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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짐승들의 정의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1.11.24 13:49
최근연재일 :
2022.04.22 14:35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27,627
추천수 :
629
글자수 :
666,943

작성
22.03.2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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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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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05. 복수의 길.

DUMMY

새카맣게 타버리고 재만 남아버린 가슴 속에 원한만 간직하고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았던 다리다. 병신이 된 다리를 볼 때마다 죽이고 싶은 놈들을 떠올리며 이를 갈고 살아온 게 삼십년이 다 되간다.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희망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믿음을 갖기엔 눈앞의 청년이 너무 어려 보인다.

그게 대술까? 다리만 움직일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인가? .....도와줄 수 있나? 아, 아니지. 도와주겠나?"


"가시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당연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여봉주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테러를 당하고 경찰병원에서 지내는 1년 동안 받았던 수모가 떠오른 때문이다.

명령도 없이 쓸데없는 객기로 단독행동을 벌이다 다친 사람이라는 소문을 누군가 퍼트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의료진들도 치료에 성의가 없었다.

수술을 했지만 다리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장시간에 걸쳐 여봉주와 얘기를 나눈 석환은 몸보다 마음이 지쳐있었다.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걸 알아버렸다.

납치됐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살아계실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생겨버렸다.

그러자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선 안 돼. 자그마치 25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급할 건 없어 차분하게 한 놈 한 놈 조지고 올라가다보면 대가리가 기어 나오겠지.

설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될 거다.


하루저녁을 여봉주의 집에서 보낸 석환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말도 없이 사장실로 들어온 석환을 본 방장이 눈만 끔벅 거렸다.


"어, 어.. 석환일 닮은 넌 누구냐?"


"허, 얼마나 지났다고 그새 내 얼굴도 잊어버린단 말입니까?"


"너, 미국에 있어야 할 놈이잖아. 도대체 언제 온 거야?"


"그저께요."


"미친놈. 그런데 어디가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


"하하, 그게 볼일이 있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대한민국을 다 뒤져도 아는 놈이 거의 전무할 석환에게 볼일이 생겼다니 그야말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볼일이라니? 무슨 볼일?"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그런데, 계속 여기 계속 세워놓으실 겁니까? 시간됐는데 밥 먹으러 안가요?"


"어, 그래 가야지, 어여 가자."


그래, 앞으로 도움 받을 일도 있을 거고, 이런 사람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겠나.


자신이 저격을 받았던 자리를 지나가자 감회가 새로웠다.

그일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고 이제는 복수의 실마리까지 잡았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살기를 줄줄 흘리고 있는 거냐?"


"내가 그랬나요?"


"그래, 어지간한 놈들은 네 눈빛 보고 오줌까지 지리게 생겼다."


"배고파요. 식사부터 하고 나서 말씀드리지요."


월화가 없다는 것만 빼놓으면 이화는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놀란 눈으로 석환을 맞이한 이화의 식구들이 죄다 나와 한 번씩 얼굴을 보고 들어갔다.

오랜만에 맛보는 제대로 차려진 밥상이라 반찬한가지 남기지 않았다.


이제 식사도 마쳤으니 궁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방장의 호기심을 채워줄 시간이다.

석환은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천천히 풀어놓았다.

안쓰러움보다 분노를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동화캐피탈이란 이름은 나도 들어봤지. 가진 것 없는 서민들 등골 빼먹는 양아치 소굴이라더라. 그럼 시작은 거기부터 파들어 가야겠지?"


"나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 동화의 나회장이란 놈 야비하기론 한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놈이라더라. 거기다 겁은 많아서 경호부대까지 만들었을 정도라고 하니 조심해야한다."


"네, 그래야지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겁날 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내기 전까진 죽이면 안 되지. 그래도 죽이지만 않으면 고통을 주는 것쯤은 괜찮겠지.

본명인지 모르겠지만 등기부등본에 기재돼 있는 이름은 나종수가 맞다.

심부름센터에 의뢰한 결과를 받아 읽어보는 중이다.


‘동화캐피탈이 입점 돼있는 건물이 바로 이놈거란 말이지.’

60이 다돼가는데 결혼도 하지 않았다고? 그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거겠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어쨌든 지금은 홀몸이란 말이지.

어차피 김상욱에 대한 신상정보는 좀 더 시간여유를 달라고 했으니 내일은 동화캐피탈 구경이나 가볼까?


석환이 나회장과 김상욱의 조사를 심부름센터에 맡긴다고 하자 펄쩍 뛴 것은 방장과 주사장 이었다.

그놈들을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기려는 거냐고 거세게 반대하고 나섰다.


"그놈들 이중으로 돈을 받아먹으면서 정보를 팔아먹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어쩌자고 그런 놈한테 조사를 맡기는 건데?"


하지만 석환은 위험한 일을 두 사람에게 맡길 수 없었다.

보통 놈들이 아닌 게 분명한데 괜히 어설프게 뒤를 캐다 걸리면 두 사람의 생활터전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들도 이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석환의 반대에 부딪쳐 수긍하고 물러섰다. 전직이라지만 경찰청 수사국장이 결부된 일이고 그 위로 누가 더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필요하면 형님들한테 부탁드릴 테니까, 지금은 모르는 척 하고 있어요. 그게 제 일을 도와주시는 겁니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놈들한테 뒤통수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해.

너도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라는 건 잘 알고 있잖아."


물론 학교에 들어온 놈들이 자랑삼아 떠드는 무용담을 귀가 아플 만큼 들어 알 만큼 알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부부가 쌍으로 바람피는 현장을 잡아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얼씨구나 하고 의뢰를 받아들였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남편보다 먼저 마누라의 뒤를 밟았지. 그랬더니 아니나 달러, 대낮부터 젊은 놈팽이하고 뒹굴고 있는 현장을 딱 잡았지. 그다음엔 남편을 뒤쫓아 봤더니 도낀 개낀이더만 다 늙어 빠진 놈이 어린 비서년하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더라고."


"그래서?"


"우선은 마누라를 먼저 만났지. 그러구 나서 남편의 사진을 보여주는 거야. 당연히 팔짝팔짝 뛰는 년 한 테서 의뢰비를 받아냈지, 그다음이 중요해.

슬그머니 마누라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이 사진은 어떻게 할까요? 이건 좀 비싼데요, 사모님.

자신의 사진인 걸 알면 대부분의 여자는 순식간에 조용해져. 왜냐? 자신의 치부가 남편한테 넘어갈까 봐 그러는 거지. 그렇게만 하면 의뢰비 보다는 가외수당이 더 큰 거라니까.

그다음엔 남편한테 가서 마누라의 사진을 보여주고 똑같이 흥정을 붙이는 거지. 그다음엔 마누라에게 했던 것처럼 꼼짝 말고 니 사진 값도 내놔! 하는 거라고, 이제 알겠냐? 흐흐흐."


들었던 것처럼 상도의라곤 일절 없는 도둑놈들이 바로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는 놈들이란 걸 석환도 잘 알고 있었다.


"하하하,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의뢰를 받은 놈들은 행여 꿈속에서라도 날 만날까 겁을 내고 있을 겁니다. 허튼짓? 죽는 게 무서워서 절대 못 합니다."


성심 심부름센터.

간판에 써져있는 이름이다.


틀림없이 자신의 이름 이한일이 새겨져 있는 자기로 만들어진 묵직한 명패와 책상까지 한꺼번에 관통해 박혀있는 볼펜을 노려보는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이거 사기는 아니지?"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니 사기일 수는 없었다.

책상에 박혀있는 것 또한 틀림없이 자신이 쓰고 있던 플라스틱 볼펜이 맞는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걸까?"


눈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환상인지 뭔지 몰라도 이상하게 볼펜을 쳐다보고 있으면 저 빌어먹을 볼펜이 자신의 몸을 파고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남들이 들으면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지 몰라도, 실제로 통증을 느끼기까지 했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기억력이 좋지 않으면 이 짓도 못해 먹는다. 그래서 기억력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했었는데 불과 며칠 전 자신을 찾아왔던 놈의 얼굴이 제대로 떠오르질 않는다는 게 더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만약을 위해 실내에 장치해 놓은 카메라에도 얼굴이 잡힌 게 없었다.


"미치겠네, 귀신한테 홀린 것도 아니고...

후, 일주일 안으로 나종수와 김상욱의 모든 걸 알아내라고 했지?"


물론 자신이 둘 다 아는 인간들이다.


"설마.. 그 귀신 같은 놈이 뭘 알고 온 걸까?"


그 시간 석환은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귀를 파고 있었다.


"근데, 어떤 놈이 내 얘길 하나 왜 이렇게 귀가 가려운 거야?"


짜장면 한 그릇을 뱃속에 밀어 넣고 식곤증에 소파에 앉아 낮잠이나 즐기려고 하고 있던 중에 문이 열렸고 눈을 떴었지.


"누구요?"


"누구긴 일 맡기려고 온 사람이지."


"어? 혀가 짧네?"


피식.

"손님이 왕이라는데 그럼 왕이 존댓말 할까?"


"허...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구나?"


"일을 맡기는데 그걸 꼭 알아야 하냐? 넌, 널 아는 사람들 한테서만 일을 맡는 모양이지?"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을 봤나! 지금 나하고 말장난 하자는 거냐?"


대꾸도 없이 연필꽂이에서 볼펜을 꺼내든 어린 놈이 자신의 눈을 쳐다보면서 명패에 볼펜을 그냥 찔러 넣었다.


"어, 어? 언제 명패를 두부로 바꿔친 거야?"


가, 가만 책상은 두부로 만들 수가 없잖아.

놀란 머리가 깨어나자 잠이 싹 달아나고 본능적으로 벌떡 몸이 세워졌다.


입에선 극도의 친절 멘트가 흘러나왔다.


"손님 어서 오십시오. 성심 심부름센터 소장 이한일입니다."


"이제 좀 대화할 준비가 됐군."


"그렇습니까? 말씀만 하십쇼. 뭐든 다해드립니다."


"싫다고 해도 해야 할 거야. 사장머리가 명패만큼 단단하지 않다면 말이지."


자신을 쳐다보는 눈깔이 어딘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딱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까, 나종수와 김상욱 이것들 신상부터 동선까지 모든 걸 다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해."


이한일은 이름을 듣는 순간 동명이인이거니 싶었다.

희한하게 내가 다 알고 있는 이름들이네. 글마들 이름이 이렇게 흔했나?


"단 하나라도 빼 먹는 게 있으면 저 볼펜이 네 머리를 연필꽂이로 사용하게 될 거야.

알아들었지?"


......


"어쭈? 대답이 늦네?"


살기 가득한 목소리에 등골을 따라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아닙니다!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 틀림없이 해내겠습니다!"


"그래. 지금까지 네가 가지고 있던 것보다 더 자세한 자료가 필요하다는 건 강조하지 않아도 알겠지?"


"무, 물론입니다."


‘확실해, 내가 누군지 알고 온 거야.’


"흐흐흐, 그럼 일주일 후에 우리 서로 웃는 낯으로 보자고."


귀신이 떠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쿵.

볼펜을 뽑아보려고 손으로 잡았을 때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이 반듯하게 뒤로 넘어갔다.


꿈속에서... 지옥 일주를 했었지.

갑자기 오한이 들고 사시나무 떨듯 온몸이 떨려왔다.


내 생각대로 귀, 귀신이 맞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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