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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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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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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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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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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복덩인지 골칫거리인지....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레드카펫 행사를 마치고 속속 입장하고 있는 배우들이 보였다.

소위 남자배우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다.

그 외에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배우들이 시상식에 참석했다.

S-HQ 소속 배우들은 물론이고 통신사가 투자한 매니지먼트 소속 중에 후보에 든 배우는 한명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결국에 꼬리를 말 것을.... 쯧.”


차성재가 볼 때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다.

류지호는 한국의 통신사 주요 주주다.

선경텔리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시절부터 지분을 꾸준히 모았다가 닷컴버블 전에 대부분을 처분했다.

주가 떨어졌을 때 다시 사들여서 대주주 지위를 유지 중이다.

한국텔레콤 주식은 2002년 완전 민영화가 될 때를 기점으로 제법 지분을 확보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텔레콤은 IMF의 아픈 결과물 중에 하나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양해각서 이면에 포항제철, 한국통신공사, 한국전력공사 같은 국가기간산업의 완전매각 혹은 적정가 매각 조항이 들어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 노동, 기업, 공공 등 4대 부문에 대해 강력한 구조조정(개혁)을 실시했다.

그 방안 중에 하나가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통신의 완전 민영화였다.

2000년 6월 '공기업민영화추진위원회'에서 2002년 6월까지 정부가 가진 한국통신 지분을 완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완전한 민영화가 급물살을 탔다.

당시에 정부는 2001년 한 해 동안 333만주(1.1%)를 팔았다.

2차 해외예탁증서(ADR) 발행(17.8%), PS와 전략적 제휴를 통한 매각(11.8%)으로 총 30.7%를 파는데 성공했다.

2002년 잔여지분(28.3%)을 모두 팔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당시 주식시장이 좋지 않아 물량을 받아주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증권사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잔여 지분(28.4%) 매각전략 수립을 위해 자문사(모웬스탠리), 주간(오성증권, 금성증권, 경일증권, 대유가온증권)을 선정, 이를 통해 단일 기업이 한 번에 취득할 수 있는 지분한도를 5%에서 15%로 확대하고 주식과 채권을 연계하는 내용의 매각방안을 확정했다.

이미 2000년에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했기에 외국인 지분한도도 종전 33%에서 49%까지 대폭 확대된 상황이었다.

당시 류지호가 소유한 투자회사들이 지분을 대량으로 확보했다.

한국텔레콤의 완전 민영화로 정부는 4조 8천억 원 가량을 벌었다.

헌데 한국텔레콤 입장에서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 눈 떠 보니 딴 세상이더라.


딱 그런 상황이 펼쳐졌다.

정부가 잔여지분을 매각하고 나니 경쟁업체라고 할 수 있는 선경텔레콤이 한국텔레콤의 경영권을 위협할 1대 주주가 돼 있었다.

선경텔레콤의 1대 주주 등극은 오성·금성·경일·가온 등 대기업들이 한국텔레콤 지분을 황금분할해서 소유하고 이를 통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구조를 만들려던 정부의 계획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돈귀신이자 정부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재벌을 얕봤던 대가다.

결국 양 사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상대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교통정리가 되긴 했다.

자칫 한국의 통신시장을 독점하는 기업이 탄생할 뻔했다.

암튼 한국의 가온 계열과 JHO 계열의 투자사들이 한국텔레콤의 주요 주주가 됐다.

류지호가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선경과 한국텔레콤의 지분은 각각 14.72%, 9.64%다.

두 회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주주다.

제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류지호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단 의미다.


“아스트로도 지분 계약 해주는 거 아니었어요?”

“우리라고 별 수 있나? 안 해주면 캐스팅을 못하는데?”

“신인이나 중고신인 띄우는데 도사 아니었어요?”

“감독들이 캐스팅을 잘 해오는 거지. 나야 뭐 술 먹이고 살살 꼬시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런 게 프로듀서의 일이죠. 서로 다른 생각과 의지를 조정하고 합의시키는 거.”

“돈 구하러 다니기 바빠서 요샌 그러지도 못해.”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증권가 테마주로 부상해서 충무로에 2,000억 들어왔다면서요?”

“난 구경도 못했어."

"한국텔레콤에서 300억 쏜다던데....?”

“실제 들어와야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아직 말만 무성해. 그래도 영화판에 WaW와 대기업 투자사 외에 주식시장의 돈이 유입되면서 제작되는 영화도 좀 늘 것 같긴 해.”


류지호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했다.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

이 당시 업계에서는 증권거래소 상장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는 것을 무조건 환영했다.

시장의 기본을 외면하고 낙관론에 빠져 허우적거려서 그렇다.

주식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업이 수익을 내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무작정 돈을 넣는 아주 이상한 경우도 빈번하지만, 영화사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한국의 영화제작사, 드라마제작사, 음반기획사가 제대로 된 수익구조를 갖고 있을까.

솔직히 없다.

제작비에 대한 기준과 룰이 없는 드라마제작사보다는 그나마 영화제작사가 좀 낫지만, 수익성이 항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큰 리스크다.

흥행산업은 성공과 실패에 따라 수익성이 출렁인다.

수익성 자체도 그리 좋지 않다.

사실 영화산업은 증시 상장에 목을 맬 필요가 없다.

대기업, 창업투자, 엔젤투자 등 나름 다양한 투자루트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매니저들 만나면 주식 얘기만 해.”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주식상장 붐은 거대한 자금을 갖고 단기차익을 노리는 세력의 관심을 받고 있다.

괜히 테마주로 급부상한 것이 아니다.

산업적인 토양이 확립되고 시장에서 그것을 인정해서 자연스럽게 단독으로 상장한 회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우회상장이다.

금리가 낮은데 정부의 부동산 규제 등으로 투자가 억제되고 환율까지 낮아져 결국 주식으로 자금이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창 붐이 일었던 바이오 관련 주식의 힘이 떨어지고 있을 때다.

마침 한류, DMB 등의 뉴미디어, 콘텐츠의 미래가치 등이 활발하게 논의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면서 너도 나도 엔터테인먼트를 외치고 있다.


“배우를 어떻게 발굴하고 키워나갈 것인가라는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한국 영화산업의 종착점이 기업화, 대형화라고 한다면 상장은 결국 겪어야 할 일이에요. 그런데 내년 중반 쯤 가면 3분의 1 이상이 시장에서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이죠.”


차성재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류지호의 말은 절대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내년....?”

“긍정적으로 보자면 치열한 경쟁과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만큼 좋은 체력을 확보한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우회상장한 기업들이 다시 어딘가로 인수와 합병이 되면서 또 다시 재편의 길에 들어서며 혼란을 겪을 수도 있어요.”


이미 닷컴버블 붕괴시기에 다 겪어본 일들이다.

왜들 학습효과가 없는 것인지.

류지호로서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주가가 오른다는 기대만 있다면 주식을 새로 발행하는 유상증자나 일정 기한 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CB), 혹은 신주인수권부 사채(BW) 등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CB 발행으로 얻은 자금을 통해 투자조합을 결성해 배급사업의 재원으로 삼고 있는 MK시네마라는 회사의 모델을 대부분의 상장된 제작사들이 참고하고 있다.

대부분의 제작사나 매니지먼트가 우회 등록한 직후 유상증자나 CB, BW 발행을 추진하는 것이 일종의 정규코스가 되고 있다.

주식가치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하는지.

게다가 2~3년 안에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외생변수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영화인들이 금융권의 전문가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실익은 얻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야. 진짜 선수들은 거래를 만들어 주가를 단기간에 급작스레 띄워서 엄청난 차익을 얻어 떠나고 남은 영화인들이 뒷감당을 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차성재 대표도 벤처연방제니 뭐니 또 한국텔레콤에 아스트로의 지분을 넘기며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바가 있다.

현재도 진행형이고.


“2000년을 떠올려 보세요. 당시 정보통신 열풍으로 300여 개 기업들이 시장에 들어왔다가 대다수가 무너졌지만, 결국에 NAVE 같은 기업들이 생존해 우량기업으로 변모하고 있잖아요. 어쩌면 충무로에게 이 시기는 위기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정신 바짝 차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한다면... 충무로의 생산력, 경쟁력, 투명성이 올라가서 주식시장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부디 미스터 할리우드의 예상대로 되었으면 좋겠군.”

“예상 아니고, 바람입니다.”


류지호는 한국의 엔터 종목에는 전혀 투자를 하고 있지 않았다.

비관적으로 전망해서가 아니다.

한국의 연예산업은 매해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업계는 별반 재미를 못보고 오히려 손해만 보고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들은 몸집 부풀리기에만 급급한 데다 외형상 매출의 증대를 위해 ‘스타마케팅’에 의존하다 보니 스타들의 몸값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게다가 소문 하나로 주가가 출렁대기 일쑤다.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기업으로서 법적·제도적 장치들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돈만 좇아서 돈들이 몰리면서 종합선물세트식의 부작용이 심심하면 터져 나온다.

엔터테인먼트 업체와 연예인 간 계약 관련 소송이라든지, 방송사와 엔터테인먼트 업체 간 뇌물 수수라든지, 조직폭력배의 연예산업 관여와 같은 고전적인 문제 이외에도 조세 포탈, 주가 조작, 방송 출연 독점 등 각종 잠복한 병폐들이 터져 나오게 된다.

그 결과 수익을 기대했던 투자자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고, 상장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다시 펀딩을 하기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되도 않는 종목 속에 돈을 넣고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것이 류지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감독님, 차 대표님! 곧 시상식 시작합니다.”


시상식장으로 들어간 류지호와 차성재가 자신의 좌석으로 흩어졌다.

춘사영화상에서 큰 이변은 없었다.

다만 지난 조광영화사에 이어 <민중의 적 : EMBARGO>이 작품상을 수함으로써 뒷말을 남길 여지를 남겼다.

류지호를 너무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뒷말 말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시상식 사회를 보는 아나운서는 치열한 경합이라느니 간발의 차이라는 표현을 유독 강조했다.

트로피를 건네받고, 꽃다발도 받고.

류지호가 다시 한 번 연말 시상식 무대 마이크 앞에 섰다.


“......”


장내가 일순 고요했다.

모두가 류지호의 입을 주목하는 것 같았다.


“감독님 제발...! 그냥 노멀하게 갑시다, 좀!”


오동석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도 같고...


- 올해 상복이 터진 것 같습니다. 원래 영화 가지고 경쟁하거나 순위를 매기지는 않죠. 순위는 오로지 박스오피스밖에 없습니다. 즉 관객이 평가하는 거 잖아요.


기대했던 것과 달리 다소 맥 빠지는 수상 수감이다.

다음에 나올 말들도 얼추 예상이 되었다.

정확했다.

류지호는 계속 여러 사람의 이름을 대며 감사를 표현했다.


- 올 한해 업계가 요동쳤습니다.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부디 살아남아서 함께 한국 영화를 튼튼하게 떠받쳤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십시오.


모두가 실망할 찰라.


- 우리 영화계 몇몇 회사들이 상장도 하고, 기업 경영 투명성도 어느 정도 확인되어가고 있고.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현장은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WaW에 한 해 30건 이상의 다양한 건의사항이 접수된다고 들었습니다. 그 안에는 충무로에 만연한 성추행, 성폭행 피해 호소도 있다고 합니다. 여성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해 행하는 터치 또 상대가 모욕과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언행과 행위는 범죄입니다.


충무로 일각에서는 남자 동성간의 성적 모욕이나 추행도 알게 모르게 자행되고 있다.

독립영화계 일각에서 동성 간 성추문도 심심찮다.

아역 배우에게 ‘이쁘장하게 생겼네, 고추 한 번 만져보자’ 같은 나쁜 행동을 죄책감 없이 벌이는 꼰대도 여전하다.


- 낭만이니 업계의 문화라고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 스스로가 너무 비참합니다. 그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공론화 시킬 수가 없으니까요.


피해자가 드러나는 순간 무조건 2차 가해가 시작된다.


- 이건 옳지 않습니다. 연인이나 심지어 아내에게 강압적으로 나쁜 행동을 하면 법의 처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장에서 그 보다 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문화예술인이자 지성인으로써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요? 그 부분에 있어서 저는 비겁해 질 수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차마 나서라고 도와줄 테니 고발하라고 피해자들에게 못합니다. 후폭풍이 엄청날 테니까요.


이전 삶에서 미투 운동의 시작은 2006년 미국의 흑인 여성 사회운동가가 성폭력 피해를 입은 유색인종 여성과 아이들의 피해를 알리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캠페인에서 비롯됐다.

많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도록 독려했다는 점에서 미투는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으며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괴물들이 사회 곳곳에서 나쁜 짓을 자행해 왔다는 것이 증명되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인간관계와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은 나쁜 일이 절대 아니다.

다만 모든 일에는 순기능만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전 삶에서는 일부 사악한 마음과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으려는 이들로 인해 ’남녀 성대결‘ 양상으로 비화가 되었다.

서구권에서는 ‘미투운동‘ 이후로 PC주의가 창작영역에 무분별하게 유입되면서 장사수단으로 변질이 되었고, 한국의 경우는 도를 넘는 남녀 갈라치기로 인해 세대갈등과 함께 공동체 분열로 악용이 되었다.


- 서로가 보살펴주고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외면하거나 모른 척하면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외로워 미칠지도 모릅니다. 연말연시 저부터 돌아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충무로의 나쁜 문화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춘사영화상 주관방송사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지난 조광영화제에 이어 류지호가 뭔가 퍼포먼스를 펼칠 것을 예상했기에.

게다가 영화계 성추행 및 성폭력을 고발하는 문제를 자사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곧바로 연결시켜서 이슈로 만들 수가 있다.

류지호가 알 정도면 영화계에 관련 부조리가 만연했다는 증거다.

취재가 어렵지 않다는 계산이 섰다.


- 마지막으로 저는 배우 생활하는 선후배 또 친구에게 주기적으로 전문가에게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권합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생방송 중에 류지호가 먼저 정신관 상담을 받고 있음을 고백했다.


- 대다수 배우들은 기자와 팬들이 알면 큰일난다면서 안 받는답니다. 사실 저는 일 년에 두 번씩 전문가와 상담합니다. 약을 복용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담을 받고 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집니다. 공황장애, 우울증 초기! 여러분 삶을 좀먹습니다. 그런 증상들이 여러분의 창작력을 북돋아주지도 않습니다. 배우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병원으로 가실 분 누가 있습니까?


할리우드에서는 별 일도 아니다.

알코올 중독치료, 마약중독치료, 우울증 치료 등.

많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실제 겪고 있는 일이고, TV에 나와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를 하니까.


- 아무도 놀라시는 분이 없다는 것에 제가 더 놀랍습니다.


하하하.

객석에서 작은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 막히니까.


왜?


류지호 입에서 어떤 작은 단서라도 나오면 대형사건으로 비화될 수가 있으니까.


- 수상소감을 말해야 하는데 기자회견이 된 것 같아 송구합니다만. 마지막으로 이 말씀만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온라인 불법 유통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화두입니다. 가장 나쁜 사람은 파일을 불법으로 유통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런 파일을 내려 받는 분들도 각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짜 좋아하면 탈모가 생깁니다. 잔머리 열심히 굴리면 머리에 열이 과하게 나면서 머리카락이 잘 빠집니다. 작은 이익에 매몰되어 큰 걸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러면 우리 영화인들이 여러분께 더 좋은 영화로 꼭 보답할 겁니다. 이상입니다!


꾸벅.


류지호가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빠지려고 했다.


그러다.


“No Woman No Cry! 다 잘 될 겁니다! 힘내십시오!”


류지호가 방정맞게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냥 퇴장하면 실망하실까봐....요. 파이팅!”


하하하.


지난 조광영화제에서의 ‘한국영화 만세!‘보다는 폭발력이 덜 했다.

그럼에도 온갖 매스컴을 수놓을, 심지어 외신에서까지 보도될 퍼포먼스였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국내 영화 시상식 두 개, 조광과 춘사.

류지호의 시상소감 후 주접(?)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흑역사 ‘짤‘로 각종 동영상 공유사이트와 커뮤니티에 박제된다.


‘나는 이 세계의 왕이다 보다는 낫지 뭘....’


작년 BBC에서 선정한 영화 역사상 가장 진부한 대사로 뽑힌 <타이타닉>의 영화 속 대사다.

참고로 2위는 <더티댄싱>에서 패트릭 스웨이지가...


[아무도 베이비를 구석에 내버려 두진 않을 거야.]


6위는 <노팅힐>에서


[난 지금 한 소년 앞에서 사랑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소녀일 뿐이야.]


9위는 <제리 맥과이어>의


[당신이 첫 인사를 건넸을 때 나는 이미 당신 것이었어요.]


‘한국영화 만세‘니 ‘No Woman No Cry!’ 정도는 진부함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이전 삶에서 2010년 그랜드벨 어워즈에 당시 아이돌 분야 톱으로 꼽히는 여성그룹이 나와 화려한 축하공연을 펼쳤으나 공연을 관람하는 배우들의 표정과 태도로 인해 크게 논란이 된 일이 있었다.

아이돌 차별이네 뭐네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류지호는 기억했다.

사실 영화시상식이 처음 열린 이후부터 객석에 앉아 있는 영화인들 중에 시상식을 제대로 즐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는 자신이 수상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초조함으로 공연을 즐길 여유가 없을 수도 있고, 군사정권부터 이어져 온 행사장의 엄숙주의와 함께 어른들(선배) 앞에서 나대지 않고 겸손함해야만 하는 풍조가 만연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류지호는 그 같은 한국 영화시상식의 경직된 분위기를 깜짝 발표와 충격 고백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 깰 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잘 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면 누군가 나서야 한다.

힘 있는 사람이 좋은 일에 앞장 서는 것이 파급력도 크다.


✻ ✻ ✻


여지없이 찾아온 영화 시상식 뒤풀이.

류지호의 뒤통수가 따가웠다.

류지호를 째려보는 자가 범인이다.

찔리는 것이 있으니까 류지호를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것이겠지.

시내 곳곳에서 춘사영화상 수상 영예를 안은 팀들이 저마다 파티를 벌였다.

특히 WaW 엔터테인먼트는 수상작 여러 편을 내놓았다.

서너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파티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기꺼이 비용을 부담했다.

<민중의 적 : EMBARGO>팀만의 파티가 따로 열렸다.

오라 가라 하지도 않았는데, 시상식에 참석했던 이들은 물론이고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영화 관계자들이 모두 <민중의 적 : EMBARGO>팀 파티장으로 몰려왔다.

권철수 감독과 류성원 감독이 파티장을 찾아왔다.

류지호에게 조심스럽게 가입서류를 내밀었다.

지난달에 출범한 한국영화감독조합(DGK : Directors Guild of Korea)의 가입 신청서였다.

최근 감독(DGK), 시나리오작가(SGk), 미술감독(PDGK), 촬영감독(CGK)들이 새로운 동업자 조합을 결성했다.


“친목모임 아니죠?”


모를 수가 없다.

이전 삶에서도 류지호는 감독조합의 회원이었다.

초대 협회장을 맡은 권철수 감독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궁극적으로 사단법인의 길을 가게 될 겁니다.”


이전 삶에서는 나름 친분이 있어 말을 놓았지만, 바뀐 삶에서 존대를 듣게 됐다.

그렇다고 말을 놓을 생각은 없지만.


“근데, 나도 자격이 되는 거였어요? 입봉을 미국에서 했는데?”

“감독님이 월 회비 2만 원 못 내겠습니까? 작품당 연출료의 1%.....”

“맞아요. 나는 한국영화 연출료로 1만 원만 받아요.”

“...음.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감독으로써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류지호다.

헌데 정작 연출계약은 1만 원에 하고 있다.


“혹시 감독 지분에서 떼 가는 건 없어요?”

“그럴 수는 없어요. 현실적으로 지분 계약하는 감독도 많지 않고... 사실상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2% 지분계약으로 감독에게 얼마나 돌아가겠습니까?”


감독조합 규정에는 4개의 필수조항이 있다.

순제작비의 1.5% 이상의 최저 연출료.

총수익의 2%, 제작사 지분의 5% 이상의 최저 인센티브 계약.

연출료의 1% 연출조합 회비.

연출조합 회비는 제작사에서 조합으로 곧바로 입금(할리우드 방식)하고, 감독 지분은 투자사에서 감독에게 직접 입금.

류지호가 규정에서 걸리는 부분은 최저 연출료 계약과 연출조합비다.


“앞으로 한국영화 연출 할 때 정식으로 연출료를 받으면 안 되겠습니까?”


조합규정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려면 예외를 두어선 안 된다.

사실 권철수 감독이 류지호의 월회비나 연출조합 회비가 탐나서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 조합원이 아닌 것도 웃긴 것이다.

그것도 동업자 조합 규정 때문에.


“그게 좀 곤란해요.”

“.....?”

“내가 할리우드 영화 연출료 협상 금액이 350만 달러부터 시작해서 최대 500만 달러까지 보장 받거든요.”


다만 제작비 1,000만 달러 이하 저예산영화에서는 25만 달러의 최저 연출료를 받거나, 최대 100만 달러를 보장 받는다.

최근에는 블록버스터만 찍고 있어서 해당되진 않지만.


“그랬군요.”


류성원 감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동안 한국 감독들이 오해를 하고 있었네요.”

“뭘?”

“왜 1만 원을 받나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었거든요.”


류지호가 할리우드에서 받는 개런티가 웬만한 한국영화 한 편 제작비다.

그 외에도 감독을 위해 여러 편의가 따로 제공된다.

한국영화는 그 수준의 절반도 못 맞춰준다.

물가 수준이나 영화 시장 규모를 감안해 대폭 깎아준다고 하더라도, 최소 5억은 보장해 줘야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다.

그 금액이면 톱 여배우 두 명을 동시에 캐스팅할 수 있는 금액이다.

류지호의 이름값이 톱여배우 못지않다고 해도 영화계약금 주고 나면 가용할 수 있는 제작비가 그 만큼 줄어들게 된다.

무턱대고 제작비를 올리면 손익분기점도 덩달아 뛰게 된다.

평소 동업자 정신 운운한 것과 대치되는 행동이다.


“기부 가입 같은 건 허용 안 될까요? 할리우드는 그런 경우도 간혹 있는데.”

“글쎄요. 그렇게 되면, 명예회원 수만 늘어날 것 같아서......”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 100억 쯤 하면 어떨까요? 나 말고 그런 방식으로 들어올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동시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윤창출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동업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단합된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잖아요. 초기 자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어요? 어차피 한국에서 버는 돈 대부분은 기부금으로 다 나가는데, 내 권익을 보호해주는 단체에 100억 기부하는 게 돈자랑도 아니죠, 따지고 보면.”

“미처 우리가 그 부분은 짚어내지 못했습니다.”

“감독님 때문에라도 총회를 한 번 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럴 것까지야. 내가 조합원이 아니라고 해서 한국영화 감독이 아닌 것도 아닌데.“


류성원 감독이 툭하고 내뱉은 말이 꽤나 의미심장했다.


“감독님은 참.... 여러 면에서 한국영화의 복덩인지 골칫거리인지.....”

“겨우 조합원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골칫거리야? 너무 한데?”

“감독님 한 마디에 온 영화판이 출렁출렁 하잖아요. 누군가에게는 골칫거리일 수도 있죠.”

“그럼 제작가협회로 갈까? 혹시 복수 가입도 돼?”


류지호는 그저 농담을 던진 것 뿐.

하지만 두 사람은 정색 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류성원 감독에게서 평소 잘 쓰지 않는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튀어나왔다.


“아이 참... 감독님도. 동생이 응, 앓은 소리 좀 했거니 또 이상한 말씀을 하시고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다.

어떤 조합에 가입했냐는 일종의 피아식별 같은 것이다.

고용주냐 피고용주냐.... 뭐 그런.

한국영화감독들이 투표해 시상하는 ‘디렉터스 컷 어워즈‘가 있다.

지난 1998년 시작했는데, 류지호는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올해의 영화인‘에 뽑힌 적은 있지만, 제작자상이나 감독상은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충무로 감독들 입장에서 감독님은 할리우드 현역 감독이라는 인식이 크게 때문에 표를 안 줬는데, 감독조합에 딱 가입하시게 되면 그런 인식도 불식되것지요. 뭐~”


상 받는 것은 딱히 아쉽지가 않은 류지호다.

다만 조합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한국영화판 동료로 인식 받는다는 현실이 다소 씁쓸했다.

어쨌든 두 감독은 가입서에 류지호의 서명을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

차후 협회 내부 논의를 거쳐 예외조항을 만들어 가져오기로 했다.

예외로 두는 것은 안 좋은 것이다.

소수이기에 터부시 당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 예외이니까.

그런데 류지호의 경우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 나오기 힘들다.

어딜 가져다 놔도 규격 외다.

무슨 예외를 두든 그것이 당연한 거다.


작가의말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11월 내내 보람되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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