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연재수 :
962 회
조회수 :
4,121,552
추천수 :
126,877
글자수 :
10,687,409

작성
23.12.22 09:05
조회
1,984
추천
93
글자
23쪽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탄자니아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한 류지호 일행이 동부 아프리카의 중심 국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Nairobi)에 도착했다.

나이로비는 탈(脫) 아프리카를 지향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급격한 성장과 함께 나이지리아 라고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와 함께 범죄율이 가장 높은 아프리카 3대 도시로 악명이 높았다.

류지호가 힐턴 호텔 로비에서 레오나를 배웅했다.


“미안해.”

“아니야. 언제 또 아프리카를 방문할지 알 수 없잖아. 달링은 회사를 챙겨야지.”

“키베라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안전하게 번화가만 돌아다니면 좋겠는데.... 꼭 가야겠어?”

“낮 시간에 외곽의 청소년센터만 돌아보고 올 거야.”


무장 경찰들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도 류지호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방문 예정인 키베라(Kibera)는 필리핀 바세코(Baseco),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와 함께 UN이 지정한 세계 3대 빈민촌이다.

나이로비 범죄조직의 근거지이도 하고.


“나이로비 경찰도 동행하잖아. 걱정 마.”

“못 미더우니까 그렇지. 차라리 JHO 경호원들에게 무장을 시키는 것이 마음이 놓일 것 같아.”


LA의 악명 높은 빈민가 콤프턴의 청소년센터를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레오나다.

이곳은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외국이고.

나이로비 경찰청장이 안전에 대해 호언장담을 했다.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류지호다.

레오나의 의지가 너무 강경했다.

경호팀에게 만전의 만전을 다해 줄 것을 신신당부하고 레오나를 놔줄 수밖에 없었다.


“오... 하느님!”


여성 봉사단원들이 절로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빈민촌에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바람을 타고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마주한 빈민가.

추정인구 80만~200만의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나 다름없는 죽은 땅 위에서 살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빈민가 키베라(Kibera)다.

집과 집의 작은 도랑에는 썩은 내가 진동하는 하수가 흐르고 있다.

분변과 생활오수가 뒤섞여 전염병이 돌지 않는 것이 요행처럼 여겨졌다.

수많은 구불구불한 갈래 길과 슬레이트 지붕을 얼기설기 엮은 조악한 가옥들.

어떻게 끌어왔는지 모를 조잡한 전기선들이 복잡다단한 그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어, 밀림(키베라)이라는 현지어의 뜻이 무색할 정도다.


“경찰도 터치하지 못하는 우범지대입니다. 절대 사진 찍지 말고, 가능하면 눈도 마주치지 마십시오. 우리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적대감이 강한 동네라 시비 붙으면 위험해집니다.”


나이로비 경찰 경호책임자가 단단히 일렀다.

그도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실제 키베라는 무법지대로 통한다.

이곳 청년들은 절대적 빈곤과 상대적 절망을 자양분으로 분노와 범죄를 키워내고 있다.

케냐의 메이저급 갱들은 대부분 키베라 출신이라는 게 정설로 굳어질 정도.

참고로 10여 년이 지나면 이 빈민촌의 일부는 관광 코스처럼 된다.

가이드들이 외국 관광객을 데리고 빈민촌 외곽 투어를 돌게 된다.

빈곤포르노에 이은 빈곤사파리다.


“보시다시피 사정이 이러니 정부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입니다. 사실 정확한 거주자들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레오나가 보기에는 무관심이다.

당국은 이 빈민촌을 방치하고 있다.

나이로비의 하늘은 정말 예쁘다.

그런데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숙여 주위를 둘러보면...


‘너무 비참해.’


레오나는 왠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얼른 눈빛에서 연민과 동정을 지웠다.

그저 속으로 이들의 구원을 위해 신께 기도할 뿐.

아이들은 놀 곳이 없다.

따로 할 것도 없다.

그저 쓰레기로 오염된 더러운 물에서 첨벙일 뿐.

그런데 유난히 시선을 끄는 지붕 위 안테나들.

집마다 TV 안테나가 세워져 있다.


“먹을 것도 없을 텐데, TV는 어떻게....?”

“이곳 사람들에게 텔레비전이 생명입니다. 먹을 게 없어도 화장실이 없어도 되지만, 텔레비전이 없다는 건 이들에게 절망입니다.”


TV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인 키베라 빈민들.

과연 TV를 보는 것이 마약중독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미국의 빈민촌도 똑같다.

하루 종일 케이블TV만 보는 빈민들을 많이 보아 온 레오나다.

레오나와 봉사단은 빈민촌 외곽만 조금 구경하고, 곧바로 키베라 빈민촌의 옛 철길 주변에 만들어진 JHO 청소년센터를 방문했다.

서너 명의 소년소녀만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이들은 나이로비로 나가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통이라도 뒤져야 한다.

한가하게 청소년센터에서 놀거나 선교사들과 성경 공부할 여유 따윈 없다.


“너희를 위해 해줄 것이 별로 없어, 미안해. 네 친구들을 위해 센터에 축구공을 선물로 주고 싶은데.”


아프리카 소년들은 대체로 축구에 열광한다.

헌데 소년들은 고개를 저으며 선물을 거절했다.


“어차피 갱들에게 뺏겨요. 안 주셔도 괜찮아요.”

“갱단원이 너희들이 가지고 노는 축구공까지 빼앗는단 말이야?”

“아마 아름다운 아줌마가 축구공을 우리에게 선물한다면 형들이 빼앗아 갈 거예요. 그 형들 뒤에는 어른 갱들이 있어요. 같은 나이대인 데도 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도 절대 우리를 도와주지 못해요. 스스로 피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요.”

“축구공 대신 다른 걸 줄 수 있어.”

“어차피 다 빼앗겨요.”

“모든 걸 다?”

“키베라 주변에서만 8개 그룹 정도의 뭉기키가 활동 중이에요.”


뭉기키(mungiki)는 청소년 범죄집단을 일컫는 용어다.


“가끔 구호단체나 종교단체에서 우리에게 이런저런 용품을 주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이 와서 다 빼앗아가요. 주지 않으면 해를 입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줘야 해요. 악순환이에요. 그들 눈에 띄면 무조건 뺏겨요.”


미국의 빈민가와 똑같았다.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말만 이웃이지 철저하게 먹이사슬로 구분된 곳.


“청소년센터에 왜 너희들 밖에 없는 거니?”

“이곳은 쉼터가 없어요. 기댈 곳이 없고, 우리만의 공간이 없어요. 쉼터가 생겨도 금방 갱들에게 뺏기겠지만. 좋은 것들은 언제나 그들의 차지이에요. 그래서 전 항상 꿈꿔요. 언젠간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날 거라는. 나는 그들처럼 살지 않을 거라는. 우리 가족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난 그 생각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어요.”


키베라의 청소년들은 갱단원이 되든가, 삶을 포기한 채 평생 TV를 보며 무의미하게 살든가, 선택지가 많지 않다.


“저는 역사책을 좋아해요. 외부인들이 주거나 남기고 간 책을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어요. 갱들은 책은 안 빼앗아요. 돈이 되질 않으니까요.”

“.....!”

“이곳에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요. 바깥세상을 보는 방법은 책이 유일해요. 텔레비전도 좋지만., 채널도 두 개밖에 없고.... 항상 어른들 차지니깐.”

“센터에 책을 채워줄게. 그럼 매일 와서 책을 읽을 거니?”

“네! 매일 한 권씩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달빛 아래서 읽을 수도 있어요.”

“센터에 책을 좀 가져다 놓을 게.”

“혹시 아름다운 아줌마는 선교사에요?”

“아니. 이 센터를 세운 사람의 부인.”

“그럼 성경공부를 강요하지 않겠네요?”

“성경공부가 싫어?”

“항상 선교사라는 사람들은 성경공부를 해야 먹을 것을 주고 선물을 줘요. 난 역사책을 읽고 수학과 과학을 배우고 싶은데....”

“역사와 과학 책을 많이 선물해야겠구나?”

“그럼 감사해요. 혹시...혹시....”

“또 무엇을 원하니?”

“혹시 부자라면 다음에 이곳에 올 때 학교를 세워줄 순 없나요?”

“그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소년들은 금방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학교가 세워질 수 있도록 아줌마가 한 번 노력해볼게.”

“정말이요?“

“응.”


소년들은 그 어떤 선물보다 학교를 세워주겠다는 약속에 열광했다.

깡패들도 학교와 교회는 건드리지 않는다.

두 곳을 건드리게 되면 빈민촌 모두를 적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참고로 키베라에서 선교를 하던 이들이 간혹 살해당하거나 실종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손 쓸 길이 없다.

레오나는 아이들이 소망이 꺾이지 않는 한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실제 미국의 JHO 청소년센터 출신 빈민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으니까.

이제야 류지호가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누구나 각자 할 일이 있다는 말.

키베라의 퀴퀴하고 음습한 기운 속에서 이 소년들은 한 줄기 빛이 되어야 한다.

소년 자신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희망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기적을 만들어야 하고 기적이 모여 상식이 되어야 한다.

레오나는 그걸 도와줄 능력이 있다.


“.....!”


하늘과 맞닿은 수많은 녹슨 양철 지붕 사이로 저 멀리 나이로비의 위풍당당한 빌딩들이 보였다.

경찰 경호책임자가 재촉했다.


“이제 그만 떠나시지요.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면 좋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오물과 쓰레기로 뒤범벅된 길을 따라 키베라를 빠져나갔다.

레오나와 봉사단이 걸었던 거칠고 더러운 이 길.

청소년센터의 소년들과 앞으로 설립될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언젠가 이 길을 따라 저 멀리 고층 빌딩이 보이는 나이로비로 나아가길.

그래서 키베라에서 꾼 꿈들이 나이로비에서 실현되기를.

레오나는 키베라 아이들의 작은 기적을 기도했다.


❉ ❉ ❉


아프리카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진다.

올해 6월에 타계한 검은아프리카영화의 지도자이자 아버지 우스만 셈벤(Ousmane Sembene)이 대표적인 감독이다.

세네갈 출신의 이 위대한 영화감독은 최초로 전 세계에 아프리카 영화를 알렸으며 수많은 아프리카계 감독들에게 영감을 불러 넣었다.

유럽에서 그의 영화가 환호를 받는 이유는 척박한 환경에서 일구어낸 작품이란 것과 함께 아프리카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통렬한 발언을 가감 없이 담아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발표한 유작 <물라데>는 아프리카 소녀들의 할례의식을 비판한 영화였다.

우스만 셈벤은 늘 식민주의, 지배계급의 부패, 여성의 억압 등 아프리카 민중을 옥죄는 사회적 모순에 일침을 가했다.


[식민주의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모든 질곡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우리, 아프리카 감독들은 정치적이어야만 한다.]


자신의 신념에 온 생을 바친,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었던 아프리카 영화의 정신적인 지주 우스만 셈벤이다.

한편 현존하는 최고의 아프리카 감독은 술래이만 시세와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다.

두 감독 모두 아프리카인의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둘이 류지호의 초청으로 케냐를 찾았다.

함께 오찬을 하며 아프리카 영화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할리우드든 아프리카든 다를 것이 없다.

모든 영화감독은 영화광이다.

언제나 세상과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찬을 마치고 일행이 KICC 전시장으로 향했다.

류지호가 케냐를 방문한 이유 중에 하나는 올해 처음 개최되는 아프리카 방송-영화-음악 전시회(Broadcast, Film &Music Africa)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이 전시회에 JHO Company와 가온그룹이 특별 부스를 개설했다.

처음으로 개최되는 행사다보니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록 케냐에서 가장 큰 KICC 전시장에서 열리지만, 10개국 60개 업체가 참여하는 소박한 행사다.

오죽하면 DALLSA D-Cinemas와 가온그룹 산하 다솜방송이 부스를 차린 것만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방송영화계가 반년 동안 떠들썩할까.

암튼 케냐에서 42개사가 전시회에 참가해 최대 규모이고, 영국과 중국에서 각각 3개사, 대만, 남아공, 코트디부아르,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 덴마크 등의 국가에서 다큐멘터리, 일반영상, 애니메이션 등 영상 제작프로덕션 업체와 지역 방송 및 라디오 방송업체, 그리고 방송 관련 장비판매 및 유통업체가 참가해 최신 기술 및 관련 장비를 선보였다.

JHO Company Group은 DALLSA D-Cinema와 Campro, Abid, NSS(Nettmann Shooting Systems) 등 업체들이 특별부스를 개설해 약 2,000명의 바이어와 관람객을 상대했다.

아프리카 영화 및 방송관계자들에게 DALLSA D-Cinema 제품은 그림의 떡이라고 할 수 있다.

NSS(Nettmann Shooting Systems)의 각종 특수촬영장비도 마찬가지고.


“가격을 떠나서 첨단장비를 운용할 인력도 최종적으로 디지털 포맷의 방송이나 영화를 내보낼 플랫폼이 없습니다.”


DALLSA D-Cinema 컨벤션팀장이 류지호를 수행하며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곳 사람들이 최신기술 동향을 실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시간이긴 합니다. 영세한 아프리카의 방송국 여건상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방송장비박람회에 출장을 다녀올 수가 없기에 이번 저희 그룹 참여로 중북부 아프리카 방송영화계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어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항공화물비용은 뽑을 수 있겠어요?”

“케냐, 탄자니아, 르완다 각각 한 곳씩 장비계약을 체결할 것 같습니다.”


총액 23만 달러에 불과한 계약이다.

실적이라고 할 수 없는 미미한 수준이다.


‘비용은 퉁 칠 수 있겠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프리카에 JHO Company 산하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최초의 4K, 6K 타이틀은 디지털 불모지나 다름없는 아프리카에서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프리카·중동 지역에서 DALLSA D-Cinema는 파나플렉스와 소닉보다 고급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류지호는 전시회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각종 콘퍼런스와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저작권 문제와 디지털 영상에 대한 공개토론에 참석하고, 디지털 기술 강좌를 참관했다.

디지털 영화를 주제로 강연자로 나서 청중들에게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만나서 반가웠소. 미스터 할리우드.”

“지호라고 해도 되고 Jay라고 불러도 됩니다. 미스터 멩기.”


담소를 나누고 헤어진 탄자니아 최대 미디어 그룹 IPP의 레지날드 멩기 회장이다.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물게 탄자니아는 언론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다.

신문사도 수십 곳이고, TV 역시 두 개의 국영 방송과 6개의 민간방송국이 있다.

인도계 탄자니아인들이 언론과 방송 분야에서 영향력을 꽤 행사하고 있다.

외국계 위성방송을 시청하는 중산층 가구도 꽤 있다.

탄자니아 관광자원부와 JHO Hotel&Resorts의 MOU 체결로 JHO의 소프트파워가 아프리카 대륙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됐다.

JHO/DirecTV가 탄자니아에서 디지털 텔레비전 면허를 취득했다.

10억 명의 아프리카 시청자들을 위해 할리우드 영화와 TV시리즈 그리고 곁다리로 한국의 가온그룹이 가진 콘텐츠도 함께 소개할 수 있는 디딤돌을 놨다.

류지호는 아프리카 국가에 차관을 주고, 댐을 만들어주고, 고속도로나 철도를 놔주고 그 반대급부로 천연자원을 얻어가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양질의 콘텐츠로 유혹해 그들의 정신을 친 할리우드 혹은 친 한류로 물들이는 음흉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예술과 첨단기술을 포함한 창조적 산물과 연관된 모든 소프트파워의 아프리카 전파를 주도하는 미디어 제국의 왕이 류지호다.


“노래방 기기 주문이 많이 들어왔다면서요?”

“하하. 네. 의장님.”


이번 박람회에는 노래방 기기를 제작·판매하는 TJ미디어와 CA무대음향 회사도 참여했다.


“케냐 사람들이 영어를 잘합니다. 아프리카 맞춤형 음악들을 선정해 아프리카 통용어인 스와힐리어를 포함해 아프리카에서 인기 있는 프랑스어 노래 반주 음악을 넣은 것이 주효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음악은 각종 종교행사, 축제, 공동체 모임 등 생활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춤과 노래는 아프리카인들의 생활 그 자체다.

음향 장비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의 노래방 기계 같은 반주음악 기기가 아직 아프리카에 소개되지 않았다.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해 이번 전시회에 참여했다.

시장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한 전시회였다.


“노래방 기계에 대한 특허기술 보호가 안 될 겁니다. 중국인들이 TJ미디어 제품을 마구 카피해 판다면 손해만 떠안을 가능성도 있고.”

“그룹 차원에서 로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DCN드라마는 판매가 됩니까?”

“케냐에서는 방사룡이 어지간한 할리우드 스타보다 더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때문에 DCN 자체 제작드라마처럼 전문직이나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은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럴 겁니다. 사극이나 스케일이 큰 액션영화가 먹힐 겁니다.”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가 일반적으로 그렇다.

세련되고 스토리의 밀도가 높은 드라마나 영화보다 단순한 이야기, 영웅담, 스케일이 큰 시원시원한 액션 영화를 선호한다.


“특이한 제안이 하나 있었습니다.”

“뭡니까?”

“탄자니아 민간 방송국 중 한 곳에서 한국의 <전원일기>를 리메이크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CA미디어가 그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문의를 해왔습니다.”

“드라마를 사와서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리메이크입니까?”

“한국 방송사가 너무 비싼 판권료를 요구할까봐 지레 짐작해서 우리가 협상의 중재를 해주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공동제작 크레디트를 보장하겠답니까?”

“예.”


탄자니아, 케냐, 에티오피아 등 동아프리카 국가들은 농업 국가다.

국민의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원일기>는 대가족을 중심으로 양촌리 사람들의 풋풋한 인간애와 가족 간의 화목과 우애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효의 가치를 담은 최장수 드라마다.


“MBS가 아니라 CA미디어가 껴도 되는 겁니까?”

“CA미디어가 MBS로부터 드라마 판권을 구입한 후, 다시 탄자니아 방송국과 공동으로 제작하는 형태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리메이크 판권 비용 부담을 CA미디어에 지우려고 하는 수작이다.


“싼 값에 사다가 틀면 되는데, 탄자니아 방송국이 드라마를 제작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군요. 무리는 하지 맙시다. 성사된다면 좋은 것이고. 아니면 말고.”

“알겠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뉴스를 보기 위해 TV를 구매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리카 방송사들은 드라마, 영화, 예능 등 자체 콘텐츠 생산 능력이 미천했다.

그러니 유명 연예인이 탄생할 여지가 적다.

연예인 대신 해서 스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정치인이다.

탄자니아와 케냐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드라마 보듯 TV뉴스를 본다.

정치인들은 프로레슬링 선수들처럼 쇼맨십이 뛰어나다.

다들 달변가에 자신을 어필하길 좋아한다.

상대진영 정치인과의 갈등 관계가 마치 드라마처럼 얽히고설켜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준다.

뉴스가 정치인의 캐릭터를 부여한다.

전 세계 어떤 나라 매스컴에서든 정치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하는 것이 기본이긴 하지만.

아프리카 방송국들은 자체 콘텐츠 대신 외국에서 한 물 간 영화나 드라마를 싼 가격에 사다가 빈 시간에 틀어준다.

당연히 뉴스 시간 앞뒤로 가장 인기 있는 할리우드 영화나 TV시리즈가 방송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의 지상파 채널도 많아야 2~3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들어오는 지역보다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TV뉴스는 꼭 봐야 한다.

즐길 것이 그것밖에 없다.

흥미진진한 현실 정치인들의 반목·갈등·복수·음모 스토리는 매우 흥미로운 한 편의 드라마다.

그래서 저녁 뉴스 방영 시간이 되면 석유 발전기를 돌려 TV를 켰다.

뉴스가 끝나면 TV를 딱 끄고 잠자리에 든다.

류지호에게도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어릴 때 부모님들도 9시 뉴스는 꼭 보고 잠자리에 들었으니까.


“보니까 케냐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더군요?”

“예. 대도시 사람들은 스와힐리어, 부족 언어, 영어까지 3개 언어를 할 줄 압니다. 다솜방송 해외파트에서 그 때문에 콘텐츠 선택 폭이 넓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케냐 중산층은 자막 없이 미국 드라마를 그대로 즐길 수가 있으니까요.”


한편으로 케냐 자체 콘텐츠 산업의 약점이다.

미국 그리고 인도가 만든 뛰어난 콘텐츠를 그대로 소비할 수 있다 보니, 자국의 콘텐츠가 인기를 끌 수가 없다.

가난한 일반 대중들은 뉴스를 주로 시청하고, 경제적 여유가 되는 이들은 주로 외국 콘텐츠를 즐기고.


“탄자니아에서 인도세가 강한 것이 의아하긴 하지만, 영어 콘텐츠가 가공 없이 먹히는 것은 생각해볼 만하군요.”

“그래서 <전원일기> 리메이크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도와 저희 콘텐츠가 정서적으로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의 유교적 가족문화가 중동·아프리카에서 잘 먹힐 겁니다. 전통사회 안에서 독립적인 의지가 있는 여성 주인공 드라마도 괜찮고.”

“예. 의장님.”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아프리카 수준이 한국의 60년대 말~70년대 초반 정도 될 것 같더군요. 멀티플렉스를 진출시키기에는 실효성이 없을 것 같아요.”

“G.O.M에서도 그렇게 결론을 낸 것으로 압니다.”


차라리 아프리카 국가에 통신 산업을 키워주면서, 극장 사업을 건너뛰고 JHO 산하의 NeTube와 OTT를 진출시키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아프리카 대륙의 영상 미디어 분야 발전은 중국과 유사할 터.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아날로그 발전 과정을 생략하고, 곧바로 디지털 미디어로 점프할 것이다.

때문에 기존 텔레비전 방송, 극장, DVD 시장은 당장에 눈길을 줄 필요가 없다.

먼저 위성방송부터 진출시킨 후에 영상 플랫폼을 진출시키는 것이 현명할 것 같았다.


“JHO/DirecTV 아프리카 최고책임자가 누굽니까?”

“조지 펜튼이라고....”

“이번 행사에도 왔어요?”

“예.”

“내가 보잔다고 하세요.”


류지호의 호출에 JHO 위성사업 아프리카 총책임자 게리 펜튼(Gary Fenton)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금요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55 일본이여, 이것이 히어로 영화다! +8 24.01.26 1,951 89 27쪽
754 새로운 길을 찾아내 개척해 나갈 것이라 믿습니다. +4 24.01.25 1,956 91 24쪽
753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2) +9 24.01.24 1,916 90 26쪽
752 전적으로 그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1) +7 24.01.23 1,920 104 26쪽
75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4 24.01.22 1,953 94 25쪽
750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성이 더 중요한 법이다. +6 24.01.20 2,002 95 22쪽
749 사랑의 열매. (5) +7 24.01.19 1,976 87 23쪽
748 사랑의 열매. (4) +9 24.01.18 1,908 93 26쪽
747 사랑의 열매. (3) +3 24.01.17 1,885 93 26쪽
746 사랑의 열매. (2) +8 24.01.16 1,946 97 24쪽
745 사랑의 열매. (1) +5 24.01.15 1,992 90 24쪽
744 뭐라도 해야만 돼! (2) +8 24.01.13 1,971 99 29쪽
743 뭐라도 해야만 돼! (1) +7 24.01.12 1,951 96 28쪽
742 만인의 연인! (2) +7 24.01.11 1,956 103 25쪽
741 만인의 연인! (1) +6 24.01.10 2,007 89 25쪽
740 Bridal Mask! +4 24.01.09 1,960 97 23쪽
739 World Promotion. (4) +4 24.01.08 1,976 93 29쪽
738 World Promotion. (3) +3 24.01.06 1,975 99 27쪽
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958 94 26쪽
736 World Promotion. (1) +7 24.01.04 2,058 101 23쪽
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8 24.01.03 2,046 99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1 24.01.02 2,023 100 25쪽
733 The Wall Street Journal. +13 24.01.01 2,033 105 27쪽
732 몰락한 동양의 할리우드, 그런데.... +16 23.12.30 2,089 98 21쪽
731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2) +3 23.12.30 1,818 91 23쪽
730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1) +5 23.12.29 1,903 104 30쪽
729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3 23.12.29 1,821 86 26쪽
728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10 23.12.28 1,916 94 23쪽
727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1) +4 23.12.28 1,781 81 22쪽
726 협객이 된 기분이야. (2) +7 23.12.27 1,911 103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