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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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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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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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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내 앞에서 비켜. 지나가야 하니까!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스터 할리우드가 운용하는 벤처캐피탈이 본격적으로 영국에 입성한 모양이야.”

“금융은 영국이라고! 자존심도 없나?”

“벤처캐피탈에서도 영국이 최고라고 할 수 있을까?”

“.....?”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뜨고 있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션 조상이 JHO인 거 몰라?”

“그게 뭐 어때서?”

“미스터 할리우드가 파산하지 않는 한 영국의 벤처캐피탈은 만년 2등일 수밖에 없어.”

“제기랄...!”


와이콤비네이션은 2005년에 실리콘밸리에서 출범한 스타트업 창업지원업체다.

최근에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는 액셀러레이터 중에 하나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탈은 누가 뭐래도 JHO.

90년대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벤처캐피탈이었던 Sequa Capital을 멀찍이 따돌렸다.

Sequa Capital의 운용자금규모(AUM)는 대략 52억 달러.

반면에 JHO Venture Capitals는 무려 140억 달러다.

지난해 미국의 벤처캐피털(VC) 전체가 조달한 310억 달러 절반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다.

Sequa Capital의 투자자산가치가 대략 700억 달러 안팎으로 알려졌다.

JHO Venture Capitals는 최소 그 두 배에 달한다.

영국 산업경제부 장관이 류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테크시티에서 보자고 해서 놀랐습니다.”

“무리한 청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센스가 탁월합니다.”


추진 중인 bSKYb 인수합병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반독점 이슈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 영국의 고위급 인사와 류지호가 사사롭게 만나는 것은 뒷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영국 관료들을 압박하지 않을 수도 없고.

지난해부터 캐머런 총리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테크시티다.

어지간한 IT기업 입주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진 JHO 계열 입주는 그것 자체로 상징적일 수밖에 없다.

영국이 자랑하는 금융가가 아니라 테크시티라는 것도 의미심장하고.


“오늘의 이벤트를 총리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매우 흡족해 하십니다. 테크시티의 투자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길 기대한다며 따로 전언이 있었고. JHO의 테크시티 진출로 영국 IT기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마음을 바꾸길 기대해 봅니다.”

“영국 스타트업들의 인공지능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됩니다. JHO의 시드캠프는 테크시티가 유럽의 AI 수도가 될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하하하. 멋진 말입니다.”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디지털 생태계를 만드는데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은 테크시티의 필수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은 유럽의 톱 20개 대학 가운데 8개를 가지고 있다.


“SeedCamp는 영국의 대학들과도 협력해서 기술을 발전시키고 투자와 인재를 연결하는데 통로 역할을 다 할 생각입니다.”

“영국은 혁신의 전통이 살아 있는 곳입니다.”


과거 한 때.... 그랬다.

현재는 ‘글쎄올시다’라고 할 수 있고.


“디지털 기술에 투자가 왕성해지면 교육기관과 기술협력의 기회가 풍부해 질 겁니다. 서두르지 않고 추진하다보면 10년 내 디지털 생태계의 중심이 런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씨앗이 되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취재기자들에게 고스란히 들렸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으니까.


“나는 영국의 IT산업과 별개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에도 무척 관심이 많습니다. 이미 미국에서도 관련해 상당한 액수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요.”

“그렇습니까?”


이번 행사는 단순한 개업식 이상의 의미를 내포했다.


‘너희들 해외투자 절실하잖아?’


내가 도와줄 수 있어.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것도 조금 들어줘.

정치적 쇼잉이자, 영국정부에 대한 아부다.

산업경제부 장관은 류지호와 약간의 인연이 있다.

한통속이라거나 끈끈하게 이어져 있진 않지만.

서로에게 중요한 인맥이다.

그는 영국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 중진의원이었는데, 세계적 정유업체 Royal Shell에서 근무하면서 케냐 정부 자문관을 역임했다.

류지호 또한 케냐 국가경제자문관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또한 산업경제부 장관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FTA를 맺은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최대 벤처캐피탈 JHO가 런던의 테크시티에서 영업을 시작했다. 개업행사에는 영국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앞날을 축원해 주었다. 이날 JHO Venture Capital의 오너 류지호는 “투자업계를 이끌려면 더 이상 1억 달러 수준의 투자로는 안 된다”며 “수십억 달러 가치의 회사를 키워내기 위해선 4~5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JHO Venture Capital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일찍부터 투자해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것으로 유명한 세계 최대 벤처캐피탈이다. 중국시장 투자에도 두각을 보이고 있으며 투자자산가치가 대략 1,000억~2,0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Financial Times.


✻ ✻ ✻


JHO SeedCamp UK가 영업을 개시했다.

이어서 GMG Digi-Lab이 내년 상반기 입주를 확정했다.

NeTube 영국 지사도 테크시티로 옮기기로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류지호가 여덟 번째(3년 전까지는 10대) 주요 주주로 있는 BoTafone도 테크시티에 전시관과 R&D 육성센터를 만들기로 했다.

잉글랜드텔레콤도 사무실을 개설하기로 했다.

류지호가 영국에 그것도 테크시티에 투자를 감행하면서 유럽의 벤처캐피탈과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위기에 몰린 영국 정부로서는 잇따른 호재들이었다.


- 그곳에 뭔가 있다! 투자의 귀재가 런던 쇼디치에 투자하기로 했다.

- 미다스의 손, 프랑스나 독일이 아닌 영국을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보고 있나?

- 영국금융계 물밑 움직임이 감지된다. 영국의 벤처캐피탈 연합이 예상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류지호가 영국 스타트업의 장래성만 보고 투자를 감행한 걸까.

천만에.

류지호의 테크시티 투자는 캐머런 총리를 압박하는 수단 중에 하나다.

영국 내각은 어떤 식으로든 류지호의 호의에 대응을 해야만 한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류지호 같은 거물 투자자는 투자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릴 수도 있지만.

때론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그리니 영국정부로서는 류지호가 원하는 것 하나 정도는 들어주어야 한다.

JHO SeedCamp UK의 성대한 개업식이 있은 후 저녁에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됐다.

비록 캐머런 총리로부터 직접 대답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bSKYb의 M&A가 EU 집행위로부터 허락을 받게 된다면 영국정부 역시 승인할 것이란 신호를 받았다.

일단 그 정도만 해도 만족할 만 했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영국과 EU집행위원회는 JHO와 bSKYb 인수합병 건을 두고 반독점 시비를 걸 수 없다.

이미 유럽연합에 1억 3천만 가구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위성방송 사업자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15개 인공위성을 가동 중인 Astra SAT Global이다.

JHO가 bSKYb를 합병한다고 해도 Astra SAT Global을 뛰어넘을 수 없다.

따라서 영국정부가 bSkyb 문제를 놓고 민감하게 구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SKY News라는 자체 뉴스채널이 그들에게는 골치거리다.

The NEWS 그룹이 백퍼센트 지분을 소유하게 되어도 문제, 외국인이 영국 언론에 진출하는 것도 문제다.

그 때문에 영국의 방송사업자들은 물론이고 언론사들이 기를 쓰고 막으려 드는 것이다.


“JHO가 영국의 위성방송을 품에 안게 된다면 뉴스채널을 따로 분리해서 독립시킬 겁니다. JHO의 위성사업 부문은 진출한 어떤 나라에서도 자체적으로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언론사 뉴스를 가공해 편성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류지호는 언제든지 뉴스채널을 포기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영국정부와 방송 및 언론계가 믿어줄지 모르지만.

암튼 영국정부는 절반 이상 넘어왔다.

영국의 방송사들과 언론도 명분을 잃었다.

남은 문제는 과연 로버트 폭스가 순순히 지분을 넘길 것인가.


‘얼마나 더 버틸 수가 있을까...?’


류지호는 로버트 폭스를 충분히 상대할 만한 힘을 갖췄다.

때마침 ‘전화해킹스캔들‘로 로버트 폭스가 궁지에 몰려 있다.

영국 법률상으로 JHO/DirecTV가 과반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면 잔여 지분 인수권리가 자동으로 생기기 때문에 그를 통해 로버트 폭스를 압박할 수도 있고.

올해 안에는 bSKYb 인수합병이 마무리될 것도 같았다.


❉ ❉ ❉


유럽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이 모두 술술 풀리지는 않았다.

EMI 뮤직 인수 건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유니벌스뮤직그룹(UMG) 루크 그레인지 사장은 느긋하기만 했다.


“한두 달 만에 결판날 사안이 아닙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고위관리를 연달아 접촉하는 오너를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인수합병 건이 잘 풀려도 문제, 안 풀려도 문제.

잘 풀리면 모든 것이 오너의 덕.

안 풀리면 모든 잘못이 현 경영진의 무능 때문이기에.


“유럽 카탈로그의 40~60% 매각과 같은 상당한 양보를 해야 할지라도 반드시 거래를 성사시킬 겁니다.”


그럴 가치가 있다.

세계 최대 레코드 레이블 UMG는 유독 일본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세계 두 번째 음악시장에서 위용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

일본에서의 점유율은 12~15%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EMI 인수·합병을 성사시켜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EMI 음악 카테고리에 일본에서 인기 있는 아티스트와 음반이 꽤 많았기에.

유럽 점유율 일부를 소닉에픽뮤직그룹에 넘겨주더라도 일본 점유율을 높일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다.


“워너-타임뮤직까지 끌어들여 메이저 3사가 EMI 뮤직을 쪼개서 나눠 가질 수도 있는 겁니까?”

“EMI를 분할 인수하는 방식보다 UMG가 인수합병한 후, 일부 레이블을 시장에 내놓아 경매에 붙이지 않을까 합니다.”

“클래식 음악 점유율이 최대 쟁점이라고요?”

“그 문제는 레이블 매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EU집행위는 몸집을 불린 UMG로 인해서 디지털 음원 가격이 높아질 것을 걱정합니다.”


음반사는 보유한 카테고리 규모가 커질수록 시장에서 권력도 커진다.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음원제공 로열티를 인상할 수 있다.

자연히 플랫폼도 이용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다.


“EU집행위에 얽매여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캐나다, 호주, 일본, 남미 등의 반독점 당국을 먼저 공략해보는 건 어때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를 먼저 공략해도 좋고.”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UMG의 독점방지 대책이 시장 경쟁과 소비자 편익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방안을 EU집행위에 제출할 계획입니다.”

“내년 상반기에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죠?”

“예!”

“Spotty-M은 어때요?”

“FaceNote와의 제휴가 제대로 통하는 것 같습니다.”


음악 스트리밍 Spotty-M은 지난해까지 유료가입자가 50만 명 수준이었다.

FaceNote 아이디로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도록 하자, 회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올해 안에 150만 명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 업종은 수익구조가 취약하다.

Spotty-M 또한 지속적인 성장과 음악 산업 내의 영향력 증가에도 불구하고 창사 이래 한 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회사가 급성장함에도 그렇다.

그만큼 저작권료 지출이 늘기 때문이다.

해외시장 진출로 인한 영업 손실도 매해 증가하고 있고.


“문제는 적자폭이 줄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작권 확보와 시장확대를 위한 투자비용이 늘잖습니까. 예상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경영적으로 사업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을 겁니다.”


최고경영자들은 언제나 똑같은 주장을 하곤 했다.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사업구조와 전략을 바꿔야 한단다.

이전 삶에서 StreamFlicks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이 사업구조를 바꾼답시고 손을 댔다가 역효과만 거둔 걸 똑똑히 기억하는 류지호다.


“NeTube와 StreamFlicks가 증명하고 있죠. 나는 Spotty-M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이 있어요. 건드리지 맙시다.”

“....음.”

“누구도 디지털음원 시장이 얼마만큼의 잠재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음반시장과 1:1로 비교해 봐도 아직 10/1도 안 열렸어요. 그런 면에서 단기 수익을 위해 회사를 최적화시키기보다 성장을 위해 투자를 해야 하는 게 옳습니다. Spotty-M을 통해 UMG에게도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류지호가 볼 때 지금은 수익을 바라기 보다는 투자를 해야 할 단계가 맞았다.

대체로 약육강식의 비즈니스 세계에서 1등만 살아남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자연계를 보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생물체들은 대부분 공생을 한다.

즉 함께 산다.

돕고 사는 생물이 번성하고 사는 것이다.

류지호는 경제생태계도 같은 이치가 적용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해서 강자가 약자를 무조건 배려하는 따뜻한 공생까지는 아니지만.


황금분할!


전 세계 음악계는 수십 년 동안 4대 메이저가 그 방식을 견고하게 유지했다.

시기마다 점유율 순위에 변동은 있었지만, 4대 메이저가 나눠서 시장을 지배하는 것만큼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주인이 몇 번씩 바뀌긴 했지만, 새로운 메이저가 탄생한 적은 없다.

탈락한 메이저 업체도 없었다.

그런데.

한 곳을 황금분할에서 탈락시켜야 할 때가 왔다.


‘브랜드는 남겨둬야 하겠지만....’


그 만큼 세계 음악시장 파이가 줄어들었다.

UMG 입장에서 소니에픽뮤직그룹에 EMI를 내줄 수 없다.

점유율에서 밀리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발언권도 줄어들 테고.

반드시 EMI를 인수해야 한다.

1등을 위해서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더 늦기 전에 Spotty-M을 자회사로 편입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좀 더 두고 봅시다.”


Spotty-M의 창업자들의 목표는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이다.

반면에 유니벌스뮤직그룹은 자회사로 편입시키는 것이고.

류지호로서는 어떤 걸 선택해도 무조건 남는 장사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수직계열화하는 것이 나을지.

독립된 형태로 놔둬서 제휴관계로 묶어놓은 것이 좋을지.

숙고가 필요한 부분이다.

NeTube도 음원 서비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 ✻ ✻


영국에 머무는 동안 류지호는 다양한 사람들과 미팅했다.

경제부터 고위급 인사부터 BoTafone 회장, 금융계 거물들과도 차례로 면담했다.

경호팀장 러셀 뱅크스가 제안했다.


“보스, 호텔을 옮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일 아침 일찍 체크아웃 할 텐데, 수선 떨 거 없어요.”


류지호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졌다.

투숙객 가운데 누군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


“단순 사고사?”

“살인사건인지 사고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패트릭 틸먼이 거들었다.


“괜히 보스께서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우려됩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명 호텔인데 그렇게 허술하겠어요?”


고급 호텔들은 고객들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유럽의 유명 호텔 VVIP 고객들의 예약은 주로 가명을 사용한다.

신변노출을 꺼리는 중동과 러시아 고객들이 주로 그렇게 한다.

런던의 유명 호텔 VIP 예약데스크에 ‘존 스튜어트’ 같은 영국 느낌 물씬 나는 예약자 이름이 적혀 있다면 십중팔구 중동의 왕족이나 부호가 묵고 있다고 보면 된다.

VIP 담당 직원들에게 비밀을 엄수하겠다는 서약서를 받는다.

따라서 VIP 고객의 호텔에서의 일상이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다.

그 때문에 유럽의 고급 호텔 안에서 벌어진 범죄나 사망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숨진 VIP 고객이 어디 출신이래요?”

“중동 쪽인 것 같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유럽의 초호화 호텔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벌어곤 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실체가 밝혀지는 일은 많지 않다.


“몇 달 전에도 카타르 출신의 고객이 숨진 채 발견됐고, 런던 경찰청은 두 달 만에 사건을 종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체포됐던 용의자를 석방까지 했죠.”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도 호텔 측에서는 세부적인 정보를 절대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죽어서라도 VIP 고객의 정보를 보호하겠다는 의지다.


“외교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모양이군요?”

“아마도....”

“런던 경찰들이 내 방까지 들락거릴 것도 아닌데 체크아웃 때까지 지내는 것으로 해요.”


고급 호텔의 프라이버시 보호 정책으로 피해자를 낳는 일도 많다.

중동, 러시아, 중국 부호들은 많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다닌다.

수행원들이 간혹 호텔 여직원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 같은 사실은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치 치외법권 지역 같다.

그렇기에 류지호가 <tsogang>을 촬영하는 기간 영국의 고급 호텔에서 묵고 싶지 않은 것이다.

런던의 최고급 호텔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섬처럼 변해가고 있다.

호텔은 VIP 고객들을 위해 외부세상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호텔 안에서 모든 걸 다 해결하도록 온갖 것을 다 구비해놓고 있다.


[대부분의 부호들이 런던이나 근교에 호화스런 개인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좋은 집을 내버려두고 고급 호텔을 찾는다. 도시와 차단되어서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간이자, 프라이버시가 완벽에 가깝게 보장되는 곳이 바로 호텔이기 때문에. 런던의 최고급 호텔 고객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채 모든 걸 즐길 수 있다. 그러니 런던의 최고급 호텔은 특별한 이들의 일종의 ‘요새‘가 되고 있다.]


오죽하면 The Guardian에서 ‘요새’라는 표현을 썼을까.


“괜히 <존 윅> 같은 영화에서 도심 속 호텔을 범죄조직과 연관시켜 매우 의미심장하게 묘사하는 게 아니라니까.”


영화에서 묘사하는 상상의 산물 대부분은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도 있지만, 기존에 존재하고 있는 것에서 착안해 따오는 경우가 더 많다.

과거로 돌아온 류지호는 십대 시절부터 다양한 호텔 서비스를 경험해보았다.

20대부터 아무나 쉽게 예약할 수 없는 프리미엄급 객실에서 묵고 있다.

세계 곳곳의 초특급 호텔에 묵다보면, 부호들이 사업 파트너와 로비에서 만나고, 개인 고문과의 미팅은 특급 객실에서 하며 수행단을 위해서 한 개 층을 통째로 예약하는 걸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히 중동 부자들은 라마단이 끝난 뒤 런던에 와서 최고급 호텔 한 층 전체를 점령한다.

개인 요리사, 마사지, 의사까지 대동하고 장기투숙한다.

외부 일정을 최소화하고 호텔을 전혀 떠나지 않는 부자들도 많다.

부호들에는 할리우드 초특급 스타도 포함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영국 런던에 해외 자본이 밀려들었다.

돈이 모이면서 사람도 함께 들어왔다.

당연히 숙박업도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다.

본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곳 중의 하나가 런던이었다.

금융위기 이후로 부동산과 증권에 투자하는 외국 부호들의 돈이 물밀듯 밀려왔다.

돈과 사람이 몰리니 전 세계 부호들이 런던의 최고급 호텔의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류지호로서는 <존 윅>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누군가는 영국과 뉴욕의 이런 최고급 호텔 분위기를 참조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나저나, <존 윅> 시나리오는 왜 아직 소식이 없지...?’


지금쯤은 할리우드에 대본이 돌아야 했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딱히 <존 윅> 프로젝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같은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게 될 영화 한 편이 탐이 났다.

바로 <시카리오>다.

<존 윅> 프랜차이즈는 있어도 그만 없도 그만인데.

<시카리오> 저작권은 꼭 가지고 싶었다.

현대 장르영화 서사(미장센가지 포함해서)의 교재라고 봐도 무방한 영화기에.

류지호는 한국의 영화과에서 <기생충>과 함께 반드시 교재로 삼아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는 영화다.

류지호가 라이벌 의식을 느낄 정도로 빌레뷔 감독과 여러 면에서 비슷한 성향이기도 하고.

또 왜 로저 딕스가 할리우드 최고 촬영감독 중에 한명으로 손꼽힐 수밖에 없는지 알게 해주는 영화이기도 하고.

류지호는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빌레뷔 감독도 마찬가지인데, 급박한 상황을 그려낼 때도 단순한 움직임으로 장면을 연출한다.

류지호는 Dolly Shot이나 크레인 같은 다른 장비로 대체하는 편이고.

두 감독 모두 정적이며 차분한 카메라 워킹이 특징이지만, 그 안에서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특기다.

화면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연출도 특징이고.

두 감독은 미장센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데, 시점이나 인물의 배치, 한 화면 안에 여러 인물을 넣어놓고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화학작용을 통해 인물의 감정이나 서사의 흐름을 화면에 담아내는 것이 특기다.


‘때가 되면 데니스 빌레뷔가 찾아오겠지.....’


90년대부터 류지호가 충무로 전반의 눈높이 한껏 높여놔서인지.

한국영화의 화면의 색감, 프로덕션, 사운드, 배우들의 연기까지 제법 세련되게 발전했다.

그런데.

고급스럽냐고 류지호에게 묻는다면 ‘아니올시다’라는 대답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한국영화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술성의 잣대를 댄 것이 아니다.

각본, 연출,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배급에 이르기까지 전 부분에 걸쳐서 여전히 관객보다 낮은 수준의 영화인들이 영화산업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계 종사자들은 자본의 집중과 권력의 횡포만 지적한다.

정작 한국영화에 필요한 것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들 줄 아는 프로페셔널 한 인력을 꾸준히 배출해내는 것과 고인물화 되어가고 있는 스태프들의 재교육이건만.

류지호가 막대한 부를 가지고 산업화와 시스템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런데 마인드와 인식까지 만들어줄 순 없다.


[<7광구>를 보고 나면 이 영화가 <프렌치 커넥션>처럼 보인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퀵>을 보고 영화 번역가이자 평론가 달시 바르켓이 한 말이었다.

류지호가 생각하는 고급스러운 영화는 저급의 반대가 아니다.

진짜와 가짜의 문제다.

저속과 풍자를 넘나드는 B급영화지만 진짜 영화가 있고.

예술을 표방하지만 과시적이고 지나친 예술가연으로 거부감이 드는 영화도 있다.

류지호가 생각하는 진짜 영화는...

영화의 목표와 창작자의 태도가 명확하게 일치하는 진실한 영화다.

예술 가치를 표방한다면 예술형식의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하고.

상업적 상품이라면 ‘왜 이 영화여야 하는가’에 답할 수 있는 영화다.

설사 매표구에 아부하는 영화일지라도.


작가의말

허리 삐긋한 것이 제법 오래 가는 군요.

모두 허리 조심하십시오.

감사합니다.

PS) namake님 과분한 후원 감사드립니다. 완결까지 성실연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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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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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4 모두에게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1) +5 24.08.13 1,134 81 24쪽
933 미스터 할리우드의 시도를 열렬히 지지한다! +3 24.08.12 1,155 74 23쪽
932 Adun Toridas! +7 24.08.10 1,203 74 26쪽
931 그렇게 해야 안 망해.... (2) +7 24.08.09 1,188 67 26쪽
930 그렇게 해야 안 망해.... (1) +4 24.08.08 1,251 69 25쪽
929 영화가 예술이라고 믿는 한....! (2) +3 24.08.07 1,207 69 25쪽
928 영화가 예술이라고 믿는 한....! (1) +4 24.08.06 1,220 71 26쪽
927 뭐 이런 괴짜가 있지? +2 24.08.05 1,221 66 22쪽
926 냉철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3) +5 24.08.03 1,205 68 25쪽
925 냉철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2) +7 24.08.02 1,192 78 26쪽
924 냉철해질 필요성을 느낀다! (1) +4 24.08.01 1,231 79 25쪽
923 행운은 부자에게 더 자주 찾아오게 마련이고. +7 24.07.31 1,240 76 26쪽
922 tsogang! (5) +4 24.07.30 1,168 75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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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tsogang! (2) +5 24.07.26 1,244 6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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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 엔터업계의 백화점이 되어간다. (3) +4 24.07.24 1,299 72 28쪽
916 엔터업계의 백화점이 되어간다. (2) +6 24.07.23 1,307 67 25쪽
915 엔터업계의 백화점이 되어간다. (1) +6 24.07.22 1,337 73 22쪽
914 더 잘 살고 싶은 건 누구나 똑같다. (3) +2 24.07.20 1,314 65 26쪽
913 더 잘 살고 싶은 건 누구나 똑같다. (2) +4 24.07.19 1,333 68 26쪽
912 더 잘 살고 싶은 건 누구나 똑같다. (1) +3 24.07.18 1,323 71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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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될 이름! (1) +5 24.07.15 1,381 7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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