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影野輯錄

주유강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마눌밭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3
최근연재일 :
2013.01.13 14:24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40,269
추천수 :
1,830
글자수 :
294,577

작성
10.05.02 13:43
조회
5,795
추천
33
글자
12쪽

주유강호-귀주편[제7화]

DUMMY

사제들의 걸음걸이는 신중하지만 가벼웠다. 그들은 천강이 실려있는 담가(擔架)의 한쪽씩을 잡고 있었다. 비연은 앞서가는 사제들의 등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포함하여 그들 다섯 사형제는 적수오웅(赤水五雄)이라 불렸다. 이 곳 귀주에서 유력한 후기지수(後起之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넘치는 혈기는 도가(道家)계열인 청성에서의 수련으로 인해 내면으로 잦아들었다. 그 때문인지 천강을 바라보는 사제들의 눈은 무심에 가까웠다. 원수를 살려주고 치료까지 해준다는 말에 잠시 눈에 경련이 이는가 싶었지만 곧 평소의 신색을 되찾았다. 그렇다고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침통한 분위기는 천강을 정창으로 옮기는 짧은 시간에도 그들 주위를 계속해서 맴돌고 있었다.


모두들 조용히 입을 닫고, 새벽에 벌어진 일에 대해 나름의 추리와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연은 만약 이들이 작금의 사태가 삼장로와 종지행이 주축이 되어 벌인 일이고 자신 또한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면 어떤 보일까 상상했다. 쓴웃음이 절로 났다. 그런 비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사제들을 묵묵히 뇌옥이 있는 정창을 향해 갔다.


서하루에서 소비되는 모든 술이 보관되는 정창의 지하에는 죄인들을 가두는 뇌옥이 있었다. 왜 그런 배치가 되어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는 비연이었지만, 문득 이질감이 들었다. 원래 이 곳은 삼장로 중 한명인 손불여의 소유였다. 그것을 십 수년 전 현재 루주(樓主)이며 그의 사숙 뻘이 되는 곽근창에게 넘어갔다. 물론 당시에는 조그만 객잔에 불과했던 서하루를 이 정도의 규모로 키운 공은 곽근창에게 있었지만, 당시 객잔이 넘어갈 때의 상황이 꽤 험악했다는 것을 곡 장로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손불여의 막역한 친우인 곡 장로와 상 장로는 언제나 서하루 탈환을 계속 흉중에 품고 있었으며, 종지행의 제안이 기화가 되어 루주를 제거하려는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듣기로는 원래 뇌옥이 있던 자리에 정창이 지어졌고, 그 것을 주도한 사람은 손불여 자신이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주귀(酒鬼)의 변덕쯤으로 여겼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게다가 지하를 파 내려간 뇌옥의 구조는 술을 보관하기에도 안성맞춤 이었다. 뇌옥을 사용하는 일도 없어서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았다. 비연도 지금 이런 사태에 맞닥뜨리지 않았다면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괜한 생각일지도 몰랐지만, 목에 걸린 가는 생선의 가시처럼 거슬림은 계속되었다.



제일 앞에서 가던 막내 사제가 정창의 문을 여는 소리에 비연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정창 안으로 들어서자 예의 어두침침하고 서늘한 공기에 섞여 강한 주향이 그의 코를 자극했다. 손 장로가 어떤 재간을 부렸는지는 몰랐지만, 수많은 종류의 주향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독특하고 기분 좋은 풍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술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였지만, 이런 기술만큼은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었다.


비연은 머릿속의 이질감을 털어버리고자, 정창의 공기를 깊이 들이 마셨다. 주향이 그의 내부를 가득 채우는 순간 비연은 뭔가 잡스러운 것이 섞여 있는 것을 간파했다. 손불여 그가 모르는 새 술을 들였다고 해도, 분명 이런 식으로 처리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 그는 사방을 경계하려 하였다.


'털썩, 털썩.'

담가를 들고 있던 사제들중 비교적 공력이 약한 막내 사제가 제일 먼저 쓰러졌고, 이어 그들 모두가 바닥에 쓰러졌다. 미혼향이었다. 비연은 숨을 참으려 했으나, 이미 정창내의 공기는 그의 몸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흐려가는 그의 눈은 커다란 술 동이 사이에서 동그란 물체를 발견하는 것을 끝으로 역할을 끝냈다.


비연이 어렴풋이 발견한 물체는 곧 그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쓰러진 적수오웅을 발로 툭툭 차며 완전히 중독된 것을 확인하고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손과 발을 묶었다. 미혼향은 평소의 그들에게는 아무런 금제가 아니었던 것들도 효과적인 수단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들이 깨어난 후, 공력을 회복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물체는 적수오웅을 모조리 포박한 후, 이번에는 담가에 실린 채 바닥을 뒹굴고 있는 천강을 가볍게 들어올려 짊어진 후, 뇌옥으로 가는 문으로 사라졌다.


천강이 다시 눈을 뜨자 이번에는 잿빛의 투박한 천정이 그를 맞았다.

"정신이 들어?"

정겨운 목소리라고 생각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디냐, 여기는?"

"정창 밑에 있는 뇌옥이야."

"괜찮을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까, 이곳을 찾으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천강은 답답한 마음에 몸을 일으키려 했다.

"가만히 있어 아직 다 안 끝났어."

나긋나긋한 손이 그의 상처부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열심히 금창약이라도 바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금아, 어떻게 된 거야? 오늘 떠난다고 하지 않았어?"

취금은 잠시 천강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눈은 뭔가 신기한 물체라도 보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떠났다고 생각하는 대형이 참 신기하다."

"무슨?"

"됐다. 사람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거나 먹어"


천강은 취금이 주는 정체 모를 환단을 입에 넣었다. 씹으려고 했으나, 입을 움직이기도 전에 환단은 액체로 변해 그의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입안에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청량감이 강하게 남았다.

"뭐지?"

"대환단."

"소림(小林)의?"

"응."

"너 뭐야?"

"기녀."

천강은 기가 막혀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았다.

"시간 없어, 대충 운기라도 해. 그정도는 가능하지?"

그녀의 태도를 보건대, 순순히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걸 느낀 천강은 순순히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약의 기운이 대단한 건지, 상처의 모든 고통이 사라졌고, 사지의 모든 혈이 시원하게 뚫린 것 같았다. 조금 무리를 해서 옛 상처부위에 기를 보내보아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좋아하진 말아. 약 기운 때문이니까, 오늘 입은 상처야 금방 낫겠지만, 대형의 고질병은 쉽게 나을 게 아니야. 괜히 무리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끝내."

'완전히 병 주고 약 주고 네. 게다가 성격마저 변한 것 같아. 언제나 고분고분 착한 아이였는데.'

"대형 내 흉보고 있지?"

난데없이 취금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천강은 순간 머쓱해졌다.

"흐흥. 쓸데없는 소리 말고 운기조섭 할 테니 호법이나 봐"

취금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콧소리를 내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잠시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다경(一茶頃)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천강은 운기를 마칠 수 있었다.

"궁금한 게 많겠지만, 일단은 여기를 빠져나가는 데 집중해."

천강은 취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이지?"

"이쪽이야."


취금은 뇌옥의 입구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어가 벽앞에 섰다. 천강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잠자코 취금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곳 지리에 익숙한 듯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던 벽에는 기관장치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 취금의 손짓 몇 번에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입구가 나타났다.


"뭐 할말 없니?"

경쾌하게 흔들리는 취금의 비녀가 방향을 틀기를 바랬지만, 돌아온 것은 짧은 대답뿐이었다.

"아직은......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좁고 어두운 통로는 계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는 거냐?"

"아마도 그럴 거야. 쉽지는 않겠지만 말야."

"재밌군, 나도 모르는 일에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거 같은걸"

"휴우, 미안해."

"뭐 네가 미안할......"

"쉿!"


취금의 가는 손가락이 천강의 입술을 눌렀다. 그리고 그녀의 전음성이 이어졌다.

[여기서부터는 건물 안이야.]

그와 동시에 통로의 경사가 급해졌다. 어딘가 위로 올라가는 듯 했다. 힘들게 걸음을 옮기는 천강은 또 한번 무력감을 느꼈다. 자신의 현재 공력으로는 전음을 구사해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 뭔가 수를 내고 싶었지만, 현재로서는 묵묵히 그녀의 뒤를 쫓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천강의 기분을 아는지, 취금이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쳇, 내 머릿속에라도 들어있는 거 같군.'


[다 왔어, 일단 밖의 상황을 좀 알아볼게, 내 예상이 맞는다면 밖에는 아무도 없을 거야.]

역시 들어올 때와 같이 익숙한 손동작으로 출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 나갔다. 문은 다시 빠른 속도로 닫혔고, 거짓말 같이 문의 흔적이 사라졌다. 암흑 속에 천강은 홀로 남겨졌다. 소림의 대환단-그녀의 주장에 따르면-은 과연 명불허전 이었다. 얼마 전까지 심한 부상으로 미동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 만은 없었다. 새벽녘 눈을 뜨고 나서 지금까지 천강은 거대한 격랑에 휩쓸린 나뭇잎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유일한 희망이 취금이라는 것이 그의 자격지심을 심하게 자극했다. 이대로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의식이 미칠 무렵 눈앞이 환해졌다.


"나와도 돼."

취금의 목소리였다. 천강은 방금 전의 충동을 떨쳐버리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으며, 통로 밖으로 나아갔다. 출구 밖은 장방형으로 된 조그마한 방이 있었고, 그 끝에는 사다리가 있었다. 사다리의 끝에는 빛이 들어오는 작은 구멍이 있었고, 거기에는 취금의 빙글거리는 얼굴이 나와있었다. 천강이 사다리를 통해 구멍을 통과하자, 취금은 벽에 감추어진 기관을 작동시켜 구멍을 막았다. 다시 그 위를 커다란 산수화 족자로 입구의 미세한 흔적 마저 완전히 가려 버렸다.

"이번엔 또 어디냐?"

"서하루 별원의 내실이야."

"응? 그럼 호랑이 입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왔잖아?"

"할 수 없었어, 밖에는 청성파 애들이 가득 둘러싸고 있다고, 나 혼자라면 모르지만......"

'젠장 미치겠군, 인간이 어디까지 한심해 질 수 있는지 그 끝을 보여주는군'

"헤헤 너무 걱정 마, 우리가 여기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할 거니까."

취금은 천강의 생각을 알아챈 듯, 그를 위로 했다.


들키지 않는다면 말야라며, 괜한 투정을 부리고 있는 천강에게 그녀는 다시 상냥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그 전에 빠져 나가야지, 다행히 서하루주가 아주 멋지게 소동을 일으켜 주고 있어서, 모두의 이목이 그쪽에 쏠려 있어. 그 틈을 이용해 빠져 나갈 수 있을 거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서하루주와 삼장로를 비롯한 청성파 애들과 한바탕 하고 있을 거야"

천강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그리고 손 장로에게 생각이 미쳤다.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긴 했지만, 끝까지 자신을 도와주려 했었다. 살아서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오늘 벌어진 이 기괴한 일에 대해 해명을 들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문득 현 상황만큼이나 변화 무쌍한 자신의 심리 상태에 실소가 나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대형."

"아니, 그전에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지?"

"그냥, 손 영감과 나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것 정도만 얘기해 줄게."

"알았다, 그 정도라도 알려주니 고맙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빠져 나갈 건데?"

"여긴 기루야, 난 기녀구. 대형은 손님."

"달라진 게 없군."

"그게 제일 좋아, 나무는 숲에 숨기는 거니까."

천강은 아침부터 기루를 찾은 난봉꾼처럼 취금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내실의 복도를 휘청이며 걸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주유강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주유강호-사천편[제19-1화] +4 11.07.22 2,820 25 8쪽
35 주유강호-사천편[제18-2화] +3 11.07.19 2,797 27 8쪽
34 주유강호-사천편[제18-1화] +5 11.07.15 2,823 22 9쪽
33 주유강호-사천편[제17-2화] +2 11.07.12 2,854 27 10쪽
32 주유강호-사천편[제17-1화] +4 11.07.08 2,871 28 9쪽
31 주유강호-사천편[제16-2화] +7 11.07.05 2,987 33 8쪽
30 주유강호-사천편[제16-1화] +7 11.07.01 3,055 26 8쪽
29 주유강호-사천편[제15-2화] +4 11.06.28 3,186 31 9쪽
28 주유강호-사천편[제15-1화] +3 11.06.24 3,256 27 11쪽
27 주유강호-사천편[제14-2화] +4 11.06.21 3,431 31 10쪽
26 주유강호-사천편[제14-1화] +5 11.06.17 3,295 29 8쪽
25 주유강호-사천편[제13-2화] +3 11.06.15 3,522 32 9쪽
24 주유강호-사천편[제13-1화] +5 11.06.10 3,238 27 8쪽
23 주유강호-사천편[제12-2화] +5 11.06.07 3,339 35 8쪽
22 주유강호-사천편[제12-1화] +5 11.06.03 3,525 27 8쪽
21 주유강호-사천편[제11-2화] +5 11.05.31 3,428 32 7쪽
20 주유강호-사천편[제11-1화] +7 11.05.24 3,548 33 7쪽
19 주유강호-사천편[제10화] +3 11.05.17 3,589 28 16쪽
18 주유강호-사천편[제9화] +4 11.05.10 3,895 38 12쪽
17 주유강호-사천편[제8화] +2 11.05.03 4,177 28 12쪽
16 주유강호-사천편[제7화] +2 11.04.26 3,788 34 12쪽
15 주유강호-사천편[제6화] +5 10.09.15 4,045 41 12쪽
14 주유강호-사천편[제5화] +3 10.08.18 3,914 26 12쪽
13 주유강호-사천편[제4화] +1 10.07.20 4,121 25 12쪽
12 주유강호-사천편[제3화] +3 10.07.13 4,050 26 12쪽
11 주유강호-사천편[제2화] +1 10.07.07 4,465 25 11쪽
10 주유강호-사천편[제1화] +5 10.05.20 4,782 28 11쪽
9 주유강호-귀주편[제10화][完] +6 10.05.11 4,581 26 12쪽
8 주유강호-귀주편[제9화] +10 10.05.05 5,145 25 14쪽
7 주유강호-귀주편[제8화] +6 10.05.02 5,303 4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