쌓이고 사방으로 흩어진 금화들을 본 사람들은 입을 딱 벌렸다. 천천히 짐마차로 다가간 이반이 허리를 굽혀 금화 한 닢을 집어 들었다.

“흠, 로마노프 금화로군. 그러니까 이걸 옮기는 게 아기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지?”

이반은 드미트리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하지만 이건 군자금입니다. 반드시 이르쿠츠크에 전달해야 합니다.”

이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군자금이라... 그런 게 왜 필요하지? 지켜야 할 인민들은 이미 다 얼어 죽지 않았는가...!?”

무골호인처럼 늘 미소가 감돌던 이반 대령의 얼굴에 분노가 확 피어올랐다. 코사크 병사들은 숨을 죽였다. 돈이나 규칙 따위보다 인간과 의리를 내세워 온 아타만. 여간해서는 화내지 않는 자애로운 아타만, 하지만 일단 분노하면 악귀처럼 무섭다는 소문이었다.

“지금 우리한테는 말야,”

버럭 하는 것과 동시에 빼어든 이반의 권총에 기관총좌의 두 장교는 단번에 이마를 관통 당했다. 단 두 발로 두 명을 명중시켰다. 코사크 치고 명사수 아닌 자가 드물지만 지금 보인 사격술은 그 중에서도 빼어난 솜씨였다.


아타만의 단호한 태도에 기세가 오른 코사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눈치 빠른 병사 두 명이 잽싸게 뛰어나와 기관총좌를 차지했다.

“금화 따위보단 땔감이 훨씬 더 중요해.”

벌겋게 달아오른 이반이 울부짖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짐마차를 모두 부셔서 불을 피운다. 이의 있나?”

드미트리와 남은 직할대 장교들은 창백해졌다.

“대령님, 그럼 상자들은 어떻게 옮길...”

“옮기지 않는다.”

단호하게 잘랐다.

“필요한 놈이 와서 가져가라지.”


신이 난 코사크 병사들은 일제히 짐마차에 달려들었다. 이윽고 타티아나의 썰매를 중심으로 수많은 모닥불들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워낙 많은 모닥불을 피웠기 때문에 땔감은 이내 동이 나 버렸다.

사람들은 아쉬운 얼굴로 여기저기 흩어진 나무궤짝을 흘낏거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반의 얼굴에 심술궂은 미소가 슬며시 피어올랐다.

“어이, 자네들.”

불을 쬐던 코사크 병사들을 불렀다.

“저 상자들을 모닥불에 올려봐.”

“예에... ?”

다음 순간 드미트리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갔다.

“대령님, 제발..."

“이미 말했잖나? 금이 제아무리 있어봤자 지금은 땔감 한 조각보다도 못하다고.”

이반은 이죽거렸다.


포장도 뜯지 않은 묵직한 궤짝이 모닥불에 올려졌다. 두터운 나무로 짠 마른 궤짝은 이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시범을 보이자 사람들은 저마다 상자를 모닥불에 올려놓았다. 사방에서 불길이 기세를 올리면서 사람들 얼굴에도 서서히 화색이 돌아왔다.

이윽고 맨 처음 불에 올려진 상자에서 금화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불길 속에서 마법처럼 흘러내리는 반짝이는 흐름에 숱한 시선들이 쏠린다. 그리고 모든 모닥불에서 차례차례로 영롱한 황금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액체가 된 금을 머금은 벌건 숯들이 환상적인 황금색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그 비현실적 광경에 취한 사람들의 귓가로 갑자기 가냘픈 아기 울음이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이 든 사람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던 코사크들이 말했다.

“틀림없이 기막힌 녀석일 거야. 황금 모닥불에 둘러싸여 태어나다니.”


“타냐, 수고했어.”

삐에르는 땀에 젖은 타티아나의 창백한 이마에 키스했다.

“산모는 위독한 상태예요”

출산을 도운 아낙이 삐에르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그리고 이 추위 속에선 아기를 씻길 수 없어요. 잘 싸서 보온만 해주세요.”

모닥불들이 꺼지기도 전에 타냐는 숨을 거두었다. 가냘프던 목숨은 마지막 한 톨의 불씨까지 사른 하얀 재처럼 사그라졌다. 이 엄청난 추위 속에서도 아기를 낳고야만 끈질긴 모성에 감동한 코사크 병사들이 나서서 매장을 도왔다.


모닥불에 녹은 대지에 겨우 타냐를 묻은 삐에르는 얼어붙은 호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신이 지배하는 저승의 입구마냥 불길해보이는 드넓은 얼음 벌판.

‘얼음 호수의 저 음습한 냉기를 아기가 어찌 견디겠는가? 힘들더라도 바이칼을 우회하자.’

타냐를 잃은 마당에 아기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결국 아기를 살린 것은 삐에르의 그 동물적 본능이었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한 줌씩의 용기를 되찾은 사람들은 지름길이라는 말에 혹해 얼음호수로 들어섰다. 호면은 반짝반짝 빛나고 두터운 얼음은 마차도 견딜 만큼 단단하다. 건너편 호안까지는 20km 정도.


그러나 얼음 위를 조심조심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머리가 빠직 쪼개질 것 같은 지독한 한파가 덮쳐왔다. 이어서 눈보라 섞인 광풍이 얼음 벌을 맹습하면서 얼음지옥의 문이 열렸다. 영하 69도...!

그건 두터운 모피를 제아무리 껴입어도 당할 수 없는 저승의 냉기였다.

얼음 호수를 미처 반도 건너기 전에 몸이 굳어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멈추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에 떠밀려 빙판에 쓰러진 사람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이윽고 얼음 벌판 위의 모든 것이 얼어붙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정한 눈 폭풍만이 끝없이 이어진 주검 위를 떠돌며 천지간을 휩쓸고 있었다. 이미 겪은 험난한 고통보다 더 심한 고난이 설마 있으랴 믿었었건만 그 설마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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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황포 군관학교 2) +1 19.06.17 1,118 49 11쪽
53 황포 군관학교 1) 19.06.12 1,346 45 6쪽
52 천하대란 시대 7) +3 19.06.10 1,645 42 9쪽
51 천하대란 시대 6) +3 19.06.08 1,515 42 7쪽
50 천하대란 시대 5) +3 19.06.07 1,531 48 8쪽
49 천하대란 시대 4) +1 19.06.05 1,678 56 9쪽
48 천하대란 시대 3) 19.06.03 1,908 46 9쪽
47 천하대란 시대 2) +7 19.05.25 2,309 56 7쪽
46 천하대란 시대 1) +10 19.05.24 2,483 55 14쪽
45 바이칼 4) +5 19.05.22 2,201 44 11쪽
» 바이칼 3) +9 19.05.20 2,379 52 8쪽
43 바이칼 2) +4 19.05.18 2,532 53 10쪽
42 바이칼 1) +13 19.05.17 2,664 65 11쪽
41 자치주 +7 19.05.15 2,748 86 7쪽
40 둥베이 4) +9 19.05.13 2,764 67 7쪽
39 둥베이 3) +14 19.05.09 2,698 76 7쪽
38 둥베이 2) +27 19.05.08 2,890 67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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