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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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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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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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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럭셔리한 호텔은 Springfield Hotel 아디스아바바다.

Hotel Ghion은 Springfield에 비하면 여관이다.


“이곳이 Jay가 소유한 호텔 체인이라던데요?”

“그렇긴 한데... 평소 묵는 호텔에 비해서 너무 누추할 것 같아서....”


Hotel Ghion은 10년 전까지 정부가 운영했다.

민간에 운영을 넘긴 후로도 낙후된 시설을 리모델링하지 않아 외국계 호텔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캐나다 밴쿠버 호텔 인수 이후 해외지점을 찾던 가온 호텔&리조트는 JHO Securiy Service의 추천으로 에티오피아에서만 4개의 체인을 가진 Ghion Hotel을 인수했다.

인수과정에서 총리를 비롯해 에티오피아 지배세력에게 조금 더 돈을 챙겨주었다.

말단 공무원까지 꼼꼼하게 뇌물을 쥐어줬다.

아프리카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방식이다.


“환영합니다. 보스!”


호텔의 본관 건물 앞에 백인, 한국인, 현지인 등 각양각색의 직원들이 류지호 부부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류지호가 암하릭어로 현지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떼나 이스틀린!”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유 언어와 문자를 쓴다.

외국을 방문하기 전에 그 나라의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연습하는 류지호다.

에티오피아에서도 인사말과 감사 정도는 표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두었다.

JHO와 가온그룹의 해외 사업체들은 본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

아프리카라고 해서 차별이 있지 않았다.

물가 차이는 있을지언정 복지프로그램은 똑같다.

본래도 충성심이 남달랐던 현지 직원들이다.

TV와 잡지에서만 보던 유명한 할리우드 감독이자 호텔의 오너인 류지호와 인사를 나누자 다들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그지엡헤르 임메쓰간.”


류지호를 영접(?)한 것만으로 하느님의 은혜까지 찾는 직원들이다.

기아와 빈곤으로 피골이 상접한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이 서구권 언론매체에 자주 소개 된다.

헌데 이곳의 현지인들은 180Cm가 넘는 훤칠한 사람들이 많았다.

호텔에서 모델급 직원만 채용했나 싶었다.


“프론트 업무를 볼 직원들은 용모를 보긴 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에티오피아인들은 다른 아프리카 민족보다 피부색이 옅고 구리 빛입니다. 키도 크고 몸의 비율은 말할 것도 없이 균형 잡혀 있으며, 아랍인들처럼 이목구비도 뚜렷합니다.”


에티오피아 남부 지방에는 흔히 떠올리기 쉬운 까만 피부에 고수머리 그리고 눌린 코의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잘생기고 또 예쁘단다.


“현지인들은 블랙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초콜릿 컬러라고 합니다. 보스께서도 아시겠지만, 세계적인 슈퍼모델 일레인 캠벨이 에티오피아 출신이죠. 고대로 올라가면 솔로몬과 지혜를 겨뤘다는 시바 여왕 역시 에티오피아 출신입니다.”


호텔 곳곳에 류지호와 관련한 사진들이 많이 보였다.

포토샵까지 동원해 각양각색의 배경에서 촬영한 합성사진들도 많았다.


“저거 초상권 위반 아닙니까?”


호텔 총지배인 김상원이 어쩔 줄 몰라 허둥댔다.


“본사에.... 허락을 받았는데... 안 되는 건 줄 몰랐습니다. 모두 떼겠습니다.”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아디스아바바는 외교의 도시입니다. 수십 개 국가 대사와 53개 아프리카 연합 회원국 대사들이 수시로 출입하고 있습니다. 의장님께서는 세계적인 셀럽 중에 셀럽이십니다. 조디 워커와 푸진타 주석을 제외하고 의장님께서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한 가장 중요한 VVIP일 것입니다. 따라서 의장님을 적극 활용하라는 본사의 지침이....”

“방침이 최고급 손님만 받겠다는 겁니까?”

“예!”

“가까운 곳에 Springfield와 힐턴이 있던데. 경쟁이 되겠어요?”

“본관 객실이 195개였습니다. 현재는 스위트 및 디럭스 객실 위주로 리모델링을 완료해 절반 수준으로 객실을 축소했습니다. 신축된 별관은 총 170개 객실 수준이지만, 비즈니스 룸, 헬스장, 스파, 이벤트 홀,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류지호는 럭셔리 호텔이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최빈국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긴 합니다. 사람 사는 곳은 똑같지 않겠습니까. 부자는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 가운데는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공간에서 특별한 체험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맞는 말이라 류지호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Springfield Addis가 에티오피아를 넘어 아프리카 2대 호텔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리모델링한 본관 건물과 별관 건물이 모두 오픈하게 되면 Ghion 호텔 아디스가 Springfield과 넘버 투를 놓고 경쟁을 할 수 있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김상원이 류지호 일행을 객실이 아닌 호텔 밖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총지배인.... 우릴 어디로 데리고 가는 겁니까?”


황제의 궁전 터에 세운 호텔리조트가 Ghion이다.

화려한 꽃들이 심어진 아름다운 화단이 있고, 아스팔트 통로를 제외한 모든 곳에는 잔디가 푹신하게 깔려있으며, 수 백 그루의 조경수는 자연 그대로의 야자수다.

4층의 호텔 본관 건물과 13층 높이의 신관 건물 그리고 28개의 방갈로, 대형 야외 수영장 및 아프리칸 재즈 빌리지, 나이트클럽, 테니스 코트를 제외한 사방이 아름다운 정원과 잔디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곳곳의 야자수 사이에는 방갈로 형식의 특별한 객실도 마련되어 있고, 단독 건물로 실내 연회장도 있다.

김상원 총지배인은 숲 속에 자리한 대형 실내연회장으로 류지호 부부를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류지호 일행이 사방이 유리창으로 된 대형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말캄 머타추후.”


에티오피아 전통 의상을 입은 호텔 직원이 인사를 해왔다.

연회장 중앙에 프라이팬, 자기로 만든 찻잔, 주전자, 커피 생두 등이 준비된 테이블과 화로 등이 놓여있다.

중년의 에티오피아 여인이 두 손으로 앉은뱅이 의자를 가리켰다.

류지호 부부와 채연지 부부가 시키는 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뭡니까? 이 상황은?”


총지배인이 뒤로 물러나고, 채연지가 대신 대답했다.


“커피 세레머니라는 거야.”


함민수가 말을 보탰다.


“여기 말로는 분나 마프라트라는 의식이지.”


분나 마프라트 혹은 커피 세레머니는 에티오피아인들이 커피를 준비해 마시는 그들만의 성스러운 의식이다.


“갈등이나 전쟁 같은 분쟁이 있을 때 이 의식을 행하고, 특히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오면 이런 방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전통이야. 에티오피아에서는 가정집, 도로변, 노점, 공원, 호텔 장소불문하고 커피 세레머니를 해. Ghion 호텔 로비에서도 커피 세리머니 형식으로 커피를 판매할 걸.”

“일종의 깜짝 쇼네요?”

“말했잖아.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올 때 커피 세레머니를 한다고.”


호텔 직원으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본격적으로 커피 세레머니를 시작했다.

먼저 생두를 프라이팬에 직접 볶기 시작했다.

레오나가 생두를 볶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채연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의식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네요?”

“느긋하게 기다려 봐요.”

“네.”


레오나와 채연지 부부의 인연도 꽤 길다.

스탠퍼드 재학시절에 류아라와 함께 에티오피아 코리아 빌리지 봉사활동, 평화캠프 행사를 하며 더욱 친해졌다.

커피 세레머니는 1시간에서 길게는 2시간이 걸리는 매우 지루한 의식이다.

노점이나 일반 카페에서는 훨씬 단축하긴 한다.

바리스타(?)로 보이는 직원은 생두를 완전하게 볶아낸 후, 그 향을 류지호와 레오나에게 맡게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볶은 커피를 절구에 갈아 고운 가루로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 사용된 도구들이 에티오피아 전통방식처럼 보였다.

화로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한참을 진하게 끓였다.

그 지루한 시간 류지호는 채연지 부부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에티오피아에서 많은 일을 해냈고, 현재도 하고 있다.


“다 자네가 지원한 자금으로 한 것들일세.”

“그래. 처음 아디스아바바에 정착할 자금은 우리 부부의 돈이었지만, 이후부터 대규모 사업은 류 감독과 다울재단이 보내준 자금을 사용 했어.”


함민수가 한국 경찰과 검찰의 감시로부터 잠시 벗어나길 바랐을 뿐이다.

헌데 아디스아바바에서 사업을 크게 벌이고 있다.

채연지와 함민수가 번갈아 가며 말했다.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네. 재미도 있고.”

“이래봬도 우리 부부가 에티오피아 유력자들과 친해. 그뿐인 줄 알아? 아디스아바바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들이 연회를 열면 한국 대사는 깜빡 잊어도 우리 부부는 잊지 않고 초대하고 있어.”

“젊은 사람들에게 넘기고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건 어때요?”

“아니야. 외아들도 장가보냈고, 우리 부부는 중병이 걸리지 않는 한은 이곳에서 계속 생활할래.”

“코리아 빌리지가 눈에 밟혀 한국행 발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바리스타가 에스프레소 잔 크기의 알록달록한 자기 컵에 커피를 따라 주었다.

채연지가 옆에서 알려주었다.


“설탕이나 소금을 넣어 마셔도 돼. 연달아 세 잔을 마시게 될 거야.”

“Abol!”

“아볼?”

“Hyeletanya!”

“Bereka!”


바리스타가 3잔을 따라주며 설명했다.


“첫 번째 잔은 우애의 잔으로 너의 이야기를 듣는 아볼(Abol), 두 번째는 평화의 잔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는 후에레타냐(Hyeletanya), 마지막 잔은 축복의 잔으로 서로가 조화와 평화를 맺는 베레카(Bereka).”


끄덕.


“만약 두 번째 잔과 세 번째 잔을 마시지 않는다면, 조화와 평화는 아마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세 잔을 다 마셔야 한다는 의미.

일행은 에스프레소 정도 양의 커피 세잔을 천천히 마셨다.

길고도 긴 오리지널 에티오피아 커피 세레머니가 끝이 났다.


“아머쎄끄날로!”


류지호는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암하릭어를 말하고 앉은뱅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그지압헤르 으바르크흐(하느님의 축복을). 보스.”


바리스타의 작별인사를 뒤로 하고, 류지호 일행이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본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정원 잔디밭에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현지 예비부부가 웨딩 포토와 비디오를 촬영하고 있다.

촬영기사는 멀티 포켓 조끼를 입고 있는데, 등판에 ‘Gaon Wedding' 글자가 박혀있다.

한국의 웨딩 스튜디오 가온이 아디스아바바까지 진출해 있었다.


“아디스아바바 부유층 자제들은 거의 전부가 가온웨딩을 이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기에는 호텔 실내 연회장에서 혼례를 치르고, 건기에는 야외 잔디밭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저희 호텔 정원과 아디스아바바 파크, 주빌리 궁전 등이 웨딩앨범 촬영의 핫스폿입니다.”


Ghion Hotel 아디스아바바의 전체 부지 면적은 양쪽 6차선까지 포함한 광화문 광장 전체 면적과 맞먹을 정도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리는 주요 콘서트는 모두 저희 호텔 야외에서 열린다고 보시면 됩니다. 객실 임대보다 각종 부대행사로 얻는 수익이 더 큽니다."


호텔 부지가 과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주빌리 궁전의 일부다.

때문에 나무숲과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다.

참고로 주빌리 궁전의 흔적은 Ghion, 아디스아바바 공원, 공립 궁전 등에 남아 있다.


“정부가 모든 토지를 소유하지 않던가요?”

“2만여 평의 대지의 소유는 국가 소유입니다. 저희는 2049년까지 장기불하 받았습니다.”


에티오피아 헌법에 따르면, 정부가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국민은 이러한 토지를 정부로부터 최대 99년까지 임대만 할 수가 있다.


류지호 부부는 가장 좋은 객실에 짐을 풀었다.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초호화판 객실이다.

어지간한 내국인 손님은 객실에서 묵을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요금을 자랑했다.


“편히 쉬십시오. 의장님!”

“수고 많았어요.”


류지호 부부는 며칠 간 호텔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한 달 간 강행군이었다.

류지호는 그런대로 버틸 만 했지만, 레오나는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난 잘래. 몇 날 며칠 동안 잠만 잘지도 몰라.”


레오나는 곧장 침실로 들어가 꿈나라로 직행했다.

류지호는 객실을 나와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난간에 서서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구경했다.

도시의 풍광만큼은 절대빈곤의 나라로만 알려진 에티오피아에 대한 고정 관념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아프리카연합 건물과 종합운동장, 야자수와 짙푸른 녹색 유칼립투스나무 숲과 공원.... 도로를 가득 채운 DOYODA 차량들, 종종 보이는 유럽산 고급세단들....

그 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면 80년대 이래 혹독한 가뭄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사자를 내왔다는 사실과 대다수의 국민이 하루 1달러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어떤 증거도 찾아낼 수 없었다.


후두둑.


갑자기 비가 내렸다.

이 시기는 대우기다.

대략 6~8월이 우기인데, 특히 7월에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하루 종일 퍼붓지는 않는다.

며칠 씩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를 겪기도 하지만 대체로 낮에 순식간에 퍼붓고 그치는 편이다.

현지인 누구도 우산을 쓴 사람이 없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는 어른들 모두가 거리에 나와 행상을 하거나, 구두닦이와 노점상을 하기 바빠서 소낙비에 옷 젖는 일 따위에는 아예 신경 쓸 여지가 없다.

아프리카에서 우산은 사치품이다.

아디스아바바 거주자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은 에티오피아 돈으로 150Birr, 한국 돈으로 4만 원 정도다.

외국인과 접촉이 잦은 직업을 찾기 위해 열을 올린다.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 특히 그렇다.

에티오피아 최고 명문인 국립 아디스아바바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제일 선호하는 곳이 관광 관련 회사다.

취직하는 대학 졸업생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상당수의 학생이 대학 문을 채 나서기도 전부터 실업이라는 암울한 현실에 절망하니까.


“Aid Fatigue....“


아프리카 현지인들에게 ‘원조병‘이 있다면, 서구세계에는 ’원조피로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생겨난 말이다.

한때 아프리카 빈곤 하면 에티오피아가 대명사가 된 적이 있었다.

1974년과 1980년, 그리고 1987년에 죽음의 대가뭄이 이 땅을 휩쓸고 갔다.

각국 구호단체들이 줄기차게 구호를 외치며 후원금을 모아 에티오피아에 역량을 집중시켰다.

아무리 원조를 해도 아프리카에는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다.

아프리카에 대한 개발원조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이 떠올랐다.

90년대 전반부터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원조피로 현상을 보였다.

그 사이를 파고들어 원조를 대폭 늘린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

엄청난 공적개발원조(ODA)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난한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에 회의를 느끼는 원조공여국들의 회의론을 ‘원조피로’ 현상이라고 일컫는다.


“보스!”


경호를 총책임지는 모리알라가 우산을 펼쳐 류지호를 씌워주었다.


“주에티오피아 미국대사와 참사관이 미팅을 청해왔습니다.”

“....?”

“돌려보낼까요?”

“커트 하지 않고 보고하는 건 뭔가 있다는 거지?”

“참사관이 북아프리카 CIA 총책임자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밝힌 거야 아니면 회사에서?”

“경호 매뉴얼에 들어 있던 내용입니다. 그리고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남자도 동행했는데, 제 감으로는 군 출신일 것 같습니다.”

“그냥 친분이나 쌓자고 하는 게 아닐까?”


모우알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듯.


“아프리카에서 CIA 고위관계자가 보자고 하니까 짜증이 확 나려고 하네.”


세계 어떤 대사관이나 공관에도 외교관 외에 경찰, 국세청, 국방부, 재정, 통상, 산업, 금융 등 여러 정부 부처에서 파견된 인원이 근무하기 마련이다.

외교교섭 및 교류, 자국민 보호 같은 외교업무 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실무자들이 파견된다.

에티오피아는 미국 입장에서 이슬람 테러세력과 관련해 전략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에 국방무관들이 상당수 파견 나와 있다.

소말리아까지 미국의 정보기관원과 군 소속 첩보팀의 작전지역이기도 했고.

외교부 과장~국장급이 해외 근무 시 부여받는 직급이 참사관(councilor)이다.

CIA 출신이거나 현직이 참사관으로 에티오피아에 와 있다는 것은 작년 겨울 에티오피아가 전격적으로 소말리아 모가디슈를 침공한 것과 관련해 미국이 분주하게 물밑에서 무언가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의미다.


“아니면 테러와 관련해 첩보라도 알려줄지 모르지. 일단 가보자.”


류지호는 왠지 찜찜한 표정으로 옥상을 내려갔다.


❉ ❉ ❉


미국의 입장에서 에티오피아는 날로 확장되는 동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을 견제할 수 있게 하는 나라다.

미국은 이슬람법정연대(UIC)가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해왔다.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저 미국의 눈 밖에 난 것뿐이니까.

미국은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동부 아프리카 지역에 이슬람세력, 특히 강경 이슬람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며 세확산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강력한 동맹군이 바로 에티오피아 정부군이다.

미군은 에티오피아에게 고급정보까지 제공해주면서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작년 연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에티오피아의 모가디슈 공격으로 소말리아를 잠시나마 장악했던 이슬람법원연합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두 나라의 군사적 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미국에게 에티오피아와 정부군은 이슬람 테러리즘을 격퇴하는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우방인 것이다.

미국은 표시나지 않는 범위에서 CIA 요원과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며 에티오피아를 돕고 있다.

미국의 간접 지원을 받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30만 명의 육군과 3,000명의 공군을 거느린 동아프리카 최대의 군사 강국이다.

1인당 GDP가 90달러밖에 되지 않지만, 국방비로 매년 4억 달러 이상을 쓰는 나라가 에티오피아다.


“처음 뵙습니다. AFRICOM의 애덤 샌슨입니다.”

“류지호입니다. 지호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모우알리의 예상이 적중했다.

류지호를 찾아온 주에티오피아 미국대사와 참사관(CIA 직원) 외에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인물은 아프리카미군사령부(AFRICOM:Africa Command) 소속 군인이다.

본인을 참사관이라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북부아프리카 CIA 책임자인 시그 핸슨이 보충해서 소개 했다.


“샌슨 대령은 아프리카에서의 소프트파워 전략수립관입니다.”


올해 2월이었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으로의 군사적 입지 확대를 위해 아프리카 연합군사령부인 아프리카사령부(AFRICOM)의 창설 계획을 발표했다.

아프리카사령부의 본부를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등 전략적으로 유리한 곳에 설치하려 했지만,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로부터 강경한 반대에 부딪쳤다.

미국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본부를 아프리카에 두지 않고 독일 슈투트가르트 기지에 있는 유럽사령부(EUCOM) 내에 동거체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그 같은 내용을 민간인에게 말해줘도 되는 겁니까?”

“2월에 발행된 미국의 시사주간지를 확인해보시면 제 설명보다 더 상세한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오늘 밤 안으로 정보를 받아보시겠지만.”

“여러분들이 한꺼번에 날 찾아온 것은 테러정보라도 입수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의 불온한 움직임에 대해 보고된 것이 없습니다. 적어도 우기 동안은 안심하고 아디스아바바에서 머무르셔도 될 겁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한국의 국정원이나 대사관으로부터 들어야 하는 것이거늘.

작년 6월에 아디스아바바에서 폭탄테러가 벌어져 1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연말에는 에티오피아 정부군이 소말리아의 모가디슈를 공격해 현재도 철군을 못하고 소말리에서 게릴라와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중국의 유전이 공격을 받기도 했다.


“북부의 유전은 안정이 되었습니까?”


올해 에티오피아에서 두 강대국 사이에 묘한 일이 벌어졌다.

얄궂게도 조디 워커 대통령이 부추긴 에티오피아의 소말리아 침략은 미국의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의 군사적 개입 강화를 정당화하는 명분을 제공했다.

지난 3월부터 에티오피아 군대가 대규모 게릴라 소탕 작전을 벌여 엄청나게 많은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에티오피아 군대의 공격으로 3월에만 민간인 1,000명이 죽었고, 4월에도 500여 명 가까이 죽었다.

그에 따라 에티오피아 국내에서 반정부 활동이 촉진되고 있다.

올 초 에티오피아 동부 소말리아 접경 지역인 오가덴에서 ‘오가덴민족해방전선’ 전사들이 중국이 개발한 유전을 공격해 에티오피아 병사 수십 명이 죽거나 부상당하고 중국인 노동자 7명이 납치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야만적 행위’를 규탄하고 아프리카의 중국 유전에 대한 군사적 보호 조처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에티오피아 군대의 소말리아인 학살에 침묵하다 이제는 아예 학살 당사자인 에티오피아 정부와 협력해 유전 방어를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아프리카인들 입장에서는 미국의 아프리카 개입뿐 아니라 이제 중국 제국주의의 개입에도 반대해야 할 상황이군요.”


빈정거리는 투가 아니었다.

류지호는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물론 약간의 연기톤을 섞어 농담임을 암시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진행하는 ODA에 ‘차이나 스탠더드’를 적용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개발도상국 원조는 독이 든 사과다.

중국은 개도국과 차관 계약을 맺으면서 모든 사업에 대해 설계부터 운영까지 ‘차이나 스탠더드’ 적용을 요구한다.

기자재도 중국산을 쓰고 건설 공사도 중국 업체가 맡게 했으며 공사도 중국인 노동자를 이주시켜 일을 시키며 심지어 운영도 상당 기간 중국인이 하도록 하는 내용에 계약을 체결한다.

서구권 국가들은 원조·투자·교역을 철저히 구분한다.

헌데 중국은 원조와 비즈니스가 혼합된 혼연일체 계약을 맺는다.

중국 ODA는 무상 공여보다 나중에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차관에 무게를 둔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에는 중국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해 자주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는 최악의 경우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실질적인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예가 이미 아시아에서 벌어졌습니다.”


참사관으로 위장한 CIA 시그 핸슨이 입을 열었다.


“스리랑카의 경우에는 벌써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작은 남아시아 국가는 함반토타 항구에 대한 권리를 향후 99년 동안 포기하기로 하였는데, 그 이유는 중국에게 상환해야 할 채무를 상환 불이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빚을 갚지 못해 일국의 영토, 그것도 핵심 요지를 바치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라 하여 예외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다 류지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난 에티오피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왔습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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