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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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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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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6.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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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
9쪽

천하대란 시대 3)

DUMMY

“원세개한테 대총통을 넘긴 바로 그 해에 쑨원이 봉천에 나타났었지. 식당차가 두개나 달린 긴 열차를 타고 말이야. 북경정부의 철도 관리관이라는 명함을 들고... 도덕 선생 같은 작자와 우리 마마님이 마주 앉으니 딱 여학교 교무실 분위기였어. ”

동아는 낄낄댔다.

“대련 철도연구소를 보러왔었는데 대륙철도에 퐁당 빠진 눈치였어. 혁명가란 아무래도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족속들인가 봐.”

공아가 끼어들었다.

“그 사람 별명이 원래 손 대포야. 소문난 뻥쟁이지.”

“연구소에 도착하니까 백러시아와 일본 기술자들 그리고 간부들이 도열해 신해혁명의 영웅을 영접했지. 그 자리에서 본인이 구상했다는 철도 지도를 척 하니 꺼내는데 연구원들이 모두 벌렁 넘어갔어.”

동아는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각 성 주도를 굵은 선으로 연결하고 가는 선으로 지선까지 그려 놓았는데 죄다 직선으로 이어붙인 거야. 산맥이나 강 따위는 싹 무시하고... 실무에는 아예 천치였지.”

“근데도 사람들은 국부라고 떠받들어. 그게 바로 정치인의 힘인가?”


“연구소는 대륙철도 코스 후보지를 정기적으로 답사한대. 나도 따라가 보고 싶다아~.”

“그거... 만만찮을 걸. 거의 오지탐험 수준이라던데.”

“우릴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야? 이래 뵈도 그 험한 궁중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라고...”

왕아가 발끈 한다.

철도 연구소에도 당연히 군통의 눈과 귀는 있었다. 그들의 보고로는 답사 여행이 위험은 하지만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뭐, 왕아도 뭔가 들은 게 있으니 하는 소리겠지.’

회식으로 이어진 모임은 그렇게 잡담으로 끝났다. 그러나 나는 답사여행에 대한 그들의 깊은 관심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정치적 역량대신 치밀한 성격을 타고난 니콜라이 2세는 지난 10여 년간 쪼그라든 후의 아라사를 연구해왔다. 오호츠크 해와 연해주가 있으니 식량은 그럭저럭 해결되리라. 그러나 함대를 포함한 군비유지에 소요되는 자금은 자원개발 따위의 1차 산업만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규모였다.

19세기 말에 산업혁명을 완수한 아라사에는 면공업, 석탄, 철강 산업이 발전했다. 당대의 첨단을 달리는 철도산업은 기관차, 차량, 레일까지 생산했다. 철강산업은 소총과 대포를 만드는 수준. 방적 · 직포 · 날염의 일관 제조시스템을 갖추면서 기계화도 진전됐다.

니콜라이 2세는 이 모든 산업의 연구 인력과 핵심 생산라인을 블라디 조선소와 하바 공단으로 이전했다. 백러시아가 둥베이의 공업개발을 지원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륙철도 참여를 천명한 일본은 대련에 철도연구원을 파견하는 동시에 군대도 주둔시켰다. 대련은 백러시아의 태평양 함대가 있는 여순항과 인접지역이라 일본군과 백러시아 해군은 시가지에서 수시로 마주치기 마련. 귀족 출신인 백군 장교들과 덩치 큰 수병들은 왜소한 체격의 일본군을 보면 히죽 대며 깔보는 눈치를 드러내곤 했다.

“오이, 야뽄스키.”

“꼬맹이들, 안녕.”

대화혼大和魂(야마도 다마시)을 내세우며 목을 빳빳이 세우는 일본군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다. 그래서 두 나라 장병들이 뒤섞이면 늘 팽팽한 긴장상태가 조성되곤 했다.


한편 연구소의 일본인들은 빠르게 업무에 동화되고 있었다. 성장급 대우인 연구소장은 왕년의 무비학당 학장 짜이펑. 40대 중반의 그는 예나 이제나 다름없는 책벌레였다. 황족으로 평생을 보낸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정계의 마당발이었고 민족적 편견이나 정치색이 없어 다국적 연구소를 이끌기에 적역이라는 평가였다.

“동서 교류의 장”

초대 소장 짜이펑이 정한 표어였다. 다국적 조직, 연구소와 대륙 철도의 이미지를 아우르는 표현이라 연구원은 물론 3국 정부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콧대 높은 백러시아인도 그의 인품과 학식에는 경의를 표했고 귀족에 약한 일본인들은 황족이라는 신분을 존중했다.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그가 이룬 최대의 성과는 각국의 특성을 감안한 분업체제 정착이었다.

철도 선진국 백러시아는 기관차와 철도기술 분야, 자료조사와 정리에 장기가 있는 일본 측은 대륙철도 통과지역의 여건조사 식으로 분업이 이루어졌다. 청나라는 철도운용 관리 담당. 구체적으로는;

『1) 대륙철도 운용체계 정립.

2) 통과지역 국가들과 철도 운영주체 간의 이해관계 조율』이라는 업무였다.

이는 운송수익의 배분은 물론 특정화물을 거부하는 내용도 포함될 수 있는 민감한 업무였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많은 한문처럼 한계가 애매한 업무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륙철도 차단이 해상봉쇄 수준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까지는 모르던 시절이었기에 누구도 이의는 달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발안자인 청나라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를 맡는 게 타당하다는 암묵적 합의하에 업무분장은 무난히 이루어졌다.


나와 작림은 고륜공주 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보고할 게 많은 탓도 있지만 독신인 센위에게는 함께 식사도 하는 말벗이 필요해서였다. 그녀가 여태 결혼하지 않은 데는 서 태후의 영향이 컸다. 청상과부로 평생을 보낸 태후는 주변의 누군가가 다정한 부부생활을 하면 병적으로 싫어했다. 아들들(광서제, 동치제)의 부부생활이 원만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일본 연구원들은 어때? 도움이 된데?”

“아무래도 연륜이 있으니까 아라사나 중국 연구원들은 선배 대접을 받지. 하지만 꼼꼼하고 정밀한 면에서는 일본인들이 훨씬 뛰어나다는 평이야.”


치밀한 일본인들은 대륙 철도의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고 그 중에는 관광도 있었다. 대륙철도망이 왕년의 유목제국 세력권과 일치했기 때문에 예상 통과지역은 몽골리안 벨트로 불렸다.

일본 측 보고서는 터키에서 서태평양 연안으로 이어지는 몽골리안 벨트는 관광자원의 보고라 했다.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영욕이 깃든 동서양의 교차로 터키, 중앙 아시아와 하서 회랑의 실크로드로 연결되고 만리장성 북녁의 초원과 사막 그리고 툰드라를 지나 돈황석굴과 오르도스로 이어진다.

둥베이와 연해주까지 여건만 정비되면 성지순례 못지않은 인기코스가 될 것이라 했다. 관광은 역사의 숨결을 따라 움직인다. 대륙철도는 그에 부응하는 로맨틱한 꿈의 노선이었다.


일본군과 백러시아 해군의 갈등을 예의 주시하던 군통의 단말에 엉뚱히게도 푸순 탄광이 걸려 들었다. 고변한 조선청년의 이름은 유열. 둥베이의 조선인들은 신분을 숨기곤 한다. 험한 세월을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나름의 지혜였다. 그러니 유열이란 이름 역시 본명은 아닐 터.

그는 푸순 탄광의 십장이라 했다. 탄광 노무감독에는 낭인 출신의 일본인이 많았고 그들은 작업능률을 올릴 욕심으로 중국과 조선인 노무자들을 경쟁시켰는데 방법이 졸렬했다. 하필이면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바람에 불상사가 터진 것이다.

짱꼴라는 쭝꿔런中國人의 일본식 발음이지만 멸시하는 비칭이기도 했다. 감독들은 중국인 노무자 앞에선 조선인을 센징 또는 요보 놈으로 부르고 조선인들 앞에서는 중국 노무자를 짱골라로 불렀다. 실적이 부진하면 더러운 짱꼴라보다도 못하느냐, 또는 게을러빠진 센징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자극했다.

조센징은 조선인朝鮮人의 일본어일 뿐이지만 식민지인에 대한 우월감이 깔린 뉘앙스라 욕으로 들린다. 그건 니그로와 비슷한 경우였다. 흑인들끼리 Negro, Nigger 라면 '임마' 정도의 친근한 호칭인 반면 다른 인종이 쓰면 큰 욕이 된다. 막상 조선인을 욕하는 일본말은 여보를 희화화한 요보 또는 요보놈이었다.


감독들 말투를 배운 노무자들은 서로를 짱꼴라 또는 센징이라 불렀다. 별 생각없이 따라하는 말에 불과했지만 듣는 상대방은 불쾌해진다. 사실 노무자들 간의 욕은 일상어다.그러나 민족감정을 건드리는 비칭은 일상적 욕설과는 달리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그렇게 불쾌감이 쌓여가면서 노무자들은 서로를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 감독에 맞서 뭉치기는커녕 서로를 흘기며 증오했다. 민족감정을 이용한 교활한 노무 관리가 초래한 결과였다.


노무자 채용은 사무실 소관이지만 현장 책임자는 십장과 현장 감독이다. 제 아무리 충원해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노무자들의 이탈이 심하면 사무실도 곤란해진다. 탄광 노무자들은 선금채용 방식이다. 선금을 받았기에 약정기간 이전에 이탈하면 회사측은 경찰에 의뢰해 그들을 수배했다. 그러나 막상 잡히는 이탈자들은 경찰보다 동료의 밀고로 체포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금을 노린 노무자들은 상대측 이탈자를 다투어 밀고했다. 안 그래도 불편하던 중국인과 조선인들 사이의 골은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 노무자들이 조선인 밀고자 한 명을 린치한 사건이 벌어졌다. 밤새 폭행당해 중태에 빠진 노무자는 진료소에 입원했고 조선인들은 폭행범을 내 놓으라 중국인 노무자들에게 요구했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일주일이나 딴청을 부려서...

부족한 글을 읽고 조언해주신 독자님들께 사죄드립니다.

앞으로는 불상사에 대비해 비축분을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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