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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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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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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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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God bless you....!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아프리카대륙 종단여행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랜드로버스를 몰고 사하라사막을 통과하는 여행은 유럽인들 사이에 열풍이 되었고,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각국의 여행자들이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을 타고 대륙을 횡단한다.

때론 목숨까지 건다.

전 세계 모험가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루트 중 단연 압권은 Cape to Cairo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이집트 카이로로 이어지는 종단 루트는 클래식하면서도 새로운 여행 경로로 각광받고 있다.

이는 모험가들과 탐험가들 혹은 도전적인 여행가들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류지호 부부의 루트는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짠 방문국가와 루트가 남아공부터 에티오피아까지 동부아프리카 주요 국가를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것이란 말씀.”


이번 아프리카 봉사활동은 전적으로 레오나의 주도로 일정이 수립됐다.

또한 JHO Security Service의 아프리카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케이프타운에서의 며칠은 아프리카 여행을 위한 일종의 완충활동이었다.

언어와 물가, 음식 등의 문화충격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며칠간의 말미가 필요했다.

현지 적응도 없이 무턱대고 장기 레이스를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없으니까.


“각 국가의 정식 초청을 받아 방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 군데 물품지원과 약간의 봉사를 하고 빠르게 지나치는 것으로 하려고.”


딴에는 어릴 때부터 해외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본 경험이 있다고 레오나의 의욕이 넘쳤다.

아프리카 봉사활동 대장정의 첫 번째 방문 국가는 보츠와나다.

누구는 남부 아프리카의 숨은 보석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감춰진 신비의 땅이라고도 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언뜻 떠오르는 국가는 보통 케냐나 탄자니아 정도다.

그런데 영화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부시맨>으로 유명한 산(San)족이 사는 칼라하리 사막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야생 코끼리 서식지로 유명한 초베 국립공원을 품은 국가가 바로 보츠와나다.


“코리아라고 하면, 킴의 나라에서 왔습니까?”


보츠와나의 제2 도시인 프랜시스타운에서 류지호가 현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다.

김정 박사.

외과의사로 28년 동안 쥬빌리 병원에서 의술을 베풀다가 보츠와나에서 생을 마감한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분의 아들이 한국에서 유명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암튼 교민이든 보츠와나 유력 인사든 김정 박사의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존경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양가베 병원은 보츠와나의 북부를 책임지는 양대 병원 중 하나였고, 기존 쥬빌리 병원은 결핵 등의 격리 병동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달링~ 저기 봐봐!”


류지호가 레오나가 가리키는 앙가베 병원 응급센터의 벽을 돌아봤다.

그곳에 떡하니 새겨져 있는 이름.

Ji Ho Ryu Emergency Center.

모우말리가 천연덕스럽게 설명했다.


“응급센터의 시설 일체를 지원해주셨고, 산부인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비용 일체를 지원하고 계십니다.”

“내가?”

"예. 벌써 5년 째 기부를 하고 계십니다.“


이런 일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류지호도 모르게.

앞으로 방문하는 대부분의 국가에는 류지호도 알지 못하는 자신 이름이 들어간 각종 시설이 존재했다.

모두 JHO Foundation이 한 선행들이다.

병원을 둘러본 후 류지호가 병원장에게 말했다.


“이 병원이 낡고 시설이 부족해서 그렇지 수준이 결코 낮은 병원이 아니라는데 감동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의과대학이 한 곳도 없는 나라가 많다.

보츠와나 역시 마찬가지다.

자체적으로 의료진을 구성해 500병상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김정 박사 사후 한국과의 의료협력까지 끊어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병원을 꾸려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병원을 둘러본 후 물품기증식이 열렸다.

남아공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의 오성과 금성의 제품들이 최고의 브랜드로 유명했다.


“사전에 두 곳 병원에서 오성과 금성을 콕 찍어 전자제품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J&L Foundation에서는 오성과 금성의 LCD TV, DVD 플레이어, 빔 프로젝터, 대형 이동식 화이트보드 등 다양한 한국산 물품을 병원에 기증했다.

칠판에 분필로 쓰는 것을 감안하면 화이트보드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현지 의사들도 매우 고마워했다.

당장 급한 의약품도 넉넉하게 전달한 후에 도시 외곽의 빈민촌에 들렀다.

빈민촌만큼 비행을 저지르기에 안성맞춤인 환경도 없다.

약물 중독에 구걸, 강도, 도둑질을 일삼고 어린 나이에 임신해 미혼모가 되는 경우가 흔했다.

암담함을 떨쳐내고자 술, 담배를 하며 혼탁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그런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혹은 누군가를 만나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그라운드가 곧 내 세상입니다.”


정체불명의 둥근 가죽을 차는 소년 중 한 녀석이 말했다.

아프리카의 소년들은 하나같이 축구 선수가 꿈이다.

돈이 들지 않는 운동이니까.

미국의 흑인 빈민들이 농구선수와 래퍼를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소년들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유명한 축구선수에 대한 동경이 매우 크다.

꿈을 꾼다고 해서 모두가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천만 명의 아이들 중 자신의 꿈을 멋지게 펼칠 확률은 제로에 수렴할지도 모른다.


“꼭 영국에 가서 가난을 탈출하고 싶어요.”


누군가 류지호가 그 유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구단주라고 소개했다.


우와아아!


소년들이 갑자기 엄청난 환호성을 질러댄다.

이 소년들에게 언젠가 자신들의 꿈이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고 느낄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더 의미 있는 인생으로 방향을 틀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교육이다.

류지호는 빈민가에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기회란 놈은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니까.

어느 순간 자신의 적성과 열정을 찾아냈을 때,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류지호가 살고 있는 미국과 한국에서는 정규교육만으로 삶의 질이 확연하게 달라지진 않는다.

아프리카는 다르다.

의식주만큼이나 생존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로 교육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은 소년들의 소중한 꿈 또한 지켜주고 싶은 류지호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하란 법은 없으니까.


“너희가 정말 축구를 좋아하고. 잘하는 날이 온다면 올드 트래퍼드 사무실에서 너희 중 누구와 만나게 될 날도 올지 모르겠구나. 열심히 해봐라. 나중에 꼭 만나자.”

“꼭 영국으로 찾아갈 게요!”


공터에서 공 하나에 무리지어 뛰노는 아이들의 붉은 실루엣에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라운드라고 차마 부를 수 없는 흙바닥.

거친 호흡에 섞여 까르르 웃는 소리들.

꿈꾸는 아이들의 웃음을 뒤로 하고 류지호 부부가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 ❉ ❉


JHO 봉사단이라고 명명된 류지호 부부 일행이 짐바브웨로 넘어왔다.

여독을 푼 후에 수도 하레라에서 차량으로 4시간 거리에 위치한 마을을 방문했다.

마침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회의 주일학교 예배가 열려 부부도 참석했다.


‘이건 뭐... <시스터 액트> 저리 가라네.’


예배는 한마디로 축제를 방불케 했다.

노래를 부를 땐 잠시라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절대자를 향한 뜨거운 열정은 노래가 되고, 또 춤이 됐다.

류지호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도 신을 믿고 싶게 만들 정도로 흥겨웠다.

비록 스와힐리어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성가대 아이들의 합창도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저토록 아름다운 음색과 화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척박한 아프리카에 내려진 신의 은총이 있다면 저런 것이겠지.”


아이들의 합창은 류지호 부부에게 진한 여운을 남겼다.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노령의 선교사 아내가 말했다.


“아이 중 몇몇은 HIV 바이러스 보균자이고, 몇몇은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지낸답니다.”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를 업은 어린이, 가정이 깨지고 학교에 나가지 못해 구걸로 연명하는 아이,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도 있다.

고단한 세상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라서 그럴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성악기교를 뛰어넘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


우르르!


예배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레오나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녀석들이 가장 좋아한 일은 레오나의 찰랑거리는 황금빛 머리를 만지는 일이다.

금빛의 긴 머리카락은 놀라운 발견이자 호기심의 대상이다.

저마다 수십 번을 쓰다듬고 나서야 레오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손길이 잠잠해졌다.

여자아이들이 레오나의 손을 이끌었다.

사내 녀석들은 류지호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낯선 이방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여자아이들은 땅바닥에 원을 그리고 비슷한 크기의 돌들을 던졌다 잡았다 하며 원 안으로 돌들을 넣고 또 빼는 놀이를 했다.

한국의 공기놀이와 흡사했다.

수행원들이 눈치 빠르게 학용품 사이에서 공기놀이 세트만 따로 빼서 가져다 나눠주었다.

사내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쳤다.

땅바닥을 짚지 않고 텀블링을 줄기차게 해댔다.

계단이나 바위 어디든지 폴짝 뛰어올라 몸을 공중에서 정확히 한 바퀴를 돌린 후 착지한다.


“아이들을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아이들의 놀거리가 없다.

텀블링 같은 것들이 친구들과 어울리는 문화가 되었단다.


“난 마이키 잭슨의 춤을 출 수 있어요. 한 번 볼래요?”


남자 녀석이 ‘빌리 진’을 흉내 내자, 여자 아이들까지 우르르 몰려들어 박수를 치며 깔깔거렸다.

남자 봉사단원들은 마을 곳곳의 땅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울타리를 치기 위한 지지대를 세웠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행한 노동은 주변 공기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쉬는 시간에 그늘로 몸을 피해 들이켜는 콜라 한 잔은 노동의 신성함과 고됨을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줬다.


“물이 귀한 아프리카에서 콜라는 여행객과 이방인들에 필수 음료지요.”


선교사 부부는 회장이라는 젊은 청년이 부하직원들과 똑같이 일을 하는 것에 놀랐다.

기념사진이나 몇 장 찍어가고 말거라고 생각했기에.


“귀하게 자랐을 텐데, 노동일을 썩 잘합니다.”

“달동네 출신입니다. 막노동 좀 해 봤어요.”

류지호 부부가 아프리카 대륙을 돌며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전화가 왔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 굿네이버스 및 유니세프 같은 곳에서 연대를 제안했다.

특히 게이츠재단의 멀린다 여사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라스트 마일’(Project Last Mile) 사업에 참여할 의향을 물어오기도 했다.

탄자니아와 가나에서 시행하고 있는 민관협력사업이다.

The Coke의 물류, 공급망, 유통 및 마케팅 전문 노하우를 활용해 아프리카의 각 국가 정부들과 의약품과 의료품이 절실히 필요한 오지 지역사회에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류지호는 The Coke의 주요 주주로서, 매년 배당을 받고 있다.

올해 배당금 전액을 ‘프로젝트 라스트 마일‘ 프로젝트에 기부하기로 했다.


-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중략)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시인 정호승이 산문 <빈손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에서 한 말이다.

류지호는 양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다.

자신의 한 손에 쥔 것을 다른 누군가의 텅 빈 손에 쥐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양손에 쥔 모든 걸 건낼 생각은 없다.

무소유를 실천하는 성자도 아니고.


“나이가 있으니 이제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때이지요. 나는 참된 가치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왔어요. 여기에선 내가 할 일이 많더군요. 내가 지내는 공간에서 현지인들에게 잠자리와 일자리를 주는 것이 내 소박한 꿈이랍니다.”


늙은 선교사가 작별인사로 한 말이었다.

보통 아프리카에서 선교와 함께 봉사를 하는 선교사들은 말끝마다 종교를 들먹인다.

자신이 행하는 것은 모두 성령이 하는 것이고, 자신의 사명은 복음 전파라고.


‘성령의 축복이 아프리카 곳곳에서 행해지는데, 왜 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류지호가 본 아프리카 사람들은 순응주의나 운명론 따위에 자신의 삶을 꽁꽁 싸매고 있는 것 같았다.

복음을 전파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써 자존감을 올려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 ❉ ❉


이 시기 짐바브웨 사정은 최악이었다.

미국과 영국 주도의 서방세계 제재와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류지호는 이전 삶에서 뉴스에서 보던 장면이 떠올랐다.

빵 하나를 사기 위해서 돈을 자루 째 들고 가거나, 돈을 셀 수 없어서 저울로 돈의 무게를 재는 모습들.

한국인에게는 신기한 웃음거리였지만, 이 당시 짐바브웨에서는 끔찍한 일상이었다.

10년 전 인플레이션이 32% 수준으로 이미 조짐이 좋지 않았다.

2007년 7월 현재 10억%라는 믿기 어려운 지경까지 치솟았다.

1년 후에는 12억%까지 치솟아 유례없는 인플레이션 기록을 남기게 된다.

가온그룹의 짐바브웨 지부장 김종민이 힘주어 말했다.


“짐바브웨를 그저 가난하고 독재에 신음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한 국가 정도로 치부해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짐바브웨까지 가온그룹 지부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년에 남부 아프리카 최초로 한국 드라마 <슬픈 연가>가 방송되어 큰 인기를 끈 이후로 <대장금>이 방영되어 짐바브웨에서 TV를 보유한 거의 모든 가정에서 시청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남아공에 진출해 있던 가온그룹 사무소는 이를 확인하고는 한국 영화를 짐바브웨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시작으로 <태풍>, <이중간첩>,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등을 비롯해 류지호 영화들을 가져와 짐바브웨 방송(ZBC)에 저렴한 가격에 제공했다.

한류(韓流)에 힘입어 몇몇 한국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 콘텐츠를 팔기 위해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 대사관에서 <대장금> 시청 감상문을 공모하고 있는데, 일주일 만에 300백편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합니다.”


<대장금> 시청 에세이 공모에 무려 2,300편이 넘는 글들이 접수되어 대사관 업무가 마비될 정도가 된다.

이 시기부터 짐바브웨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기 시작해 2010년 남아공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짐바브웨 한류 팬들이 한국 국가대표를 응원하는 일도 벌어진다.

비록 한국에서는 아프리카 빈국의 사정이라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한국 드라마와 영화로 인해 짐바브웨 일반 대중들에게 한국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 중국은 짐바브웨에만 1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으며 독재자 무가베 대통령과 짐바브웨 정부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정부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민간 부문에서 한국의 빅3 대기업의 제품은 물론이고 한류 드라마와 영화의 긍정적 이미지로 인해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가 전파되고 있다.


“짐바브웨는 높은 가치를 지닌 희소광물을 포함하여 무려 200가지가 넘는 다양한 광물자원을 보유한 나라입니다. 또 우수하고 저렴한 노동력, 온화한 기후와 관광자원까지 갖춘 이 나라의 잠재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


류지호는 김종민 지부장의 말을 끊었다.


“가온이 짐바브웨에 투자를 한다면 어떤 분야가 좋겠습니까?”

“먼저 종묘 및 비료 회사들이 진출할 수 있습니다. 무가베 정부의 토지개혁 이후로 백인 농장주들로부터 농장을 넘겨받은 흑인들에게는 농장경영 및 농업기술 노하우가 부족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로 비료, 농업기자재 등 수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됨에 따라 아프리카 곡물창고라고 불리던 짐바브웨 농업이 쇠락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민간이 아니라 한국의 농촌진흥청 같은 곳에서 진출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무가베 대통령이 한국 대사에게 새마을 운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의장님께서 무가베 대통령을 만나셔서 농장부지를 불허 받을 수만 있으면, 한 때 아프리카 최대 곡물생산지인 짐바브웨에서 다시 농업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서방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했다면서요? 외국인에게 토지를 내주겠습니까?”

“최근 리비아와 중국에 엄청난 크기의 옥수수 농장과 담배 농장을 내주었습니다.”


식민지 시대처럼 짐바브웨가 곡창지대로 발전하게 되면, 적어도 남아프리카 지역의 식량부족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가 있게 된다.


“하라레의 3~4시간 거리만 나가보셔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버려져 있는 광활한 토지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백인지주에게 토지를 몰수해서 대통령 측근과 흑인들에게 나눠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감당한 능력이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사업은 류지호의 관심사가 아니다.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자선사업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짐바브웨에서 농장을 일굴 수만 있다면.

수 천만 달러를 후원하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보다 먹고 사는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나라 각지의 비어있는 비옥한 대지를 볼 때마다 한국의 농업기술과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곤 합니다. 한반도 2배에 달하는 면적이지만, 인구는 1,200만 명에 불과한 이 나라에 한국의 숙련된 농업기술 인력이 진출할 경우, 짐바브웨 농업은 몇 년 안에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짐바브웨에 파견 나와 있는 지부장은 열정이 넘쳤다.

뭔가 이곳에서 기회라도 발견한 모양이다.


“유럽에서 짐바브웨가 ‘아프리카의 스위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곤 합니다. 5개국과 국경을 맞댄 내륙국이라는 지리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 년 내내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온화한 날씨를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빅토리아 폭포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활용한 호텔리조트 사업도 장기적으로 유망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어느 정도 안정되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한다.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역과 자연생태보호 구역을 피해 미리 요충지를 선점해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극심한 전력부족으로 수도 하라레조차 제한 송전이 이루어지고 있어, 전력개발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양광발전 사업에 진출할 수도 있듯 싶습니다.”

“중국 때문에 안 될 겁니다.”


이 시기부터 아프리카 곳곳에서 도로를 내고, 철도를 놓고, 대규모 공사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중국인들이 깔아주는 도로다.

무상 아니다.

천연자원을 가져간다.

아프리카로 들어온 중국인들이 몇 개 국가 수도에서 공장을 만들어 아프리카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에는 관심이 없다.

독재자들과 중국 정부 관료들은 밀월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에 일반 아프리카 사람들 사이에서는 중국인 혐오와 반감이 쌓여가고 있다.

그 틈에 한류를 통해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다.


“농장을 만들든 한류를 잘 활용하든. 남아공 지부와 잘 의논해 보세요. 일단 빈민촌이나 큰 부족에 학교부터 꾸준히 설립해 봅시다.”

“네. 의장님!”

“지내는데 애로사항이 없습니까?”

“정기적으로 생필품을 실은 컨테이너를 한국으로부터 특별 수송해 오고 있어서 교민사회가 필요로 하는 물자를 조달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건 누가 합니까?”

“대사관과 한국 대기업 주재원들이 모두 협력하고 있습니다.”

“고생이 많군요. 아참! 창기라이라고 압니까?”

“짐바브웨 전국노조 위원장 출신으로 민주변화운동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무가베 대통령도 중요하지만, 창기라이를 주목해 보세요.”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장님.”

“......?”

“아프리카에 있다 보니 의장님 뵌 김에 필사적으로다가....”

“이해합니다. 오늘 이야기 한 내용들 잘 정리해서 서울의 상암 의장실로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만약 짐바브웨에서 농장이든 뭐든 돈을 벌게 되면 학교와 병원이나 많이 지으세요. 아프리카에서 번 돈 아프리카에서 쓰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몇 년 후, 가온그룹은 짐바브웨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중앙 마쇼날랜드와 동 마쇼날랜드 주의 토지를 확보해 밀과 옥수수 등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한다.

짐바브웨 토지개혁 실패 이후 외국 기업이나 개인에게 경작지를 할당한 사례인 리비아(밀), 중국(쌀, 담배)에 이어 세 번째로 기록된다.


❉ ❉ ❉


일부러 일정을 그렇게 짰는지 모르지만, 지나가는 나라마다 한국인들이 꼭 있었다.

선교사, 자원봉사자, 기업 주재원, 때론 아프리카 국토를 종단한다는 야심만만한 여행객, 다양한 모습들로 아프리카 대륙에 한국인들이 존재했다.

세상 어디에도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프리카 구호 활동에 있어 꼭 필요한 세 사람이 있다.

오랫동안 교류해서 현지 사정에 밝은 선교사 혹은 구호단체 관계자, 마을의 질서를 다스릴 수 있는 추장이나 종교 지도자 혹은 경찰, 그리고 도움 주려는 곳의 정보와 통역을 담당하는 현지 코디네이터가 그들이다.

이들이 유기적으로 잘 이어질 때 비로소 하나의 건강한 구호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어느 하나라도 빠져버리게 되면 오해와 불신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류지호는 봉사단의 대표로서 잠비아의 한 부족의 추장을 만났다.

오지마을까지는 아니지만, 5시간을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마을이다.

류지호는 추장을 찾아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세계적인 복합미디어 그룹의 오너가 아프리카의 작은 부족의 추장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추장이 관할하는 지역에서는 그의 권력과 명예가 우선된다.

추장을 만날 때에는 극진히 예를 갖추어야만 한다.


“당신들을 우리 마을의 손님으로 영접하겠다.”


부족의 절차에 따라 류지호 일행이 정식 손님으로 인정받았다.

추장은 손님을 환대하는 편이지만, 일부는 외부인을 경시하면서 그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추장도 있다.

도움을 자꾸 받다 보니 고마운 마음도 차츰 없어진다.

이를 ‘원조병‘이라고 한다.

서방국가나 사람들의 원조를 당연시 여기는 태도를 꼬집는 말이다.

“최근에는 추장 대신에 주술사나 이슬람·기독교 종교 지도자가 추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부족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비루한 현실 속에서 서방의 종교가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고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가 더 크게 다가온다.

이 마을에서 류지호 부부는 사라져가는 아프리카 부족 고유문화의 자투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을 중앙에는 구호단체에서 파 준 우물이 있다.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과도 같다.


“어떤 오지 부족에서는 물을 끓여 먹으면 물속의 생명력이 죽는다는 일종의 정령신앙이 아직도 남아서 물을 끓여서 먹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보다는 땔감을 못 구해서 그런 건 아니고?”

“모든 마을이 국제구호단체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니까요.”


류지호 부부가 특별히 이 마을을 방문한 것은 잠비아에서 최초로 개설된 JHO Foundation의 학교가 있다.

바로 Ji Ho Primary School이다.

대륙 곳곳에 스무 개 정도 설립되어 있다.

류지호는 세세한 사정은 잘 몰랐다.

자신의 계좌에서 자동적으로 재단으로 돈들이 빠져나가니까.

무신경했다고 스스로 탓하거나 부끄러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직접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류지호처럼 금전적 지원을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내 돈이 아프리카에서 허투루 사용되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레오나가 류지호의 손을 잡았다.


“페이퍼로 보는 기부와 실제 확인한 기부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지?”

“92년부터 LA 빈민가에 청소년 센터를 설립하고 매주 봉사를 했던 몸이시거든.”


류지호는 해가 지기 전 마을을 떠나려고 했다.

추장이 하루를 묵고가라고 했다.


“설마....!”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클리셰.

주인공의 과거 회귀를 간파한 주술사가...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사막에서 혹은 추장의 집안에서 의미심장한 예언과 깨달음을 내려준다는....


작가의말

따스하고 편안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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