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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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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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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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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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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글자
24쪽

포츠담 광장에서...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영화 초반은 비교적 원작만화를 잘 따라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묘한 부분에서 각색이 이뤄졌다.

원작에서는 기성세대가 짜놓은 판에서 마리오네트처럼 살아가는 여리고 연약한 고등학생이 숨 막히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개와 가정부를 난도질해서 죽이게 되고 그 사건으로 아버지는 자살하고 어머니는 차 사고로 죽는 설정이었다.

류지호는 <민중의 적>의 조규환처럼 나루시마 료를 부모를 살해한 패륜범으로 만들었다.

나루시마 료는 단카이 세대 부모님 덕택으로 소비시대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어머니의 과보호 속에서 성장하다보니 나약한 군상(群像)이 되어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모습을 일본식 표현으로 소위 ‘3무(三無) 세대’라고 한다.

이 시기 36살 이하 나이대의 세대에 해당되는 표현이다.

무엇을 하려는 의욕도 없고, 너무 이기적이다 보니 자기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며, 무엇에 대해서도 감동이 없다.

일본의 모 마케팅 애널리스트가 그런 세태를 풍자해 일본을 하류사회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일본의 사회문제 하나를 영화에서 정면으로 지적했다.

소년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라테에 입문해 뼈를 깎는 수련 끝에 무도가로 성장하는 드라마 따위 없다.

존속살해범이란 죄악을 저지른 이후부터는 논스톱으로 그냥 폭주할 뿐이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딱지가 붙은 나루시마 료는 약골이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는 몇 년째 해외에서 체류 중이고, 어머니는 뭐가 그리 바쁜지 늘 집을 비웠다.

그럼에도 착하고 예쁜 여동생과 성실하면서 살뜰한 가사도우미, 가정교사로 인해 16살 나루시마 료는 안정된 생활을 했다.

명문 사립 고등학교 모범생이었고 도쿄대학 특차합격도 보장된 전도유망한 청소년이었다.

그런 약골이 마주한 소년원의 생활은 짐승의 세계다.

그 역경 속에서 가라테를 통해 싸움닭이 되어 간다.

아니, 악마가 되어간다.


[신과 악마... 그 둘 가운데 하나가 주먹 속에 있다.]


비록 소년원 분량은 길지 않지만, 한편으로 강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제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패륜범좌자라고 해도 약간의 연민과 공감이 간다.


“오오~”


소년원에서의 일대 다수의 대결은 마치 실제 벌어지는 패싸움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긴박감과 속도감을 멋지게 전달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암튼 가라테를 수련한 나루시마 료에게 악행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모습은 없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힘을 기른다.

영화는 악행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여 성공하는 일반적인 루트와 완전 동떨어져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인간군상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년원에 등장인물들 대다수가 악의가 가득하다.

마치 강약약강의 일본인의 습성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소년원에서 출소한 후의 나루시마 료는 더욱 폭주한다.

길거리에서 깡패들에게 시비를 거는 행위부터 시작해서 시민 협박은 기본이고 폭행과 강간을 밥 먹듯이 한다.

R등급에 걸맞게 폭력과 성행위 수위가 상당히 높다.

야쿠자의 청부사 노릇도 한다.

도저히 주인공으로 보이지 않는다.

빌런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막나간다.


[마음이 죽으면 몸도 죽는다.]


소년원을 출소한 후 나루시마 료는 사회 밑바닥에서 쓰레기의 삶을 살아간다.

관객의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로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충동장애처럼 아무에게나 시비를 건다.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갖가지 악행을 저지른다.

묻지 마 폭력, 만만한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강간하고, 공권력까지 조롱한다.

나루시마 료의 삶은 철저히 폭력과 범죄로 점철된다.


‘아무리 영화지만 너무 막무가내인데?’


개연성이 엉터리다.

사실 나루시마 료가 저지르는 각종 범죄들은 최근 10여 년간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옴으로써 나름 영화 내적인 개연성을 부여했다.

90년대 후반 수십 명의 여성을 유린했던 희대의 강간마.

착하고 겸손한 이웃남자가 수 년 후 밝혀지기로는 아동성애자였다던가.

나루시마 료의 범죄와 함께 신문기사 혹은 전자상가 대형 TV에서 나오는 뉴스를 통해 모티브가 되었던 사건을 대놓고 보여준다.

한편 일본 사회와 일본인의 습성도 함께 풍자한다.

일본에서는 노인에게도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얼핏 노인을 공경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관찰해보면 노인 공경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전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데, 일본에서는 말만 노인공경이지 실제 그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인 일자리라고 하는 곳들도 수준 이하가 대부분이라서 노인 학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가정 내에서 은근히 세대 간 갈등도 심각한 편이다.

영화에서 나루시마 료 남매에게 부모가 어린 시절 가정교육의 중점을 둔 사항이 나온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몸가짐을 바로 해.]

[일본의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지.]


‘우리‘라는 집단의식을 중시하고 개인적 이기주의를 억제키 위함처럼 보인다.

헌데 그 같은 세뇌가 왜곡되면서 민족주의, 집단주의, 전체주의에 빠진다.

지도자가 국민을 통제하기 쉬워진다.

수백 년 간 이어진 세뇌에 가까운 교육이 가미가제 같은 끔찍한 형태로 포장되기도 하고, 집단 안에서 개인을 소외시키거나 배척하게 만든다.

‘이지매’가 대표적이다.

그런 면에서 나루시마 료는 전형적인 일본인이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인 같지 않게 그려진다.

일본은 의심할 나위없는 부국(富國)이다.

헌데 일반 국민 생활은 그리 풍요롭지 않아 보인다.

잃어버린 10년이 20년이 되었다.

류지호가 신기한 것은 일본 국민들의 불만이 그리 심하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기의 생활수준이 자기의 팔자이고 분수라는 생각하기까지 한다.

그저 처한 현실에 만족하며 충실 할 뿐.

그 탓을 정부에 돌리려 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그들이 맡은 것이 무엇이든 그 일에만 몰두한다.

신세대는 그런 면이 많이 사라졌지만.

전반적으로 사회분위기가 그렇다.


“후우~”


영화의 우울하고 지극히 비관주의적 태도가 관객을 압박했다.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 상당했다.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격투기라는 폭력 메커니즘에 슬쩍 얹다 보니 불편한 것일까.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한 주제의식이 보인다.

바로 군국주의에 대한 일본인들의 무의식적 추종을 꼬집는 점이다.

나약한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가 아니다.

폭주하는 악마의 파국을 위한 질주다.

이미 만화원작을 읽어본 관객들조차 당황했다.

원작보다 더 암울했기에.

간간이 유머가 있긴 했다.

기괴했다.

과연 유머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우연히 마주친 커플에게 시비를 걸어 남자가 보는 앞에서 애인을 성폭행 하는 장면은 마치 일본 AV성인물을 패러디하는 것 같아 혐오감이 치민다.

뻔히 성폭행범임을 아는 경찰관이 나루시마 료와 마주하는 장면에서의 코미디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야마자키씨 밑에 있다고?]

[......]

[갑자원을 밟았던 남자였지. 야마자키씨는.....]


매우 진지한 나루시마 료와 경찰관의 만담은 일본인의 습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애써 태연한 척하는 경찰 한 명이 축축하게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슥 문지른다.

경찰은 야마자키 조직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있다.

당연히 해프닝으로 마무리하고 떠나간다.


“......!”


감독은 관객의 예상을 조금씩 미세하게 빗나가게 만든다.

영화적 의외성이 아니다.

뜬금없는 장면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때로는 뭔가 일어날 것처럼 잔뜩 분위기를 잡아놓고, 다음 장면에서 아무런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는 헛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일명 소외효과라고 하는 기법들이다.

그런 의미 없는 쇼트들로 인해 관객의 신경이 계속 거슬린다.

영화에 몰입할 수가 없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툭툭 끊기는데, 영화가 감상이 된다는 것이다.

탁하고 암울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영화가 관객을 극장에서 쫒아내는 것이 당연한데, 1,600명 대부분이 남아서 영화를 보고 있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영화에서 패륜범죄자이자 밑바닥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격투기다.

<군계>에서 가라테는 주인공의 생존수단이다.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가라테고, 그것을 통해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다가 짐승이 아닌 인간임을 증면하기 위해 링에 오르지만 결국 폭력에 먹혀버린 괴물로서 비극을 맞게 되는... 그런 서사다.

나루시마 료의 생존법칙은 사각의 링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정식 선수가 되어서도 이기기 위해 반칙은 기본이고 대결상대의 사생활을 미끼로 협박까지 일삼는다.

그런 주인공의 행동을 영화는 미화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잘못되었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발 떨어져서 담담하게 묘사한다.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있는 맹수를 관찰하는 것처럼.

날것의 연기를 선보이는 츠마부키의 영화 속 몸부림이 실제 어딘가 그 같은 인물이 실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최근의 일본영화 추세에 맞지 않는 보기 드문 리얼리즘 연기다.

영화 <군계>의 장점은 실제 입식격투기의 실전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단 점이다.

시합용 겨루기가 아닌 한 실제 싸움에서 체급이란 무의미하다.

눈을 찌르거나 물어뜯거나 급소를 공격하거나 무기를 사용하는데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이니까.

영화 <군계>는 그런 실전격투의 디테일을 잘 살렸다.

보기에 따라서 비겁하고 치사하고 교활해 보인다.

그것이 나루시마 료라는 캐릭터와 일치되기에 위화감이 없다.

또 다른 격투 시퀀스의 특징은 영화 속에서 싸움 장면을 길게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현실의 싸움처럼 속전속결로 끝난다.

일대일부터 다수의 적과 개싸움을 벌이는 것까지 다양하게 묘사하는 것도 볼거리다.

격투장면이 결코 조잡하지 않았다.

선이 굵으면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았다.

격투 액션의 디테일은 길거리 싸움이 아닌 토너먼트 대회에서도 세밀히 묘사되는데, 나루시마 료가 가라테 대회에서 변칙 기술을 사용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가 토너먼트에서 판정이나 시합 룰의 허점을 깨닫게 되고 결국 교묘하게 반칙에 가까운 공격을 사용하는 묘사는 꽤나 흥미로웠다.

심지어 관객은 나루시마 료와 싸우는 상대방 선수에게 감정이 이입되기도 했다.

관객의 입에서 ‘F'로 시작하는 욕설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소외효과 때문에 걸핏하면 영화에 몰입이 방해가 된다.

그럼에도 꽤나 마력이 있는 영화다.

밀도 높은 서사나 클로즈업이 선사하는 정서 전달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그럼에도 섬세한 미장센과 비주얼로 인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류지호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전 삶의 충무로 격투액션 스타일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류지호의 폭력 묘사는 이 시기 한정 독보적이다.

특히 개싸움을 방불케 하는 집단 난투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라 생생하게 전달된다.

한편 격투기 대회를 둘러싼 쇼비니즘이 원작보다 더 노골적으로 그려진다.

군국주의에 대한 풍자도 노련한 영화 비평가라면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일단 서사에서 낭비가 없기에 템포가 빠르고 시원시원한 편이다.

러닝타임이 긴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캐릭터성도 돋보인다.

아웃사이더로서의 밑바닥 인생을 잘 묘사했다.

격투기물이라고 볼 수 없는 사회참여적인 태도도 일관되게 유지된다.

일본의 가라테 영웅이 멸시 받은 아이누인 것도 아이러니다.

영화 곳곳에 묻어 있는 은유와 상징들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다만 반사회적 성격의 주인공과 지나치게 남성적인 이야기가 약점이 될 수 있다.

류지호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B무비 스타일의 폭력성과 선정성 때문에 대중적 접근성이 조금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목적의식을 잃은 한 인간의 발버둥에 가까운 몸부림과 악행을 보고 있자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류지호가 핸드헬드를 이렇게 잘 쓰는 감독이었던가....?’


가학적이고 불친절한 연출로 인해 화면은 더욱 혼란에 휩싸여 격하게 흔들린다.

혼란과 갈등에 옥죄는 인물의 시선을 관객이 같은 감각으로 체험하는 것 같은 착각도 불러일으킨다.

실제 상황을 묘사하는 것 같은 핸드헬드 기법으로 인해 불편하고 불쾌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감독은 엉뚱한 장면을 삽입해 몰입을 확 깨버리는 짓궂은 짓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핸드헬드의 사실적 시선으로 관객이 주인공의 혼란과 고통의 현장에 함께 하기를 청하면서 결코 연민이나 동정심을 갖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다.


‘....음.’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비평을 기고하는 한 평론가는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뭔가를 알아차렸다.

흔들리는 화면의 불안감은 특수한 상황만이 아닌 특별한 시기와도 관련이 깊다는 걸.

‘질풍노도의 시기’로 묘사되는 사춘기 청소년의 내면이다.

소년원 이후로 사회화와 정신의 성장이 멈춰버린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적절한 수단이 되어주었다.

마치 언젠가부터 멈춰버린 일본 사회 같기도 하고.

반면에 선의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스기와라 쪽은 안정된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질서가 잡힌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나루시마 료가 등장할 때 주변은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배경이 흐르기 일쑤이고 포커스마저 흐릿해서 풀샷에서도 고립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스기와라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할 때는 딥포커스를 통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관계성이 함께 담겨서 전달된다.

주인공의 혼란과 불안감을 핸드헬드 기법으로 전하는 한편 완전히 대비되는 안정된 화면을 교차로 배치하면서 더욱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슌치....?’


핸드헬드 기법을 통해 십대의 불안감을 전달하는 일본영화로 이와기 슌치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아름다운 영상미로 유명해서 그렇지, 그의 핸드헬드 촬영장면은 인물들의 불안정한 내면이 급변하게 되는 계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어지럽고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달라. 뭔가가....’


베를리날레 플라스트를 채운 관객 절반은 소위 영화 ‘선수’들이다.

어지간한 영화는 모두 꿰뚫고 있는 영화 귀신들이다.

인물을 중심에 둔 핸드헬드 기법은 주인공이 처한 현실적 맥락과 그 속에서 겪는 실질적인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초근거리에서 촬영한 핸드헬드 기법으로 화면을 연출하게 되면,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도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군계>는 그런 일반적인 영화 문법을 번번이 배신한다.

감독은 자꾸만 그런 감상에 젖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왜? 도대체 왜?’


불운했던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성공한 무도가가 된 스기와라가 등장할 때는 카메라를 안정적으로 고정시켜 보여준다.

영화는 철저히 주인공의 괴롭게 흔들리는 삶과 숙적의 평화로운 세계를 이원적으로 구분한다.

마치 쿵푸영화 속 주인공처럼 혹은 록키 발보아처럼 자연 속에서 고전방식으로 수련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것조차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회피하고자 하는 핑계처럼 보인다.

나루시마 료의 고통스럽게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도 누군가의 투쟁이 있다.

만신창이가 되어 정신까지 온전하지 않은 여동생은 태초의 이브가 된 것 같다.

나루시마 료의 격투기 시합을 보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소년원 동기도 있다.

나루시마 료에게 몹쓸 짓을 당했지만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 피해자도 있다.

어느 순간 불안과 안정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사실 스기와라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핸드헬드로 묘사되는 세계보다 더한 혼란이 도사리고 있다.

나루시마 료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잡힌 약혼녀, 전형적인 쇼비니즘의 단면을 보여주는 방송국 PD, 포장된 가라테 정신(사무라이 혼) 안에 숨겨진 탐욕들이 그것이다.

그런 모든 것들이 서사 안에서 뒤섞이고 버무려지며 마침내 주인공을 파멸로 이끈다.


“...맙소사.”

“이 거였어....?”


사이코패스 청년의 좌충우돌 범죄 행각 기록인 것 같았던 영화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The Killing Road>처럼 주인공이 비극적인 죽음(어쩌면 허망한)을 맞을 것이 확실했다.

이미 관객 모두 예상했던 바다.


‘혹시 악이 승리하는 것으로 끝내지는 않겠지....?’

‘류지호 영화는 그런 파격을 좀처럼 하지 않아.’


다 쓰러져가는 폐신사의 ‘卍‘ 문양은 마치 나치를 연상시킨다.

러닝타임 내내 일본의 전범기를 연상시키는 어떤 암시나 상징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치를 연상시키는 불교 사찰 문양이 클라이맥스에서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독일에서는 한쪽 팔을 들어 올리는 일명 나치 경례를 했다간 쇠고랑 신세가 된다.

이적단체 상징을 사용한 혐의를 적용받는다.

갈고리십자가라는 뜻의 하켄크로이츠를 소지하거나 숭배하면 험악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독일인들의 내면에는 조국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과 속죄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다.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지루하고 조심스러운 화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선동가(마치 히틀러를 연상케 하는) 모습처럼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완전히 다른 태도다.

만약 국가에게 선과 악을 대입할 수 있다면, 오늘날 독일은 선한 국가에 들어갈 것이다.

반성을 넘어 참회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

정상 국가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국익 수호마저 독일에게는 복잡한 문제다.

과거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기에.

그런 베를린 한 복판에서 류지호의 영화 속에서 독일인들의 원죄를 상징하는 듯한 의미심장한 게르만십자가를 대놓고 드러냈다.

독일의 기자와 평론가들의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여전히 전범의 굴레는 독일인을 괴롭히는 단어다.

어쨌든 삐딱하게 기울어져 하켄크로이츠를 연상시키는 卍 문양을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관객들의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감독이 영화 안에 흩어놓았던 것들이 직소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춰지며 무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본의 전쟁 세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시대 일본의 젊은 세대가 가진 혼란과 양면성을 꼬집으려고 한 것일까? 일본인도 아닌 외국인이....?’


두 주인공이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지만... 무승부다.

선(善)으로 대표되는 스기와라가 대결의 승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엔딩은 매우 찜찜하다.

예의상 기립박수를 쳐야 할 것 같은데.

영화가 안 끝난다.

꼴이 말이 아닌 무도가가 뭉개진 걸레짝 같은 미치광이를 질질 끌며 산사의 언덕길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엔딩 크레디트가 끝날 때까지도 계속해서 언덕길을 내려가는 주인공들을 집요하게 묘사한다.


‘엔젤...하트....?’


상당수의 관객들이 1987년에 개봉한 한 영화를 떠올렸다.

그 유명한 <엔젤하트>의 에필로그다.

바로 엔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끝없이 무저갱(지옥)을 향해 내려가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Scheiße.....!”


일부 독일 비평가들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독일의 일반 대중과 달랐다.

일장기와 전범기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하거나 무신경하지 않았다.

크레디트 스크롤이 끝이 나고 맨 마지막에 떠오른 도쿄다카라의 로고.

어딘지 일본의 전범기를 연상시켰다.

다시 되돌려 생각해보면 폐신사가 무너질 때 하켄크로이츠 문양 뒤로 어떤 후광이 짧게 비추었다가 사라진 것도 같았다.

마치 일본의 전범기와 하켄크로이츠가 합쳐진 것 같은 불쾌함이다.

착각일까.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생각나는 것은 또 왜 일까.


[아키라의 힘은 누구에게나 존재해. 테츠오군은 우리들의 새로운 친구야. 그래서 그가 저지른 일은 우리의 책임이기도 해.]


나루시마 료의 폭력성은 봉인된 일본의 군사력 혹은 재무장이다.

그것이 외부로 발현되면 아무도 제어할 수가 없다.

결국은 파멸만 있을 뿐.

그러니 질서와 안정 속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이들이 그 봉인을 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비로소 퍼즐들이 맞춰졌다고 해야 할까.

단순한 느와르 풍의 격투기 장르 영화라거나 사회 고발성 영화가 아니었다.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군국주의 망령에 대한 감독의 풍자가 가득한 영화였다.

마치 불후의 명작 애니메이션 <아키라>처럼.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기립박수를 치기 위해 몸을 일으키면서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 도입부에 우익그룹의 선전선동 구호가 강조되고, 사회 밑바닥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깊숙한 삶을... 뜬금없이 다다미쇼트 같은 요상한 앵글이 등장하고, 어딘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마무라 쇼헤이의 냄새가 풍겼던 것이구나.’


노인은 독일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간제라다.

<복수의 꽃>에도 심층적인 평론을 내놓아 류지호를 감동시켰던 사람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친한파 비평가 레인즈에 이어 한국영화에 대해 호감을 품은 몇 안 되는 인사이기도 했다.


‘여전해. 독특한 씨네필이야.’


씨네필은 프랑스어로 cinéma"(영화)와 phil(사랑한다는 의미의 접미사)을 바탕으로 한 영화광이란 의미의 조어다.

씨네필에게 국적이란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단지 좋은 영화를 보고, 그 영화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듣고, 그것을 이해하고 깨우쳐서, 소통하는 그런 사람이다.

대중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는 영화에 심취하는 자도 있고, 매우 지적인척 하는 영화에 탐닉하는 자도 있고,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영화만 찾아 탐구하는 자도 있고, 오로지 위대한 감독의 영화만 수십 수백 번 감상하며 의미를 갈구하는 자도 있다.

굳이 씨네필을 분류하고 구분하고 등급을 나눌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빠르게 소비되는 영화들 속에서 영화가 예술이란 믿음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


‘바쁜 저 친구를 어떻게 하면 꼬셔서 밤새 포도주를 마시며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짜..짝짝...


잠시 뜨뜻미지근한 박수가 장내에 들려왔다.

여운은 음미하는 것과 달랐다.

내가 지금 무슨 영화를 본 거지 하는 느낌이랄까.


짝짝짝짝!


어느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로 변했다.


‘단순한 액션영화가 아닌 것 같은데.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모르겠단 말이야.....’


대부분의 관객들의 속마음이었다.

류지호는 영화에 억지로 은유와 상징을 구겨 넣지도, 메시지를 꼬지도 않았다.

그 스스로는 쉬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자기들은 좋은 시절을 보냈으면서 왜 우리가 좋은 시절을 보내고 싶어 하는 것에는 제동을 걸지. 왜 온순해져야 하는 거지? 지들이 도대체 뭔데?]

[너라는 폭탄을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 비록 스위치를 누른 것이 너일지라도....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두 주인공이 나눈 저 대화를 위해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이 존재했다.

일본인들이 류지호에게 따질 수도 있다.


“네가 뭔데 우리를 함부로 비판하느냐!”


류지호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시도와 재무장에 대해 따끔하게 경고할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 제국주의 최대 피해자의 후손이기에.


짝짝짝.


10분에 걸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몇몇 기자들이 궁금한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얼굴로 류지호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류지호는 극장 통로 양쪽의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극장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이 그의 뒤를 우르르 쫒았다.

불쾌하면서도 매우 찝찝한 영화의 실체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으니까.


작가의말

만화 내용이 궁금하신 분이 혹시나 계시다면 읽어보셔도 좋습니다만 1부만 보실 것을 권합니다. 2부는 완전히 다른 만화가 되어버려서 개인적으로 추천하진 않습니다.

한 주 마무리 잘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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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 일본 침공. (2) +15 23.12.02 1,917 107 22쪽
687 일본 침공. (1) +9 23.12.01 1,935 107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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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감독님은 판타지 스타입니다. +2 23.11.23 2,014 96 25쪽
679 세기의 결혼식. (4) +3 23.11.22 2,047 106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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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 TCU의 닻을 올리다! (2) +5 23.11.17 1,921 101 23쪽
674 TCU의 닻을 올리다! (1) +4 23.11.16 1,965 10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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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 포츠담 광장에서... (3) +4 23.11.11 1,899 108 28쪽
» 포츠담 광장에서... (2) +3 23.11.10 1,878 9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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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외도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4 23.11.09 2,032 101 26쪽
666 호잇 호잇... 초능력 재주꾼. (2) +6 23.11.08 1,972 101 24쪽
665 호잇 호잇... 초능력 재주꾼. (1) +2 23.11.07 2,005 92 24쪽
664 나중에 며늘아기한테 좋은 소리 못 들어. +4 23.11.06 2,060 91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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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 터무니없는 목표! (1) +4 23.11.03 2,085 97 24쪽
661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3 23.11.02 2,066 95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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