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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짐승들의 정의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1.11.24 13:49
최근연재일 :
2022.04.22 14:35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27,618
추천수 :
629
글자수 :
666,943

작성
22.04.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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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28. 복수의 길.

DUMMY

슈메이는 한순간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 것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여기가 어디지?’


게스트들의 노골적인 비웃음도 모르고 마스터란 놈에게 들이대던 테츠코의 행동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었다는 것까지 기억이 났다.


그냥 화가 나서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쓰러졌을 뿐인데 이 안개로 가득한 숲은 뭐란 말인가?

통증도 없고 몸엔 아무런 이상도 느낄 수가 없었다.

몸이 안 아픈 건 좋지만 도대체 누가 날 여기에 데려다 놓은 것이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하지만 이렇게 생생한데 꿈이라기엔 그렇잖아.


스스스슥.

뭐야? 소리가 들린다. 풀잎이 스치는 소리 같긴 한데. 확실해 뭔가 다가오고 있어.

슈메이는 불안한 마음에 도망가려 했지만 가위에라도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헉!"


"흐흐, 뭘 그렇게 놀라는 건가?"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에 흐린 눈썹 밑으로 동굴 속같이 뚫린 눈, 칼날 같이 날카로운 콧대에 피 칠이라도 한 것같이 붉은 입술을 가진 나이를 짐작하기조차 어려운 사람이 자신의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람이 맞긴 한 건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복장이 다테보오시까지 머리에 뒤집어 쓴 신토의 신직복장인 가리기누다. 그럼 이자는 신쇼쿠?


아무리 신쇼쿠라 해도 자신에게 말을 놓다니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함부로 못마땅한 기색을 비춰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참았다.


"가, 갑자기 눈앞에 사람이 나타나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호, 그래? 여기서도 놀랄 일이 있단 말이지? 역시 아직은.. 이라는 건가?"


"여기가 어딘데?"


"흐흐, 어디긴.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것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지."


"뭐! 그게 무슨 말이야?"


"흠, 돌아가는 게 싫다면 말해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모르는 게 좋아."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슈메이는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움츠려 들었다.

하지만 정말 궁금한 걸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누가 날 여기다 데려다 놓은 건지 자네는 알고 있나?"


"하하하, 이런 바보 같은 인간을 봤나. 누구긴 누구겠나? 바로 나지."


"그대가 날? 나를 데려온 이유가 뭔가?"


"그대로 방치해 뒀다간 죽고 말아버릴 자넬 살려주기 위해서지."


슈메이의 얼굴에 짙은 의혹의 빛이 서렸다.


"날 살려준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넨 신이 보호하는 건드려선 안 될 인물을 건드린 죄로 꼼짝 없이 죽을 운명이었다네. 하지만 그 옛날 내가 자네 조상과 한 가지 약속을 한 사실 때문에 이렇게 무리를 해 자네 앞에 나타나게 된 거지."


"신이 보호하는 인물이라니, 그게 누구란 말인가? 게다가 조상과의 약속이라니, 그게 뭔데?"


사내는 슈메이의 말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그자를 싶어도 자네가 직접 그자에게 손을 대선 절대 안 돼. 정 죽이고 싶다면 차라리 이나가야의 렌을 찾아가서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이나가야의 렌이라니?"


"이로서 난 또 하나의 죄를 짓게 됐지만 약속을 지켰으니 후회는 없네."


"약속이라니? 약속을 지키다니, 누구와 말인가? 그런데 내 몸이 안 움직이는데 이건 당신 짓인가?"


"하하, 바보 같은 소리. 머릿속에 혈관이 터졌으니 안 움직이는 게 당연하지."


"뭐라고? 핏줄이 터지다니.. 도대체 뭐라는 거냐?"


"곧 낫게 될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리거라."


"뭘 기다리라는 건가⁉"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상대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슈메이는 자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기분 나쁜 감각을 느꼈다.


"어! 이, 이게 뭐야⁉"


슈메이는 곧 자신의 목을 감고 눈앞에 머리를 드러낸 먹물같이 새까맣고 조그만 뱀을 볼 수 있었다.

슈메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혀를 날름거리던 뱀은 곧 입안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기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헉!

끔찍하고 징그러운 느낌에 어떻게든 뱉어내고 싶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컥, 컥. 크억.


어디선가 메아리치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그렇게 애쓸 것 없어. 그냥 받아들이면 편해질 거야. 그놈이 바로 널 고쳐줄 귀여운 놈이니까."


"그,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귀찮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설명해줘도 네 머리론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그러니 설명을 해준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 어쨌든 내가 알려준 이름을 잊어버리지 마라. 기소에 있는 이나가야의 렌."


시골집에 사는 렌이란 말인가? 어느새 안개는 사라졌고 자신의 몸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가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돌아가야지."


어디선가 느닷없이 나타난 거대한 손이 자신을 밀었다.


절벽에서 끝없이 떨어지던 슈메이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상체를 세웠다.


"꾸, 꿈이었단 말인가?"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어 대던 슈메이의 귀에 거슬리는 경보음이 들렸다.

누가 저 소리 좀 안 들리 게 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넓은 병실에 자신 혼자만 있었다.


띡 띡 띡 띡.

바이탈사인 감시모니터가 불길한 소릴 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슈메이는 자신의 가슴과 머리에 붙어있는 패드를 거칠게 잡아 뜯었다.

몸이 아무 이상 없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으니..."


문이 열리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의사와 간호사가 뛰어들어 왔다.


"어! 어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서있는 환자를 본 의사의 눈에 지진이 일어났다.

자발 호흡도 불가능해 인공호흡기로 가까스로 숨만 붙여 놓고 있던 환자가 스스로 일어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눈을 비벼보았지만 꿈이 아니었다.


"도,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회생 가능성이 전무했던 환자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병원에 퍼졌다.


"그래서 나더러 병원에 더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사사키 병원장은 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이영감이 누군지 잘 알고 있는 탓이다.

차라리 죽었으면 문제가 없지만 일어나 앉았다는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인간이었다.

극우조직의 태두인 영감이 그놈 돌팔이더라고 말 한마디만 뱉어내면 병원이 문을 닫아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를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좀 더 머물고 계시면서 만약을 위해 철저하게 검사를 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네 눈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는가 보군."


원장의 몸이 학질이라도 걸린 것처럼 사정 없이 떨렸다.


"그, 그런 게 아니옵고.. 다, 다만 안전을 위해 드린 말씀입니다."


"다 필요 없네. 내 몸은 자네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슈메이는 꿈속에서 봤던 신쇼쿠가 자신을 살렸다는 것을 믿었다.

기소에 있는 이나가야의 렌이라고 했지? 어떻게든 찾아가 봐야 해.

정말로 시골집을 말하는 건지 사람의 성인지 헷갈리지만 기소로 가보면 알게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것이 기약 없는 고행 길의 시작이 될 줄은 미처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석환이 열어본 초청장엔 츠미코의 사진과 자신이 찾아가야 할 주소만이 적혀있었다.


"이런 씨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멘트만 흘러나왔다.

석환은 다시 호텔 밖으로 뛰쳐나가 택시를 잡아 탔다.


"요츠야(四谷)로 갑시다!"


납치된 것이 확실한지 확인이 먼저다.

내 잘못이다. 애초부터 내 몸 조금 편하자고 신세를 지는 게 아니었는데.. 비겁한 놈들.

어떤 놈이 됐든 곱게 죽이진 않겠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입안에 쓴 물이 고이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웩.


하, 씨발. 생각 없이 저질러버린 짓에 대한 대가인건가? 어쩌자고 일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버린 거지? 월화도 만약을 위해 숨겨놓은 주제에.. 닮은꼴이라는 이유 하나로 멀쩡한 여자를 위험 속으로 끌어들이다니 나도 어지간히 이기적인 놈이었구나.


"후.. 좋아, 나 때문에 당한 거라면 세상 없어도 구해내야지."


이 주소로 찾아오라는 말이지? 얼마든지 찾아가주마.

겐요샤, 어디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얼굴 좀 보자꾸나.

석환의 몸에서 피어오른 살기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내비를 켜고 도착한 곳은 기억에 남아있던 곳이었다.


"미친! 여긴 전에 왔었던 신사가 아닌가?"


자신 때문에 파손됐던 대문도 어느 틈에 처음과 다름없이 복원돼 있었다.


차로 들이받아 틀림없이 박살이 났었는데 말이지.

확실히 이상한 곳이야.. 여기는 꼭 이 세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지.

마르마타 유적지 미궁의 어둠 속에서 벌어졌던 싸움이 생각났다.

그때 같은 어둠은 없지만 어쩐지 끈끈하게 달라붙는 것 같은 기분 나쁜 공간이야.


끼이익.

낡은 대문을 힘주어 밀자 소름끼치는 소음을 내며 열렸다.


"흐흐흐, 이번엔 뭐가 튀어나오려고 이러는 거냐?"


대문 안엔 전과 변함없이 잔뜩 기울어진 채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건물이 여전히 버티고 서있었다.


’역시 이곳은 이상해. 저 상태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서있는 걸 보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슈겐도修験道의 수행자인 야마부시山伏처럼 머리에 도낑ときん이라 부르는 작은 포제布製로 만든 두건兜巾을 쓰고 눈같이 하얀 옷을 입은 도무지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남자가 일본인들이 こんごうづえ콩고우즈에라 부르는 금강장金剛杖을 들고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저 작은 두건의 검은색은 번뇌를 12줄의 주름은 12인연을 나타내는 거라고 했던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안엔 하나도 정상적인 게 없군.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재빠르게 훑어본 야마부시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어쩐지 사람처럼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짐승의 얼굴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이건 또 뭐냐.


"날 불러낸 게 당신인가?"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이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인가?

야마부시는 대답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츠미코는 어디에 있나?"


야마부시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검지를 들어 목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당황한 석환은 자신이 잘못 이해한 건 아닐까 어리둥절했다.


"뭐야, 죽였다고⁉ 정말인가? 이런 미친놈들이 있나!"


정말 미친놈들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식으로 일부터 저지르고 보는 놈들은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여긴 전쟁터도 아닌 일본이 아닌가?


무식한 다에시들도 이런 식으로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놈들도 원하는 게 있을 땐 협상이라는 건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죽였다는 시늉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이, 짐승 만도 못한 새끼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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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119. 복수의 길. 22.04.09 119 4 11쪽
126 118. 복수의 길. 22.04.08 128 4 11쪽
125 117. 복수의 길. 22.04.07 125 5 11쪽
124 116. 복수의 길. 22.04.06 13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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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103. 복수의 길. 22.03.22 15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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