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철의 여인들
“버려요. 그건 좀.”
“응?”
“거추장스럽게끔. 왜 그걸 아직도 들고 있어요?”
“나야 뭐 자기가 던진 걸 받는 다는 게.”
셋째 형이 간호사 머리를 가볍게 내동댕이칩니다. 떼굴떼굴 굴러가는 머리를 벼리가 집어 드네요. 무섭거나 징그럽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뭐 익숙해질 때도 됐죠.
“뭐야?”
“안녕하세요.”
바토리가 벼리를 보고는 눈을 흘깁니다. 셋째 형은 조금 놀랬는지 벌떡 일어나네요.
“형한테 인사 시키려고 데리고 왔어.”
“뭐야 저거?”
“아버지가 허락했어.”
형은 아버지가 허락했다는 말에 눈을 감고는 조금씩 힘을 풉니다만, 못마땅한 표정을 애써 감추려들지는 않습니다.
“너 또 이상한 걸 만들었구나.”
“맛있게 생겼네.”
바토리는 이마에 묻은 핏물을 대충 훑어내고는 슬며시 웃습니다. 입맛을 다시면서요. 벼리가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뜯어먹고 싶은 비주얼을 가지기는 했습니다.
“애야, 피가 몸을 한 바퀴 도는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아니?”
“네?”
방으로 돌아가려던 벼리가 뒤돌아봅니다.
“45초 만에 몸을 한 바퀴 돌아.”
그래서 어쩌라는 건지. 셋째 형이 이제 좀 귀찮아졌는지 얼른 가라고 손을 휘휘 젓습니다. 더 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은 모양이에요. 네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문을 나서려는데 철의 여인들 중 하나에서 남자가 뛰쳐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누렁이에게 몸이 산산이 흩어집니다. 여기서 유일하게 탈출에 성공한건 오디세우스 말고는 없어요. 그는 계산적이고 영악한 사람이었죠. 너무 이기적이고 다중적인. 갑자기 그가 쓴 이야기를 읽고 싶어지네요.
비는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시체들을 처리하러 나온 검은 늪 개구리들의 울음보가 터지네요. 저 녀석들을 무서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들에는 달라붙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꼬리 없는 올챙이 같이 생겨서 제법 귀엽습니다.
“귀엽다고 만지지마.”
“왜요?”
“또 씻어야 하잖아.”
“어차피 다 젖었는걸요.”
“더럽게 진짜!”
검은 늪 개구리들이 일제히 벼리를 바라봅니다. 살아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들인데 어째서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한 마리 일 때는 상관없지만 여러 마리가 떼로 달려들기라도 하면 온몸이 사르르 녹아내릴 거예요. 순식간이죠. 아니나 다를까 최대한 몸을 움츠렸다가 벼리를 향해 폴짝 뛰어옵니다. 정말 너무 가슴이 아프지만 저로서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다 녹아버리면 다시 만드는 수밖에요.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뜹니다.
“응?”
“아 좀 달라붙지 좀 마.”
이상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네요. 게다가 검은 늪 개구리들이 배를 뒤집고 애교를 다 부리네요. 별일이네요. 별일.
“너 정말 괜찮아?”
“괜찮지 않을 이유라도 있나요?”
벼리의 그림자가 꿈틀 거립니다. 검은 늪 개구리가 그녀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모양인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건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검은 늪 개구리들이 시체를 다 녹이자 비가 그칩니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로 햇살이 쏟아지고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가 떴네요. 늪은 다 사라지고 볕 좋은 자리에 앉은 누렁이가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다 말고 개 껌을 씹습니다.
질겅질겅.
벼리의 그림자에 든 검은 늪 개구리가 알을 깐 모양입니다. 그녀의 발밑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네요.
“발밑에서 콩닥콩닥 소리가 나요.”
“부글부글 이겠지.”
“정말이라니까요. 귀를 기울여서 들어봐요.”
나는 그녀의 발밑에 귀를 갖다 댑니다. 콩닥거리는 건 아닌 것 같고 쿵쿵쿵 닥닥닥닥 거리네요. 말도 하나 싶습니다.
“신기하네. 이런 건 처음 봤어.”
“신기한 일들이 어디 한 둘이에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사건들이 있고, 다양한 소문들이 무성하지만 사실로 확인 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많지 않습니다.
“너는 이 세상에 태어 난지 얼마 안 됐잖아.”
벼리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그림자 속에서 검은 늪 개구리를 빼내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어요. 정말이지 시끄러워서 못살겠습니다. 그새 부화를 했는지 바글바글 하네요. 그림자 위로 눈동자가 없는 새하얀 눈을 내미는데 징그럽고 끔찍합니다.
“기분이 안 좋으세요?”
벼리가 젖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묻습니다. 나는 그녀의 알몸을 못 본 척하고 오른쪽 왼쪽 잘 돌아가는 세탁기 통을 봐요. 거품이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보다보면 딱딱해지면서 꼿꼿하게 크게 선 음경이 작게 사그라지는 순간이 오겠죠.
“뭐하세요?”
“보면 몰라, 세탁기가 잘 돌아가나 보고 있는 거.”
“어디 아파요?”
“아프긴 뭐가 아프다고. 너는 하던 거나 계속 해.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아래가 커졌어요. 어디에 부딪힌 건 아니죠? 연고 발라줄까요?”
“아 좀 됐다고.”
그녀가 기어코 바지를 내리고 연고를 바릅니다.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가만히 엿보고 있던 돌리가 한 마디 거들어요.
“위 아래로 쓱쓱 닦고 싹싹 문질러.”
감정은 기어코 객관적 데이터를 왜곡합니다. 나는 신의 아들이고 그녀는 복제인간입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죠. 내가 만들었고 내가 원해야만 무슨 일이든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음경은 작아지고 그녀는 두 손에 묻은 희고 끈끈한 정액의 냄새를 맡아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보면서 말이죠.
“신기하네요. 이런 건 처음 봤어요.”
“그만 좀 하고. 얼른 씻고 자.
“화났어요?”
세탁기 호스 입구에서 물이 샙니다. 호스를 살짝 빼서 보니 고무패킹이 없네요. 급수호스를 새로 끼워봅니다. 꽂고 나니 물이 새지도 않고 잘 나오네요. 그런데 기분이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욕실에서 들리는 물소리가 자꾸 귀에 거슬립니다. 벼리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를 천박한 노래를 흥얼거려요.
“모차르트 협주곡 21번틀까요?
“됐어. 나는 밖에 볼 일도 좀 있고······. 음, 뭐, 결코 고상하지 못한 노래지만, 기분 좀 내라고 하지. 밖에 볼 일도 좀 있고.”
“방금 들어왔잖아요.”
돌리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킥킥대며 웃습니다.
“내가 너한테 허락 맡고 나가야하나?”
“누가 그렇데요?”
“아버지한테 인사도 해야 하고 검은 늪 개구리들이 아직 남았는지도 봐야하고 또.”
“알았어요. 알았어.”
쪽팔리네요.
오랜만에 글라라를 만나러가야겠습니다. 그녀는 맨 아래층에 살고 있어요. 생전에 그녀는 신이 자신에게 나타나 자기의 심장 안에 자기가 있을 거라 주장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모두 그녀를 따르던 수녀들이 만들어낸 새빨간 거짓말이죠. 그녀들은 사후검시를 한다며 살아있는 글라라의 몸을 가르고 심장과 내장들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을 쑤셔 넣었어요.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