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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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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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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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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3.12.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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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노총각 탈출이구나!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불황의 위기감을 느낀 한국영화계가 인건비 감축을 다각도로 실험했다.

그로인해 제작자측과 현장 스태프 사이에서 감정적 골이 패이고 있다.

그런 이슈를 놓칠 방송사가 아니다.

각 지상파 방송사에서 관련 주제로 토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작금의 현상을 진단하는 사시프로그램도 따로 제작해 내보냈다.

김재욱은 충무로에서 꽤 많은 히트작을 내놓은 주목받는 프로듀서다.

류지호라는 충무로 절대 권력자의 친구라는 이유로 낙하산 논쟁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런 이야기들은 쏙 들어갔다.

스스로 기획한 작은 예산 영화들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입봉한 후로 대작영화와 소규모 예산 영화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2005년에는 불우한 환경에서 할머니와 살아가고 있는 자폐소년이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이야기의 영화 <호로비츠에게>를 24억 예산으로 제작해 184만 명을 동원했고, 지난해에는 강아지와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안녕 마음이>를 20억대 예산으로 제작해 97만 명을 동원해 부가시장 포함 7억 정도의 수익을 거둔 바가 있다.

그런 잘 나가는 프로듀서 김재욱이 여의도 KBC 방송국 대기실에 앉아 있다.

그냥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생방송에 출연하기 위해서다.

최근 불고 있는 한국영화 위기론과 제작비 감축 및 대기업 독과점에 대한 심야토론 프로그램 패널로 참여할 예정이다.

김재욱은 메이저 투자배급사 측 토론자로 섭외되었다.


“올해 충무로 제작자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제작비 절감을 위한 이러저러한 시도를 벌이고 있지요. 연극연출가 출신 감독님은 인건비를 파격적으로 줄이고, 한국영화 평균 촬영일수의 절반에 가까운 24회차로 촬영을 마감해 제작비를 대폭 절감했다고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주연배우와 감독, 촬영이나 조명 쪽 기사급 스탭들은 평소 개런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받고 촬영에 임했고, 그 결과 애초 26억~27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총제작비는 20억4천만 원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면서 생길 수익은 러닝 개런티의 개념으로 스탭과 배우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지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작비 절감 방식의 근본적인 개념은 배우들과 주요 스탭들 역시 영화의 흥행에 대한 위험부담을 제작사나 투자사와 함께 짊어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활발하게 토론이 진행되는 가운데.

김재욱이 제작사측 토론자의 말에 반론을 폈다.

본래는 같은 편이다.


“영화 수익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 더 이상의 수익 분배는 없지 않습니까? 다들 영화가 무조건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이라 자신하시는 모양인데, 만약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애초 지급한 절반의 개런티만으로 끝나는 방식입니다. 왜 투자자와 제작사가 부담해야 할 흥행 리스크를 스태프들이 분담해야 합니까? 마치 IMF 당시 경영실패를 회사 종업원들에게 떠넘긴 것 같은... 그 때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 행태와 같다는 기시감이 듭니다. 노동자 편에 서고, 진보적 사상을 펼치신다고 주장하시는 영화인들이 그런 마인드로 접근하시는 것 자체가 위선이 아닐까 합니다.”


김재욱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의 친구 아니랄까봐.

독설뿐만 아니라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왜?

사수였던 전하영을 포함해 WaW 엔터테인먼트 수뇌부들로부터 미션을 부여받았으니까.

생방송에 나가서 한국영화 위기 운운하는 자들에게 따끔하게 경고하고 오라는 임무를.


“WaW 엔터테인먼트는 대기업이니 현재 한국 영화계에 드리운 위기에 끄떡없겠지만, 김 PD도 알다시피 한국영화 제작사들은 영세하기 그지없어요. 작년의 과도한 손실액 여파로 투자시장이 꽁꽁 얼어붙었잖습니까?”

“맞습니다. 자연스레 신작의 촬영 편수 또한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양수리와 파주종합촬영소도 요즘은 한산합니다. 도무지 일거리가 없어요.”


패널들의 공격에 김재욱이 내심 콧방귀를 끼고 입을 열었다.


“WaW종합촬영소는 하반기까지 예약이 다 찼다고 하던데요? 영화 제작편수 자꾸 말씀하시는데. 각 투자배급사 라인업 보니까 내년에도 100편은 넘을 것 같습니다만.”

“배급을 겸하는 메이저 투자사들은 어쨌거나 안정적인 수준에서라도 한국영화 라인업을 이어나가야 하는 형편이지만, 소액투자사들은 수익률이 급감한 현 상황에서 더 이상 투자를 지속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어요.”


제작가협회 측 패널과 김재욱이 나름 팽팽하게 자신들의 논리를 폈다.


“제가 알기로 소액투자자들이 완전히 충무로를 탈출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금 자체가 아예 고갈된 것은 아닙니다.”

“지난 한해 개별 한국영화들의 기록적인 손실액이 모조리 펀드에 반영되다보니 소액투자자들은 예전보다 엄격한 기준을 갖고 더욱 신중한 태도로 투자에 임하게 됩니다. 무비서비스, BS, 무비박스... WaW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메인투자사들도 돈을 못 버는 상황이니 소액투자사들은 더욱 갑갑할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투자하는 것 자체가 두려우니 뭔가 획기적으로 개선해달라는 요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거죠.”


이들이 편을 들고 있는 소액투자자는 벤처창업투자사 같은 엔젤투자자를 일컫는다.

자칫 시청자들이 주식시장의 개미투자자 같은 개념으로 오해할 수 있었다.

암튼 창업투자사들이 실제로 한국영화 투자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문제는 그것이 왜 한국 영화산업의 위기냐는 것이다.

영화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개나 소나 제작자입네 하는 자들의 위기일 뿐이다.

메이저 투자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심지어 지상파 3사의 방송자본까지 충무로에 들어오고 있다.

정부가 조성한 모태펀드 역시 200억 원 수준으로 충무로에서 잘만 돌고 있고.


“내가 투자를 못 받는다고 해서 한국영화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 것일까요? 내 프로젝트가 투자를 못 받을 만하게 엉성하다고는 생각 못 하시고요? 자꾸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라고 주장들을 하시는데,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일본 수출길이 왜 막혔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죄 없는 스태프들에게 고통 분담 같은 명목으로 인건비를 줄이려는 시도가 나만 살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제작사가 살아야 스태프도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 겁니다.”

“망할 제작사는 망하는 것이 자유시장경제 아닌가요? WaW는 지금까지 꾸준히 스태프 임금인상은 있었어도 단 한 번도 인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별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여러분이 수직계열화니 독과점이니 비난하는 G.O.M 상영관은 한국영화 부율까지 할리우드 영화와 똑같이 맞춰주었고요. 판을 깔아줘도 못 찾아 먹는 것은 한국영화인들의 기획력 부족, 주먹구구식 제작관행, 훌륭한 인프라를 백퍼센트 활용하지 못하는 전문인력 부재 기타 등등....! 한국영화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더 커 보입니다만.”


제작사를 대변하는 패널들은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제작비 자체를 낮추어야 한다는 의지만큼은 확실했다.

김재욱만 빼고.

인건비 외에 홍보마케팅비 절감 이야기도 나왔다.


“100만 원짜리 광고 하나 집행하는 데도 신중을 기하는 상황이고, 행사 한번에 1,000만 원 이상 들어가는 제작보고회와 VIP 시사회 등도 줄여나갈 예정입니다. 개봉영화의 프린트 수도 마찬가집니다. 그동안 무조건 300~400개의 스크린을 통해 개봉하다보니 프린트 값도 못 건진 스크린도 있었습니다. 한국시장 사이즈에 맞는 적정 스크린 수와 배급 편수를 찾아야만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제작비를 축소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충무로 제작자들과 배급사, 극장주, 투자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공유되고 있다고 패널들이 입을 모아 강조했다.

그에 맞서 김재욱은 제작사가 아니라 스태프 편을 주로 들었다.

팀킬도 서슴지 않으면서.


“일부 힘 있는 제작사가 스타배우와 자신의 사단 스태프들의 인건비를 줄일 순 있겠지만, 군소 제작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고통분담이 아니라 고통몰빵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토론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 즈음, 사회자가 은근슬쩍 김재욱을 찔러봤다.


- 지호 감독님은 최근 충무로 분위기에 대해 어떤 말씀도 없었습니까?

“글쎄요. 전에 전화통화하면서 충무로에 돈이 조금 덜 돈다고 지나가는 말로 전하긴 했습니다.”

- 뭐라고 하던가요?

“자기가 5년 간 매해 1,000억 쯤 충무로에 풀면 죽은 활기가 다시 살아날 것 같냐고 하기에, 제가 그 1,000억을 소화할 만한 프로젝트가 충무로에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패널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김재욱은 웃는 방청객들을 향해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지어보였다.

진지하고 엄숙한 생방송 토론프로그램이 잠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현장으로 돌변했다.

이 시기 충무로에 돌고 있는 영화 투자금이 대략 2,300억 가량이다.

그 절반을 류지호가 책임질 수도 있다는 말이 태연하게 나왔다.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패널들이 잘 알고 있다.

심지어 방청객조차도.

매년 1,000억 원 이상 개인소득을 올리고 있는 슈퍼리치가 류지호다.

결코 허언이 아니다.


- 아, 네... 그렇군요.


이후 토론은 다소 맥이 빠졌다.

제작자측 패널이 충무로에서 돈이 빠져나가 힘들다고 열심히 앓는 소리를 해댔다.

헌데 류지호와 WaW 엔터테인먼트가 진짜 1,000억을 풀어버리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다.

다만 메이저 스튜디오 한 곳에서 한국 영화를 완전 잠식해버리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서로가 부담스러워서 선뜻 그렇게 하자고 못할 뿐.


“수고하셨습니다!”


경력으로 보나 여러모로, 패널 중 김재욱이 막내다.

생방송 불이 꺼지자마자, 김재욱이 선배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재욱아.”


아스트로FNH의 차성재가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김재욱을 불러 세웠다.


“류 감독이 진짜 천 억 쯤 풀 수 있다고 했냐?”

“네.”

“내년부터 WaW가 제작편수 얼마나 늘리는데?”

“서른 편 정도까지 늘리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류 감독이 천 억 푼다는 건 WaW에 투자하는 게 아니고, 영화 펀드를 조성해 한국영화에 투자한다는 뜻이었어요.”

“강 감독과 우리도 쓸 수 있는?”

“무비서비스와 아스트로는 모회사에서 돈 안줘요? BS와 올리온에서도 투자 받는다고 알고 있는데....”


차성재는 물어보는 말에는 대답 않고 딴소리다.


“바로 집으로 가냐?”

“아뇨. 와이프랑 함께 왔어요.”

“네 와이프까지 해서 마포 가서 술 한 잔 할래?”

“그러시죠, 뭐.”


김재욱이 방청석에 앉아있던 수더분한 인상의 여성에게 다가갔다.


“설희씨, 차 대표님이 술 한 잔 하자고 하시는데, 괜찮겠어?”

“나도 가도 되는 자리예요?”

“안 될 게 뭐 있어. 어차피 다 아는 사이에.”

“그럼 저도 가요.”


방청객에서 토론을 지켜본 김설희는 김재욱의 예비신부다.

작년 데뷔한 신인영화감독이기도 하다.

김재욱은 제작부생활을 하며 영화배우, 제작부원, 영화 홍보팀원 등과 짧게 사귄 적이 제법 많았다.

대부분 영화 한 편 작업하고 나면 헤어지는 패턴이었다.

김설희는 류지호가 만든 시나리오 팀의 멤버이기도 했는데, 김재욱이 워낙에 작업실을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분이 싹텄다.

결국 김재욱이 김설희의 입봉을 도와주게 됐다.

흥행 성적이 좋지 못하자 위로도 해줄 겸 자주 술자리도 갖고... 어쩌다 보니 정도 쌓이고, 서로가 상대가 적당하다 싶어 자연스럽게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다.

김재욱 커플은 차성재를 중심으로 심야토론 패널들과 마포로 이동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김재욱이 류지호의 메시지 일부를 전했다.


- 스태프 인건비는 건드리지 말자. 양아치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리저리 돌려 말하긴 했지만, 요약하면 그랬다.

또한.


- 스타급 배우의 계약금을 깎은 후 지분계약을 해줄 때,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즉 메이저 영화사나 영세한 영화사 모두가 똑같은 룰 안에서 스타배우와 계약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김재욱의 입을 빌어 전했다.

WaW 같은 메이저는 스타배우의 지분을 깎을 수 있다.

반면에 영세한 제작사는 스타배우와 매니지먼트 회사와의 협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류지호는 영세한 제작사가 스타배우를 출연시키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지분을 보장해주면서 업계의 계약 관행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을 방지하는 룰이 만들어지길 바랐다.


“참 미묘한 문제구만.”

“자칫 제작자들의 담합처럼 비춰질 수가 있어서.....”


과거로 돌아온 류지호가 한국영화에 본격적으로 투자한지 15년이 넘었다.

그 기간 동안 한국 영화는 많은 변혁의 몸살을 앓았다.

한번 들어서면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영화인들의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러다 곧 잊혀졌다.

다시 과거의 구태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스크린쿼터는 바람 잘 날 없었고, 각양각색 전주(錢主)들이 헤게모니를 놓고 으르렁거렸으며, 덩치가 큰 메이저 영화사들이 탄생했고, 멀티플렉스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고, 그 기간 3,000천 편 이상 되는 영화들이 극장에 걸렸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들의 놀이터나 다름없던, 또 한국영화에게는 황무지 시장이었던 한국 시장은 이제 추억 속에나 존재했다.

WaW 엔터테인먼트라는 아시아 톱급 스튜디오를 비롯해 BS E&M, 무비박스, 광성시네마, 무비서비스가 건재하다.

정부가 조성한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캐피탈 회사들과 영화계 일각에서 한국영화산업 위기를 외치고 있지만, 잠시 한국영화계가 주춤하고 있을 뿐 성장동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한국영화가 좋은 호응을 얻고 있고.


“......”


가만히 선배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는 김재욱은 정통 영화인이라고 하기에도, 또는 영화인이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한 입장이다.

모두가 자신더러 영화인이라고 하지만.

본인이 생각할 때는 모호한 포지션이란 생각이 확고했다.

자신은 WaW를 혹은 가온그룹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대기업 소속 비즈니스맨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영화 일을 하고 있지만, 한국영화를 위한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이 솔직히 없었다.

그저 자신이 소속된 기업과 친구의 사업이 잘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뿐.


“.....!”


충무로 일각에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떠드는 자들이 있다.

그에 합세해 너도나도 한국영화 위기론을 부추긴다.

실제 위기가 있긴 했다.

해외수출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일본 시장에 먹구름이 끼었으니까.

가온그룹이 DVD와 굿 다운로드 캠페인 등 부가시장을 붙잡아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사들은 그 혜택을 입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고.

오로지 극장 흥행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인 수익 구조.

그래서 인건비를 줄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명분을 들고 나왔다.

인건비에 거품이 많이 끼었다면서.


‘영화 한다고 말했다가 장인어른한테 결혼 허락도 못 받을 뻔 했네 이 사람들아~’


신부가 될 김설희가 자신의 부모님에게 김재욱이 가온그룹의 임원급 직원이고, WaW 소속 프로듀서는 일반 기업 이사급 대우라고 설명하고서야 허락을 받았다.

물론 조미료가 꽤 많이 첨가된 설명이었다.

어찌 되었든 이사급 대우라는 말에 대접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가온그룹을 국내 재계 6~7위권으로 본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오너의 인지도로 인해서 오성그룹급으로 착시가 있지만, 냉정하게 5대 그룹 안에 아직 들 정도는 아니다.

암튼 WaW 프로듀서도 딴따라라며 무시당하면서 결혼 승낙 받기 힘든데, 더 열악한 대우를 받는 일반 스태프들은 오죽할까.

프로듀서들 중에서 진보주의자들이 많다.

그들은 서민의 애환을 영화에 담으려 하고, 부자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고, 악덕 기업가를 영화에서 풍자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영화를 만든다.

자본주의 모순을 들춰내고,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영화 노동자, 매 영화마다 함께 작업하는 현장 스태프들에 대해서는 왜 무신경한 것일까.

스스로 많이 배우지 못해 무식하다고 떠들고 다니는 김재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 현장 스태프들은 말 잘 듣는 노예일 뿐이고, 대기업 계열 마트 정도에서 근무하며 고용주에게 대들어야 노동자라고 쳐주는 것일까?’


할리우드의 2,000억 예산영화도 최대 16주 안에 프로덕션을 끝마치는데, 왜 충무로는 겨우 150억 예산 영화 따위를 무려 24주 이상 촬영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다고 24주에 해당하는 임금을 제대로 주지도 않으면서.

가만 보면 죄다 위선자들이다.

10여 년 전 선배 영화인들의 구태를 극복하기 위해 합리적인 제작시스템을 주창했던 이들이 바로 한국영화 위기 어쩌고 떠드는 이들이다.

이제 와서 제작사를 꾸려가기 힘드니까 스태프와 후반작업 업체 인건비를 후려치려고 한다.

한편으로 WaW나 BS를 걸고넘어지면서 대기업 자본에도 할 말 다하는 것처럼 떳떳하게 군다.

당연히 영화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소위 정통 영화인이라고 규정한 일부가 스태프 인건비 삭감을 주장하며 실제 그걸 실행하는 걸 보면 비정통영화인 김재욱으로서는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김설희가 빈 잔에 소주를 채워주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요?”

“아니 그냥....”

“그냥 뭐?”

“설희씨도 알지만 난 검정고시 출신이잖아. 방송대학 겨우 졸업하고. 근데 피디나 감독은 죄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잖아.”

“영화처럼 학력빨 안 먹히는 분야도 없죠.”

“그렇긴 하지만....”

“무엇 때문에 기분이 갑자기 꿀꿀해진 거예요?”

“그냥 그러네.”

“뭐가 그냥 그런데요?”

“5억 받는 놈이 폼 나게 절반 받는 것과 100만 원 받는 놈이 절반 받는 것이... 그런 게 고통분담일까? 나중에 영화가 대박을 치면 5억 받는 놈이 받는 보너스와 100만 원 받는 놈이 받는 보너스가 같아지나? 고통분담에 대해 나중에 성과분배에서 공평하고 공정한 분배가 가능하긴 한 건가? 아니 100만 원 받는 놈은 보너스가 있기나 하나?”

“자기는 그렇게 안 하면 되잖아요.”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류지호 감독님이 독립할 생각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했다면서요?”


진작부터 김재욱에게 JHO Pictures 방식의 프로덕션을 설립해보라고 권유한 적이 있었다.

즉 류지호의 영화 프로덕션을 중심으로 운영하며 틈틈이 다른 영화도 제작하는 영화사다.


“안 해, 독립. 그냥 WaW에서 뼈 묻으려고. 오십 전에 본부장 달면 성공한 거 아닐까?”


김설희는 대답 없이 신랑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쳤다.


챙.


본부장이든 뭐든 자신의 신랑은 어디 가서 밥 굶을 팔자는 아니다.

어딜 갖다 놔도 잘할 사람임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왁자지껄.


술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홍대 쪽에서 술을 마시던 프로듀서들이 하나 둘 합류했다.

늦게 합류한 이들은 주로 30대 중후반의 젊은 프로듀서들이다.

김재욱을 필두로 기획 프로듀서 3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기획영화의 토대 위에서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쏟아내게 되는 미래의 한국영화 자산들이다.

김재욱 본인은 몰랐지만, 사실 본인이 충무로 2세대 프로듀서와 3세대 프로듀서를 이어주는 가교였다.

그 스스로 WaW 직원일 뿐, 정통 충무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는 것과 달리.


“결혼 축하한다!”

“드디어 노총각 탈출이구나!”

“잘 살아라!”


오인방 중 노총각으로 남아있던 두 사람.

바로 황재정과 김재욱이다.

두 친구가 일주일을 두고 차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김재욱은 본가가 있는 인천의 가온계열 웨딩홀에서 혼례를 치렀고, 황재정은 신부의 고향인 전주의 전동성당에서 천주교 미사형식의 혼례를 올렸다.

열일 다 미루고 류지호 부부가 미국에서 날아왔다.

특이한 것은 두 친구의 신혼여행에 오인방 모두가 함께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부부동반으로.

오랜만에 류지호의 전용기에 탑승하는 김준우가 물었다.


“혹시 전용기 바꿨냐?”

“질렀어.”

“질러? 개인 돈으로 구입했단 거야?”

“결혼 기념으로 질렀어.”

“전에 타던 건?”


류지호 소유의 모델명 737-7HG 전용기가 이미 있다.

이번에 AtlanticStream의 17인승 G550 모델을 새롭게 구입했다.


“반 누이스 격납고에서 대기하고 있을 걸.”

“그럼 전용기가 두 대라는 거냐?”

“이번 거는 가까운 곳 위주로 타고 다니려고.”


마치 세컨카 구입한 것처럼 말하는 류지호다.

그러거나 말거나.

특별히 반응을 보이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미국에서 여의도 몇 배의 땅을 개인 목장으로 소유하고 있고, 그 목장 안에 사설 공항까지 구비해놓은 부자가 친구 류지호다.

겨우 17인승 비즈니스 제트기 한 대 더 샀다고 놀랄 이유가 없다.


고오오오!


김포공항을 이륙한 류지호의 두 번째 전용기가 유럽을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이들의 1차 행선지는 영국의 그레이터맨체스터주다.

이번 신혼여행을 빙자한 오인방 부부동반 세계여행 일정은 영국에서 시작해서 스페인으로 이동하도록 짜여 있다.

베니스영화제 때 레오나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여행지들이 많이 반영되었다.


작가의말

편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다음 주도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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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2) +8 23.12.23 2,062 99 25쪽
720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1) +3 23.12.22 1,984 93 23쪽
719 도둑질 하지 말라! +5 23.12.22 1,866 91 26쪽
718 God bless you....! (3) +6 23.12.21 1,945 107 24쪽
717 God bless you....! (2) +3 23.12.21 1,843 93 25쪽
716 God bless you....! (1) +3 23.12.20 2,060 97 28쪽
715 역경은 반드시 교훈을 남긴다. +3 23.12.20 1,975 92 27쪽
714 형제는 저작권 부자였다. +7 23.12.19 2,070 96 27쪽
713 출장이 아니라 여행이거든! (2) +3 23.12.19 1,878 91 25쪽
712 출장이 아니라 여행이거든! (1) +4 23.12.18 2,057 102 24쪽
711 맨유가 아니라, 내 친구가 더 대단해...! +3 23.12.18 1,957 101 26쪽
» 노총각 탈출이구나! (2) +8 23.12.16 2,096 107 22쪽
709 노총각 탈출이구나! (1) +7 23.12.15 2,125 104 23쪽
708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4) +3 23.12.15 1,928 87 26쪽
707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3) +7 23.12.14 2,039 103 24쪽
706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2) +4 23.12.14 1,891 91 21쪽
705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1) +6 23.12.13 2,031 110 22쪽
704 Change The Future! (3) +4 23.12.13 1,886 96 26쪽
703 Change The Future! (2) +8 23.12.12 1,998 100 22쪽
702 Change The Future! (1) +4 23.12.12 1,883 101 23쪽
701 평범한 하루들.... (5) +12 23.12.11 2,031 112 25쪽
700 평범한 하루들.... (4) +5 23.12.11 1,927 99 25쪽
699 평범한 하루들.... (3) +6 23.12.09 2,097 101 24쪽
698 평범한 하루들.... (2) +5 23.12.08 2,090 105 24쪽
697 평범한 하루들.... (1) +4 23.12.08 1,981 99 23쪽
696 Frank Castle. (7) +5 23.12.07 1,971 10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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