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거짓과 진실 사이(1)
나는 집에 가자마자 샤워를 끝낸 후, 맥주를 홀짝이며 바로 ‘스플렌○’부터 시켰다.
안 그래도 저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서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 ‘보드게임 처음 구입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업적의 효과로 카운팅이 1 오릅니다.
나는 지은이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야, 내가 보드게임 하나를 시키긴 했는데 진짜 뭐하려고 그래?”
- 그건 두고보면 알아.
지은이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불안한데 네가 하려던 짓 그만 두는 게 좋지 않을까?”
- 아, 걱정하지 마. 그 정도는 아니니까.
뭔 짓을 하긴 하려고 했나 보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 하여간 게임 오면 바로 연락해!
지은이는 룰루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에휴, 내가 골머리를 앓으면 뭐하냐.
그나저나 심심하고 머리 복잡한데 뭐할까. 게임이나 할까?
안 그래도 RPG를 좋아해서 PS5에 사놓은 게임들이 꽤 있었다.
나는 아틀리에 시리지를 할지 전설 시리즈를 할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며 PS5를 틀었다.
게임은 다음 날인 목요일에 바로 도착했다.
난 전화를 할까말까 망설이다 지은이에게 전화를 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안 하고 싶었지만 이미 지은이가 억지로 내 통장에 돈을 넣은 뒤였다.
지은이는 퇴근하자마자 우리 집으로 날아왔다.
“자자, 얼른 알려줘!”
"야, 우선 저녁부터 먹자."
우리는 우리가 발굴(?)해 낸 맛집에서 족발과 보쌈 세트를 시켜 먹었다.
"여기에 소주가 빠질 수 없지!"
우리는 소주도 한잔씩 하며 맛나게 저녁을 먹어 치웠다.
그리고 지은이는 룰도 알려주는데 설거지는 자기가 하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설거지 따위는 내가 해도 되니 지은이가 하려던 짓이나 안 하면 좋겠다 하는 마음만 들 뿐이었다.
설거지가 끝나고 나는 약속한 대로 룰을 알려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확 깨달은 게 있어 불안한 얼굴로 지은이를 살펴보았다.
퍼뜩 내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때도 성실하게 시스템은 메시지를 띠었다.
- ‘어서와, 룰 설명은 처음이지?’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업적의 효과로 말빨이 1 오릅니다.
“너 설마 보드게임을······”
“맞을걸, 네가 생각하는 거? 그러니까 나 오늘 이 보드게임 좀 빌려갈게.”
“야, 그냥 얌전히 있다 와! 그런 짓 하지 말고! 내가 처음으로 산 보드게임이 그런(?) 일에 쓰여진다는 거 싫다고!”
“야, 누가 들으면 내가 뭐 완전 이상한 일에 쓰는 줄 알겠다! 그래도 이렇게 하면 엄마가 더 이상 선 안 보게 하겠지. 너 보드게임을 그렇게 쓰는 건 좀 미안하지만 내가 돈도 줬잖아. 엄밀히 말하면 사실 내 거지.”
난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 정도의 말썽으로 꺾일 어머니가 아니실 텐데.
지은이랑 지은이의 어머니는 누가 모전여전 아니랄까봐 외모도 되게 비슷했고 성격도 되게 비슷했다.
지은이가 말썽을 피우면 더 강력하게 대응하면 대응하셨지 절대 질 분이 아니신데······
“한지은. 너네 어머니께서는 웬만한 일로 포기 안 하실 거야. 네가 더 잘 알잖아!”
내가 이렇게 말렸지만 이미 지은이 귀에는 하나도 안 들어갈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지은이의 눈빛은 결연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나름의 양심이 계속 말려보라고 권하고 있었다.
지은이는 내 말을 완전히 모른 척 하고는 나에게 게임을 몇 판 돌려보자고 계속 졸랐다.
말리다 말리다 두 손 두 발 다 든 나는 게임을 몇 판 돌리며 룰을 다시 알려주었다.
지은이는 게임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며 눈을 빛냈고 게임을 끝낸 후 나와 잠깐 수다를 떨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상쾌한 토요일이었다.
미세먼지 없이 공기가 매우 좋은 날이었다.
게다가 어제 막 일을 끝마친 나에게는 더더욱 상쾌한 토요일이었다.
그날도 나는 보드게임 모임에 가기 위해 느지막히 아점을 먹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은 나에게는 매우 웃긴 사건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다.
“오늘은 8명 모였으니까 4명씩 나누어서 전략게임을 돌려볼까요? 아니면 모처럼 8명이나 왔는데 마피아류 게임 하나 할까요?”
이렇게 모임장님이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은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은이 지금 선 보는 중일 텐데? 무슨 일이지?
“아 죄송합니다. 일 전화라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나는 죄송하다 말하고는 모임 장소에서 나와 복도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은아, 너 지금 선 보는······”
- 야······ 나 좀 살려줘!
지은이가 거의 울먹일 듯 말했다.
목소리가 울리는 걸로 봐서는 화장실인가 싶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지은이의 울먹거리는 소리는 좀처럼 듣기 힘든 것이었기에 나는 깜짝 놀라 외치듯 물었다.
무슨 일이 났나 해서 걱정이 앞서려던 참이었다.
맞선남이 나쁜 놈인가?
아니지. 그걸 가만히 둘 지은이 성격이 아닌데?
아니면 무슨 다른 일이라도?
내 머리 속에는 막 나쁜 상상들이 휘몰아쳤다.
그 때 지은이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 아니, 그게······
지은이가 말한 사정은 이러했다.
지은이는 선이 너무 보기 싫어 머리를 짜냈다고 한다.
엄마에게 진상짓하는 딸래미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보드게임을 들고 선을 보러 나갔다는 것이다.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행동했군.
어느 호텔의 카페에서 선을 보기로 했던 지은이는 일부러 촌스럽게 보이려고 배낭 안에 보드게임을 넣어 메고 갔다고 한다.
옷까지 촌스럽게 입고 싶었지만 엄마의 방해(?)로 그렇게는 못 했다고.
그 큰 걸 어떻게 숨겼냐고 했더니......
자차로 출퇴근하는 지은이는 회사에 가져가야 하는 건데 까먹을까봐 차에 넣고 갈 거라고 했다고.
항상 덜렁거리는 지은이를 아는 어머니는 이에 수긍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을 보기로 한 호텔의 카페에 도착해 촌스러워 보이는 안경까지 찼다고 한다.
남자가 이미 나와있었는데 꽤 말끔하게 생겨서 아깝긴 했으나!
어쨌든 계획했던 데로 덕후인 척 보드게임을 꺼내며 그 남자에게 권했다는 것이다.
아주 순진한 척 웃으면서 말이다. '
그런데 큰 일은 그 때부터 일어났다고.
그 남자의 눈이 무섭게 빛나더니······
“지은씨도 보드게임을 좋아하셨나요? 사실 저도 그래요! 정말 반갑습니다!”
라는 대화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네?”
지은이는 깜짝 놀라 부인하려 했지만 그는 이미 자기 마음대로 생각해 버린 후였다.
“선까지 보드게임을 들고 오실 정도라니 저는 정말 감동했어요. 게다가 초보자일까봐 스플렌○를 들고 오는 센스까지!"
"저... 저기......"
지은이는 솔직하게 밝히려 했지만 너무나 들뜬 맞선남은 자기의 말을 하기 바빴다고 한다.
"이 정도면 나가는 모임이 있으시겠죠? 다음번에 만났을 때 같이 보드게임 모임 가실래요? 어쩌면 집이 가까우니까 제가 아는 모임일 수도 있겠네요!”
지은이는 어째 어질어질해지는 걸 느꼈다고.
“저··· 저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 나 이제 어떡해! 게다가 사는 곳도 나랑 가깝다고 하던데! 난 어떡하냐. 은아야, 도와줘.
지은이는 심각한데 나는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릴 뻔 했다.
이런 일이 생기다니.
“어쩔 수 없지, 은아야. 잘 해결하고 오려무나. 진짜 나도 온~ 마음을 다해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줄 수가 없네? 나 이제 게임해야 해서 끊는다.”
- 야! 서은아! 게임 때문에 친구를 모른 척 하다니! 이런 의리 없는······
나는 전화를 끊고는 나도 모르게 쿡쿡거리며 웃고 말았다.
분명 나름 심각한 일인데 왜 이렇게 웃기지?
조오금 미안해진 나는 혹시 다시 전화가 올까 싶어 살짝 기다렸다.
그러나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나는 다시 모임 장소로 돌아갔다.
다시 모임에 들어갈 때 나에게 몰리는 사람들의 시선은 꽤나 부담스러웠지만 난 그 시선을 이겨내고 얼른 죄송하다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어서······”
다들 괜찮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마피아류 게임 중 하나인 ‘레지스탕스 아○론’ 하려는데 어떠세요?”
모임장님이 친절하게 나에게 물었다.
마피아류를 정말 못하긴 하지만 분위기를 깨기도 싫어서 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게임의 룰은 대충 아래와 같았다.
1. 이 게임은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으로 나뉜다.
2. 이 게임의 목적은 5개의 퀘스트 중 3개의 퀘스트를 성공하는 것이다.
3. 선의 세력에는 악의 세력을 모두 보고 시작하는 멀린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4. 악의 세력에는 암살자 캐릭터가 있다.
5. 퀘스트에는 같이 갈 인원이 정해져 있다.
6. 의장은 퀘스트에 정해진 인원 수에 따라 같이 갈 인원을 정한다.
7.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한다.
8. 과반수 이상 반대가 나오면 그 다음 사람에게 의장이 넘어간다.
9. 과반수 이상 찬성이 나오면 퀘스트를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성공, 실패 카드를 나눠주고 카드를 보이지 않게 내게 한다.
10. 퀘스트 인원 수가 3명일 경우는 실패 카드가 하나라도 나오면 실패, 5명일 경우에는 실패 카드가 2개 이상 나와야 실패다.
11. 만약 선의 세력이 3번 퀘스트를 먼저 성공하면 악의 세력은 정체를 드러내고 멀린을 찾기 위한 토의를 한다.
12. 만약 암살자가 멀린을 찾아 지목하면 악의 세력의 승리로 끝난다.
- 마피아이자 블러핑게임인 ‘레지스탕스 아○론’을 익혔습니다.
- 게임을 익힌 보너스로 눈치, 말빨, 연기, 정치질이 1씩 오릅니다.
우선 다들 캐릭터를 나누어 받았다.
나는 악의 하수인 카드를 받게 되었다.
큰일났다! 나 연기 완전 못하는데?
나는 등에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긴장하고 말았다.
모임장님은 다음과 같이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자 우선 다들 눈을 감고 주먹쥔 손을 앞으로 뻗으세요.
암살자의 하수인들은 엄지 올리시구요
눈을 떠서 서로를 확인해 주세요.
자, 다시 눈 감으시구요,
주먹쥔 손은 그대로 뻗고 계십시오.
암살자의 하수인들은 엄지 올리시구요
멀린은 눈을 떠서 악의 세력을 확인해 주세요.
악의 세력은 다시 엄지손가락 접어주시구요
멀린은 눈을 감아주세요.
자, 다들 눈을 떠주세요.
자 이제 시작합니다!”
- 작가의말
저도 마피아류 게임을 정말 못 하는 편이에요. 연기 너무 힘들어;ㅁ;
Comment '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