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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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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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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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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국정원과 언론까지 동원해서 괴롭히기 시작하면... 자네는 혼자고... 싸움이 되겠나?”

“제가 왜 혼자라고 생각하시죠?”

“.....?”

“오성그룹 주요 상장사 이사회에 제 사람들이 들어가서 지배구조 개편과 순환출자에 딴죽을 걸 수 있지 않겠어요? 아드님이신 이 전무 후계구도도 흔들어 볼 수 있으려나. 진흙탕 싸움 몇 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방식으로 다른 10대 대기업에서 난장을 쳐댈 수 있다.

명백히 협박으로 들릴 소지가 있는 말이다.

이동희 회장이 기분 나쁜 태를 숨기지 않으며 빈정거렸다.


“해외 헤지펀드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겠군.”

“일부는 적대적 인수합병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일 수도 있겠죠. 저도 한국에서 깽판을 치면서 몇 개 알짜 회사를 챙길 수도 있겠네요.”

“.....!”


약점을 가진 자가 알아서 기게 되어 있다.

류지호라고 해서 약점이 없을 리 없다.

탈탈 털면, 미처 챙기지 못했던 약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 약점을 덮을 만큼의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그러면 상관없다.


“한국의 기득권입네 까부는 사람들이 해외에 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계좌들 지금 당장 털어 볼까요? 제 자랑이지만 주위에 그런 쪽으로 악랄할 정도의 전문가들 널리고 널렸거든요.... 회장님도 아시죠? 미국 금융 쪽 전문가들과 변호사들이 얼마나 괴물들인지. 물론 FBI와 협조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은 경제계 교란행위를 무척 싫어하죠.”


류지호는 미국에서의 영향력을 통해 한국의 최대 족벌언론사주 형제를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만든 바 있다.

한국의 지도층 인사 자녀들의 온갖 일탈행위들을 들쑤셔 미국 사법체계의 심판을 받도록 한 일도 있고.

다른 것을 다 떠나서, 한국의 권력자들이 가온그룹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다.

대유그룹을 해체했던 것처럼 할 수 없다.

대략 9만여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가온그룹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모기지론이 슬슬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6~7위 권 대기업집단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제2의 IMF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물론 비상장사이며 재무 건전성이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에 오너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가온그룹이 흔들릴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류지호는 오성그룹 일가의 멱살만 쥐고 있으면 된다.

가온과 오성이 손잡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한국에서 뭐든 다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크게 안 다치고 원하는 걸 얼추 얻을 수 있다.


“...후우. 자네 가족도 약점이 될 수 있어, 이 사람아.... 충동적으로 일을 처리해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네.”

“저는 이제 겨우 서른 중반입니다. 지금 가진 모든 걸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과연 저와 제 가족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자들도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잃은 후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지 궁금하네요. 설마 회장님도 한국의 외눈 안경 쓰고 귀 닫고 사는 작자들처럼 저를 과소평가하고 계시진 않겠지요?”


갑자기 레스토랑의 기온이 뚝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럴 정도로 류지호의 낮은 목소리에는 서늘한 한기가 서렸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예민해지는 류지호다.

이전 삶에서 가족들에게 지은 죄가 너무나 컸기에.


“그래서 P가 되어야... 아닐세.”


같은 편.

다루기도 쉬운 인물.

민주주의에 대한 뚜렷한 신념이 없는, 어쭙잖은 국가관과 리더십을 가진, 서푼의 명예욕만 가진 정치인.

그런 인물이 다루기 쉬운 법이다.

80년대에나 유효한 신념에 가득차서 자신들만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피로를 느끼고 있는 유권자가 상당했다.


“양쪽 진영에 한 500억씩 넣으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엔 조금 아껴보시면 어떠세요? 그 자금을 아이폰에 대항하는 스마트폰 R&D에 투입하는 것이 어떠실는지.”

“.....”

“법이 허용하는 정도의 후원금만 넣고, L과 P를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시키는 것에 조금 신경을 써볼까 합니다.”


이동희 회장이 입을 꾹 닫고 류지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


그의 눈을 류지호는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뭐라고 한국의 대통령 후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단 말인가.

자신이 민다고 해서 무조건 당선되는 것도 아닐 텐데.

한편으로 묘한 느낌이 드는 류지호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한국 재계의 거두와 면대 면으로 마주하고 보니.

참 별 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무슨 흑막 속에서 음모를 꾸미는 악당이라거나, 한국사회를 손아귀에 넣고 마음껏 주무르는 그림자 권력자라거나, 오성그룹을 위해서는 뭐든 불사하는 비정한 인물이라거나, 엄청난 카리스마로 사람을 숨죽이게 만든다거나....

다 아니었다.

그저 노회하고 노련한 베테랑 비즈니스맨을 마주하고 있다는 느낌 뿐.


“J를 괜찮게 보고 있다고 내가 이해하면 되겠나?”

“저는 L과 P, 진보진영에서는... S와 J 정도만 반대합니다. 그 외에 누가 되어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진 않습니다.”


사실상 양당 유력 경선후보 모두를 반대한다는 뜻이다.

이전 삶과 다른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한국이 확 좋아지지도 혹은 망하지도 않을 것이란 것을 안다.

그저 개인적인 호불호일 뿐이다.


“내가 알기로 자네는 그 사람들과 전혀 접점이 없는 것으로 알아. 악연이라도 있었나?”

“회장님이나 저나 매번 의사결정을 내릴 때 최선만 선택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최악은 그저 최악일 뿐입니다.”

“J가 차악이라고 생각하는 겐가?”

“저도 모릅니다. 최악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류지호가 정의국을 좋게 본 것은 보수진영에서 그나마 신흥우파물이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름 행정력을 두루 갖춘 정통우파 정치인이기도 하고.


“정치하는 사람들 때려봐야 내 손만 다쳐. 때릴 것이 아니라 돈 좀 쥐어주고, 좋은 말 자주 해 주고....”

“정치하는 사람들과는 싸우는 게 아니라고 배우긴 했습니다. 안 싸웁니다. 저는. 대신 골탕을 먹여줄 순 있을 것 같습니다. 함부로 경거망동 하지 못하도록.”

“.....”

“혹시 L쪽에서 오성 측에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송 비용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면 거절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회장님도 가온이 하는 일들 많이 알고 있으면서 뭘 놀라는 척 하십니까? 미국 소송비용 나중에 다 들통 납니다. L이 대통령이 되지도 못하겠지만, 된들 퇴임 후 뇌물 수수건 무조건 터집니다. 적은 돈도 아니지 않습니까? 한 600만 달러 정도 되죠? 그 돈 나중에 두고두고 승계 작업의 발목을 잡을 겁니다.”


계속해보라는 듯 이동희 회장이 류지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림도 없다.

지금 언급한 것만으로도 이동희 회장은 류지호에게 큰절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물론 이선택이 대통령이 되어 오성그룹 승계 작업을 전폭적으로 도울 것이라 철썩 같이 믿는다면 류지호의 충고는 소용이 없겠지만.


“기업하는 사람끼리 정치이야기는 그만 하시죠.”


지금부터가 진짜 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말씀해 보세요. 제게 뭘 원하십니까?”


이동희 회장은 쉽게 입을 떼지 않았다.

류지호 역시 채근하지 않았다.

이 자리는 상대가 요청해서 만들어졌다.

아쉬운 것은 류지호가 아니다.

이동희는 지난 1987년 만 45세에 오성그룹 총수 자리에 앉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후계자 외아들은 오성전자 CCO(최고고객전문가)로 경영수업 마지막 코스를 밟고 있다.

이동희 회장이 이룩한 오성그룹 신화를 두고 일부에선 무노조와 황제경영의 산물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 소닉을 제칠 만큼 급성장한 것만큼은 인정해 줘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오성의 CI가 걸린 간판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성은 90년대 후반부터 글로벌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성전자는 현재 48개국에 총 90개 거점을 갖추고 있으며, 8개의 해외 지역별 총괄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외신들도 오성의 놀라운 성장에 경이로움을 표한다.

일본 내에서도 오성의 성공요인을 집중 조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렇게 이동희 회장 취임 후 20년 동안 오성그룹은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게 마련.

90년대 들어 의욕적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몇몇 계열사를 정리했다.

그중 자동차 사업의 부채 문제는 아직도 명확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당시 잘못된 선택의 대가로 2조 8천억 원 상당에 이르는 오성생명 주식 350만주(주당 70만원으로 계산)를 채권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오성생명이 상장돼야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생명보험사 상장문제는 상장자문위에서 최종안이 확정,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만약 공모가액이 당초 약속한 70만원을 밑돌면 오성은 차액을 채권단에 물어줘야 한다.

자동차 부문의 연체 이자를 감안하면 총부채만 해도 5조원에 이른다.

채권단은 이미 소송제기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오성으로서는 진퇴양난에 처한 셈이다..


“몇 년 전 미국 쪽 대주주들의 대리인인 자네의 충고를 받아들여 후계구도를 확정했지만....”

“대리인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방식도 어지간히 허술했습니다.”


오성그룹 후계구도와 관련, 자연농원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 사건은 오성그룹이 숨기고 싶은 과거다.

지난 96년 11월이었다.

자연농원 이사회가 최소 주당 8만5천원인 자연농원 전환사채(CB) 125만 주를 주당 7,700원에 오성전자 이 전무 남매 4명에게 배정했다.

외아들 이태웅 전무는 95년 오성시큐리티 주식을 처분한 자금으로 전환사채(CB)를 배정받아 주식으로 전환, 자연농원 최대 주주(25.1%)가 됐다.

자연농원은 오성생명→오성전자→오성카드→자연농원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의 핵심 고리다.

그 말은 자연농원을 장악하면 사실상 오성그룹을 지배하게 된다는 의미다.

2005년에 이 건을 가지고 검찰은 자연농원 사장 두 명에 대해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올해 열릴 예정이었다.

헌데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돌연 연기됐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 비슷한 시기 옛 ‘안기부의 X파일’ 사건이 세상을 흔들었다.

오성그룹의 정관계 전방위 로비 혐의가 포착됐다.

이 일은 일파만파로 커져 반오성그룹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작년 회장일가는 8,000억 원에 이르는 사재를 사회공헌기금으로 출연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성그룹의 사법부 로비문건까지 최근 드러나면서, 한 마디로 사면초가에 빠져 있다.

참다못한 류지호가 먼저 입을 뗐다.


“금산분리 규제강화가 걱정 되시는 군요?”

“.....”


오성그룹 일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순환출자 금지와 금융·산업 분리다.

전자는 거대 정당 모두가 기존 순환출자를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다.

반면에 금산분리는 오성 일가에게 치명적이다.

그룹의 생명과 화재가 보유한 전자 지분 8.76%가 금산분리 규제강화가 되면, 의결권이 5%로 제한되는데, 줄어든 만큼의 지분을 회장 일가가 확보하기 위해서는 5조원 이상이 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력이 대기업집단을 인위적으로 해체하는 것에는 원칙적으로 반대합니다.”


비록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금산분리는 세계적인 추세와 비교해 굉장히 기준이 높고, 규제 강도도 높은 편이다.

은행·산업분리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고.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방법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외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걸 눈감아 주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회장이다.

류지호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라는 단서가 달렸지만.

금산분리 규제강화는 류지호로서 결코 남의 사정이 아니다.

가온그룹 역시 계열사에 금융사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순리대로 일이 처리되길 기대하겠습니다. 오성은 글로벌 기업이니까요.”


경영권을 자식에게 어떻게 넘겨주느냐 하는 것은 한국재벌의 오랜 고민거리다.

‘부자지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업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은 이제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 보니 갖은 편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오성그룹 쯤 되면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인해 경영권 승계가 복잡한 수학문제를 푸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류지호는 권력자에게 의지해 우격다짐의 승계 작업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남겼다.

오너리스크 때문에 주가가 출렁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이전 삶에서 공교롭게도 보수정부 10년 동안 재벌 총수들의 평균 나이가 70대에 접어들면서 각 대기업들마다 경영권 승계가 속도를 냈었다.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의 목표는 ‘최소의 돈을 사용해서 그룹의 핵심 계열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후계자에게 넘기는 것’이고, 사용하는 수법은 ‘후계자에게는 유리하고 일부 주주들에게는 부당한 분할·합병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간에 비상장 회사나 자사주를 적당히 끼워 넣으면 그런 조작이 훨씬 쉬워진다.

회계법인만 딱 눈감아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나중에 큰 문제가 된다.

재벌들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문제를 정치권력과 사법 권력이 무마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감옥에 가더라도 특별 사면으로 금방 풀려나올 수 있다.

때 되면 사면복권도 해준다.

온갖 불법·편법으로 경영권을 승계 받은 후계자는 벌을 받았으니 된 것이다.

국가 전략산업을 잘 이끌어주기만 하면 된다.

언론이 격려해주고, 정치인이 응원하고, 일부 국민이 열광해 준다.


“솔직히 말씀드려 오성그룹 승계로 제가 손해 볼 일은 거의 없지 않겠습니까?”


손해는 오로지 개미 혹은 소액 투자자들만 본다.

외국 기관투자사와 대형 자본들도 오성 관련 기업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그룹 승계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는 걸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적어도 대주주들과 주요 주주들에게 사전조치를 해둘 것이다.

그저 류지호는 이전 삶과 어떻게 다르게 승계작업을 진행하는지 팝콘 먹으며 구경하면 될 뿐.

암튼 이 시기만 해도 오성그룹처럼 생명보험사가 주력 기업 지분을 보유해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을 이룰 경우에는 문제가 제법 심각했다.

이동희 회장과 오성모직이 오성생명을 지배하면서 보험 가입자들의 위탁 자산으로 오성전자를 우회 지배하고 전자를 통해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구조인데, 정작 회장 일가의 오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크지 않다는 게 약점이다.

막말로 오성생명이 전자 지분을 처분하면 그룹 전체가 공중 분해될 수도 있었다.

때문에 금융·산업 분리 문제가 해결되기 이전에는 상속 작업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산분리를 피할 수 없다면 후계 상속구도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자칫 상속이 시작된 뒤 금산분리 폭탄이 터질 경우 그룹이 반 토막 날 수도 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시간을 끄는 게 최선인 상황이다.

때문에 오성 일가로서는 다음 정권의 향방이 매우 중요했다.


“나로서는 자네가 정의심과 공명심에 사로잡혀 금산분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 만해도 다행이야.”

“원칙적으로는 금산분리가 맞죠. 다만 가온그룹도 준비를 좀 해야 해서요.”


그것으로 이동희 회장은 만족했다.

류지호가 오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이나 경영 참여에 큰 욕심이 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것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고.

이동희 회장은 자신의 외아들이 류지호와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판을 짜고 있다.

딸 중에서 하나를 류지호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는 것이 좋겠지만.

암튼 오성일가 입장에 류지호는 그룹 개편과 상속에서 최대 변수다.

떠나가는 이동희 회장의 뒷모습을 보며 류지호가 중얼거렸다.


“과연 변수 정도일까....?”


류지호와 관계된 투자회사와 기업들이 오성그룹의 전자와 생명 주식만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산, 중공업 등 오성그룹 상장사 여러 종목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다.

일부 회사 지분은 오성그룹 순환출자 고리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뿐 아니다.

오성이 미국에서 발행한 채권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오성 일가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시도할 기업 분할·합병 과정에 끼어들어 오성 후계자의 지분 확보를 방해하거나 더 높은 지분율을 확보할 수도 있고.


‘무지막지한 돈 지랄로 말이지...’


막말로 JHO가 오성전자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오성 일가는 그룹 개편이든 경영권 승계든 신경 못 쓴다.

승계작업에서 중요한 과정인 자연농원, 오성모직, 오성생명의 주식 상장에 매달릴 수도 없게 된다.

재벌들에게 류지호는 우호적인 주주다.

기존 재벌 경영진을 도우면 도왔지 의결권 행사를 거의 안 하니까.

동시에 저승사자일 수도 있다.

생각보다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에.

재벌들이 류지호에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장유유서, 단지 그것 밖에는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한국 재벌들에게도 부담일 테지.....’


집안의 가업을 대대손손 물려받아 사업을 이어가는 가족기업의 장점도 있다.

주인의식이나 사명감을 더욱 고취시킬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잊혀져가는 전통을 되살릴 수도 있다.

그것도 90년대까지다.

21세기 기업 환경에서 실력보다 혈연을 우선한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기회의 평등 법칙에도 크게 어긋난다.

특히 글로벌 기업을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경영자가 운영한다면 기업 구성원은 물론이고 해당기업의 소비자 및 투자자들까지 심각한 손해를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가족기업들도 분명 있다.

그들은 후계자를 최고경영자로 올리는데 25년 이상을 쓴다.

기업경영 수업을 받으며 검증을 받게 한다.

그것도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키워 올리는 방식으로.


“성공적인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예전 류지호가 윌리엄 파커에게 한 질문이었다.

윌리엄 파커는 교과서적인 말을 내놓았다.

우수한 두뇌는 기본이며, 탁월한 화술과 넓은 인간관계, 그리고 결단력 등을 들었다.

여기에 '판'을 잘 읽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CEO라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란다. 특히 글로벌 기업이라면 아주 작은 실수가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여기에 운까지 따라주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

“결국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도 시운을 타고난 사람은 못 이기지 않을까요?”

“그렇지. 결국 성실한 자, 즐기는 자, 미친 자 모두를 뛰어넘는 자가 행운을 몰고 다니는 자겠지. 마치 네 녀석처럼. 하하.”

“운이라니요? 매 상황마다 그에 합당한 절묘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싸맸는데요....!”


모두가 무엇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최선을 바라본다.

안타깝지만, 최선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최선을 선택할 상황보다 더 많다.

그럴 때는.. 차선을 택하거나 차악을 택하라고들 충고한다.

즉 최악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악은 차선이 될 수 있고, 차선은 노력이 더해지면 최선도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악은 그저 최악일 뿐이다.

최악이 차선이나 차악이 되는 경우는 없다.

삶에서 후회하는 모든 결정은 결국 최악을 결정했을 때다.

최악의 결정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도 있겠지만...


‘욱하는 감정에 의해 그런 결정을 할 경우가 많지....’


그 결과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되어 부메랑처럼 본인을 찍게 된다.

이전 삶에서 전 세계적으로 극우들이 득세를 한 시기가 있었다.

무엇엔가 홀린 듯 사람들이 그런 결정을 했던 것 같았다.

류지호가 과거로 돌아온 이 세계에서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똑같은 미래는 뒤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누군가에는 최고의 시절이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시절.

어리석음의 시대이자, 현대의 시민이 깨어나는 시대.

엄청난 일들이 펼쳐졌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시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발전은 없고, 한없이 정체만 되던 시대.

류지호가 기억하는 이전 삶의 2010년대가 그랬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권력은 유통기한이 짧지만, 자본의 유통기한은 꽤 길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는 헬(Hell) 조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헤븐(Heaven) 조선.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른 법이다.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반지하방에서 ‘헬조선!’을 외치던 루저였다.

지금은....


‘적어도 Hell은 아니겠지....’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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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8 24.01.03 2,023 98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1 24.01.02 2,004 99 25쪽
733 The Wall Street Journal. +13 24.01.01 2,013 105 27쪽
732 몰락한 동양의 할리우드, 그런데.... +16 23.12.30 2,062 98 21쪽
731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2) +3 23.12.30 1,795 90 23쪽
730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1) +5 23.12.29 1,880 101 30쪽
729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3 23.12.29 1,793 85 26쪽
728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10 23.12.28 1,895 93 23쪽
727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1) +4 23.12.28 1,761 81 22쪽
726 협객이 된 기분이야. (2) +7 23.12.27 1,891 103 24쪽
725 협객이 된 기분이야. (1) +4 23.12.27 1,802 89 23쪽
724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2) +5 23.12.26 1,972 94 26쪽
723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1) +5 23.12.26 1,851 90 24쪽
722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3) +7 23.12.25 1,983 97 26쪽
721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2) +8 23.12.23 2,039 99 25쪽
720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1) +3 23.12.22 1,961 93 23쪽
719 도둑질 하지 말라! +5 23.12.22 1,845 91 26쪽
718 God bless you....! (3) +6 23.12.21 1,921 107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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