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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짐승들의 정의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1.11.24 13:49
최근연재일 :
2022.04.22 14:3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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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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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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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7. 카파 매니지먼트.

DUMMY

그가 꺼낸 플라스틱케이스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푸른색 보석 같은 물체를 본 홍차이의 안색이 변했다.

이게 뭔지 자신도 귀가 있기에 들어 알고 있었다.


’이건 조직원이 실험대상으로 먹고 죽어버렸다는 바로 그 마약 아닌가?’

말로만 들었는데, 결국 나한테 까지도 임무가 떨어지는구나 싶었다.


"이걸 어쩌라는 겁니까?"


"이걸 양놈들에게 먹이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게 당신의 임무요. 인종별로 구분해서 남녀 정확하게 다섯 명씩 복용시키고 데이터를 수집하시오. 방법이야 간섭하지 않겠지만 먹이고 난 후부터 동영상을 찍는 것은 절대 잊으면 안 되오.

다되면 나에게 연락을 주시오. 명심할 것은 어떤 경우에도 증거를 남겨선 안 된다는 거요. 아시겠소?"


홍차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언제까지요?"


"기한은 정하지 않겠소. 단, 절대로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시오. 만약 발각될 경우 우리 중국정부는 이일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걸 명심하시오.

한 가지 알려준다면 과기국에선 한국에서의 과업을 실패로 결론지었다는 걸 말씀해드리지.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관계된 모든 자들을 제거하고 꼬리를 끊겠다는 거지?

"증거인멸."


"잘 알고 있군. 마지막으로 내가 이곳에 온 표면적인 이유는 자국민의 애환과 고충을 해결해주기 위해 방문한 거라는 걸 잊지 마시오. 부디 펑요우의 성공을 빕니다."


정나미 떨어지는 말에 얼굴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지요."


공산당은 언제나 그랬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지는 건 조직이아니라 아예 당적까지 없애버린 뒤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버리고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뻔뻔하게 밀어 붙이는 게 중국공산당의 민낯이다.


그렇다고 조직을 벗어날 수도 벗어날 방법도 없었다.

그만두겠다는 말이라도 꺼내는 순간 조직의 안전과 장구한 보존을 위하여 라는 해괴한 명분으로 제거명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책임은 조직원개개인에게 있다.


실패하면 잡히기 전에 차라리 죽는 게 편하지.

아닌 경우 가족까지 몰살시킬 놈들이니까.


그런데 이상한건 지금 눈앞의 이놈처럼 작전을 넘기는 놈이다.

당장 지시를 내리고 있는 이 놈도, 자기 자신이 장기판의 졸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상대적 우월감 때문인 걸까? 아니면 이것도 공산당 세뇌의 효용인걸까? 도통 알 수가 없다.


이런 놈들이 다 죽는다 해도 충원할 예비역은 과하도록 흘러 넘쳤다.

어린놈들은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마오에게 닥치고 충성했던 과격했던 홍위병처럼,

세계 어느 나라가 됐든 중국을 비방하는 단순한 말 한마디나 몇 줄 글에도 신애국주의 홍위병이란 놈들이 들고일어나 인해전술식 테러도 불사할 만큼 무모한 성향을 지녔기에 애국이란 이름으로 구해 쓸 인력은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흔했다.


"흐흥, 총 한자루만 쥐어줘도 시키는 대로 할 멍청한 놈들은 얼마든지 쌔고 쌨다는 말이지.

전엔 이런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자유로운 미국생활을 너무 오래한 탓일까?"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제1녹음실에 들어선 석환은 누군가가 부르고 있는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나왔다.


"누구지?"


석환을 쳐다본 음향엔지니어가 슬며시 웃었다.

"흐흐,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때? 죽이지?"


"누구야?"

바이올렛이라고 서부쪽 클럽에선 제법 알려지기 시작한 인디가수야.


"목소리가 상당히 특이한데?"


"흐흐, 전속가수로 끌어들일 생각인데 고집이 너무 세서 어쩔지 모르겠다."


낯선 여자의 노래를 말없이 듣고 있던 석환이 그동안 틈틈이 익혀놓은 솜씨로 옆에 놓여있는 키보드의 건반을 눌렀다.

잔잔하지만 가볍고 경쾌한 피아노의 멜로디가 개구쟁이처럼 통통 녹음실을 뛰어다녔다.

눈을 감고 멜로디에 집중하자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떠들며 뛰노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삼분가량 되는 곡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오! 좋은데? 그거.. 혹시, 새로 만든 곡이야?"


"아냐, 지금 금방 저 아가씨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나는 대로 눌러 본거야."


"목소리만 듣고 그런 곡이 떠올랐다고? 허,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네."

곡에 정신이 팔렸던 엔지니어가 녹음 스위치를 끄며 말했다.


"흐흐, 그 곡 이미 저장해 놨다. 필요하면 말해."

직업정신 하나 만큼은 정말 투철한 사람이다.


"글쎄, 써먹을 데가 있을까 모르겠네?"

조정실과 연결된 녹음실문이 열리고 조금 성숙해 보이는 금발의 미녀가 들어섰다.


"바이올렛, 인사해. 여기 이 사람이 요즘 핫한 싱어 송 라이터이면서 매직보이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석환. 알아두면 너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차가운 얼굴에 알 듯 모를 듯 도도한 미소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고개만 까딱이는 바이올렛을 본 엔지니어가 인상을 썼지만 여인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고집이 센 여인이라더니 엔지니어가 잘못 알았네, 잘못 알았어.


’고집이라기 보단 자신의 영역이 확실한 여자로구만.’

그러니 누구라도 자신이 정해놓은 반경 안에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게 당연하겠지.


석환은 녹음실을 나섰다.

바이올렛이 녹음을 마친 자신의 노래를 들어보기 위해 왔으니 비켜주는 게 맞는다는 생각에서다.


’시간변경이 됐으면 미리 연락을 해주면 얼마나 좋아.’

가만...? 그러고 보니 새뮤얼이 보이질 않네? 어딜 간 거지?

다운숫자가 100만을 넘겼다고 좋아하더니.. 혹시 그것 때문인가?

오면 뭔 얘기든 하겠지. 주영인 인터뷰 통과 됐나 모르겠네..


어차피 뭘 기대하고 보내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보겠다는 주영의 결심을 외면할 수 없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지금 학비를 자신이 부담하기로 결정했기에 기왕이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자신의 노래가 잘 팔리고 있어 학비문제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제2녹음실이란팻말이 붙어있는 녹음조정실로 들어가 전원을 올린 석환은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를 마친 석환이 조정실에서 녹음된 자신의 소리를 듣고 마음에 차지 않아 얼굴을 찌푸렸다.


녹음에 음공을 실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소리는 공기의 진동이지만 음공은 매질도 필요 없이 목소리에 기를 실어 내보내는 것이니 라이브와 녹음본이 틀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역시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녹음에 기를 실을 수 있는 방법... 정말 없을까? 역시 기술력의 한계인걸까? 아니면 내가 방법을 못 찾고 있는 걸까?’

고민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산으로 가서 시원하게 소리라도 가볼까? 가까운 곳에 산이 있긴 하지만 트레킹 족들이 많아 마음 놓고 소리 지를 형편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나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사라졌다.

게다가 이곳의 산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름난 계곡마다 가보면 커다란 바위가 페인트낙서로 얼룩져있어 경관을 망쳐놓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대로 아까운 시간만 보낼 순 없는데... 좀 멀더라도 킹스캐년이라도 가서 머리를 식히고 올까?


아직은 알려진 얼굴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하지만 새뮤얼은 언제나 조심하란 말을 잊지 않았다.

"조심해야해. 전에도 얘기했지만 혼자서 극성팬들을 만나면 대책이 없다고."


"알았으니 걱정 마셔."


"그러니 가능하면 혼자선 어디가 됐든 갈 생각 안하는 게 좋아."


"하하하, 이거야 정말이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신세로군 그래."


하지만 꿈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일이다.

저절로 노래가 흘러나왔다.


잔인하고 가혹한 세상 가엾은 작은 새의 날개를 꺾어버렸네.

날개 꺾인 새는 하늘을 날수가 없어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새들을 보며 꿈을 꾸었지.

꿈속에서나마 높은 하늘 날수 있어 기쁨에 겨운 새는 소리 높여 울었다.


잠에서 깬 작은 새, 머나 먼 하늘가만 꿈꾸듯 바라보았고

언제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꿈이 계속되길 기도했지만

무심한 하늘은 작은 새의 소원을 외면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절대로 포기할 수 없기에.

그래서 끊임없이 산을 오른다.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까이 가기위해서.


정상에 오르면 파란 하늘 손에 잡힐까 하얀 구름 손에 잡힐까.

비바람 몰아치는 지금 하늘밑 봉우리만 쳐다보며 산을 오른다.

한발 한발 꿈을 찾으려 힘겨운 발을 옮긴다.

가다 지쳐 쓰러진다 해도 꿈을 찾으러 올라야 한다.


그 누가 아무리 짓밟히고 가로막는다 해도 기필코 올라야 한다.

기어이 오르고야 말거다.

오늘도 내일도 꿈을 찾아 끝까지 오르고 말거다.


새장 속을 뛰쳐나와 자유를 찾은 독수리처럼 훨훨 날아오를 때까지.



새뮤얼은 석환이 흥얼거리는 소리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노래 좋네, 그거 조금만 더 가다듬고 녹음하자."


언제 왔는지 새뮤얼이 녹음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왜, 듣기에 괜찮았어? 근데 지금 멜로디 기억도 안 나는데?"


한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들어 올린 새뮤얼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흐흐, 걱정할 것도 많다. 네가 흥얼거리는 걸 이미 녹음했지."


"이거 듣는 사람에 따라선 좀 많이 우울할 텐데 괜찮을까?"


"감상은 듣는 사람의 몫이라는 거 아직도 몰라? 듣는 사람이 우울하든 쾌활하든 그걸 네가 왜 걱정하는데? 넌 니가 하고 싶은 노래만 하면 되는 거야. 말 나온 김에 내일 녹음을 해보자. 너 내일 괜찮지?"


새뮤얼의 말대로 오늘은 한곡 제대로 녹음 해보려고 온 건데,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서와 달리 이름을 알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지금에 와선 조금씩이나마 노래에 욕심이 생기고 있었다.

무너뜨리기엔 아직도 까마득하게 멀었어...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자. 이러다간 될 것도 안 되겠다.




홍차이는 자신의 터전인 클럽 화전花田에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잘못하면 터전이 날아갈 일이라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본부에선 한국이나 여기나 같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곳의 경찰이 강력사건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 안다면 함부로 작업을 치란 소린 못 했을 거란 생각에 짜증이 났다.


한국같이 경고용 공포탄이 들어있는 총이 아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일단 죽든가 말든가 쏴 놓고 사후에 잘잘못을 가리는 놈들이란 걸 본부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흔적이 남지 않는 약이라 할지라도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다.


’절대로 여기선 안 돼.’

자칫하면 차이나타운 네트워크 전체가 날아갈 일이다.


1906년 4월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후 골드 러시와 철도, 교량 건설을 위해 중국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이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된 차이나타운이다.

이미, 그 이전부터도 중국인은 들어와 있었지만 타운을 형성할 정도의 인력은 안 되었던 것이고.

샌프란시스코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자 상업지구인 차이나타운은 중국의 전통 의상, 중국 요리를 위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식료품점과 사원, 그리고 중식당 등이 한곳에 모여 있어 미국 속의 중국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중식당은 광동 지방 요리를 중심으로 쓰촨,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의 다양한 지방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디저트, 중국 차, 그리고 약재상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어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근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흘린 대가로 세워진 도시다.

본부의 명령이라고 해서 노동자들의 고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차이나타운에 위해를 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유색인종을 혐오하는 백인집단이 타운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홍차이로선 이곳에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벌어지게 될 일을 생각하면 괜한 걱정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간 청소부들이 달려들어 시체나 치우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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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0. 저격. 21.12.27 21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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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7. 범호. 21.12.24 225 6 11쪽
34 26. 범호. 21.12.23 226 5 11쪽
33 25. 각성. 21.12.22 248 7 12쪽
32 24. 강남 미드나이트. 21.12.21 229 5 11쪽
31 23. 강남 미드나이트. 21.12.20 220 4 11쪽
30 22. 강남 미드나이트. 21.12.18 231 3 11쪽
29 21. 강남 미드나이트. 21.12.17 232 5 11쪽
28 20. 정찬우. 21.12.16 228 3 10쪽
27 19. 정찬우. 21.12.15 236 2 10쪽
26 18. 클럽 메스티스 21.12.14 239 4 11쪽
25 17. 클럽 메스터스 21.12.13 241 6 13쪽
24 16. 클럽 메스터스. 21.12.11 247 5 12쪽
23 15. 클럽 메스티스 21.12.10 251 5 10쪽
22 14. 클럽 메스티스 21.12.09 259 4 11쪽
21 13. 클럽 메스터스 21.12.08 249 4 11쪽
20 12. 클럽 메스티스 21.12.07 256 5 11쪽
19 11. 클럽 메스티스 21.12.06 265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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