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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승 님의 서재입니다.

천무제일존(天武第一尊)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완결

김한승
작품등록일 :
2022.11.19 12:46
최근연재일 :
2023.05.06 09: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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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31,965

작성
22.11.2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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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18

DUMMY

노인은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마도 생각을 정리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잠시 후, 노인이 눈을 뜨는 순간 그 인상이 확 변해 있었다. 방금까지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평범한 촌로의 모습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 노인의 얼굴에는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매서운 눈빛과 함께 찔러도 피 한방을 흘러내리지 않을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내가 직접 여기까지 온 것은 자네가 두려워서가 아니야. 궁금해서 온 거야. 어떤 정보들이 얼마나 외부에 유출됐는지가 궁금해서 말이야. 자네도 바보가 아니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천무신궁이나 천무회에 관한 정보가 유출되는 것에 가장 민감한 것은 바로 우리 회주들이라네. 천무회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가장 꺼리는 것도 바로 우리 회주들이고. 그래서 온 거야. 직접 확인하려고. 그리고 궁주와 사대천군들도 오랜만에 만날 겸해서 말이지.”

구양위는 눈을 감은 채 상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너무 유치해. 내 나이를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자네가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에 이미 천하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였다네. 그런 내가 자네의 무공이나 위세 따위에 기가 눌리고 두려움에 떨 것이라 생각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이야.”

충분히 표정이 변할 법도 한 내용이었지만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지, 구양위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이 그저 묵묵히 경청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물론 자네에 대한 소문이 헛소문이 아니라면 나보다 무공은 강하겠지. 하지만 무공이 전부가 아니야. 무림에서조차 가장 힘센 놈이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네. 내 말 새겨듣고 앞으로는 어쭙잖은 힘자랑이나 권세자랑은 자제해줬으면 좋겠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끝났네. 이제 자네 차례야.”

번쩍.

드디어 구양위의 두 눈이 뜨였다. 방금 전 노인에 비하면 눈빛이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긴, 평상시 눈빛이나 표정이 원래 냉혹하게 보이는 인물이긴 하다.

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말들은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방금 끝난 노인의 말들도 충분히 도발적이었지만, 지금 흘러나오는 말들에 비하면 아주 공손한 편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봐, 늙은이!”

“······.”

“지금부터 내가 너에게 하는 말 똑똑히 기억해 뒀다가 다른 회주 놈들에게도 그대로 전해. 죽을 때를 여러 번 놓칠 정도로 오래 산 늙은이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갈 지는 의문이지만, 그래도 똑똑히 기억해 뒀다가 확실히 전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네 놈은 물론이고 네 제자 놈들 역시 내 손에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원래는 회주 놈들 몽땅 불러놓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 하지만 그러자니 너무 번거롭고 시간이 몇 달은 걸리겠더군. 그래서 너를 대표로 부른 거야. 네가 천무회 내에서 가장 입김이 센 놈이라지?”

“우하하.”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노인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 놈 참, 입 한 번 걸쭉하구나. 내가 입김이 가장 세다? 칭찬으로 알아듣겠다. 자, 어디 한 번 네가 하고 싶은 말 다 풀어 놓아 보거라. 애송아. 하하하.”

아무리 계급장(?)을 떼었다고는 하지만 나이로만 따지면 구양위는 손자뻘도 안 되는 인물. 그런 자의 입에서 쌍욕이나 다름없는 말들이 튀어나왔지만 노인은 전혀 분노하는 기색 없이 맞받아치고 있었다.

“좋아, 말이 통하는 놈이로군. 그럼 계속하지.”

구양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네 놈들 하는 작태들을 보면 딱 그거야. 은자 천 냥이 절실한 상인에게 누군가 천 냥을 투자함은 물론이고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서 수십 만 냥을 벌게 해줬더니, 나중에 가서는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달랑 천 냥만 돌려주는 아주 싸가지 없는 상인 놈들이지.”

“내 생각과는 다르구나. 우리는 적어도 몇 만 냥은 갚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면 너희들의 도움으로 번 돈 중 절반이라도 뚝 떼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지. 하지만 고마운 줄은 알고 날뛰지는 말아야지. 지금 네 놈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부와 명예, 권력이 너희들이나 너희들의 선조가 잘나서 그런 것으로 착각은 말아야 된다는 소리야. 안 그런가?”

“우리가 뭘 얼마나 날뛰었다고 그렇게 입에 거품을 물고 미친놈처럼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집안싸움에 함부로 끼어들지 마. 아니, 무조건 끼어들 생각 하지 마.”

왜일까? 집안싸움이란 말에 노인의 눈빛이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네놈들이 분수도 모르고 은혜도 모른 채, 너희들을 키워준 자들에게 어떻게 대하든 나는 별로 상관할 마음이 없어. 하지만 적어도 집안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이제 접어둬야 할 거야. 왜냐면, 내가 그 집안에 새롭게 등장했으니까. 지금까지는 그 꼴을 보고만 있었지만 내가 있는 이상은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집안싸움에 끼어들지 말라. 집안싸움에?’

노인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나에게 아니, 천무회에서 천궁의 편을 들어 사방천부를 견제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닌가? 가만, 사방천부를 견제하지 말라는 소리는, 설마?’


초창기에 천무회는 사방천부의 편이라고 봐야했다. 직접 접촉해서 회주를 영입한 것은 사방천부의 수장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나서, 천무신궁에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천무회의 힘이 막강해지자 그 양상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천무회가 철저하게 천궁의 편으로 돌아서 버린 것이다.

천궁의 뜻과 천무회의 뜻이 부합했고, 천무회의 뜻과 사방천부의 뜻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천무신궁이 무림에 공식 출도 한다는 것은 천무회의 존재가 공개된다는 의미다.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 마음은 천궁보다 천무회가 더욱 간절했던 것이다.


“이봐, 늙은이. 할 말 있으면 하라고.”

“너 설마?”

“설마 뭐?”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구양위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그게 무서운 생각인가? 이상하군. 적어도 천무신궁이라는 새장에 갇혀 지내는 인물들 중 9할 이상은 품었거나 품고 있는 생각이야. 그렇다면 그게 무서운 생각일까, 당연한 생각일까?”

노인이 잠시 말이 없다. 구양위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한 없이 굳어져 있었다.

“우리 모두를 적으로 만들겠다는 거냐?”

“계속해서 집안싸움에 끼어들겠다는 소리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자신 있느냐? 천하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무회이니라. 그런 천무회를 적으로 삼고도 살아남을 자신이?”

“그거야 네 놈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지.”

“자신 있다는 투로구나.”

“헛소리 집어치우고 일단 네 생각부터 들어보고 싶구나.”

“어떤 생각을 말하는 것이냐?”

“집안싸움에 끼어 들 건지 말건지.”

“끼어들겠다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지.”

“말겠다면?”

“내 친구가 되는 것이지.”

“우하하. 정말이지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로구나. 그렇다면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네 말에 따르는 척을 해야겠구나.”

“그럴 놈이 아니니까 내가 물어보는 거야. 남들 보다 두 배는 더 산 늙은이가 설마 목숨에 연연해서 거짓을 말하겠나? 네가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성 때문에라도 그런 짓은 못 하겠지.”

“그렇다면 내 생각을 말해주지.”

이 순간 잠시나마 구양위도 조금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죽여라.”

“······.”

“얘야, 뭐하느냐? 죽이라는데.”

구양위의 인상이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집안싸움에 계속 끼어들겠다는 소린가?”

“그건 아니란다.”

“그렇다면?”

“내 생각을 말하고 싶지가 않을 뿐이란다. 자존심이 상해서 말을 못하겠어. 네 뜻에 따르겠다는 말을 하자니, 내가 목숨이 두려워서 그런 것 같고, 네 뜻에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자니, 내가 목숨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러는 것 같고.”

“뭐가 그리 복잡한가?”

“너같이 인생을 얼마 안 산 애송이가 내 깊은 뜻을 어찌 알겠느냐?”

“그러면 차라리 아무 대답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뿐 아닌가?”

“한 가지 궁금증도 풀 겸해서 그리 말한 것이다. 과연 네가 날 죽일 용기가 있을 지 호기심이 생기더구나.”

“어이가 없군. 고작 그런 호기심 때문에 목숨을 걸어? 아니면 내가 너를 절대로 죽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하는 말인가?”

“솔직히, 네가 날 감히 죽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은 든다만, 확신까지는 안 생기는구나. 누구든 한 번 보면 무공의 깊이를 알아내고, 한 번 말을 섞으면 마음의 깊이를 알아낸다고 자부했던 나였건만, 너만큼은 그게 안 되더구나. 무공의 깊이야 네가 나보다 고수라서 그런 것이라 여기겠지만, 마음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것은 근 백년 만에 네가 처음이로구나.”

“칭찬으로 알아듣겠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좀 나쁘군. 말로는 확신이 안 생긴다고 하면서 눈빛은 확신하는 것 같으니 말이야. 죽는 게 전혀 두렵지 않은 눈빛으로 보여.”

“정말로 두렵지 않으니까.”

“전혀 두렵지 않다고?”

“너는 죽는 것이 두려운 게냐?”

“당연하지. 난 아직 할 일이 많으니까.”

“난 이미 내가 할 만한 일은 다 했느니라.”

“그 차이로군.”

“또 있단다. 나는 원래부터 그랬다. 네 나이 즈음부터 나는 내 목숨에 초탈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아마 내가 너처럼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면 나는 지금까지 아마 열두 번은 더 죽었을 게야.”

“으음. 다른 놈이 그런 말을 하면 웬 헛소리냐며 비웃었겠지만,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그렇다면 나도 마음 놓고 너를 죽이면 되겠군. 죽는 것을 너무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를 죽였는데 누가 나를 나무라겠나?”

“그렇게 하려무나.”

노인은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향을 맡으며 맛을 음미하는 모습이 너무나 느긋했다.

“밖에 누구 없나?”

갑자기 터진 구양위의 고함소리에 밖에서 누군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위무량이었는데, 뒤에 혹(?)을 하나 달고 있다.

초류향이다. 밖에서 위무량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따라 들어오게 된 것이다.

구양위는 초류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위무량에게 명령을 내린다.

“검을 뽑아.”

“예?”

“검을 뽑으라고.”

“아, 예.”

챙.

얼떨결에 검을 뽑아든 위무량에게 그를 더욱 얼떨떨하게 만드는 명령을 내리는 구양위다.

“지금 즉시 저 늙은이의 목을 베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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