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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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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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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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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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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Change The Future!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이 시기만 해도 NeTube 조회수가 가장 잘 나오는 콘텐츠는 유머영상이다.

뮤직비디오와 영화, TV드라마 클립에 대해 저작권 문제가 있기에 관련 2차 창작물 업로드가 활발하지 않았다.


70만 뷰.


4월 1일, 오전 8시에 류지호가 올린 3분짜리 NeTube 동영상이 정오가 되기 전에 기록한 조회수다.

동영상의 내용은 아주 단순했다.

누군가가 촬영한 비디오 화면 안에서 류지호가 피폐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촬영에 사용된 카메라는 디지털 액션캠 CamPro Hero.

화질이 썩 나쁘지 않았다.

면도하지 않은 푸석한 얼굴의 류지호가 화면 정면을 응시한 채 입을 연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은 텁텁하고 갈라진 듯 들린다.


[나는 오늘 새벽 미국 원자력과학자회 친구로부터 아주 심각한 내용의 전화를 한 통 받았어.]


류지호의 품에는 레오나가 안겨서 흐느끼고 있다.

마치 겁에 질려 있는 것 같다.

그녀는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면 경기를 하듯 화들짝 놀라기까지 한다.


[친구가 말하길 자정 5분 전에 맞춰져 있던 Doomsday Clock의 시곗바늘을 오늘 새벽에 자정 1분 30초 전으로 당겼다고 해. 그 말은 멸망이.... 수십 년 앞당겨졌다는 의미야.]


The Doomsday Clock.

자정을 가리키는 순간 인류가 멸망한다는 경고를 보내기 위해 제작된 시계다.

1947년부터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매년 창간되고 있는 미국 원자력과학자회보(BAS)에 실리고 있는 일명 ‘종말 시계’다.

자정 2분 안쪽으로 당겨졌다는 것은 냉전시대인 1984년 이후 가장 ‘종말’에 근접한 시간이다.

올해부터는 핵무기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위협까지도 반영해서 시각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일부 국가의 핵위협과 함께 지구의 기후변화가 심각한 단계에 처했기 때문이다.


[아직 UN에서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진 않았지만, 내가 지금 이 비디오를 찍고 나서 3시간 안에 공식입장이 나올 것 같아. 나와 내 아내는 중대한 결심을 했어. 벨에어 주택 지하에 만든 안전벙커로 들어가기로. 나와 아내는 차마 지구가 멸망하는 걸 볼 자신이 없거든. 언론에 공개하진 않았지만, 내 집 지하의 안전벙커에는 20년 정도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 있어.]


흑흑.


레오나의 흐느낌이 더욱 거세졌다.

류지호와 레오나 뒤편으로 주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언뜻 보인다.

어딘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이삿짐이라도 나르는 것만 같다.


[내 행동이 겁쟁이처럼 보인다는 걸 잘 알아. 어떤 사람들은 지구가 5~6도 더 더워져도 인간은 발전된 기술로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섭씨 37도의 체온을 가진 큰 포유동물이 그렇게 빨리 진화할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어쩌면 곤충들은 할 수 있겠지만... 인간은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야.]


1990년 이후 지구 해수면이 연평균 3㎜씩 올라갔다느니, 해수면 상승이 세계 모든 과학자들의 예상 시나리오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느니,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산호초 지역이 이미 40% 줄어들었고, 바다의 생물 개체수도 지난 30년 전에 비해 평균 22%가 줄었다느니, 특히 해양 포유류의 급격한 개체수의 감소는 멸종까지도 각오해야 할 상황이라느니.

3분 간 이어진 말 사이사이 류지호는 매우 억울한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제기랄! 인류는 기후변화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섰다는 과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핵무기 경쟁과 기후변화 대응의 지연 같은 망할 것들로 인해 인류의 위기가 전례 없이 다가오고 있어. 모두 행운을 빌어. 혹시 살아남는다면.... 아니, 반드시 살아남아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류지호와 레오나가 안전벙커로 사라지며 동영상이 끝이 난다.

부부가 육중한 문을 살짝 열어 들어간 방.

지인 중에는 한 번쯤 들어가 봤을 법한 방이다.

다름 아닌 Eye-MAX 홈시어터였으니까.

개인 주택에 설치된 세계 유일의 Eye-MAX 홈 시이어터 시스템이다.

말이 홈시어터지, 멀티플렉스 100석 규모의 상영관 사이즈라고 보면 된다.

어쨌든 이 동영상은 류지호 부부의 만우절 장난이었다.

그런데 NeTube 장난 동영상이 CNN 뉴스속보로 나갔다.

이후로 미국 내 거의 모든 방송국에서 CNN 속보를 인용해서 내보냈다.

큰 소동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2003년 ‘헨리 게이츠 피격 사망‘ 장난 뉴스보다는 후폭풍이 적었지만.

참고로 헨리 게이츠 피격 루머는 만우절 사흘 뒤에 일어났다.

당시 일부 방송사와 인터넷 언론들이 ‘헨리 게이츠 피살설’을 사실인 것처럼 보도해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등 큰 소동이 빚어졌다.

가짜 CNN 사이트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인용 보도한 오보였다.

해당 오보로 주식시장의 주가가 요동을 쳤는데 사상 최악의 만우절 오보로 불렸다.

그 이전에는 ‘피사의 탑’ 사건이 가장 큰 오보 사건이었다.

1996년에는 네덜란드TV에서 '피사의 탑'이 무너졌다는 보도를 내보내 혼란이 생겼던 일이 있었다.

충격을 받은 네덜란드 시청자들의 전화가 폭주하는 소동이 벌어졌었다.

만우절 농담이 아닌 실제 사건도 있었다.

2003년 4월 1일, 홍콩 배우 레슬리 청이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는 뉴스 속보가 떴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최초 보도한 방송사가 시청자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투신 장소와 시체 수습 장면이 텔레비전 영상으로 나가면서 팬들을 커다란 충격에 빠뜨렸다.

어쨌든 류지호가 올린 동영상은 누가 보더라도 장난기가 다분했다.

연기도 어설펐다.

혹시 사람들이 믿으면 해명하는 것으로 귀찮아질 것을 우려해 류지호는 만우절 동영상 테를 팍팍 냈다.

세상은 류지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확증편향이 심했다.

진짜로 믿는 이들이 있었다.

게다가 텔레비전이 뉴스속보를 내보낸 영향도 컸다.

최초 보도한 CNN은 장난임을 인지하고 뉴스를 내보냈다.

인용한 대부분의 뉴스들도 만우절임을 시청자들에게 상기시켰다.

헌데 대중 중 일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NeTube 페이크 뉴스의 시조새가 되어 버린 것인가.....?’


정오가 지나고 나서 진위를 확인하는 전화가 사방에서 걸려왔다.

심지어 한국의 부모님과 뉴욕의 처갓집에서까지 확인전화가 걸려왔다.

한국 부모님들은 YNTV에서 속보가 뜬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쓰러질 뻔 하셨단다.

난데없이 장남과 며느리가 10년 간 지하에 들어가 살겠다고 하니 놀라실 수밖에.


“누가 봐도 허술한데 이걸 사람들이 믿다니....”

“내 연기는 진짜 같았어.”

“어딜 봐서. 웃음을 억지로 참는 게 얼마나 티가 많이 났는데.”

“그럼 달링은... 미리 써놓은 다이얼로그를 읽었어야지. 완전 엉터리였어.”

“애드리브야. 일부러 말을 더듬는 느낌을 준 거라고.”


방과 거실도 일부러 어질러놓고, 나름 아포칼립스 분위기를 조성했다.

주택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장난에 협조했다.

류지호가 주절거린 3분 동안의 다이얼로그는 만우절 장난과 함께 기후협약 메시지까지 담겨 있다.

중간에 한국어, 스페인어까지 섞어서 횡설수설하는 느낌을 줬다.


“재미로 올린 만우절 동영상이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게 되었네.”

“비서실을 통해 사과라도 해야 할까?”

“아니. 다시 동영상 찍어서 올리면 돼.”


류지호는 장난이었다는 걸 확인해 주는 동영상을 새롭게 찍어서 올렸다.

직접 CamPro Hero를 몸에 부착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안전벙커라고 소개되었던 Eye-MAX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에 벙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시청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순수한 의도로 Eye-MAX 홈시어티를 찍어 올렸다.

그런데 의도와 달리 초호화판 극장을 주택 안에 지어놨다는 것이 새로운 화제가 됐다.

이 일로 Eye-MAX 본사에 슈퍼리치들로부터 홈시어터 문의가 쏟아지게 된다.

암튼, 극장 안에서는 레오나가 피켓을 들고 있다.


[SOS EARTH!!!]

[CHANGE THE FUTURE!!]


류지호가 CamPro를 떼어내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잡으며 말했다.


[CHANGE THE FUTURE....! I'm not kidding, I Mean It!]

(농담 아니고, 진심이야).


이 동영상이 다시 NeTube에 올라오자, 해프닝이 말끔하게 끝났다.

뒷북을 치는 유저들로 인해 조회수가 하루만에 100만을 넘겼다.

류지호는 페이스노트와 Flitter에도 투자하고 있다.

메인 투자자임에도 두 서비스 모두에 계정조차 만들지 않았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인터넷 상의 글이나 사진을 올릴 때는 늘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글이나 사진이 인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것을 할 시간을 어떻게 내는 겁니까? 인생에서 그것 없이도 할 수 있는 것들이 200만 가지는 되는데 말입니다. 차라리 본인을 위해서 도서관에서 책 한 권 읽는 것이 좋아요. 진지하게, 그건 시간 낭비일 뿐이에요.]


몇 년 후, 맨유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퍼거슨 경이 하게 될 말이다.

친구 일론 리브스처럼 Flitter를 포함한 각종 SNS를 사업에 활용할 이유도 의미도 없다.

SNS로 대중과 소통할 필요성도 크게 못 느꼈다.

영화감독이 대중과 소통하는 길은 SNS가 아니다.

영화다.

영화를 통해 질문하고 그것을 통해 다시 관객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면 된다.

어쨌든 NeTube 역사상 최초로 샐러브리티가 만우절 농담을 올렸다.

소동이 있었고, 큰 화제를 끌었다.

미국의 주요 언론이 보도하고 덩달아 외신에서 인용 보도함으로써 류지호의 NeTube 채널이 홍보되는 효과도 있었다.


“이러다 금방 실버버튼 받을 것 같은데?“

“쌀도 씻지 않았는데, 뜸들이기를 기대하는 꼴이거든.”


이제 막 NeTube가 파트너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아직은 왕성한 활동을 해준 넷튜버에게 일종의 기념품 NeTube Creator awards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 ❉ ❉


류지호와 가온그룹이 빛이 날수록 곤란해지는 곳이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검찰이다.

대한민국 검찰이 정치검찰이니 떡검, 섹검, 조폭검사 등의 비아냥거림을 듣고 있지만, 엘리트 중 엘리트가 모인 곳 또한 사실이다.

절대 만만치 않은 조직이다.

그 엘리트들이 권력기관 개혁의 바람몰이 뒤에 가온그룹이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다.

당시에는 손 쓸 길이 없었다.

검찰은 복수를 잊지 않았다.

한때 검찰은 주인인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물라면 물고 짖으라면 짖는 충성스러운 사냥개였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권력에 굴종하지 않는 결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참여정부가 법조개혁을 일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의 항복 때문이 아니다.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위한 검찰의 전략적 후퇴 때문이다.

제 밥그릇 깨는 개는 없다.

똥개라면 모를까.


[검찰보다 깨끗한 조직이 어디 있습니까?]


생뚱맞은 발언이 검찰에서 나왔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검사들의 현실인식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간도 큰 신임검사가 사무실에서 피의자를 겁박해 성폭행을 하는가 하면, 청와대와 국민들이 요구한 개혁에 대해 검찰이 자체적으로 낸 개혁안이 개혁이라는 포장을 두른 눈가림이라는 사실이 들통 났고, 고검 부장검사는 조폭으로부터 온갖 치사한 수법을 동원해 뇌물을 받았고, 검찰총장은 재벌회장의 구형량을 깎아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I'm your Father> 다큐멘터리로 촉발된 BBP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무혐의로 처분하려고 한 중수부장은 노른자위 보직으로 승진 이동했다.

차기 보수당 유력 대선후보와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검찰 고위간부들은 참여정부에 노골적으로 항명을 일삼았다.

잇단 검찰비리 공개를 무마하기 위해서 대검중수부 폐지를 결심한 대통령에게 대검중수부장이 총장사퇴를 요구하며 맞받아쳤고, 신임 검찰총장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착수를 공개해 버렸으며 이것은 검찰 내전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대검 간부들을 포함한 다수의 검사들이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개혁의 바람이 한창 몰아칠 때의 검찰은 보스에게 반발한 중간 보스들이 집단으로 항명하고 나선 조폭집단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이스 샷!“

“굿 샷!”


경기도 모처의 골프장.

대검찰청 간부와 가온그룹 산하의 물류회사 고위 임원이 골프를 치고 있다.


“해보세요.”

“못 할 것 같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라운딩 내내 날카로운 신경전을 펼쳤다.

골프 내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신 이모부뿐만 아니라 검찰의 인맥 전부를 거셔야 할 겁니다.”


이모부라라고 불린 대검 간부가 비웃음을 흘렸다.

우리 편이 아닌 자는 철저하게 밟아왔던 검찰이다.

가온그룹을 옥죌 수 있는 수단이 많다고 굳게 믿었다.

없으면 만들면 되고.


“진짜 내가 미친다니까.”


가온그룹 물류회사에 재직 중인 조카는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우리 오너가 마냥 착하기만 한 줄 안다니까. 이모부! 우리 의장님 언제든지 가온그룹 포기할 수 있는 분이에요. 가온그룹 걸고 싸우면 감당할 수 있겠어요?”

“어떤 미친놈이 5대 그룹을 판돈으로 걸어?”

“세상 물정 쥐뿔도 모르면서... 아휴 증말! 우리 의장님 연세가 어리다고 영화나 찍는다고 빙다리 핫바지 취급하는데... 큰일 납니다. 우리 회사 내에서도 이참에 우리 의장님 확 미국 국적으로 바꾸셔야 된다고 청원하는 간부가 얼마나 많은데!”

“바꾸면 뭐가 달라져?”


국정원, 재정부, 외교부와 법조계 인식의 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앞 서 언급한 부서 관료들은 누구보다 일찍 류지호에게 선을 대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미국으로 대사나 영사로 오는 사람들이 맨 먼저 JHO부터 가서 인사드린다는 말 못 들었어요?”

“지가 오성회장도 아니고. 건방지게 어디서....!”

“우리 의장님이 가진 네트워크로 백악관 극동아시아 외교전략까지도 수정할 수 있단 말입니다. 다음 대통령 이모부 쪽 사람들이 미는 사람 떨어뜨리고 이모부의 적들이 정권을 잡도록 할 수도 있다고요. 정말 답답들 하시네!”

“자식이 이사로 승진하더니 세뇌라도 당했냐? 내가 인마 차기 특수부장 물방에 오르는 사람이야.”

“검사 무서운 시절 다 갔잖아요. 이모부하고 골프 치는 것도 공수처에서 꼬투리 잡을까봐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알아요?”


조카는 사전에 나래안전과 그룹 홍보실에 이번 골프 부킹을 보고했다.

탈이 나지 않도록 나래안전에서 부킹부터 픽업 그리고 캐디까지 다 세팅했다.


“제깟 공수처....”

“가온그룹에 아무 것도 하지 마세요. 이모부 때문에 제 승진 길 막히면 진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건방지게 협박하는 거냐?”

“삼척동자도 아는 걸 왜 미련하게 이모부만 못 보냐구요!”

“점점... 이놈이. 말조심해.”


검사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캐디들이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르고 있었다.


“이모부 라인은 정무감각이 탁월하다면서요? 지금 보니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심히 걱정입니다. 제발 남들이 뭔 짓을 하던 가만히 계세요. 이모부 집안 풍비박산 납니다.”

“아주 가온그룹 충신 다 되었네?”

“저 대단하다는 오성의 미전실은 의장님 비서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JHO 시큐리티 간부에 어떤 양반들이 들어가 있는지 몰라요? CIA도 그 사람들한테서 정보 얻어간답니다. 모회사 회장님이 한국 주재 각국 대사들과 자주 오찬하는 거 몰라요? 우리 의장님 처가가 어디에요? 의형인 매튜 그레이엄 회장은 또 어떻고요. 솔직히 우리 의장님이 검찰 상대할 필요도 없어요.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검사 치우는 것보다 검사들 부리는 주인을 치우는 것이 더 편할 테니까.”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우리 그룹 사람들은 의장님이 내 나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저는 더 걱정이란 말입니다! 20대 초반에 이미 동남아시아 외환위기와 우리나라 IMF 예상하고 준비하신 분이에요. 그런 분이 한국의 제2의 IMF 못 만들라는 법 있어요? 이모부는 고위공무원이니까 나라 경제 작살나든 말든 상관없어요? 검사복 벗으면 대형 로펌에서 어셔옵셔 모셔간대요? 우리 의장님하고 척 져 놓고. 정말 다들 답답들 하네!”


가온그룹 계열사 임원인 조카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사로서 세상에 무서울 것 없어 그럴 수도 있다고 웃으면서 넘길 수만은 없었다.

현대사회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 권력자다.

대한민국 검찰은 국내 웬만한 정보가 다 모이는 곳 중에 하나.

문제는 주로 과거에 벌어졌던 일에 대한 정보들뿐이라는 것이다.

검사와 판사는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판단하는 일을 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고, 할 줄도 모른다.

대한민국 내 기득권 중에서도 일찌감치 류지호에게 선을 대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린 나이 때문에 오성이나 경일그룹 회장만 하겠냐면서 과소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후우~ 오성 일가에게 쩔쩔매는 인간들이 그 사람들 목줄 잡고 계시는 의장님께 가소롭게시리..!’


조카 입장에서 아무리 차기 특수부장 백이고 나발이고, 가온그룹에서 출세하는 것만 못했다.

자신이라고 가온그룹 계열사 사장으로 승진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오동석 사장의 출세가도는 가온그룹 임원들의 피를 뜨겁게 만드는 사례다.

장문식 같은 중졸 조폭 출신도 북미 거점 호텔의 부사장을 맡았다.

호텔사업 부문 글로벌 사업을 장문식에게 맡기려는 포석으로 관측하는 이들이 많았다.

괜히 검찰 간부인 이모부와 엮여 그룹의 배신자로 찍히는 건 멍청한 짓이다.

이 같은 일은 여의도 식당에서 강남의 룸살롱에서 경기도 모 골프장에서 혹은 가온그룹 산하 호텔 & 리조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가온그룹 임직원들의 간절한 설득이 먹혔을까.


“내사를 중단하라니요?”

“(캐비닛) 닫어.”

“열지도 않은 캐비닛입니다.”

“역풍 맞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역풍 맞을 일이 뭐가 있습니까? 우리는 법대로 진행하는데.”

“나라를 위해 저렇게 열심인데 괴롭혀야 되겠냐?”

“진심이십니까?”

“그럼 진심이지.”


부하 검사가 보기에 자신의 상관은 야망이 불타는 양반이다.

여기저기 줄을 엄청나게 대고 있는.

전형적인 정치검찰이다.

그런 상관이 가온그룹 내사종결 지시를 내렸다.


“레임덕이다. 대통령 쪽 조용히 파봐.”


그러면 그렇지.

다음 정부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는 상관이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이전 삶에는 최악이었다.

누구 하나 성한 전직 대통령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성해서는 안 되는 전직대통령도 있다.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 벌이는 과거 권력에 대한 검찰의 가혹한 수사와 온갖 망신주기.

검찰개혁으로 촉발될 것이 뻔한 복수에 가까운 수사.

누가 다음 정권을 잡든 칼잡이 검사가 그 칼을 아낌없이 휘두를 터.

검찰개혁이 이뤄졌다고 해도 검찰의 폭력이 당장 일소될 리가 없다.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대통령이 아닌, 검찰과 언론으로부터 인격모독까지 당하는 수많은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들.

심지어 검찰을 사냥개로 부렸던 대통령까지 그들에 의해서 모욕을 당하는 처지라니.

때로는 국민과 역사의 평가와 정반대로 나아가는 검찰과 법원의 판결까지.

상대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망이 통치의 수단이 되면 증오와 적대만 키울 뿐이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당의 경선 후보와 정당 후보들과 관련한 여론조사가 쏟아졌다.

본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던 이선택 후보.

그는 주가조작을 비롯해 수많은 범죄혐의를 받는 수사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그럼에도 대권에 도전하겠단다.

살기위해서다.


- 후보님이 받고 있는 수사만 11개가 넘습니다. 당원들도 경선에 나설 것이 아니라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이선택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무조건 대통령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 감옥에 가지 않게 되니까.


- 후보님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만들게 됩니다. 그것도 한국의 유권자에게 미묘한 정서적 거부감을 가지게 만드는 일본에서 출생하셨는데...”

- 후보님 선친의 일본에서의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이선택이 크게 화를 냈다.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어디서 왔습니까?”

- 외신입니다. 뉴욕 타임즈 특파원 로라 한 기자입니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세요!”

“유권자를 위해서 의혹에 관해 후보 측이 직접 증명하고 해명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언론이 사실 확인하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만.”

“앞으로 저 기자 우리 쪽 취재 못하게 해.”


로라 한 기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만의 취재를 계속했다.


‘한국 사람들은 죄다 바보들인가? 어떻게 후보자의 심각한 범죄전과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 있지?’


경제사범 전과가 있는 후보.

경제를 혼란케 한 이에게 경제를 살려달라고 표를 주는 이상한 당원들.

과거에 잘 못한 것은 알겠는데, 대통령 되어서 더 잘해보라며 격려하는 너그러운 당원들.

또한 한국 현대사에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독재자의 딸에게 열광하는 마치 아이돌 팬클럽 같은 당원들.

로라 한 기자는 한국의 보수정당을 지켜보면서 지독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제 아무리 보수당과 보수언론이 특정 사안을 은폐·축소할 수 있다고 해도, 외국 언론까지 어떻게 할 순 없었다.

많은 해외 특파원들이 한국의 대선정국을 비교적 내밀한 것까지 들춰서 자신의 나라로 송고했다.

한국인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해외언론은 광고주로부터 휘둘리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의 유력 언론도 광고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JHO Company Group은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강력한 광고주다.

일정 부분 입김이 들어간다.

한국에 특파원을 파견하지 않은 언론사의 경우에는 일본 지사에서 한시적으로 한국의 대선취재를 위해 넘어왔다.

몇 군데 국내언론에도 다양한 정보들이 건네졌다.

정확하게 선거 정국 1년 전에....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없다.

제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다만 떨어뜨릴 순 있다.

많이도 필요없다.

메이저 언론 두 곳과 함께 하면 된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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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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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 사랑의 열매. (3) +3 24.01.17 1,863 93 26쪽
746 사랑의 열매. (2) +8 24.01.16 1,928 97 24쪽
745 사랑의 열매. (1) +5 24.01.15 1,973 90 24쪽
744 뭐라도 해야만 돼! (2) +8 24.01.13 1,950 99 29쪽
743 뭐라도 해야만 돼! (1) +7 24.01.12 1,931 95 28쪽
742 만인의 연인! (2) +7 24.01.11 1,936 103 25쪽
741 만인의 연인! (1) +6 24.01.10 1,986 89 25쪽
740 Bridal Mask! +4 24.01.09 1,936 97 23쪽
739 World Promotion. (4) +4 24.01.08 1,952 92 29쪽
738 World Promotion. (3) +3 24.01.06 1,951 98 27쪽
737 World Promotion. (2) +8 24.01.05 1,937 94 26쪽
736 World Promotion. (1) +7 24.01.04 2,035 100 23쪽
735 Mr. 할리우드는 시리즈가 계속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8 24.01.03 2,023 98 22쪽
734 공짜로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11 24.01.02 2,004 99 25쪽
733 The Wall Street Journal. +13 24.01.01 2,013 105 27쪽
732 몰락한 동양의 할리우드, 그런데.... +16 23.12.30 2,062 98 21쪽
731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2) +3 23.12.30 1,795 90 23쪽
730 다시 찾은 토론토 영화제! (1) +5 23.12.29 1,880 101 30쪽
729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3) +3 23.12.29 1,793 85 26쪽
728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2) +10 23.12.28 1,895 93 23쪽
727 더 있다가는 정이 들어서..... (1) +4 23.12.28 1,761 81 22쪽
726 협객이 된 기분이야. (2) +7 23.12.27 1,891 103 24쪽
725 협객이 된 기분이야. (1) +4 23.12.27 1,802 89 23쪽
724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2) +5 23.12.26 1,972 94 26쪽
723 하고 싶고 해야 한다면, 그냥 하면 된다. (1) +5 23.12.26 1,851 90 24쪽
722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3) +7 23.12.25 1,983 97 26쪽
721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2) +8 23.12.23 2,039 99 25쪽
720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1) +3 23.12.22 1,961 93 23쪽
719 도둑질 하지 말라! +5 23.12.22 1,845 91 26쪽
718 God bless you....! (3) +6 23.12.21 1,921 107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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