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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얼 님의 서재입니다.

짐승들의 정의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업경대
작품등록일 :
2021.11.24 13:49
최근연재일 :
2022.04.22 14:35
연재수 :
137 회
조회수 :
27,630
추천수 :
629
글자수 :
666,943

작성
22.03.23 12:25
조회
141
추천
5
글자
11쪽

104. 복수의 길.

DUMMY

띵. 띵. 띵.

「손님여러분 편안한 비행 되셨습니까? 이 비행기는 잠시 후 대한민국 인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좌석벨트를 매주시고.....」


착륙안내방송을 듣고 나서야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에 몰두해 있느라 기나긴 비행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다.


번잡한 입국장안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틈 사이에 갈길 잃은 사람처럼 석환 혼자 쓸쓸하게 서있었다.


그때 옆으로 다가온 백인이 석환에게 말을 걸었다.


"마스터 장? 만나서 반갑습니다."


"누구? 당신은 누굽니까?"


"애덤 부국장님에게서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고 미국대사관에서 나온 클라크입니다.

우선 가시면서 얘기하시지요."


"그럽시다."


외교관 넘버를 단 차량에 올라타고 시내로 들어오자 비로소 낯익은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우선 이 자료를 보시지요."


"뭡니까?"


"방화범들의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어디서..?"


"최초 수사를 맡았던 강남경찰서문서보관실에 보관돼 있던 수사조서에서 뽑아낸 겁니다. 아마 수사를 맡았던 형사에게 외압이 있었던 모양인지 중간에 조사가 중단되었었습니다."


이런 증거가 남아 있는데도 수사가 중단되었단 말이지.


"담당 형사가 누구였는지 조서에서 이름이 지워져 있던데 이유를 압니까?"


"조사를 담당했던 형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테러요?"


"그렇습니다. 사건조사도중 테러를 당해 더 이상 근무가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퇴직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어느 정도기에..?"


"양쪽 무릎 관절이 다 박살났습니다."


으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개자식들. 멀쩡한 사람을 앉은뱅이로 만들어 놨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그분 주소를 알 수 있겠습니까?"


"네, 여기 모든 자료를 다 백업해 뒀으니 이대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클라크가 자신이 들여다보던 테블릿을 건네주었다.


"고맙단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요."




석환이 간매리에 온 것은 초저녁 이었다.

시골이란 게 막상 할 일이 없는 것 같아도 언제나 쉴 새 없이 바쁘다는 걸 눈으로 봐온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모내기 준비로 바쁜 지금 같은 시기엔 어린아이들조차 일손을 거들어야 할 정도로 바빴다.

그러니 저녁이 아니면 만나보기 어려울 것이란 계산에서 일부러 시간을 맞춰 온 것이다.


갈매마을회관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선 골목 안쪽 막다른 집이라 했으니 바로 이 집인가? 문패는 없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환은 대문이 열려있는 안마당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쪽마루 앞에 전동 휠체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잘 찾아온 것 같기는 한데..


"계십니까?"


"누구요."


"여봉주 형사님을 만나려고 찾아온 사람인데 계십니까?"


"흐흐, 형사라니? 경찰노릇 그만 둔지가 언젠데. 그래 날 찾아온 당신은 누군데?"


"강남...구룡마을 화재사건의 피해자라고하면 기억하실 수 있을까요?"


"구룡마을이라... 뭐⁉ 지금 구룡마을 이라고 한 게 맞는 거요?"


"그렇습니다."


"미친, 너 어디서 뭘 바라고 날 찾아온 놈이냐!"


느닷없이 욕을 먹은 석환은 멍청하게 서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왜, 벌써 2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인데 언놈이 내 목줄을 끊어놓으라 보내던?"


"허, 아무래도 내가 피해자라는 게 믿기질 않는 모양이군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곳에서 내가 만난 피해자 중에 너같이 젊은 놈은 없었다!"


"젊은 부부와 갓난쟁이는 있었지요."


여봉주는 먼 곳을 보는 눈이 됐다.


"그, 그래. 애기를 끌어안고 불에 탄 젊은 애 엄마는 있었지."


석환이 슬그머니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그 애기가 바로 접니다. 이 사진 속의 아기가 바로 저고요. 이제 제가 찾아온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사진을 쳐다보고 난 여봉주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석환을 바라보았다.


"저, 정말인가? 이, 이 사진 속의 아이가 정말 자네냐고?"


"그렇습니다.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다 보니 바로 형사님께서 저희 집 사건을 수사하다 테러를 당했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구한테 들었단 말인가? 그때.. 그 내막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사고를 당해 사라졌는데."


"얘기는 술이라도 한잔 드시면서 하시겠습니까?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에 보니까 정육식당이 있는 것 같던데요."


"....좋아, 자네가 산다면."


"그럼 가시지요."


고기도 없는 진열장이지만 정육점답게 붉은 불을 켜놓고 손님이라곤 하나도 없는 식당을 주인 혼자 하품을 하며 지키고 있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주인장이 휠체어를 탄 채 문을 밀고 들어오는 여봉주와 뒤따라 들어오는 젊은 사람을 보곤 반색을 하며 맞았다.


"어이구, 형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어, 손님이 찾아와서."


"그럼, 늘 드시던 걸로 차려드릴까?"


석환이 빠르게 주문을 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여기서 제일 좋은 등심으로 주십쇼."


주인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하하, 알겠습니다."


석환이 넘치도록 따라주는 술잔을 받은 여봉주는 단숨에 들이켰다.

피어오르는 숯불화로의 열기에 익어가는 고기가 고소한 냄새를 뿜어냈다.

하지만 과거에 기억에 파묻혀 술잔만 비울뿐 누구도 고기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연거푸 술잔을 비운 여봉주가 입을 열었다.


"그래, 누군가 한번쯤 찾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어. 맞는지 틀리는지 지금도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 맞다 치고 그때의 그 애기가 이렇게 커서 내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을 정말 믿을 수가 없구만."


"제가 궁금한 건 그때 형사님께 테러를 저질렀던 놈들이 누구였느냐 하는 겁니다."


여봉주는 기억을 되살리려는지 느직하게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그 얘기부터 해야겠지. 날 테러한 놈들은 전부 6놈 이었는데 그중에 틀림없이 아는 얼굴이 하나 있었지.


제법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때 난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어서 조그만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다시 한 번 화재현장을 돌아보고 있던 길이었지.

어두운 곳에서 후레쉬 불빛으로만 현장을 보자니 답답하더군. 안되겠다 싶어 밝은 날 다시 올 요량으로 골목을 나서던 길이었네."


여봉주는 좁은 골목길을 가로막고 선 괴한들에게서 살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뭐하는 놈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찰이란 건 알고나 길을 막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흐흐, 병신. 짭새노릇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당연히 알지 모를까."


알고 길을 막았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일이 좋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총기를 휴대하고 나오지 않은 게 후회스러웠다.


"네놈들 뭐 하는 놈들이냐?"


"말하는 싸가지하곤, 뭐 하는 놈들이긴 짭새 잡으러 온 분들이지."


어둡긴 하지만 어디선가 틀림없이 본 놈 같은데..?


"이 화재 사건이 니들과 관련이 있는 거냐?"


"흐흐흐, 그렇다면?"


"이집 주인 남자는 어떻게 됐는지 말해줄 수 있나?"


"흐흐흐, 벌써 요단강 건넜겠지."


뭐냐, 그럼 이놈들은 집주인의 생사를 모르고 있다는 거 아냐? 그럼 집주인이 다른 놈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건가? 이유가 뭐지?


"야, 이 새끼들아! 시간 없다,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은퇴 시켜드려라."


우와악.

망치를 치켜세운 놈이 희한한 기합 소릴 내며 휘둘러 왔다.


"그때 봤어. 내가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놈은 틀림없이 명동의 사채업자인 나회장 똘마니였어.

그리고 싸움 끝에 병원에서 깨어났을 땐 양 무릎이 박살 났다는 소릴 들었지.

내가 그놈 얼굴을 기억하게 된 건 나회장에게 돈을 빌려 쓰고 갚지 못해 장기를 털려 죽은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건을 맡아서 나회장의 뒤를 캐다 알게 된 놈이었지. 난 그래서 나종수란 놈을 유력한 용의자로 짐작하고 있네."


"그런데 그놈들은 무슨 이유로 형사님께 테러를 저지른 거지요?"


"아마, 나회장 "선에서만 수사가 끝났다면 별 문제는 없었을 거야. 문제는 조금씩 파고들어가다 보니까 나종수란 놈과 배후권력자 간에 검은 커넥션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지.

내 힘으론 안 되겠다 싶어 본청 수사국장에게 직보를 했더니 바로 감사관실에서 나서더군. 그리고 손을 떼라는 압력이 들어왔고, 그 며칠 후 화재 현장에 다시 한 번 들렸다가 테러를 당했던 거지.

얼마나 많은 놈들이 그 사건에 결부 돼 있는지 나도 미처 알아 내질 못했어. 그 전에 이 꼴이 나고 말았으니까... 그게 어느새 25년도 더 지난 얘기구만."


석환의 눈빛이 마치 바늘로 살갗을 찌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에 여봉주는 흠칫 몸을 떨었다.


"음... 그때 당시 경찰청 수사국장의 이름이 뭐였습니까?"


"김상욱 총경이었지."


김상욱.. 석환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놈들이 결부돼 있는 거냐.

단순히 땅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원인이 있는 걸까.

술을 한입에 털어 넣은 석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명동의 나회장이란 인간은 지금도 사채업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 사채업은 안 하는 거로 알고 있네. 그렇다고 해서 돈 놀이를 접었다는 게 아니고 명동에 동화캐피탈이라는 회사를 차려 바지 사장을 앉혀 놓고 뒤에서 전주 노릇만 하고 있는 거지."


"사채업자라더니 원래부터 그만한 재력이 있었던 놈인가요?"


"나도 그게 이상해. 그만한 재력이 있었던 놈은 아닌데..

뒷골목 양아치출신으로 대가리가 조금 굵어져서 조폭에 가담했다가 사채업자로 돌아선 것도 이상한데... 그 사건이 있은 뒤로 갑작스럽게 회사를 차렸단 말이지.

그렇게 허접했던 놈이 돈이 어디서 났을지 궁금해서 파고들다 이 꼴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말이야. 그때 기록해 놓았던 수사수첩이 지금 나한테 있으니 가져가도록 하게. 나에겐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 돼버렸으니까.

흐흐흐,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주려고 여태껏 보관하고 있었던 모양일세."


닳고 닳은 수첩의 표지를 보니 얼마나 한이 맺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집안일 때문에 장애까지 입게 된 책임감 있는 경찰이었다면 도움을 주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은 게 있다면 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음.. 미국엔 VAMC(Veterans Affairs Medical Center)라는 병원이 있습니다.

상이 군인들을 위한 재향군인병원정도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장애 치료에 특화된 병원이니 의족이나 의수 기술로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나 있습니다. 그곳에 가셔서 치료를 받아볼 생각은 없으십니까?"


뜬금없는 석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혼란스런 머릿속을 정리한 여봉주가 가늘게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내 다릴 치료해주겠다는 말인가?"


"치료가 될지 안 될지 나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아 보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치, 치료비는?"


"그런 건 걱정하지 마시고 가실 수 있느냐 없느냐만 결정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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