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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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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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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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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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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골치 아픈 일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프리카사령부는 류지호는 가만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프리카사령부로서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중국 견제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미국정부는 아프리카에서 석유 에너지 안보전략이 최우선 순위다.

석유 메이저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인도적인 측면에서 무상원조도 하지만, 미국 석유기업의 원유 비즈니스와 군산복합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군사력 투사 양 측면으로 전략이 맞춰져 있다.

그로인해서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자금을 아프리카에 원조하지만, 그 수십 배를 석유 메이저와 군산복합기업들을 통해 챙기고 있다.


“대아프리카 전략에 있어 보다 적극적이고 사전·예방적인 군사개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만 기존의 테러와의 전쟁의 전략과 소프트파워를 통한 아프리카 대륙의 통제권 확보 투 트랙으로 진행될 겁니다.”

“이곳은 민간 호텔입니다. 펜타곤이 아닙니다만?”

“도청방지 조치가 취해지고 있습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 이야기가 아니지 않습니까? 민간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겁니까?


그것도 시민권자도 아닌 영주권자에게.

암튼 기존의 미군사령부는 육, 해, 공, 해병, 특수전 등의 편제만 있었다.

아프리카사령부는 민군활동 담당 및 군사활동 담당 부사령관을 둔 대신 별도의 구성군 사령부를 두지 않았다.

기존의 5개 사령부는 군사적 활동에 주력하지만, 아프리카사령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문제 등 포괄적인 안보전략을 구축한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딴에는 중국의 아프리카 차관공여 함정외교에 맞서는 미국의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전파에 좀 더 힘을 싣겠다는 생각이다.


“AFRICOM은 전형적인 전투사령부로서 고안되기 보다는 보건, 기반시설 복구, 환경, 경제발전, 안보부문 개혁, 및 기타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소프트파워적인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미안 하지만, JHO는 미국의 석유 메이저처럼 돈이 넘쳐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가 미국을 위해 국외에서 헌신하고 봉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곧 미국시민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딜 봐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행해진 미스터 할리우드의 봉사는 미국 정부가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미스터 할리우드라는 닉네임이 류지호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미국 CIA와 AFRICOM이 함께 일을 도모하자고 하는 것을 보니.

소위 ‘차이나 머니’는 아프리카를 중국의 경제영토로 변모시키고 있다.

아프리카 원조 1위 국가 미국을 추월할 수준까지 도달했다.

미국과 유럽이 손을 놓거나 주저하는 사이 아프리카는 중국의 독무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밍핑 집권 전이라서 ‘일대일로‘가 부각되진 않았다.

다만 신식민주의나 부채 패권주의, 혹은 줄 세우기 신조공외교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매년 중국 베이징의 공산당 중앙당학교에 관리들을 파견해 국유기업 경영 등에 대한 중국의 노하우를 학습하고 있다.

알제리, 나이지리아, 잠비아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경제특구 건설에 한창이다.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대학에서는 중국어와 유교를 가르친다.

그 대가로 짐바브웨 최대 다이아몬드 광산을 중국 국영기업이 개발하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국가 주도, 국가의 강력한 정치적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이 미국이 홍보해온 자유시장주의와 민주주의의 강력한 대안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구구절절....


“미국의 외교정책과 아프리카 전략으로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채근이었다.


“중국은 경제 그리고 자원 탈취를 목적으로 접근해서 수십 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이제 정치적인 성과까지 거두려고 하고 있지만, 미국은 정치적으로 아프리카를 수십 년 동안 바라보다가 이젠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중국에게 자리를 내줄 위기에 처했지요.”


류지호는 슬슬 인내력의 한계를 느꼈다.

미국 시민도 아닌 자신에게 미국을 위해 일하라고 압박하고 있기에.


“내가 조언을 조금 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아프리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뭘 느꼈는지 압니까?”

“....?”

“중국이 실질적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교량과 고속도로를 짓는 동안 미국이 하는 것은 투표 감시 인력을 가르치는 것밖에는 없다는 식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미국이 여성교육 확대, 에이즈 및 말라리아 퇴치 프로그램, 좋은 거버넌스를 위한 반부패 정책을 지원하고 있었다는 긍정적인 것들은 외면합니다. 그들 입장에서 허울뿐인 민주주의보다 중요한 것은 당장 먹을 수 있는 밥이었고, 말라리아 예방 프로그램보다 중요한 것은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과 병원까지 이어주는 튼튼한 도로입니다.”

“미국계 NGO에서 매해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지원하지만 관리를 못하고 있죠. 아니면 관리에는 관심이 없거나.”

“....”

“서울에서 근무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은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아디스아바바보다 조금 나을 뿐이었지요. 현재는 세계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뉴욕과 시카고 등 세계적인 도시를 만들어본 여러분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겠지만,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에 아직도 우마차가 오가는 혼잡한 도시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서울과 상해의 야경은 기적입니다. 인프라는 사람들의 눈에 아주 잘 보입니다. 그래서 확실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나 TV시리즈... 내 친구 마이키 잭슨의 음반보다 더! 여러분들이 독재자들의 부정부패와 인권, 보건에 집중할 때, 중국은 자신들과 협력하면 상해나 서울 같은 도시를 가질 수 있다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답은 명확하다고 봅니다.”


실제로 아디스아바바에 중국이 건설한 도로와 빌딩을 보며 현지인들이 차이나가 지어준 것이라고 고맙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미국이 에티오피아에 300억 달러 이상 쏟아 부은 것은 기억도 못하고.


“AFRICOM은 최근 워싱턴 싱크탱크 브루킹스로부터 일명 ‘코리아 모델’이라는 경제개발 모델이 중국식 모델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지나치는 아프리카 국가마다 한국식 경제개발 및 성장 모델에 대해 류지호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원조를 받을 정도로 가난하고 자원조차 없는 국가가 세계 11번째 경제규모를 가진 선진국(?)이 되었으니, 그들 입장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침을 튀겨 가면 말했다.


“원조와 차관은 중국과 미국 및 서방국가들이 제공할 겁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중국식 모델과는 다른, 좀 더 구체적이고 모범적이며 민주적인 모델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90년대 이전까지 한국식 개발모델은 중국이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자유시장경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 좋은 말씀인데. 그것과 내가 도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한국 정부를 찾아가서 해야 할 이야기 아닐까 합니다만.”


미디어와 서비스업 위주의 사업을 하는 가온그룹은 아프리카에서 중국을 견제할 만한 대규모 사업을 펼칠 수가 없다.


“AFRICOM이 가온그룹의 아프리카 비즈니스를 지원하겠습니다.”


아프리카미사령부가 도대체 왜.


“미스터의 소유 기업 중에 농업관련 기업이 있지 않습니까?”

“....종묘회사와 비료회사?”

“한국에서는 농민들의 반재벌 정서로 인해 가온그룹 같은 대기업이 농업분야로 진출하지 못하는 것으로 압니다. 농업은 헨리 게이츠와 실리콘밸리 빅테크들도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입니다. 미스터 류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애덤 샌슨 대령은 AFRICOM의 아프리카 소프트파워 확산 전략에 대해 대략적인 내용을 설명했다.

그의 말만 들으면 아프리카에서 뭐든 다 가능했다.

심지어 에티오피아의 총리가 미국의 요구를 모른 척 할 수 없다고 큰소리 떵떵 쳐댔다.


“미스터도 알다시피 에티오피아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입니다. 미국은 에티오피아 최대 재정 후원국가죠. 의회가 인권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군사원조를 중단하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테러방지 목적의 원조는 가능하게 되어 있어서 군사적인 부분도 문제가 없습니다. 미스터의 현지 경호팀장도 저희가 훈련시킨 초급간부 출신이더군요.”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한국 정부는 배제하고 AFRICOM과와만 함께 하는 겁니까?”

“한국과의 문제는 백악관에서 처리할 겁니다.”

“일단 CIA와 AFRICOM의 제안은 잘 들었습니다. 그룹 최고경영자들과 진지하게 검토해 보죠.”


류지호는 미국의 손님들과 커피 세레머니를 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중요한 손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왜 AFRICOM이 류지호에게 그 같은 제안을 했는지 알 수 있다.


“보스. 도널드 제이콥 CEO를 호출할까요?”

“됐어.”


류지호는 아프리카에서 돈을 벌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애초에 미국과 한국의 기업을 진출시킬 때부터 그 부분을 포기했다.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지만, 투자가 아닌 대아프리카 무상원조라고 생각했다.

류지호는 충분히 건방을 떨어도 된다.

이 당시까지 대한민국이 정부개발원조(ODA)로 에티오피아에 무상 지원한 금액은 2,500만 달러였다.

류지호가 지난 10여 년 간 에티오피아와 코리아 빌리지에 지원한 금액이 5,000만 달러다.

경제규모 12위 권 국가보다 많이 지원했다.

류지호는 돈 벌 생각이 아예 없다.

아프리카 국가 몇 곳에 영화·방송 인프라를 투자해주는 것 정도.

아프리카에서 돈을 벌어도 달러로 바꿔서 외국으로 가져가지도 못한다.

외환보유고로 봤을 때, 환전해 줄 달러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힘이 빠지고 있었구나.....“


류지호가 보기에 ‘엔론사태‘, ’911‘,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미국 지배계층이 우왕좌왕하는 것 같았다.

방점을 찍는 것이 ‘레만사태‘로 상징되는 금융위기이고.

이빨 빠져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미국의 글로벌 파워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다.

문제는 미국 내 정치상황 때문에 세계를 신냉전으로 몰고 갔을 때 조성될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이다.

JHO는 상관없다.

신보호주의를 미국이 주도하기에 미국기업인 JHO는 헤쳐나갈 틈이 있다.

가온그룹이 문제다.


“에티오피아 대통령이 찾아와도 방해하지 마.”

“쉬십시오!”


류지호 부부는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거르고 줄곧 잠만 잤다.

복잡한 현안으로부터 잠시 도망치기 위해서.


❉ ❉ ❉


류지호 부부는 3일 동안 호텔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호텔의 직원 휴게실에 탁구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호텔 직원들과 어울려 탁구를 치는 것 말고는 주로 객실에만 머물렀다.

에티오피아에서 탁구를 치는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에티오피아에 중국문화가 많이 스며들어 있었다.


‘한류를 보고 배 아파 죽으려고 하던 중국인들 심정이 납득이 가네.’


중국문화가 아시아 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되어버려서, 현지인들이 한국인도 일본인에게도 중국 사람과 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한다.

암튼 외부 행보를 하지 않는 동안 류지호는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막의 꽃>이다.

소말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자전적 에세이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유목민 소녀에서 세계적인 슈퍼모델이 된 여성의 삶은 제법 드라마틱했다.

소말리에서 ‘할례‘를 받은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되었고, 현재는 유엔인구기금의 특별사절로서 여성성기절제(FGM) 반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에서는 남성의 경우 어린 시절 포경수술로 알려진 할례를 행한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말리아에서는 여성도 할례의식을 치른다.

문제는 의료적 목적 없이 성인식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 성기의 전체 혹은 일부를 제거하거나 상처 낸 뒤 좁은 구멍만 남긴 채 봉합하는 의식을 치른다는 사실이다.

할례는 대부분 마취, 소독, 의료 장비 없이 비위생적 환경에서 행해진다.

성인이 된 여성들은 온갖 합병증을 겪기도 한다.

평생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하는 부작용에 시달리는 여성도 많다.

여성 할례는 소말리아를 비롯해 30개 국가에서 행해진다.

소말리아에서는 여성 98%가 할례를 경험하며, 60% 이상이 할례 의식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다섯 살에 할례의식을 치른 와리스 디리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모델 생활 내내 대쉬하는 남성들을 멀리했다.

그러다 결국 뉴욕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아들까지 낳긴 했지만.

류지호는 비서실에 지시해 와리스 디스의 다큐멘터리를 구입하도록 했다.

BBC에서 1995년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레오나와 함께 시청한 후에 직접 와리스 디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 정말인가요?

“난 거짓말 하지 않아요.”

- 미스터 할리우드가 내 이야기를.....?

“당신의 삶을 통해 여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어요.”

- FGM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니라, 용기와 희망인가요?

“할례의식을 꼬집는 영화는 연대감을 가진 여성관객들이 주로 보겠지만, 삶의 희망과 용기 그리고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겠죠. 흥행에 성공해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FGM를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

- 혹시 내 이름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당신의 에세이 제목이지요. 소말리어로 사막의 꽃.”

- 맞아요. 버림받은 땅 사막에도 꽃은 펴요. 죽은 듯 여린 듯해 보이는 식물들도 우기만 되면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지요.

“바로 그 것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와리스도 사막의 꽃처럼...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결코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당신은 이름처럼 살았어요. 많은 고통 속에서 좌절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에 힘입어 슈퍼모델이 되었지요. 삶과 세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는 희망을 줄 거라고 확신해요.”

- 당신이 감독을 할 생각인가요?

“현재로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답니다. 먼저 당신의 에세이의 영화화 권리를 원하기 때문에 연락을 한 겁니다.”

- 변호사와 상의해도 되죠?

“얼마든지요.”


한 달이 지나고 나서야 와리스 디리 변호사에게 연락이 온다.

그러고도 꽤 오랜 시간 JHO Pictures가 협상을 한다.

페미니즘 영화는 성차별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80년대부터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한편 여성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지위를 기본적인 관심사로 삼지만,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다른 피지배 집단들의 문제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혐오의 대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게 되는 것은 인식이 80년대 이전의 페미니즘 사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사회구조의 권력을 분석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20세기의 사회구조와 21세기는 명백히 다르다.

그럼에도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인식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다.

류지호는 <사막의 꽃>을 통해 소말리아 여성 60%가 옹호하는 할례를 꼬집을 생각이다.

페미니즘 영화라고 해서 모든 공격방향을 남성 중심에 맞출 필요는 없다.

여성 내부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할례는 가부장제의 산물이지만, 그걸 순종하는 여성에게도 문제가 있다.

스스로의 모순을 해결해야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목소리에 힘이 실릴 터.

류지호는 할리우드에 불어 닥칠 '정치적 올바름‘ 광풍을 대비해서 페미니즘영화의 주제의식을 다변화할 필요를 느꼈다.

즉 여성 자신이 처한 모순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회구조를 꼬집는 방식의 영화를 궁리하고 있다.

<사막의 꽃> 영화권리 확보와 함께 류지호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한국전쟁과 관련한 영화 기획이다.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전쟁 블록버스터영화다.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기 때문에 백인남성 주인공, 실화 기반, 반전 메시지, 휴머니즘, 약간의 미국 만세 등.

오스카를 염두에 두고 있다.

덤으로 한국 배우를 캐스팅해 할리우드에 소개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이번 삶에서 류지호는 카투사에서 군복무를 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많은 카투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정말 극소수다.

게다가 카투사들의 유해까지 미군이 본국으로 모셨다는 것도.

한국정부가 꾸준히 미국에 카투사 유해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

12구가 간신히 돌아왔다.

그 가운데 단 두 분의 유해만 신원이 확인됐다.

류지호가 기획한 영화에서 한국인 주인공은 ‘장진호 전투‘에서 싸운 카투사로 설정했다.

카투사는 1950년 8월 15일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동안 4만3,000여명이 참전했는데, 그 가운데 9,000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낙동강 방어전에서도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장전호 전투에서도 흥남철수 작전에서도 모두 카투사들이 미군과 함께 싸웠다.

워킹타이틀 <KATUSA>.

할리우드의 시선으로 보는 한국전쟁 영화다.

류지호는 한국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사실성에 많은 공을 들일 생각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을 잘 모른다.

중등교과서에 한국전쟁에 관한 내용도 아주 적게 실려 있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한국전쟁이 ‘잊힌 전쟁’이라 불릴까.

할리우드에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각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간간이 JHO 계열 영화사에 스크립트가 들어온다.

문제는 아무도 제작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 관객들이 한국전쟁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할리우드 전쟁 소품 및 의상은 거의 2차 세계대전 당시 고증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을 위해 따로 소품과 의상을 제작할 의사도 의지도 없다.

2차 대전 영화나 베트남 전쟁과 달리 언제 또 한국전쟁 영화가 제작될지 알 수 없기에 관련 고증도 전무하다.


‘할리우드에서 한국전쟁 소재 영화를 찍는다고 한국에서 보수반공영화라고 폄하하진 않겠지....’


그 반대가 될지도 모른다.

미국만세 영화를 찍었다며 진보진영에서 욕할지도 모른다.


‘언제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지고 영화했나....’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오지 않았던가.


❉ ❉ ❉


아디스아바바에 들어온 지 5일 만에 류지호가 호텔 칩거를 깼다.


‘완전 클래식 자동차 전시장이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차량들은 외교관 차량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수입된 중고차들이다.

연식이 30년이 훌쩍 넘는 차량이 기본이다.

어떻게 저런 차들이 굴러갈까 싶지만 폐차 직전의 고물차량들도 잘만 시내를 돌아다녔다.

곳곳에서 한국의 유명 타이어 브랜드 간판도 자주 마주쳤다.

도로상태가 나쁘다 보니 바퀴가 자주 터진단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타이어 수요가 많다고 한다.

중고차들이 내뿜는 매연들이 꽉꽉 숨을 막히게 했다.

매연을 거르는 여과장치가 차에 달려 있을 리가 없다.

시꺼먼 연기를 내뿜는 것도 문제지만, 해발 2,300m 고산지대라 공기의 흐름도 원활치 않다.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이 도시 상공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나마 가끔씩 퍼붓는 스콜이 매연을 씻겨 낸다.


쏴아아아!


비가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제야 숨이 조금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레오나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투덜거렸다.


“콜록콜록. THESLAS의 전기차가 아디스아바바에 절실해.”

“전기차 한 대 값으로 에티오피아 빈민 1,700명이 한 달을 생활할 수가 있는데?”

“그 말을 들으니까 더 속상하네.”


창밖으로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는 레오나의 머리를 류지호가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치는데, 모우알라가 물었다.


“보스! 북한에서 세운 탑 한 번 둘러보시겠습니까?”

“일부러 돌아가진 마.”

“아닙니다. 여기서 가깝습니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섰다.

에티오피아와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진 북한은 아디스아바바 시내 중심에 공산주의 체제 선전을 위해 주체사상탑을 세웠다.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진 주체사상탑과 비슷한 모양이다.

야간을 위한 조명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과 에티오피아 정부는 사이가 돈독했습니다. 이제는 옛일이 되었습니다.”

“북한 대사관은 철수했어?”

“아직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아디스아바바 시민들은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독하거든요.”

“....?”

“그들이 이런 탑을 세우는 것 외에 에티오피아를 위해 뭔가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 코가 석자일 테니까.”

“여전히 에티오피아 정부와 무기 거래를 한다고 합니다.”

“그럴 거야. 에티오피아군은 아직도 소련제 탱크와 전투기를 운용하고 있다고 하니까. 할리우드 프롭팀도 60~70년대 소련제 탱크 부품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웃돈을 얹어주고 구해 온다고 하더라.”


북한의 주체사상탑 주변은 엉망진창이었다.

한눈에 봐도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았다.

경비부스는 온통 낙서투성이에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워보였고, 표지석은 깨져서 아무렇게 방치되어 있으며, 안내판이나 기록물도 없다.

몇몇 청년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광경을 뒤로하고, 류지호 부부를 태운 차량행렬이 아디스아바바 대학으로 향했다.


✻ ✻ ✻


아펜초 베르 공원(Afencho Ber Park).

입구 아치에 ‘한국전쟁참전기념공원’이라는 한국어, 영어, 암하릭어가 병기된 간판이 걸려 있다.

이곳 공원 안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희생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를 기리는 회관과 기념탑이 건립되어 있다.

시내 중심가에 우뚝 솟아있던 북한의 주체사상탑에 비해 높이와 규모는 작았다.

단출한 디자인이다.

그럼에도 잘 관리되고 있어서 보기는 훨씬 좋았다.

이 기념탑은 국가보훈처, 춘천시 에티오피아후원회가 1968년 5월 춘천시 공지천에 건립된 에티오피아 참전비와 똑같은 모양으로 건립했다.

기념탑 앞에는 태극기가 에티오피아 국기와 함께 펄럭이고 있다.

류지호는 다울과 가온재단 아디스아바바 지부 사람들, 가온그룹 계열사 주재원들, 한국 대사관 관계자들, 에티오피아 한국전잠전용사회원들, 에티오피아 관료들, 채연지 부부 등과 참전용사 기념비에 헌화했다.

잠시 묵념을 하며 류지호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


북한이 세운 주체사상탑, 그리고 남한에서 세운 에티오피아 한국전쟁참전기념탑.

민주주의 선봉국가 미국의 아프리카 테러와의 전쟁의 전초기지이면서 사회주의 체제를 고집하는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차관과 원조를 받는 에티오피아.

혼란스러운 국가 정체성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많은 한국인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 당시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UN의 일원으로 참전한 국가다.

한국전쟁에 6,037명의 장병을 파병해 122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당했으며 이 시기 407명의 참전용사들이 생존해 있다.

UN군 소속으로 철의 삼각지 전투 등 250회가 넘는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했는데, 참전용사 모두 '강뉴(KAGNEW)'라는 이름의 황실근위대 소속이었다.

패배를 모르는 용맹한 부대로 이름을 날렸다.

심지어 한국의 고아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키고 고아원을 세워서 고아들을 돌보는가 하면, 해외 입양도 주선했다.

당시 강뉴부대원은 에티오피아에서는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다.

UN의 백인 병사들과도 잘 어울렸고, 휴가나 치료차 일본에 가면 그 곳 여성들과 로맨스도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랬던 에티오피아였는데....’


황제가 통치하던 그럭저럭 살만하던 나라를 공산주의와 독재가가 최빈국으로 전락시켰다.

현재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 한국인들의 후원과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


‘겨우 장학금과 이런 기념비가 대수일까?’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잃어나 불구가 된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한국은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류지호가 입고 있는 근사한 양복, 타고 온 차량, 키 크고 멋진 외모 등 모두가 한국을 위해 싸워준 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빚이다.

다울재단은 매년 뉴욕의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설치된 CNN 뉴스 광고판에 한국전쟁참전국들에 대한 감사 광고를 하고 있다.

참전했던 16개국의 용사들의 숫자를 일일이 전하면서 이 숫자의 의미는 친구였고 헌신 이었고 또 평화였다며 한국은 이들에게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는 내용의 광고다.

다울재단은 전 세계 한국전쟁참전국 용사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 터키, 필리핀, 콜롬비아 등 경제사정이 어려운 나라 용사들에게 많은 예산을 편성해 놓고 있다.

JHO재단에는 교포들의 성금도 기탁되어 미국 내 한국전쟁 관련 행사에 사용되고 있다.


“으음!”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회장의 안내를 받아 류지호 부부가 참전용사회관을 둘러보았다.

2층 전시실에는 한국전참전 희생자들의 인물사진 122장과 그들의 활약상이 담긴 다큐멘터리 사진, 태극기, 당시 전투복 등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류지호가 다울재단 지부장에게 한국말로 물었다.


“어딘지 급조한 태가 팍팍 나네요?”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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