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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라이프 님의 서재입니다.

신을 죽이는 여러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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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라이프
작품등록일 :
2018.05.18 18:48
최근연재일 :
2018.05.18 19:2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308
추천수 :
21
글자수 :
81,078

작성
18.05.18 19:11
조회
61
추천
1
글자
7쪽

3. 철의 여인들

DUMMY

“누구야?”

“누구긴 여기 올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나?”

“어두워서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어. 불 좀 켜줄래?”

“불도 안 켜고 뭐해?”


그녀는 침대에 앉아 항문을 그려보고 있습니다. 그림체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는데요 너무 막 그리는 게 아닌가 싶네요.


“저걸 항문이라고 그렸어?”

“항문이 아니라 창문이야. 바보야.”

“바람도 좀 쐬고 그러지. 여기 틀어박혀서 우중충하게 왜 이러고 있어?”

“몰라서 물어?”

“미안.”


글라라는 바토리에게 물렸어요. 바토리가 피를 내준 처음이자 마지막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바토리가 글라라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는 모르겠어요. 본인이 만들고 본인이 싫어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됐고. 여기 앉아봐. 무슨 일인데?”


글라라가 서랍장에서 안경을 꺼내 씁니다. 그녀는 말하면서 메모를 하는 버릇이 있어요. 단 한마디라도 빼놓는 법이 없습니다.


“저기 앉아서 내가 오늘 일을 다 쓸 때까지 기다려봐.”


나는 책장에 꽂을 정도로 늘어나 바닥에 앞뒤로 쌓아놓은 일기장들 중 하나를 꺼내 펼쳐봅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도 썼습니다. 게다가 글도 참 맛깔나게 잘 씁니다. 그녀의 글을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 사랑에 빠진 노인은 한겨울의 꽃과 같아.”

“응?”

“포르투갈 속담이야.”


그녀가 녹음기를 테이블위에 올려놓습니다. 뭐든지 말해보라고 하지만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네요.


“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무슨.”

“누구야? 설마 나는 아니겠지? 넌 좋은 친구지만 내 취향이 아니야. 너무 게으르고 나약하고 성격도 모났어.”

“그냥 뭐하고 사나 궁금해서 온 거야.”

“그래? 잘사는 거 봤으니까, 가봐.”


나는 좀 우물쭈물 거리고 그녀는 ‘항문’ 아니 ‘창문’을 다시 열심히 그립니다. 다시 봐도 저게 무슨 그림인가 싶어요.


“글라라.”

“왜?”


그녀는 붓질을 멈추지도 뒤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합니다.


“내가 뭘 만들었는데 말이야.”

“뭔데 이리 뜸을 들이실까. 깡통로봇이라도 하나 더 만든 거야?”

“사람이야.”

“사람?”


글라라가 창틀을 색칠하려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당장 만나보겠다고 코트를 챙겨 입습니다. 평소에는 잘 꾸미지도 않더니 전신거울 앞에 한참을 서있어요.


“여자야.”

“그래서 뭐?”


한 번도 안하던 화장도 합니다. 하얀 분가루가 폴폴 날리네요. 어찌나 요란스러운지 머릿속이 다 얼얼해질 지경입니다.


“언제 끝나?”

“안 갔어? 얼른 좀 데리고와봐.”

“응? 나가지도 않을 거면서 코트는 왜 챙겨 입은 거야?”

“아, 참 내 정신 좀 봐. 립스틱을 어디다 뒀더라.”


글라라는 매우 분주합니다. 방 정리를 하면서 립스틱을 바르고 샤워를 하겠답시고 욕실에 쌓인 책들을 빼요. 내가 도와준다고 하는데도 듣는 시늉도 안합니다. 뭐 알아서 하겠죠. 저녁 무렵에서야 그녀가 호출을 합니다. 점잖을 떨고 앉았네요.


“반가워요.”

“방이 좀 지저분해서 미안해. 요즘 내가 좀 바빠서.”


책장에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습니다. 방바닥도 부드럽고 윤기가납니다.


“와 잘 그렸네요.”

“뭘 그렸는지 알겠니?”

“창문 밖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아요? 다들 행복해 보이네요.”


글라라가 슬쩍 견눈질로 저를 쳐다봅니다.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네요. 인간들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들은 나를 사이에 두고 수다를 떨어댑니다. 주로 벼리가 질문을 하고 글라라가 대답을 하죠. 글라라는 인간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들려줍니다. 주로 순수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에요. 아카시아잎사귀를 뜯으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뭐 이런 시답잖은.

나는 그녀들의 수다가 다 끝날 때까지 테이블 위에 놓인 녹음기를 내려다봅니다. 녹음기가 아주 생생하게 잘 돌아가고 있네요. 글라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그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내 아버지 하나님을 보기 전 까지만요. 괴팍하고 고약한 그는 글라라를 심하게 때렸어요.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는 이유로 말이죠. 사실 글라라는 첫째 형을 보고 있었습니다.

첫 째 형은 근엄한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고요. 눈시울이 붉어진 글라라는 감격에 젖어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첫째 형이 접시에 놓인 심장을 포크로 쿡 찍어 입에 가져가는 데도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었죠.


“저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요.”


벼리의 눈이 초롱초롱 해집니다. 글라라는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뒤 머리를 묶어주고 있어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말입니다.


“그 생각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야.”

“왜죠?”

“사소한 것 같아도 오고가는 정이 쌓이면 이곳에 있는 게 힘들어져.

“글라라는 여기에 있는 게 힘든가요?”


글라라는 목이 타는지 냉장실 문을 엽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밀폐 포장된 유리병을 바닥에 떨어뜨리네요. 그녀는 깨진 유리조각을 집어 들다가 말고 피를 핥습니다. 피에 취한 늑대처럼 칼날에 혀가 베이는데도 계속 핥고 또 핥아대요. 바닥이 깨끗해집니다. 입안에 유리조각을 손바닥에 다 뱉고 나서야 다시 의자에 앉습니다.


“미안. 많이 놀랐지?”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것보다 더 한 것도 많이 봤는걸요.”

“입술에 아직 남았어요.”


벼리가 글라라의 입술에 박힌 유리조각을 떼어냅니다.

글라라는 흡혈귀입니다. 바토리의 피를 물려받았죠. 피를 마실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려요.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공원에서 웃고 떠들고 뛰놀던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어요.”

“그래 아이들은 정말 천사야. 엉뚱하고 말썽꾸러기고 웃는 모습도 천진난만해. 나는 아이들에게 운동화 끈을 묶어주는 방법을 알려주고는 했어.”

“저도 알려주세요.”

“그래, 그렇게 할게. 잠깐만.”


글라라는 피 묻은 옷이 신경 쓰였는지 옷을 갈아입습니다. 세수도 하고 눈 화장도 다시 하고 난 뒤 운동화 끈이 잘 풀리지 않게 묶는 방법을 알려줘요.



“운동화 끈을 너무 꽉 묶으면 신발신기가 불편하니까. 처음에는 느슨하게 묶고 신발을 신은 다음에는 신발 벗기 좋은 상태로 묶는 거야. 기왕이면 보기 좋게 리본 모양으로.”

“와 예쁘네요.”


벼리가 리본모양으로 묶인 신발을 풀고 다시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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