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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라이프 님의 서재입니다.

신을 죽이는 여러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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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라이프
작품등록일 :
2018.05.18 18:48
최근연재일 :
2018.05.18 19:2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311
추천수 :
21
글자수 :
81,078

작성
18.05.18 19:23
조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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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8. 노아의 방주

DUMMY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어요.”

“누가 뭐래?”

“새하얀 벽에 비친 가로수의 그림자, 이 골목 저 골목에 잠긴 바람, 햇빛, 달, 모두 흔들어서 깨우고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른 생각들로 재구성할 수도 있고요.”

“알았어.”

“그리고 그것이 혹 신이라 할지라도 다른 모습으로 다른 의미로 다른 생각들로······.”

“알았으니까, 어디든 그림자놀이를 하듯 풍덩 들어가서 좀 쉬어.”

“제 시간에 깨워요. 알았죠?”


그녀는 그림자 속에 완전히 들어갑니다. 빈 그네가 여전히 흔들리고 있습니다. 약간 심심하다 싶어 동네나 한 바퀴 돌다올까, 싶은데 그네가 하늘 높이 치솟아요.

악몽을 꾸는 건지.


“괜찮아?”


그네에 귀를 갖다대보니 콜콜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녀가 잠든 사이에 나는 약한 것들을 죽이는 상상을 해요.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는 어린아이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얼굴을 발로 사뿐히 짓이기고 승자의 언어로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것 말입니다.

뭐, 사실, 이것도, 너무 많이 해서, 좀, 물리네요.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모든 인간이 쓸데없습니다. 개미만도 못한 존재에요.

내가 만든 그녀만 빼고요.

1시간 10분 정도 남았는데 노아의 후예들이나 만나러가야겠습니다.

그들은 노아가 그랬듯이 최대한 많은 것들을 죽이기 위해서 각자의 방식으로 방주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말하면서 얼굴각도와 손짓을 어떻게 해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자로 비춰질까, 고민하면서 말이죠.



8.노아의 방주

[노아는 〈창세기〉 6장 11절에서 9장 19절 사이에 나오는 대홍수 이야기에서는 흠 없는 신앙심 때문에 하느님에게 선택되어, 사악한 동시대인들이 모두 홍수로 멸망당한 이후에 인류를 영속시킨 조상으로 묘사된다.

그는 배를 만들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그 명령대로 땅의 모든 생물이 다시 번성할 수 있도록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암수 1쌍씩 배에 실었다.

홍수가 끝난 뒤 하느님은 다시는 인류의 죄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약속의 가시적인 징표로 하늘에 무지개를 두었다.]



노아는 첫째 형의 노예였습니다. 그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첫째 형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까지라도 따라오고는 했어요. 비이성적이고, 광적이고, 부조리한. 그가 죽고 난 뒤 내 어머니는 그를 이렇게 평가하고는 했습니다. 미친놈이었어. 생각도하기 싫을 만큼 끔찍하게 못생겼고. 게다가 여색은 또 얼마나 밝히던지 눈만 마주쳤다 싶으면 아무 여자나 강간하고 겁탈하고 그러다가 수틀리면 목을 조르고 죽을 때까지 때리고.


아마도 어머니가 노아를 싫어했던 건 아버지가 그를 좋아했다는 것에 있을 겁니다. 그 시대에 강간은 강간당한 여성들만의 문제였으니까요.


“누구신지?”

“방주는 잘 만들고 있어?”

“아!”

“아?”


그는 노아 자손의 족속입니다.

그도 홍수와 같은 것들을 이용해 혹은 만들어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 겁니다.

그룹별로 부를 공유하고 부를 세습하고 부를 지키기 위해 규칙을 만들고 말이죠. 먼 옛날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암수1쌍씩 배에 실은 노아처럼. 선택받기 위해 살아온 내력을 모두 말하라고 강요할 겁니다. 도저히 구제 할 수 없는 삶을 생각해내기 위해서요.

반동, 반감, 저항, 반격을 받지 않기 위한.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아옵니이다. 아멘.”


그는 술잔에 얼음을 가득 담고 위스키를 따르면서 주기도문을 외웁니다.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요?”

“그냥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개새끼라고 불러도 아무 말 안 할 거니까.”

“그럴 수는 없죠. 왕이신 하나님일지도 모르는데.”

“그럼 부르지 마.”


그는 대마를 말아 피우다가 커튼을 열고 창밖을 바라봅니다.

야경이 참 아름답네요.


“빌딩을 좀 보세요.”

“보고 있어.”

“어렸을 때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자주 꿨어요.”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 어릴 때 꾸던 꿈이 자주 생각나나 보네.”

“뭐, 그렇죠. 빨아 보실래요?”


나는 그가 빨라고 하는 것이 뭔지 잠깐 고민해봅니다. 그는 발기되어 있고 여전히 줄어들 줄 모릅니다.


“인간들이란.”

“뭐 어쩔 수 없죠.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니까.”

“징그러워.”

“당신은 이해하지 못 할 거예요. 죽지도 않으니 산다는 게 뭔지 모를 테니까.”

“네가 생각하는 산다는 게 죽는 건가?”

“맞아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는 노아 자손의 족속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천국행 티켓’을 팔았어요. 일종의 선택적 약정 할인 제도를 통해서 돈을 긁어모았죠. 그는 그 돈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사후세계가 있다는 걸, 잘 아는, 네가 이러니 좀 웃기긴 해.”

“거긴 모두에게 지옥이잖아요.”

“불공평하다고 생각해?”

“나는 높으신 분들을 위해 방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특별대우가 필요해요.”

“특별대우는 받고 있잖아? 네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네 능력만으로 얻은 것들이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그건 아니죠.”


그는 쓴 미소를 짓더니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려 합니다. 뭐 들어봤자 뻔한 말이기도 해서 저는 그의 입을 꿰매버립니다. 삐뚤삐뚤하지 않게 촘촘하게 말이죠.


“앉아봐.”


그가 소파에 가만히 앉습니다.


“아파?”


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입니다.


“너희들 노아 자손의 족속들은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는 경향이 있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가 두려움에 몸을 떱니다. 나는 꿰맨 입을 풀어요.


“왕이신 하나님이시죠.”


그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두고 나는 그가 만든 방주를 둘러봅니다. 태고 적 바벨탑을 지어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의 욕망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멈출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더 높이 더 멀리.


“언제 쯤 일까요?”


투명한 재질로 구축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고 있는데 그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며 묻습니다.


“조만간.”

“조만간, 언제?”


그걸 어찌 알겠어요. 내 아버지 하나님은 그냥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방주를 만들게 한 것도 그냥 좀 심심해서 그랬던 것뿐입니다. 예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학살한 건 노아 자손 족속들의 자유의지일 뿐이에요. 물론, 내 아버지 하나님이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긴 합니다. 단지 재미있었다는 이유로 말이죠.


“계시를 받을 거야. 언제나처럼. 왜? 좀, 망설여지나?”

“망설여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솔직해서 좋군.”


엘리베이터는 빌딩 꼭대기 바로 아래에서 멈춥니다.


“여기서 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해요.”

“됐어. 걷는 것도 싫고. 뭐 알아서 잘 준비하고 있겠지.”

“······”

“왜? 뭐?”


그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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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노아의 방주 +1 18.05.18 50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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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7. 듀라한 +1 18.05.18 5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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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6. 파시파에 +1 18.05.18 63 1 9쪽
15 5. 사타나스 +1 18.05.18 48 1 7쪽
14 5. 사타나스 +1 18.05.18 58 1 12쪽
13 4. 고뇌의 배 +1 18.05.18 59 1 7쪽
12 4. 고뇌의 배 +1 18.05.18 40 1 7쪽
11 4. 고뇌의 배 +1 18.05.18 50 1 7쪽
10 3. 철의 여인들 +1 18.05.18 55 1 8쪽
9 3. 철의 여인들 +1 18.05.18 62 1 7쪽
8 3. 철의 여인들 +1 18.05.18 69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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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카니발니즘 +1 18.05.18 59 1 7쪽
5 2.카니발니즘 +1 18.05.18 65 1 9쪽
4 2.카니발니즘 +1 18.05.18 75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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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팔라리스의 놋쇠 황소 +1 18.05.18 70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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