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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용사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영주님이 달라졌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동네용사
작품등록일 :
2020.03.25 05:18
최근연재일 :
2020.04.09 03:11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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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5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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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1

DUMMY

중원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묘악산 선녀봉


매년 매화가 만개할 시기가 되면 10리 밖까지 향긋한 매화향이 퍼진다하여 매화봉, 또는 화괴봉으로도 불리는 곳이다.


‘헉···헉··· 젠장···’


한창 만개한 매화나무 틈 사이로 앳된 얼굴의 사내가 고개를 쑥 내밀었다.


‘이 새끼들이 대체 여기는 어떻게 알아낸거야?’


사내의 은신처가 있는 묘악산 선녀봉은 아름다운 절경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사람들은 선녀봉은 물론 선녀봉이 있는 거대한 묘악산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을 은신처로 삼았는데···


‘나쁜 새끼들 내가 필요할 땐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 하더니만 이제 와서 나를 죽이려 들어?’


사내는 멀리 불타고있는 자신의 은거지를 보았다.


‘개새끼들···’


욕지거리가 튀어나왔지만 지금은 그 울분을 토해낼 때가 아니다.


“찾아라! 놈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불타는 은거지 앞, 태극무늬가 수 놓인 흰 도포를 입은 노인이 긴 수염을 쓸어 넘기며 외치는 것이 보였다.


‘장무기 이 개 같은 놈, 으득’


수하들을 재촉하는 무당파의 장문인 태을진인 장무기 뒤로 이번엔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러싸고 얼굴엔 도깨비형상의 면갑을 쓴 자

가 불쑥 튀어나왔다.


“도사님, 반대쪽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쪽은 어떻습니까?”


“아 모 총대장님 오셨군요, 이거 참··· 무공도 익히지 못하는 그 녀석이 이렇게 빨리 도망 갈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으음··· 그 천방지축인 녀석 하나 때문에 너무 시간을 오래 지체했습니다, 대신들의 인내심도 이제는 한계입니다···’


‘뭐야? 모용추 저 고자새끼도 한패야?’


이전에는 함께 술잔도 기울이며 형제처럼 지냈던, 황제의 직속부대 동창의 총대장인 모용추까지 등장했다.


믿었던 자들의 배신은 모용추가 끝이 아니었다.


“야 장무기, 모용추! 거기서 뭐해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무흔 그 쥐새끼 빨리 찾아!”


동네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인자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사도회 회주라는 무시무시한 직함을 가진, 흑선패 당갈이 거대한 대도를 어깨에 걸치고 욕설을 내뱉었다.


‘당갈 저 양아지 대장새끼, 그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냐, 니놈은 꼭 올 줄 알았다 개잡놈아’


그 뒤로,

남궁세가 가주 남궁명천

소림사 주지 진각

장강수로채 채주 추태룡

등등


‘이 개새끼들이 다 한 패였어 찢어죽일 놈들··· 으드득’


대충 10명이 넘어가는 그들은, 1년전 마교의 대침공으로부터 무림을 지켜낸 영웅들로, 가진바 무공의 고강함은 당연하고, 한명 한명이 대문파의 수장들이다.


“아직도 못 찾은게요? 참나, 무흔 이 친구 정말 사고치는것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현 무림세력의 전부라고 할만한 인물들이 무흔이라고 불리는 약관도 지나지 않은 어린 청년을 찾아 거의 보름 동안 동분서주하고있지만, 이 사고뭉치는 등에 날개라도 달렸는지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그러게 말이오··· 우리가 그 녀석을 너무 무시했나 보구려, 아무리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고는 하나 시천마동이라고 불리는 자인 것을···”


무흔을 찾아 헤메는 자들은 모두 무흔을 알고 있는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모인 무림계의 거목들과 함께 마교를 때려부신 영웅 중 한명이 바로 이 어린 청년 무흔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래전 실전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시체로 하늘을 뒤덮는다는 시천비급의 계승자로 수많은 강시들을 다루어 마교의 마인들을 쓰러뜨린자다.


‘젠장 내 강시부대는 이제 다 전멸했고··· 저 괴물 같은 영감들을 이길수도 없으니 이대로 조용히 도망가자’


그 무시무시하다는 시천비급의 계승자인 무흔이지만, 무슨 조화인지 무공에 대한 재능은 일천했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좋았다.


온몸의 혈맥이 꽉 막혀있어 무림최고의 고수들에게 배워가면서 열심히 무공 수련을 했음에도, 삼류무인은 커녕 일반인과 거의 차이가 없는 내공 밖에 없는 몸이었다.


그런 몸으로 손가락 하나로 거대한 바위를 박살낼 수 있는 저 무림계의 거목들을 상대하기란 불가능


그렇기 때문에 대문파의 수장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있는 지금이,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한 청년에 의해 산산히 부서졌다.


“찾았다! 시천마동을 찾았다!”


‘젠장’


가슴에 매화를 수놓은 도복을 입은 젊은이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잘했다”


“어디냐?!”


“네 이놈 무흔아!! 크하하하하 드디어 찾아냈구나 이 미꾸라지 같은 놈!!”


매화검수의 외침에 모여들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노인들의 고개가 훽 돌아갔고, 흑선패 당갈이 광소를 터트리며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오지마 이 호로새끼야! 가라고 임마!”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다가오는 당갈의 광소가 들리자, 무흔이 다급히 멸세신공의 보법을 사용했다.


휘적휘적···


150년만에 무림에 등장한 신공이라고 불리는 멸세신공이지만, 무흔의 몸을 통해 펼쳐진 보법은 형편없었다.


“크하하하 그게 니놈이 가져간 멸세신공이더냐? 크크큭, 그러게 내 말하지 않았느냐, 니놈은 무공을 익힐 몸이 아니라고, 그 대단한 멸세신공이라도 익힌 자가 이리 형편없으니··· 크크큭”


무흔의 발로는 한참을 뛰어야 할 그 먼 거리를 한달음에 날아서 따라붙은 당갈은, 무흔의 바로 뒤에서 보법이라고 주장하는 무흔의 율동을 보며 비웃었다.


“웃지마 이 새끼야! 내가 이 멸세신공만 제대로 익히면 니 놈 따위는 그냥 한주먹거리도 안돼 알아 임마?!”


마교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각 문파의 장들, 그리고 혁혁한 공로를 세운 자들은 모두 하나씩 그 전리품을 챙겨갔다.


당연하게도 무시무시한 강시부대를 앞세워 수많은 마인들을 처치한 공로를 인정받은 무흔이 챙긴것은 바로 멸세신공, 과거 무림 전체를 마교의 이름아래 통일시켰던 최강이자 최악의 천마 멸세천마의 정수가 담긴 비급이다.


“쯧쯧···, 아니 그러니까 임마, 넌 무공을 익힐 수 있는 몸이 아니라니까?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먹어?”


여전히 휘적대는 무흔을 안타까운 눈으로 보던 당갈이 말했다.


“닥쳐 너 이 나쁜새끼, 그딴 책쪼가리 하나 탐나서 여기까지 나를 죽이려 왔지? 이 의리없는 새끼야!”


“허허허허 거참 이 당돌한 애새끼, 내 증손주같아서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르네?! 야 너 몇살이야 임마? 내 반의 반도 안 살은 새끼가 말하는 꼬라지 보게? 야 임마 아무렴 내가 그딴 종이쪼가리 하나 뺏으려고 왔겠냐? 니가 한 짓을 봐 이새끼야!”


“뭐? 내가 뭐?”


당갈의 외침에 무흔도 지지않고 받아쳤다.


“뭐? 니가 뭐?? 참나··· 니가 이 흑선패 당갈의 이름을 대고 우리 사도회에서 뺏어간 돈이 금자 5000냥이 넘고, 니가 패 놓은 내 밑에 애들이 셀 수도 없다 이놈아! 게다가 내가 정성스레 가꾼 장원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으득!”


당갈은 그동안 쌓인 울분을 모두 토해내듯이 이를 갈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익! 이 쫌생이 같은 놈아, 아니 친구끼리 돈 좀 빌려줄 수도 있지, 겨우 그거 가지고 이렇게 죽일라고 들어? 너 돈도 많잖아 임마! 그리고 니 밑에 있는 애들이 힘없는 사람들 쥐어 패고 다니니까 혼나는 거지, 니가 똑바로 관리해야 할거 아니야 이 나쁜 놈아!!”


“하··· 얌마! 겨우 내가 돈 몇푼 뜯기고 애들 좀 줄은 거 가지고 이러는 줄 알아? 니가 한 짓은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까 얌전히 들어봐 이제 시작이니까”


당갈의 울분섞인 하소연은 저 멀리서 천천히 걸어오던 다른 자들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내가 정말 조금씩 아끼고 아껴서 한잔씩 밖에 안 마신 그 귀한 설향주를 니놈이··· 그리고··· 그리고···”


“아미타불··· 당갈 그쯤 하시게”


듣다보니 끝이 없을 것 같다고 느꼈는지 소림사의 주지 진각이 막아섰다.


“야 진각 가만있어봐, 아직 반도 못 왔거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쌓인 것이 많네, 다 말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야”


“크윽, 이 미친놈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사고를 이리 많이 친 거야!”


이제 막 열댓살이나 되었을까?


당갈이나, 진각, 태을진인 등 무림에서 뼈가 굵은 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무흔은 정말 아닌밤중에 홍두깨 같은 녀석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증손자만한 녀석이 갑자기 나타나서는 정,사를 가리지않고 지 맘에 들지않는 문파란 문파는 죄다 박살을 내놓고 다녔으니 말이다.


‘그놈들은 멸문 당해도 싼 놈들이긴 했지···’


협박, 갈취, 인신매매등은 물론이고 그 외에 각종 나쁜짓이란 나쁜짓은 모조리 일삼은 창경문, 소천당 등은 사도회의 회장인 당갈이 생각해도 당해도 싼 놈들이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았다.


정말 말 그대로 자고일어나면 이쪽 문파가 사라졌고, 다음날에는 그 옆에 있던 문파가 박살나고, 그 다음날에는 언제 갔는지 저 멀리 있는 성에서, 그 다음날에는 또 반대편에 있는 성에서 나타나 죄다 박살을 내놓았으니,

호사가들은 그런 무흔의 행적을 보고 과거 세외삼대세력인 북해빙궁의 침공과 맞먹는 엄청난 혼란이라고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무흔의 행적을 주시하던 각 문파의 수장들은 무흔이 정말 죽일놈들만 쥐어패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그를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썩을 대로 썩었던 무림이었기에 이대로 가만히 둔다면 무림 문파의 태반이 박살날 판이었다.


‘참 이놈이 못 배운 무식한 놈이지만 착한 놈이긴 한데···’


결국 보다 못한 구파일방, 사도연합, 오대세가 등 무흔을 잡고자 정,사가 힘을 합쳐 그를 추적했지만, 그때마다 수많은 강시부대로 오히려 추적대만 잃는 꼴의 반복일 뿐이었다.


“이 친구야 자네가 세운 공로가 높아 그 동안의 과오를 덮어버리려고 했건만··· 어찌 이리도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는가···”


진각의 말대로 무흔이 세운 공로는 그 모든 과오를 덮어버릴만했다.


각종 문파를 박살내었고, 많은 문파의 주요인물들을 불구로 만들던 사고뭉치 무흔이 마지막으로 박살낸 문파는 무려 마교.


200년만에 탄생한 새로운 천마인 창혈천마 사준길을 위시로 대대적인 무림침공을 시작한 마교는 순식간에 무림의 태반을 차지했고, 부랴부랴 중원무림이 반격을 시도해보았지만 마교의 무자비한 공세에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상황이 반전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우연히 마교의 무인 하나가 무흔이 밥먹고 있던 식당을 박살낸 것이 그 일이다.


막 나온 따끈따끈한 만두를 침이 가득 고인 입안에 넣으려고 하는 중에 마교인에 의해 식당이 박살나자 무흔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차올랐고, 그날 이후 마인들은 밤낮없이 몰려드는 끝없는 강시부대의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숨죽이고있던 중원무림연합은 무흔의 강시부대를 막아내느라 진이 빠진 마교의 틈을 찔러 반격에 성공했고, 그 기세를 몰아 결국 마교를 중원무림밖으로 몰아낼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자들 모두 자네가 무식하지만 참 선한 사람임을 알고 있네, 어지간한 사고는 눈감아 줄 수 있건만···”


2년간 지속된 마교와의 전쟁 이후 중원무림은 무흔의 목에 내걸은 모든 지명수배를 내려주었고,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무림을 구한 영웅 중 한 명으로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처럼, 그날 이후 지금에 이르는 그리 길지않은 시간동안, 무흔은 희대의 악동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무림 전체에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다녔다.


“야 진각 이 땡중새끼야! 맨날 떠들고 다니던 자비는 어디로 갔어? 응? 내가 너한테 돈을 떼먹었냐? 니네 중들을 쥐어 팼냐? 넌 여기 왜 온 건데?”


“아미타불··· 무흔 이 녀석아! 대체 소림의 대법당에 모셔진 본존상에 오줌은 왜 눈 것이냐?”


“아··· 아니 그건··· 사과했잖아··· 술마시고 그랬다고···”


“크하하하하 이새끼 이거 진짜 또라이구만 얌마! 땡중한테 술마셔서 실수했다고 핑계대는 거냐? 크하하하하핫”


“당갈 가만히 있으시게, 내 이제 막 시작했으니··· 이보게 무흔, 그러면 성진사에 모셔진 장서들은 왜 불태운 것인가?”


“그리고 대체 왜 묵언수행 중이시던 청평사 스님들을 몇 달 동안 밤낮없이 놀려 대서 결국 욕설을 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리고···”



진각도 당갈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무흔이 저질렀던 크고 작은 사고들을 하나하나 열거해나가기 시작했다.


진각이 당갈과 다른점이 있다면, 그저 중간중간 울분에 찬 욕설을 내뱉었던 당갈과는 달리 이를 악물며 아미타불···을 외는 것 뿐이었다.


“대사님, 이제 제 차례입니다”

“아닙니다, 이번에는 제게 양보해 주시지요”

“내 차례야 비켜”


기다리던 다른 노인들의 제지에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는 진각의 뒤로 어느새 긴 줄이 만들어져 있었다.


“비구니들의 목욕을 훔쳐보는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니가 빌려간 돈이 1000냥이고 니가 박살낸 사업장 수리비가 10만냥···”

“니놈 때문에 내 손자가 아직도 똥오줌을 못 가리고···”

“내가 그동안 모아온 애장품들을 감히 니놈이···”

등등


모용세가 가주, 살막 막주, 개방 방주, 등등 마교와의 전쟁 정도되는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한자리에 모이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문파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흔의 주위를 둘러싸고 울분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도망칠 수 없는 무흔을 둘러싸고 튀어나오는 수많은 무흔의 사고내용은 달이 지고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렇게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닌 무흔이었지만, 오히려 그를 혼나는 노인들의 얼굴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분노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반가움 그리고 초조함과 안타까움으로 변해갔다.


“그만 그만! 아오 이 쫌생이 새끼들 진짜, 내가 미안하다 사과할게 앞으로 안 그럴게 이제 됐냐?!”


“무···뭣?! 무흔 이 철면피 같은 놈이!”


“아 뭐? 몰라 이제 안해! 그만해 짜식들아! 적당히를 알아야지!”


“······”


듣다 못한 무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둘러싼 노인들에게 외쳤고, 한창 원망 섞인 울분을 쏟아내던 무림계의 거목들은 이제는 슬픔으로 변한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치는 무흔을 말없이 보기만 했다.


“거 참 친구들끼리 그 정도도 못봐주냐? 엉?! 내 더럽고 치사해서 원··· 칵~ 퉷!”

“니네들은 이제 앞으로 나 아는 척도 하지마 알겠어? 이 나쁜 놈들아!”


대부분이 100살을 넘은 자신들에게 친구라고 부르는 어린 청년 무흔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 중에는 이제 눈에 눈물까지 맺힌 자들도 보였다.


“이 나쁜··· 어? 야 너 우냐? 거 참··· 내가 얼마나 말을 심하게 했다고··· 쩝···”


“이보게 무흔”


무흔을 둘러싼 노인들의 틈을 비집고 황제 직속 동창의 총대장 모용추가 천천히 도깨비 면갑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왜?”


“그 정도는 사고는 이 자리에 모인 자들은 모두 다 이해해 줄 수 있네”


모용추는 남성답지않은 고운 선을 그린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말을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자네의 딱한 사정을 모르는 자가 없네, 몇년이 넘도록 좁은 동굴 속에서 그 미치광이의 수발을 들며 혼자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그 정도 사고를 친 것은 버릇없는 손주 다루듯이 볼기짝 몇 대 때리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야···”


“······”


“그런데 대체 왜 그런 일을··· 이 자리에 모인 우리가 전부 발벗고 나서도 감당할 수 없는 사고를 친 겐가··· 왜 우리를 이리 모진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야···”


“······ 뭐야 모용추 이 고자새끼··· 갑자기 왜 울고 그래···?”


“대체 왜!! 황제들의 무덤을 파헤쳐서 선대 황족분들을 모조리 강시로 만들어 버린 것이야!!!”


모용추는 환관인 자신을 고자라고 놀리는 무흔의 말보다 그를 죽여야만 하는 자신의 입장에 더욱 마음이 아파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어째서 그런 것이야 이 어리석은 녀석아!! 대체 왜!!”


“······”


심상치 않은 그의 태도에 무흔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무리 황제께서도 너를 아끼신다지만, 어쩔 수 없이 니놈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리셔야만 하는 그분의 심정이 지금 어떤지나 아느냐 이 녀석아!”


“······”


한바탕 쏟아낸 모용추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낮은 한숨을 쉬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황제께서 명한 시간이 다 되었구나··· 무흔 내 어리고 어리석은 친구야···”


모용추는 천천히 허리춤에 달린 검을 뽑아 들었지만 그것을 내려칠 수는 없었다.


“크윽··· 당갈, 그대가 대신해줄 수는 없는가?”


“흐흐흑··· 이놈아! 왜 나한테 떠넘기느냐!”


그의 손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숫자가 4자리를 넘어간다는 당갈 답지 않게, 눈물을 질질 짜며 거절했다.


“으으음···”


“아미타불··· 모총대장 이 일은 그대가 마무리를 지어 주시오···”


진각도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대사님···”



번쩍!


‘이 때다!’


영악한 무흔은 이 괴물 같은 노인들이 머뭇거리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크하하하! 이놈들! 방심했구나!”


무흔은 광소를 터트리며 품에서 부적을 꺼내 들었다.


휘이이이잉~


무흔이 부적을 꺼내 들자 매화가 만개한 선녀봉에 지독한 귀기가 서렸다.


“뭐 뭐냐? 무흔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


생전 처음보는 지독한 귀기에 노인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크하하하 이놈들아! 이게 바로 이 시천마동 무흔 필생의 역작 귀진대법이다 이놈들아!”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선녀봉이지만 그런 소문 따위가 이자리에 모인 고강한 무공을 가진 무림 최고의 고수들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의 어린 친구인 무흔이 펼친 귀진대법이라는 수는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게 깔린 안개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희끗희끗한 원혼들의 공격으로 인해 신경이 바짝 곤두설 수 밖에 없었다.


“이···이런 낭패가··· 다들 조심하시오!”


“쌤통이다 이놈들아! 아직 완성되지 않아 죽지는 않겠지만 거기서 나올라면 고생 좀 해야할 걸? 아하하하하”


광소를 터트리며 귀진대법을 펼친 뒤 재빨리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푸욱!

아니 빠져나가려고 했다.


“으···으··· 젠장, 제갈수호 이 꼰대새끼···”


“미안하다 무흔아··· 정말 미안해···”


뒤 돌아 도망치던 그의 가슴을 뚫고, 무흔의 피를 머금은 제갈수호의 검이 튀어나왔다.


“쿨럭··· 미안할 짓을 왜 해 이 미친놈아!”


피를 한움큼 쏟아낸 무흔이 힘없이 외쳤다.


진법에 대하여는 중원 제일인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수호가, 기본적으로는 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무흔의 귀진대법을 뚫고 나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것이다.


제갈수호는 주름진 눈가를 훔치며 자신의 검을 맞고 쓰러져가는 무흔을 보았다.


‘미안하다 친구야···’


마음이 약해져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았으니 이대로 둔다고 해도 죽지는 않을 테지만

결국 황제에게 무식하지만 착하고, 어리며 어리석은, 그리고 딱하기 그지없는 친구의 목을 갖다 주는 것은, 가장 먼저 귀진대법을 뚫고 나온 자신이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내가 독주를 마시는군···’


마무리를 위해 강기를 잔뜩 머금은 검을 치켜 올렸다.


최소한 고통없이 그의 목을 베기 위함이다.


마무리를 해야 하지만, 눈앞을 가린 눈물이 그의 시야를 어지럽혔는지 쓰러진 무흔이 흐릿해 보였다.

“엥?”


아니 흐릿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점점 흐릿해져갔다.


“무흔아?! 이게 무슨 일이냐?”


“무슨일은 무슨일이야 임마 크크큭··· 잘먹고 잘 살아라 이 의리없는 놈들···”


의식을 잃어가기 때문일까, 무흔은 자신의 몸이 흐릿해져 가는것도 알지 못했다.


“아니 이놈아! 니 몸이 사라져 간다고”


“이 새끼가··· 누굴··· 놀리나··· 죽일라면 빨리 죽여···”


그러다 무흔의 신형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허··· 이게 대체 무슨···”


제갈수호는 혹시 녀석이 다른 진을 펼쳐 몸을 숨긴 건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진을 펼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팟! 팟! 팟!


한참 무흔을 찾아 주변을 수색하던 제갈수호의 귀로 당갈의 목소리가 들렸다.


“크하하하 무흔 이놈! 한 수를 숨기고 있었구나! 이런 지독한 귀기라니 크크큭”


현경에 오른 무림의 최강자들 답게 당갈의 뒤를 이어 하나 둘 귀진대법의 수를 파훼하고 빠져나왔다.


“야 제갈수호! 무흔 어디갔어?”


“······ 사라졌네”


“뭐?!”


“제갈가주님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흔 그 녀석을 놓아주었다는 것입니까?”


모용추 역시 귀진대법을 빠져나왔다.


“총대장님, 놓아준 것이 아니라 정말 그냥 사라졌습니다”


“무흔이 사라져?”


“사라졌다네?”


제갈수호의 설명은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노인들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그냥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가주님?”


모용추는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과 기쁨이 섞인 얼굴로 제갈수호에게 물었다.


“저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정말 그냥 사라졌습니다, 제 검을 보십시오, 목숨에 지장이 있지는 않겠지만 분명 무흔 그 녀석을 찔렀습

니다”


제갈수호 역시 웃으며 그를 마주보았다.


“여기 이 핏자국을 보십시오, 여기 찔린 자리에만 피가 묻어있고 주변 어디에도 핏자국이 이어져 있지 않습니다 무흔 그녀석이 경공법으로 날아서 도망쳤을리도 없고 정말 그냥 사라졌다니까요”


“허··· 참···”


제갈수호의 설명에 노인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그러다가,


“하··· 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그놈 그거 참 명줄 한번 길다 하하하하 이런 수를 숨겨두었을 줄이야 하하하하하”


“크하하하하하 그러게 내 말하지 않더냐! 그놈 그거 잡을라면 고생깨나 해야한다고 크크크”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웃음이 하나 둘 퍼지더니 선녀봉을 가득 메워갔다.


“이거 참··· 황제께 뭐라 보고를 드려야할지···”


모용추도 한참을 웃어재끼더니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크크큭 야 모가야 그냥 하루 잔소리 좀 듣고 말아라, 그냥 없어졌다는 놈을 무슨 수로 잡느냐 하하하하”


황제를 인정하지않는 마교에 대항해 싸운 황실이기에 나이 지긋한 황제 역시 그 마교를 물리친 어린 무흔을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주변 신하들의 엄청난 상소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무흔의 목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렸으니, 지금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웃는 당갈의 말처럼 잔소리나 몇 번 듣고 끝날 것이다.


“크큭... 그렇군··· 고생깨나 하겠어··· 내 평생 임무를 실패한 적이 없었는데, 그놈 그거 참···크하하”


“가서 술이나 한잔씩 하자고! 그 사고뭉치 녀석도 숨어지내다가 다시 어디서 튀어 나올거다 하하하하”


황제의 명령을 완수하지 못한 노인들이지만 얼굴에는 모두 환한 웃음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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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주님이 달라졌어요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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