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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라이프 님의 서재입니다.

신을 죽이는 여러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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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라이프
작품등록일 :
2018.05.18 18:48
최근연재일 :
2018.05.18 19:2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302
추천수 :
21
글자수 :
81,078

작성
18.05.18 19:20
조회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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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6. 파시파에

DUMMY

“아니 나는 그냥.”

“이리 와 봐요.”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부둥켜안고 키스를 합니다.

신을 굳이 죽일 필요가 있을까, 싶어지죠.

그러나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와요. 가까이서 폭탄 소리가 들립니다. 여객선은 멈추고 거리에 사람들은 있는 너무 아파서 비명부터 내질러요.

파란 우산은 유유히 흐르는 센강을 따라 흘러가고요. 노래가 흘러나오던 거리에는 총성이 가득합니다.


“무슨 일이죠?”

“폭탄을 터뜨렸나봐.”

“폭죽?”

“아니 폭죽 말고 폭탄 말이야.”

“왜 그런 거죠?”


글쎄요. 아주 오래전에는 이유를 알았던 것도 같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도 신이 벌인 일인가요?”

“그거야 신을 죽이고 나면 알 수 있겠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경찰차들의 사이렌소리에 귀가 멍멍합니다. 몇몇은 울고 몇몇은 화가나 있고 몇몇은 넋을 놓고 있다가 전화를 해요. 여객선은 다시 시동을 걸고 서둘러 테러현장을 벗어납니다.

우리는 여객선에서 내려 거리를 걸어요.

가게 앞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가요.”


벼리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인형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별일 아니야.”

“별일 아니라니요.”

“아, 아니, 내 말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고.”


더 가혹하고 잔인하고 더러운 꼴을 많이 봐왔었던 그녀가 왜 유독 이러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폭탄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죽었어요.

산산조각이 나서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고요.

여기저기로 튄 살점들을 닦아내는 청소부들과 시체를 수습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법칙이 있는 듯합니다.

동료의 시체를 수습하는 꿀벌들 같다고 할까요.

사람들은 바쁘고 걱정하고 경계합니다.


“사람은 너무 쉽게 죽고 어렵게 살아요.”


무심한 표정으로 조그마한 통을 들고 지나가는 노숙자를 보고는 벼리가 말합니다.


“그러게.”

“우리가 잡아요.”

“뭘?”

“사람들을 죽인 사람들을요.”

“잡기에는 너무 많아.”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요? 물론,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 가다보면 엉켜있던 실타래가 풀릴지도 모르겠죠. 그런데 때로는 풀린 실타래가 제 목을 조르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사람들 일은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잘린 목을 들고 있는 기사를 찾아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긴 하죠.”


자살 폭탄 테러를 지시한 사람들도 모두 죽을 겁니다.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고, 아내를 죽였고, 딸을 죽였고, 아들을 죽였고, 친구를 죽였고, 애인을 죽였다는 사연들이 곧 쏟아지겠죠. 그런데 그들도 그들의 아버지를 잃었고, 아내를 잃었고, 딸을 잃었고, 아들을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애인을 잃었어요. 윤리적인 말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윤리적 잣대는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이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갖다 대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아마 숨겨진 비밀통로에 있을 거야.”


우리는 건물과 건물사이에 통로가 되는 지붕이 있는 복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유리로 된 지붕이 참 예쁘네요.


“배고프지 않아?”

“별로.”

“그러지 말고 먹고 가자. 여기 맛이 끝내주거든.”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들어오고요.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주방장이 친절하게 영업 안 한다고 말해보지만 그런 말을 내가 들을 리가 없죠.


“송아지고기, 달팽이요리, 연어스테이크, 화이트 와인.”

“손님 영업 끝났어요.”

“송아지고기, 달팽이요리, 연어스테이크, 화이트 와인.”

“저기요, 영업 끝났다고요. 나오시라고요.”

“송아지고기, 달팽이요리, 연어스테이크, 화이트 와인, 후식은 초코케이크 아니 바닐라 맛 케이크.”


나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천천히 메뉴판을 보다가 주문을 완료했습니다.

가게 주방장은 세뇌에 걸려서 가게 셔터를 내리고 요리를 해요.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 나옵니다. 타닥타닥 지글지글 소리가 나요. 그녀는 적포도주를 붓고 프라이팬 손잡이를 잡고 눌린 고기를 뒤집는 주방장을 쳐다봅니다. 그는 좀 겁에 질려있어요.


“어떻게 한 거죠?”

“뭘?”


나는 그에게 약간의 공포와 불안감을 심어줬습니다. 높은 곳에 대한 생각만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심할 때는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쓰러진 기억도 없이 쓰러져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도 같다고 할까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요리를 하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죽었잖아. 마음이 심란해서 저러는 거겠지.”

“집에 가려던 사람이 왜 갑자기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를 하죠?”

“마음이 바뀐 거겠지. 내가 그에게 많은 돈을 주기로 했거든.”


어찌됐든 요리는 끝나고 나는 내가 주문한 음식들을 먹습니다.

천천히 여유롭게 말이죠.


“그만 먹고 가요.”

“왜? 맛이 없어?”


벼리는 주방장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은 모양입니다.


“알았어, 갈 테니까, 차분하게 좀 있어.”


요리를 끝마친 주방장은 기절한 채로 바닥에 널 부러져 있어요. 그는 마른 체격이지만 의외로 배가 좀 많이 나왔습니다. 나는 그가 숨쉬기 편하게 몸을 옆으로 돌리고 난 뒤 금화를 손에 쥐어줍니다.


“죽은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알았으니까. 그만하고 나와요. 여기 놀러왔어요?”

본인도 내내 즐겼으면서 갑자기 바쁜 척 하네요.

가게 밖으로 나오니 밤하늘이 캄캄합니다. 거리에 사람들은 여전히 놀란 눈치지만 조금 전처럼 다급해보이지는 않아요. 그들은 촛불을 손에 쥐고 평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저들도 알고 있어요. 평화는 불가능하다는 거.


“기도해요. 우리도.”

“누구한테?”

“자기 자신한테요.”


벼리는 철야예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슬쩍 한 번 쳐다보다가 말을 잇습니다.

그나저나 잘린 목을 들고 있을 기사가 나타날 때가 된 것 같은데 통 보이지를 않네요. 나는 파리카타콤 지하납골당으로 향합니다. 지하납골당으로 가는 지하터널은 미로처럼 뻗어 있지만 우리가 여기서 길을 잃을 일은 없습니다.


“어째 으스스하네요.”

“나는 하수구 냄새 때문에 그런 걸 느낄 새도 없어.”


시궁창에 사는 쥐떼들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뿔뿔이 흩어집니다.

한참을 걷다보니 유골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유골들은 모두 레 알 시립묘지에서 옮겨진 것들입니다.


“캄캄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네요.”


벼리는 그림자 밑으로 손을 넣어 방아벌레들을 꺼냅니다. 방아벌레들이 밖으로 쏟아지니 순식간에 어두운 통로가 환해져요. 터널 가장 깊은 지하 한 곳에 지옥문이 있습니다. 지옥문이 열리면 잘린 목을 들고 있는 기사가 목이 긴 가죽구두를 신고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올 거예요. 마침 멀리서 발소리가 들립니다.


“뭐죠?”

“응?”


해골하나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잘 발달 된 광대뼈와 쏙 들어간 뺨을 보면 다소 남성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골반입구가 타원형인걸 보면 여성인 것 같아요. 그녀는 해골무덤 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뭘 그렇게 찾아?”

“······”


딱하게도 눈도 귀도 없어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모양입니다.

저래가지고 찾고 싶은 걸 찾을 수 있을 런지.


“딱딱딱딱딱 딱딱 딱딱딱 따다다닥.”

“뭐라고 하셨어요?”


턱에 근육이 없어서 그냥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과한데 벼리가 말을 받습니다.


“딱딱 따다다닥 딱딱딱 딱딱 딱딱딱 따다다닥.”

“이걸 찾으세요?”


방아벌레들이 어디서 주웠는지 눈과 혀, 그리고 귀를 가지고 날아옵니다. 해골은 눈두덩에 눈을 붙이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해요.


“아가씨, 고마워요.”


신기한일이죠. 보고 듣고 말하게 되니 살 한 점 없이 말끔했던 뼈에 살이 오릅니다. 그러나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머리카락도요. 그녀는 많이 늙었습니다.


“우리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아 맞다. 머리카락이 없어서 못 알아보는구나. 잠깐만 기다려봐.”


그녀가 휘파람을 붑니다. 얇고 검은 뱀들이 사방에서 몰려와요. 블랙맘바입니다. 블랙맘바는 최소 4분 안에 쥐를 죽일 수 있고, 한 번의 독으로 1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독사죠. 배가 불러도 자기 신경에 거슬리면 무조건 공격하고 보는 사나운 녀석들이에요. 그런데 어째서?


“내 사랑스런 아가들, 어서, 엄마한테 오렴.”


메두사네요.

뱀으로 된 머리를 본 사람은 누구든 돌로 변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길을 잃었어. 그런데 누구야? 이 아가씨는.”

“······”

“말을 못하는 걸 보니 또 납치했구나. 그런데 어째 네 아버지한테 데려가지 않고?”

“데려갔었지.”

“그런데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죽었었는데 내가 살렸어. 뭐 말하자면 길어.”


메두사가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녀의 사랑스런 아가들은 입을 벌리고요.


“넌 도대체 뭘 살린 거니?”


사실, 그녀를 살렸다기 보다는 그녀의 지위를 재배치했다고 하는 게 맞겠죠.

나는 멸종된 종을 되살리는 방법으로 그녀를 복제해냈습니다. 체세포에서 핵을 떼어낸 뒤 여성의 난자의 핵과 바꿔치기 해 넣고 그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 시킨 핵치환 방법이 아니라 게놈편집이라는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DNA염기서열을 원하는 서열로 바꿔치기하는 방법이죠. 베스 샤피르 교수가 쓴 메머드를 어떻게 복제할까, 라는 책을 참고해서 만든 자동 염기서열 스캐너에 DNA를 넣으면 가장 긴 가닥의 염기와 가장 짧은 가당의 염기가 합성됩니다. 이 방법을 통해 그녀의 몸에 신과 인간의 유전자가 적절히 섞이게 된 거죠.


“앞에 세워놓고 무안하게 내 이야기를 둘이서만 나눌 거예요?”


벼리는 뾰루퉁한 얼굴로 우리를 번갈아 바라봅니다.


“너는 착한 아이야. 그래서 네가 두려워”


메두사가 꺼림칙한 느낌을 애써 지우려다 말고 말을 잇습니다.


“네가 가진 능력은 네 것이 아니니까. 어떤 결과를 내는지도 너는 모를 거고, 호기심에 무작정 사용해 볼 테지. 내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어 버린 그녀처럼. 너도 제멋대로 굴지도 몰라.”


메두사가 말하는 그녀는 제 어머니입니다. 생전에는 내 아버지 하나님의 발밑에 붙어 있던 그림자였죠. 검은 형상에 불과한 그림자가 아니라 내 아버지 하나님이 먼 옛날 제 멋대로 발밑에 붙여 버린 여신입니다. 상상해보세요. 강간범의 발밑에 나체 상태로 붙어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겁탈 당하는 여성을 말입니다.


“저는 당신이 잃어버린 걸 찾아줬어요.”

“그건 나도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고맙게 생각하면 다른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 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옆에서 벼리의 말을 거듭니다.


“그건 그렇고 어쩌다가 여기에 갇히게 된 거야?”

“말하자면 길어.”

“구구절절한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길면 하지 마요. 별로 안 궁금하니까.”


벼리가 괜한 심술을 부립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이곳에 버려져 있었고 나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매다가 나처럼 여기에 버려진 반인반수에 의해 목이 잘리고 말았지. 그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노타우로스?”


메두사는 파리카타콤 지하납골당이 전설 속 미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황당한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나저나 미노타우로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는 어디에 있나요?”


벼리가 묻습니다.


“그는 죽었어.”

“누가 죽였죠?”

“누구든 죽지.”


생각해보니 벼리는 나이를 먹고 죽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적이 없네요.

늙고 병들고 지친.


“그는 털이 다 빠진 늙은 황소였어.”

“······”

“실수로 자른 내 머리를 다시 돌려준 친절한 노인이기도 했고.”

“······”

“그는 많이 힘들어했어.”

“어째서요?”

“이도 다 빠진데다가 목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나서 먹은 것들이 줄줄 셌거든.”

“네?”

“줄. 줄. 줄.”


메두사는 본인이 말해놓고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대고 웃습니다. 그렇게 혼자 한참 홀린 듯 웃다가 쓸쓸하게 말을 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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