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연재수 :
962 회
조회수 :
4,126,116
추천수 :
127,006
글자수 :
10,687,409

작성
24.06.14 09:05
조회
1,491
추천
71
글자
25쪽

Think The Unthinkable! (4)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3월 중순~5월 초순까지.

류지호가 Jay & Leo Bell Ranch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LA로 복귀한 류지호의 일상 역시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차기작이 정해졌음에도 류지호는 또 다른 작업을 궁리했다.

<스타크래프트> 실사화 프로젝트는 1.7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그것만 올인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건 다른 사람들 이야기고.”


류지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쉼 없이 영화를 찍고 싶었다.


“달링은 왠지 영화를 의무적으로 찍는 것 같다니깐. 영화 찍는 머신 같아.”


영화 연출에 한이 맺혀 이번 삶에서 한풀이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영화 찍는 기계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지....’


세상에는 다작 감독도 많다.

다만 나이와 커리어 모두를 고려했을 때, 류지호 정도의 작업량을 보여주는 감독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모두 기다리고 있어. 얼른 가 봐.”

“다녀올게.”


레오나와 가볍게 작별키스를 나눈 후, 류지호가 집을 나섰다.

그 길로 유럽출장길에 올랐다.

본래의 목적지는 스위스 로잔이었지만, 그에 앞서 영국부터 들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을 방문해 구단 관계자들과 만난 후, 퍼거슨 감독과 면담했다.

류지호가 에두르는 것 없이 직접적으로 말했다.


“두 시즌만 더 뛰고 멋지게 물러나주세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안에서 어떤 누구도 퍼거슨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권위가 팀은 물론 구단에서까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후계자를 생각해두고 있습니까? 미리 말씀하세요.”

“......”

“구단도 퍼거슨 경 이후를 미리 준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구단주로서 정당한 요구다.

구단 내에서는 누구도 퍼거슨 감독의 말이나 의견을 거역하지 못했다.

심지어 사장까지도.

예외인 사람은 공동구단주 둘 뿐이다.

구단을 소유한 입장에서 일개(?) 감독에게 쩔쩔맬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퍼거슨 감독은 류지호의 태도가 당돌하다고 여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능하면 떠나기 전까지 우승을 한 번 정도 더 하면 좋겠는데... 물론 원하는 지원을 아낌없이 해 줄 겁니다. 은퇴시즌을 화려하게 마무리한다면 영원히 신화로 남으시겠죠. 그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다면 구단도 최고의 예우를 해드리겠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묵묵히 류지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내심으로.


‘이 고약한 아시아 부자 녀석을 골려주기 위해서라도 몇 시즌 더 남아 있을까....?’


영국의 웬만한 축구팬은 다 안다.

퍼거슨 감독이 결코 사람 좋은 옆집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것을.

그 유명한 ‘베컴 축구화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퍼거슨은 매우 다혈질이며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다.

참고로 작년에 퍼거슨과 베컴은 화해를 했다.

그로인해 올 시즌부터 베컴은 마음 편하게 맨유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미안하지만 모예스는 아닙니다.’


훈련센터를 떠나며 류지호는 차기 맨유 감독 후보를 생각해 봤다.


‘과르디올라가 독일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프리미어 리그로 오면 적응하는데 애를 먹으려나....?’


류지호는 5월 28일 2011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맨유와 대결을 펼치게 될 FC바르셀로나의 감독 과르디올라를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면 어떨지 생각해봤다.

퍼거슨 감독은 싫어하겠지만.


“제니퍼, 과르디올라 감독의 계약 기간이 언제 종료되는지 알아봐줘요.”

“FC바르셀로나의 감독 말씀이세요?”

“맞아요.”

“단장과 퍼거슨이 찬성할 것 같지 않은데.....”

“밖으로 알려져서 좋은 것 없어요.”

“비공식적 접근도 안 되겠네요?”

“계약 현황만 체크해 보라고 하세요.”

“예. 보스.”


류지호는 또 무리뉴와 모예스도 차기 지휘봉 후보에 넣고 검토하기로 했다.

이전 삶에서 퍼거슨이 떠난 후로 10년 동안 맨유는 무려 14억 3000만 파운드(약 2조 2,373억 원)를 사용했다.

쓴 돈만 보면 돈지랄의 극치로 여겨지는 맨체스터 시티보다 많았다.

하지만 성적은 처참했다.

류지호와 매튜 그레이엄은 그 정도 돈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초부자다.

다저스와 49ers 선수영입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고.

“리저브의 유망주들 스카우팅 리포트와 비디오 자료도 추려서 가져오라고도 전해주고.”

“예.”

“'Class of 92'들과 일정을 맞춰보세요. 다 함께 식사 한 번 하게.”


‘92라인‘, 또는 ‘퍼거슨과 아이들‘로 불리는 스콜스, 니키, 필, 개리, 라이언, 데이비드 등 1990년대 초 맨유 아카데미에서 성장해서 10년 후 결실을 맺은 6명의 축구선수를 일컫는 표현이 'Class of 92'이다.

이들 6인방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를 휘저었다. 이 시기 맨유는 리그, 잉글랜드 FA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우승 등을 달성하며 황금기를 보냈다.

이들은 은퇴 이후에도 공식 석상에 함께 등장하는 등 변함없는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매튜 그레이엄은 이들과 친분을 맺고 있지만, 류지호는 하도 바빠서 그들과 별다른 친분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반가워요, 미스터 할리우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류지호는 영국 왕족 최초로 IOC위원에 선정된 앤 공주를 예방했다.

세간에서 소탈하다는 평가를 듣는 앤 공주다.

그럼에도, 왕족답다고 해야 할까.

시종일관 꼿꼿한 태도를 유지했다.

류지호가 이 시기에 영국 왕족을 만난 것에는 사정이 있었다.

며칠 후, 2018년 동계 올림픽 후보도시 프레젠테이션이 열릴 예정이다.

류지호는 앤 공주에게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협조를 부탁했다.

그리고 기후협약과 신종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외에는 앤 공주가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승마 관련 대화가 이어졌다.

류지호는 영국 왕족의 소탈함 속에 감춰진 오만에 대해 알고 있었다.

관련한 조언도 많이 들었고.

듣던 대로, 앤 공주에게서 오만함과 동시에 영국 왕족의 높은 콧대를 엿볼 수 있었다.

영국에서 첫 일정을 소화한 류지호는 다음 행선지 모나코로 향했다.

국왕 알베르 2세를 알현했다.

그 역시 왕족이지만 현역 IOC 위원이기도 했다.

류지호와 마찬가지로 유럽 사교모임의 회원이기도 하고.

류지호는 예방하는 시간 동안 평창 올림픽 지지 호소를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리조트 사업에 대한 투자와 영화·방송 로케이션 촬영 확대방안에 대해 논의를 했다.


“하하하. 뇌물 수수 같은 루머가 끊이지 않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에 비하면 IOC는 유치원처럼 순수한 조직에 가깝다네.”


노골적으로 지지호소를 하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것이다.

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예방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지지를 부탁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만난 유럽의 왕족이자 IOC 위원은 스위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국 리히텐슈타인의 공주였다.

다른 왕족들은 지지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표하지 않았지만, 리히텐슈타인의 공주는 스스럼없이 평창에 투표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먼저 지지의사를 밝히니 류지호로서도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 가온그룹 본사 리히텐슈타인으로 옮기나?


한국 언론이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공국인 리히텐슈타인은 인구가 4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굉장히 작은 국가다.

그런데 인구보다 등록된 기업수가 더 많은 희한한 나라다.

세금이 낮고, 기업규제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유럽의 많은 기업들이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하기 때문이다.

리히텐슈타인은 조세피난처(tax haven)로서의 역할이 국부의 주요수입원이다.

가온그룹의 본사이전 이슈가 한국에서 한창 시끄러울 시기에, 류지호가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의 왕족을 예방했으니... 충분히 오해할 만했다.

류지호가 유럽에서 만나고 다닌 왕족들이 모두 IOC 위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한국에서 심장이 철렁한 이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류지호는 스위스 로잔에 오기까지 IOC 위원들 몇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한국의 유치단이 접촉하기 쉽지 않은 인물들 위주로 만났다.

동계올림픽 유지 후보도시의 프레젠테이션이 열리기 직전.

류지호가 스위스 로잔에 도착했다.

IOC 위원이기도 한 오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대한체육회장,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장 등 한국 재계 인사들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포함한 정부 인사들, 평창유치위원회 홍보대사이자 선수위원 자격을 가진 김예나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가 있는 스위스 로잔에 먼저 와 있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류지호는 오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평창올림픽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재계 인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국제 스포츠계의 거물들을 잇달아 접촉해 한국의 ‘평창’을 각인시키는데 주력했다.

가온그룹은 2014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류지호 역시 후원금을 보내면서 측면지원을 했다.

그럼에도 평창은 두 번에 걸쳐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건강도 좋지 않은 걸로 아는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누구보다도 앞장서 뛰는 인물은 IOC 위원이기도 한 오성그룹 이 회장이었다.

일각에서는 전정권에서는 평창올림픽 유치전에 소극적이었던 이 회장이 이번 정권에서 그룹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유치전에 적극적인 것은 특별사면과 관련해 정권과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겠냐고 분석했다.

권력의 가려운 곳(올림픽 유치)을 자본이 긁어주고, 자본은 대가로 원하는 혜택(사면)을 얻고.

그 거래가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다 떠나서 한국의 IOC위원으로써 당연히 평창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서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아직 한국인 중에는 ‘더 이든클럽‘ 회원은 류지호 뿐이다.

‘더 이든클럽‘에는 전현 IOC 위원이 상당히 많이 가입해 있다.

평창유치위원회는 류지호의 유럽 사교계 인맥을 활용하길 바랐고, 류지호는 기꺼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게다가 가온그룹은 한국의 동계 스포츠의 최대 후원자였다.

오너인 류지호에 대해 동계스포츠 종목의 국제단체장이나 아프리카국가올림픽위원회연합 소속 위원들은 류지호에게 무척 호의적이다.

류지호는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가온그룹 오너이자 한국의 빙상 및 설상종목 최대 후원자로써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홍보대사에 이름을 올렸다.

물론 다른 재계 인사들처럼 발 벗고 나서서 홍보활동을 벌어진 않았다.

그럼에도 로잔에 와서는 나름 열심히 홍보활동을 펼쳤다.

IOC 위원장 면담은 물론이고 주요 동계종목 수뇌부와 연쇄적인 회동을 했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 IOC 위원들에게 평창을 선택해줄 것을 호소했다.

류지호의 로비와 김예나를 비롯한 6명의 유치위원들의 PT와 질의응답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100명의 국제올림픽 위원들 앞에서 펼치는 PT전에서 평창은 밴쿠버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크 김예나를, 독일 뮌헨 측에서는 과거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내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카타리나 비트가 독일 유치위원장을 맡아 총력전을 펼쳤다.

신구 피겨스타의 홍보전도 나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류 의장, 올림픽 유치전에 힘을 보태줘서 정말 고마워.”


대한체육회장을 맡고 있는 두진그룹 회장이 류지호를 붙잡고 감사를 표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만약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우리나라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게 되면 국가 이미지 제고는 물론 성장이 정체된 우리 경제에도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야.”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았다.


“가온은 개최지가 선정되는 마지막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더 애써주게.”


올림픽 유치 도시 프레젠테이션이 열린 스위스 로잔의 스타는 의외로 류지호가 차지했다.

유럽 출신 IOC 위원들과 명예 위원들 중에는 왕족뿐만 아니라, 작위를 가진 귀조들이 많았다.

대를 이어 기업을 소유 혹은 경영하는 상속부자들도 수두룩했고.

류지호는 평창 올림픽 유치전을 핑계로 유럽의 귀족 및 유럽 출신의 IOC 위원 42명과 사교를 맺을 수 있었다.


‘세상에 공짜란 없지.’


이변이 없는 한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할 것이 확실시 되어 보였다.

이전 삶에서 그랬기 때문이 아니다.

유럽 쪽 IOC 위원들 분위기와 최근 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제체육행사 흐름과 추세가 그랬다.


“한국이 국제행사 유치 전략에서 사골국처럼 우려먹는 평화와 남북 분단 어필을 그만 하죠. 42명의 유럽 IOC 위원들에게 이젠 식상한 홍보전략입니다.”


류지호가 유치위윈회에 강력하게 요구한 내용이었다.

IOC는 2000년대 들어서며 동계 올림픽 종목들이 그 동안 유럽 등 서구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 미지의 국가로 동계 올림픽 시장을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평창이 강조해야 할 점이 바로 한국이 동계 올림픽 종목의 미지의 시장이며 쇼트트랙 외에 다른 종목에서 매우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걸 강조해야 합니다.”


류지호의 충고가 먹힌 것인지, 평창 유치위원회는 ‘새로운 지평’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면서 기존의 홍보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즉 평화, 유일한 분단국가 같은 식상한 캠페인을 버린 것이다.

5월 중순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후보도시 프레젠테이션 이후로 두 달 간 치열한 유치경쟁이 펼쳐졌다.

유럽 위원이니 유럽을 무조건 도울 것이란 생각은 순진한 접근이다.

110명의 IOC 위원들은 각자 복잡한 방정식에 따라 움직인다.

2018년 동계 올림픽 유치전의 변수는 2020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다.

암암리에 ‘대륙별 순환 원칙’이 지켜지는 곳이 IOC다.

하계 올림픽 개최지가 유럽일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서 동계 올림픽은 비유럽권에 넘겨주자는 여론이 있었고, 유럽 위원들의 표가 갈릴 것이 예상되었다.


“감독님 전용기 함께 타고 오는 건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리는 운명의 땅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만난 김예나가 대뜸 한 말이었다.

김예나는 세계선수권 이후 한국에 머물며 광고촬영, 갈라쇼 등의 개인 일정을 소화하는 한편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대사 활동을 펼쳤다.

유치전이 끝난 후에는 다음 시즌을 위한 전지훈련을 LA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세계선수권의 기억은 다 털어낸 거야?”


‘2011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부문에서 김예나는 평소 기량을 완벽하게 발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채점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밴쿠버 올림픽을 전후로 여자 피겨 싱글 부문에서 적수가 없을 것으로 예상됐던 김예나는 ‘2011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1.29’점 차이로 금메달을 놓쳤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판정에 대한 의문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이미 지난 일인 걸요.”

“올림픽 금메달도 땄잖아. 부담의 짐을 내려놔. 네가 한국 피겨를 모두 짊어질 필요는 없어. 좀 더 편안히 스케이팅을 하도록 해.”

“넵!”


김예나는 이제 21살이다.

언젠가부터 그녀의 이름 앞에 ‘퀸‘이란 호칭이 따라다녔다.

즐거운 스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왔던 것처럼 류지호는 녀석이 경쟁보다는 즐기는 스케이팅을 하기 바랐다.


“LA에서 뵐게요.”

“LA 도착하자마자 전화해.”

“넹~”


류지호와 김예나는 길게 대화를 나눌 처지가 아니었다.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과 마지막 유치 홍보전을 펼쳐야 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개최가 지역 안배보다 올림픽 경험과 전력, 동계 올림픽 스포츠팬들의 열정을 더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독일은 동계 올림픽 강국임에도 지난 1936년 제4회 동계 올림픽을 치른 뒤 80년 동안 대회를 열지 못했습니다. 독일은 국제행사마다 RMW 등 여러 업체들이 크게 기여하고 있어 예산집행 등 자금에서 문제가 없습니다.”


독일은 이번 동계 올림픽 유치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시아에서는 일본만이 유일하게 동계 올림픽을 두 번 유치했었습니다. 러시아는 2014년 처음으로 소치에서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고, 브라질은 2016년 남아메리카 국가로는 처음으로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하계 올림픽을 유치했습니다. 따라서 쇼트트랙, 피겨 등 스케이트 종목 강국이면서 동계 올림픽을 한 번도 개최하지 못한 한국에도 기회를 주십사 호소합니다.”


류지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평창 선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은 특히 국민의 올림픽 유치 지지율이 87%를 기록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프랑스의 62%, 독일의 54%에 훨씬 앞서고 있습니다. 최근 국제 스포츠 대회 개최가 새로운 대륙이나 국가에서 열리고 있는 추세에 역행하지 않길 기대합니다.”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ICC).

IOC 위원장의 개회 선언 이후로 후보도시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이 열렸다.

IOC 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총 11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위원장과 후보국 위원들은 투표할 자격이 없다.

불참자들도 있어서 1차 투표는 95명 정도가 참여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하는 도시가 개최지로 자동 결정된다.

과반수를 얻는 나라가 없을 경우 1위와 2위가 결선투표를 벌여 승자를 가린다.

한국의 평창은 IOC 위원들의 비밀투표 결과 1차 투표에서 과반인 63표를 얻어 경쟁도시였던 뮌헨(25표)과 안시(7표)를 깔끔하게 따돌리고 결선투표 없이 개최도시로 선정되었다.


짝짝짝!


평창 동계 올림픽 예산은 14조 원 수준으로 계획되었다.

이중 도로, 경기장 등 인프라 구축에 투입된 금액이 10조9400억 원(국비 7조6000억 원+지방비 400억 원+민자 유치 3조3000억 원)이다.

차후 올림픽 운영은 스폰서 후원 및 기부금(46.5%), IOC 지원금(18.3%), 입장권 및 기념품 수입(7.2%), 국고 지원(2.5%) 등 총 2조8,000억 원 규모로 치러질 예정이다.

이 금액은 후원금 모금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후원금이 적게 모금되면 국고가 그 만큼 더 들어간다.

일각에서는 새만금개발 사업에 수십 조를 투자하면서 국가적 행사인 평창 투자에 미온적인 류지호의 태도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던 올림픽은 이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성화가 꺼지면 그 자리에 빚더미만 남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20년간 올림픽을 개최한 모든 도시에서 올림픽 후 경기침체가 발생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경기장은 매년 억대 유지비용을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특히 봅슬레이, 루지와 같은 종목들은 대중적이지 않은데다가, 얼음을 얼리고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 사후 처리문제로 골치를 썩는다.

솔직히 류지호의 마음 같아서는 올림픽 하지 말자고 하고 싶었다.


‘굳이 기쁨을 만끽하는 분위기에 초를 칠 필요는 없겠지.’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위원회와 정부는 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그에 걸맞은 노력을 많이 했다.

재계와 국민들도 올림픽 유치에 힘을 실어주었고.

그것이 전부다.

올림픽 이후 시설의 처리와 파손된 자연의 복구 문제.

투입되는 국고와 이후 관리유지비용 문제까지.

그와 관련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위해 애쓰는 이들이 많다.

후원사도 많이 붙을 것이다.

문제는 사후에 대한 계획과 대책이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믿고 있는 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평창올림픽이 일시적인 남북한의 ‘화해‘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혈세를 퍼부어 만들어낸 올림픽 특수에 불과할 수도 있으며.

끊임없이 세금을 잡아먹게 되는 애물단지 ‘빅 이벤트‘로 남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류지호는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그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창 올림픽 이후로 지역의 자연환경 복원을 위해 힘을 보탤 생각이다.

류지호의 결심을 들은 제니퍼 허드슨이 물었다.


“보도자료를 만들까요?”


류지호가 엉뚱한 대답을 했다.


“Think the unthinkable이란 말 들어봤어요?”


허먼 칸이라는 학자가 1962년에 낸 책에서 한 말이었다.


“아니요.”

“영화학도들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미국 최초의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에 근무하면서 수소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허먼 칸을 알게 되었고 그를 자신의 영화에서 패러디 했죠.”

“아, 2000년이 되면 로봇이 가사를 돌보고 인류가 화성과 금성에 자유롭게 오갈 것이라 말한 그 천재과학자 말씀이시군요?”

“그는 수많은 예측 오류를 범하긴 했지만, 인터넷, 유전공학,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 일본 같은 것들을 정확하게 예측했죠.”

“예.”

“그 허먼 칸을 모티브로 해서 큐브릭 감독이 만드는 영화가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요. 냉전의 한 가운데서 영화로 웃음폭탄을 터트린 영화죠.”


반골 기질 가득한 큐브릭 감독의 냉소와 용기가 한 가득 담긴 이 유쾌한 풍자영화의 엔딩은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많은 이들이 큐브릭이 촬영-조명-미술-편집-사운드 등 영화기술 분야에 있어 최고 수준의 감각과 실력을 갖춘 테크니션 혹은 스타일리스트라고 오해한다.

류지호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가 남긴 영화 13편은 딱 꼬집어 정의할 수 없는 폭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자기 영화 속에서 사회의 경직된 제도와 낡은 관습을 일관되게 비판했다.

그는 대중예술가로써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영화를 통해 직접적인 논평을 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계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이 모두 그렇다.

예술은 고급스러운 유희에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보도자료는 못 들은 것으로 해주세요. 보스.”


류지호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본인은 기부서약을 하는 슈퍼리치들과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중예술활동을 통해 문제의식을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대중예술가로써 대중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라고 촉구할 수 있고, 때론 소통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으며, 예술과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다.

류지호는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업적 위에 새로운 업적을 쌓아가고 있다.

그들이 했던 것처럼 그 역시 다음 세대에 뭔가를 전해야 한다.


“영화예술의 전승은 마치 성화 봉송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뤼미에르 형제든 에디슨이든, 처음으로 영화예술이란 창의력의 횃불이 타올랐을 때부터 다음 시대가 그를 이어 받았고, 그 횃불을 나의 세대가 전달받았죠. 새로운 아이디어와 열정, 새로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넘쳐나는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다시 그 횃불을 이어받아 달려 나가야 하고.”


즉 류지호는 그 횃불을 전달해주는 계주(繼走)의 주자(走者)가 되어야 했다.


“나는 원하든 원치 않았든 수많은 이들의 생계와 삶까지 책임지고 있어요. 그렇기에 언제나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역발상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일에 대비하고 대처해야 하지요.”


그것은 창작 부분에도 해당된다.

기존 틀에 안주하는 순간 창작력은 멈추고 마니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 예술가들은 특히 더 사회 변화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할 게 아니라, 세상과 맞물려가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죠.”

“언제나 보스께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해왔어요. 앞으로도 잘 해나가실 거예요.”

“제니퍼가 내 곁에서 많이 도와줘요.”

“뭐든 지시만 내리세요.”


2000년대와 2010년대가 류지호에게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앞으로 연출할 영화들은 지금까지와의 자신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지 않았다.

비록 뛰어넘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꼬집어 정의할 순 없다고 하지만.

그러한 과정 또한 류지호라는 영화감독이 걸어가는 길의 흔적일 터.

발자국들이 길게 이어져 새로운 길이 만들어 질 것이다.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05 이런 삶이 삼류인생일 리가 없지. +5 24.07.10 1,437 74 24쪽
904 내 앞에서 비켜. 지나가야 하니까! (3) +4 24.07.09 1,404 71 24쪽
903 내 앞에서 비켜. 지나가야 하니까! (2) +8 24.07.08 1,441 69 24쪽
902 내 앞에서 비켜. 지나가야 하니까! (1) +3 24.07.06 1,455 78 23쪽
901 영웅으로만 그리진 않을 거야. +11 24.07.05 1,479 93 29쪽
900 미국의 비밀병기....? +8 24.07.04 1,550 79 26쪽
899 평범해진 현재와 부딪히며 살아갈 수밖에. +4 24.07.03 1,439 69 23쪽
898 0.1% 부자란....! (2) +5 24.07.02 1,452 70 24쪽
897 0.1% 부자란....! (1) +8 24.07.01 1,437 82 24쪽
896 나란 사람을 아주 잊은 줄 알았어. (2) +5 24.06.29 1,450 74 22쪽
895 나란 사람을 아주 잊은 줄 알았어. (1) +6 24.06.28 1,427 69 26쪽
894 이 사건에서 국가는 책임이 없다... +4 24.06.27 1,454 76 27쪽
893 나르시시즘의 시대. (6) +4 24.06.26 1,432 72 25쪽
892 나르시시즘의 시대. (5) +7 24.06.25 1,439 77 25쪽
891 나르시시즘의 시대. (4) +5 24.06.24 1,480 74 25쪽
890 나르시시즘의 시대. (3) +3 24.06.22 1,499 77 23쪽
889 나르시시즘의 시대. (2) +2 24.06.21 1,503 68 23쪽
888 나르시시즘의 시대. (1) +6 24.06.20 1,532 73 24쪽
887 노욕(老慾)과 노추(老醜). (4) +6 24.06.19 1,480 72 28쪽
886 노욕(老慾)과 노추(老醜). (3) +2 24.06.18 1,477 75 23쪽
885 노욕(老慾)과 노추(老醜). (2) +2 24.06.17 1,527 73 27쪽
884 노욕(老慾)과 노추(老醜). (1) +6 24.06.15 1,583 75 23쪽
» Think The Unthinkable! (4) +3 24.06.14 1,492 71 25쪽
882 Think The Unthinkable! (3) +6 24.06.13 1,532 65 24쪽
881 Think The Unthinkable! (2) +6 24.06.12 1,515 70 28쪽
880 Think The Unthinkable! (1) +8 24.06.11 1,544 79 25쪽
879 우리 보스께서 조금 유별나긴 합니다. (4) +5 24.06.10 1,540 78 23쪽
878 우리 보스께서 조금 유별나긴 합니다. (3) +2 24.06.08 1,519 85 23쪽
877 우리 보스께서 조금 유별나긴 합니다. (2) +5 24.06.07 1,471 80 24쪽
876 우리 보스께서 조금 유별나긴 합니다. (1) +4 24.06.06 1,524 76 2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