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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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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7,324

작성
19.05.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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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바이칼 4)

DUMMY

옴스크를 탈출한 피난민 백만 명이 동사했다! 그나마 바이칼까지 왔던 마지막 20여만 명 역시 호수에서 죽었다!


이 끔찍한 소식이 이르쿠츠크를 강타한 것은 바이칼의 참변으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충격으로 넋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백군과 연합군 고위관리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체코군단의 청년장교가 뚜벅 말했다.

“우선 생존자를 구출할 수색대부터 보내야합니다.”

옳은 말이었다. 콜챠크를 비롯한 수뇌부들 역시 끄덕였다. 그러나 콜챠크의 신경은 온통 다른 문제에 쏠려 있었다.

‘피난민들과 함께 떠난 황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만 있으면 재기할 수도...‘

황실 금화의 규모는 그만큼 엄청났다. 그러나 그 존재를 아는 극소수의 측근 장교들은 호송대로 차출한 코사크부대와 함께 떠났다.

'만일 연합군 측이 먼저 발견한다면...?'

황금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했다.


콜챠크는 체코군단의 청년 장교를 은밀히 자기 방으로 불렀다.

“관등 성명은?”

“체코 군단 참모장 라둘라 가이다 대령입니다.”

절도 있게 경례를 붙인 장교가 말했다.

“가이다 대령, 수색대는 자네가 지휘할 예정인가?”

“그렇습니다만...?”

의아한 시선의 가이다에게 콜챠크는 은근한 표정을 지었다.

“조국 독립을 열망하는 체코 군단을 평소부터 난 높이 평가해왔다네. 가이다 대령. 돌아가 조국의 적과 싸우려면 군자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만...?”


어리둥절한 표정의 가이다에게 콜챠크는 거액의 군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황실금화를 회수해오는 조건으로... 피난민 구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가이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저것이 백군의 진면목이고 정체인가?’

아직 순수한 28살의 청년, 가이다의 눈에 비친 콜챠크는 빵을 요구하는 굶주린 군중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는 인간백정 짜르의 잔혹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르쿠츠크 시내의 마차와 짐수레들을 눈에 띄는 대로 모두 징발한 가이다는 수색대를 편성해 바이칼로 떠났다. 두텁게 얼어붙은 바이칼의 빙판은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경험 많은 마차꾼들은 말굽에 신길 짚신을 준비하고 있었고 자신들 역시 짚으로 엮은 덧신을 신고 있었다. 허둥대며 고역을 치르는 것은 가이다의 체코병사들 뿐이었다.

호수로 들어서자마자 징을 박은 굽이 미끄러진 말들은 오뉴월 개구리처럼 네 활개를 쫙 펴며 빙판에 퍼져버렸다. 마차꾼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말 짚신 없이는 호수를 건너지 못합네다.”

결국 말을 기슭에 남겨두고 걸어서 얼음벌판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윽고 호수 한복판쯤에 이르자 동사자들의 주검이 드문드문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은 편 기슭으로 다가가면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하나 같이 굶주림과 고통을 호소하는 애절한 표정의 주검들.

처음에는 활기 있게 걸으며 두런두런 잡담도 나누던 수색대 장병들은 차츰 말을 잃어갔다. 그리고 서서히 동작이 굼떠가며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빙판 위를 떠도는 바람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에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옴스크 종자들은 인간도 아냐.”

넋을 놓고 아이들과 부녀자까지 섞인 주검들을 바라보던 소위 한 명이 침묵을 깨뜨리며 내뱉았다. 그 말은 이 순간의 수색대 장병들 모두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그건 가이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 믿고 따라온 인민들은 이 지경이 되었는데 뭐? 황금...!’


“혹시 모른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런지, 한사람 한 사람 철저히 살피도록.”

그러나 가이다 스스로도 이미 그 명령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굶주리고 지친 인간이 이 얼음지옥 속에서 어찌 살아남는단 말인가?

수색의 초점은 차츰 짐마차 쪽으로 모아졌다. 기슭으로 다가가던 수색대 병사들은 빙판 여기저기에 흩어진 노란 금속쪼가리들을 발견했다.

“대령님, 금화들인데요. 진짜 같습니다”

시커먼 이빨로 깨물어 본 병사가 흥분해서 말했다. 가이다는 갸우뚱 했다.

‘왜 이런 곳에 금화가..? 혹시 이게 바로 콜챠크가 말하던 황실금화가 아닐까?’

그러나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였다. 궤짝에 담겨있어야 할 금화가 왜 빙판에 흩어져 있단 말인가?


금화가 발견된 곳 주변의 주검은 모두 코사크 병사들이었다. 그들 옆에는 네 굽을 옴츠리고 죽은 말들이 있었다. 안장의 혁낭과 병사들 외투 주머니는 하나같이 금화로 불룩했다. 가이다는 끄덕였다.

‘말을 잃은 그들은 금화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웠을 터. 몸을 가볍게 하려고 주머니를 비웠겠지.’

그러나 욕심을 완전히 비우지 못한 그들은 끝내 금화의 무게에 짓눌리며 죽어갔다. 금화를 지닌 것은 코사크 병사들뿐이었다. 그들의 말과 외투에서 금화를 찾아낸 병사들은 민간인 동사자들 품에서도 지갑과 귀금속을 찾아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병사들 역시 동사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주검들의 옷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얼음지옥 속에는 또 다른 모습의 지옥이 겹쳐지고 있었다.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놀라 돌아본 병사들은 격분한 가이다 대령이 권총을 빼든 모습을 보았다.

“동작 그만!! ”

버럭 소리 지른 가이다는 분노로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잠시 뜸을 들였다.

“민간인을 그냥 둬라. 우린 비적이 아니다. 죽은 사람들을 욕보이지 말라.”

움찔한 병사들은 뒤지던 손길을 멈추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아쉬운 표정들. 오랫동안 병사들과 함께 해온 가이다에게는 그들의 심리가 유리알처럼 빤히 들여다보였다. 대부분이 가난한 농민들의 자식인 그들이 눈앞에 버려진 재물을 탐내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하지만 이건 지나쳤다. ‘얼어죽은 불쌍한 시체를 뒤지다니...!’ 이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불경이었다.

“좋다. 다 털어놓겠다. 오늘의 수색목적은 생존자만이 아니다. 제국정부의 금화도 찾는 중이다. 상황으로 보아 근처 어딘가에서 곧 발견될 것이다.”


말을 끊은 가이다는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동사자들을 동정하며 백군의 만행에 분개하던 순박한 얼굴들이 지금은 물욕에 사로 잡혀 있었다.

‘아, 불쌍한 녀석들...!’

고국에 돌아가 본들 기다리는 것은 움막 속의 가난에 찌든 가족뿐일 것이다. 가이다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하지만... 봐라! 믿고 따라온 인민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들에게 금화를 갖다 바쳐야하는가? 아니다!! 난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다. 차라리 우리가 갖자. 공평하게 나누어 갖자. 천 상자도 넘는 금화다. 그러니 그만둬라. 더 이상 저 불쌍한 주검들을 모독하지 마라. 나, 라둘라 가이다의 명예를 걸고 이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


어리둥절하던 병사들은 이윽고 가이다의 말을 이해했다. 동시에 자신들이 저지르려 했던 행위가 얼마나 불경스럽고 파렴치한 짓인지도 깨달았다.

“우우~라아, 우리 참모장님, 우라”

병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미 찾아낸 금화만 해도 엄청난 분량이다. 그런데 무려 천 상자라니...! 뒤지려던 주검들에서 찾아낼 재물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많지 않겠는가?

부정한 재물에 잠시 눈이 멀었던 병사들은 차츰 가이다의 분노를 이해했고 이윽고 함께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이건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냐.”

“맞아, 콜챠크는 몇 번 죽어도 이 죄를 용서받기 어려워.”

그들의 분노는 차츰 콜챠크라는 구체적인 목표로 모아지고 있었다.

“그 자식을 잡아서 볼셰비키에게 넘겨버리자.”

“옳소”

“옳소”

“꼭 그렇게 하자”

수색현장은 순식간에 볼셰비키식의 인민재판장으로 변해갔다.


병사들은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호수기슭에 도착한 선발대 쪽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오, 세상에... !”

“이럴 수가...!

호수기슭의 벌판에는 수십 개의 모닥불 흔적이 있었다. 그 흔적들마다 하나씩 자리 잡은 큼직한 금속덩어리들이 햇살을 반사하며 눈부신 노란색으로 번쩍이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뒤이어 도착한 가이다와 병사들도 그 장엄한 장면 앞에서 말을 잃었다.

저게 모두 금이란 말인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모닥불 흔적들의 중심쯤에 개머리판에 십자가를 새긴 모신나강 소총이 거꾸로 꽂혀있었다. 그리고 또 한 자루에는 타티아나 로스토바라고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삐에르의 정성이었다.


돌아온 수색대는 곧바로 일본군 특무대를 습격했다. 본대는 진즉에 철수하고 소수병력만 남은 일본군 측은 수천 명의 체코군단 병력이 밀고 들어오자 속수무책이었다. 콜챠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를 순순히 넘겨준 배경에는 백만 명 넘는 피난민들을 얼어 죽게 만든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연합군 수뇌부의 암묵적인 합의가 깔려있었다.

다음 날부터 체코군단과 프룬제의 붉은 군대사이로 전령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콜챠크와 황금 일부를 넘기는 조건으로 체코군단의 블라디 이동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는 협상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르쿠츠크 사람들은 얼음을 녹여 쓴다. 허드레 물은 집근처 눈이나 얼음을 쓰지만 식수만큼은 맑은 얼음이라야 했다. 그래서 얼어붙은 앙가라 강의 얼음을 잘라 집으로 나르는 일은 이르쿠츠크 남정네들의 중요한 일과였다.


얼음 수레를 밀고 가던 최 고려가 비틀거리며 썰매를 끄는 빈사지경의 장교와 조우한 것은 시가지가 붉게 물드는 황혼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 사람이라면 누구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이는 상부상조하며 살아간 19c의 데카브리스트들이 남긴 명예로운 전통이었다.


수레를 팽개치고 황급히 부축해 집안으로 들였지만 탈진한 사내는 이내 숨을 거두었다. 타티아나 로스토바와 삐에르라는 아기 부모의 이름만 남긴 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 썰매를 끌고 온 지친 생명은 기름이 다한 심지처럼 스르르 꺼져갔다. 이지적이지만 슬픈 눈매의 사내는 수염에 맺힌 고드름이 다 녹기도 전에 희미한 미소를 흘리며 눈을 감았다.

썰매 위에 쌓인 모피더미 속에서 아직 피조차 씻지 못한 갓난아기를 발견한 최 고려의 아내는 기절할 듯 놀랐다. 서둘러 물을 데운 그녀와 최 고려는 아기를 조심스레 씻겼다. 아기를 위해 생명을 바친 젊은 아비의 시신 옆에서 치르는 첫 목욕은 성스러운 세례의식처럼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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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49 파아란공
    작성일
    19.05.22 07:54
    No. 1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트럭9호기
    작성일
    19.05.22 08:23
    No. 2

    금 주서가는 걸로 갈등하는 군관의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음 ㅋㅋ 미군은 일본군 잡아죽일때 이빨금인 치금 뽑아가는 재미가 있었다죠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솔리온
    작성일
    19.05.22 14:05
    No. 3

    주인공이 시간지나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나 좀 보려고 버티고 있는데 보면서도 계속 내가 뭘보고있는지 모르겠다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59 破雷
    작성일
    19.05.22 18:25
    No. 4

    바이칼파트도 4화째인데 슬슬 우째 시간도약이 이뤄졌는지 설명이 나와야하지 않겠습니가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39 발주나
    작성일
    19.05.22 18:44
    No. 5

    20년 가까이 시간 점프후 아직까지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고 왜 나오는지도 모르겠는 적백내전 이야기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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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 상해. 봉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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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황포 군관학교 4 (완결) +14 19.06.24 1,239 29 5쪽
55 황포 군관학교 3) +2 19.06.19 1,054 33 6쪽
54 황포 군관학교 2) +1 19.06.17 1,120 49 11쪽
53 황포 군관학교 1) 19.06.12 1,346 45 6쪽
52 천하대란 시대 7) +3 19.06.10 1,645 42 9쪽
51 천하대란 시대 6) +3 19.06.08 1,517 42 7쪽
50 천하대란 시대 5) +3 19.06.07 1,532 48 8쪽
49 천하대란 시대 4) +1 19.06.05 1,678 56 9쪽
48 천하대란 시대 3) 19.06.03 1,910 46 9쪽
47 천하대란 시대 2) +7 19.05.25 2,312 56 7쪽
46 천하대란 시대 1) +10 19.05.24 2,483 55 14쪽
» 바이칼 4) +5 19.05.22 2,202 44 11쪽
44 바이칼 3) +9 19.05.20 2,380 52 8쪽
43 바이칼 2) +4 19.05.18 2,534 53 10쪽
42 바이칼 1) +13 19.05.17 2,665 65 11쪽
41 자치주 +7 19.05.15 2,750 86 7쪽
40 둥베이 4) +9 19.05.13 2,765 67 7쪽
39 둥베이 3) +14 19.05.09 2,699 76 7쪽
38 둥베이 2) +27 19.05.08 2,891 67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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