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影野輯錄

주유강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마눌밭
작품등록일 :
2012.11.15 06:53
최근연재일 :
2013.01.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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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18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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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주유강호-사천편[제5화]

DUMMY

천강은 그녀의 자취가 사라진 곳을 잠깐 처다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 올려놓고 희롱하던 자의 꼴사나운 모습에 얼마간의 울분을 누그러뜨렸다. 바로 뒤쫓아 요절을 낼까도 생각해 봤지만, 이 방 바깥의 지리를 전혀 모르는 그로서는 시간만 낭비할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몸을 추스리면 다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꼬리를 얼마나 달고 올지 미지수였으나, 자신의 이 불안한 상태 역시 얼마나 지속될지 막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사갈 같은 계집아이를 쫓느니 사정이 허락하는 한, 눈앞에 펼쳐진 복수의 기회를 철저히 이용하고자 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당문의 정수가 모여있다는 신농거의 속살이 무방비 상태로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선반의 약 병, 화덕에서 끓고 있는 가마, 단로의 환약, 잘 말린 각종 기화이초, 살아 움직이는 독물(毒物)하나하나가 당문의 귀중한 자산이었고, 그것을 폐품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문파의 피해는 커질 것이란 게 천강의 생각이었다. 독과 환단의 부작용으로 부쩍 높아진 공력은, 그를 능히 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의 복수를 저지하려면 당문으로서는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만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이름 없는 필부에게 한껏 당해보라는 치기마저 어린 순박한 복수법이었는데, 그만큼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민해진 그의 감각과 왕년의 살수(殺手)로서 경험에 비추어 자신의 주위에는 고수라 여겨지는 자는 없었다. 만약 자신의 공력으로 파악해 낼 수 없는 고수가 있다면, 그로서는 명운이 다한 것이라는 생각이었기에 더 이상의 탐색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양팔에 감긴 사슬을 풀어 손에 쥐고 공력을 주입했다. 축 늘어져 있던 사슬이 일직선으로 빳빳해지며 은은한 녹광(錄光)까지 띄었다. 충만한 진기에 독공까지 겸비한 무시무시한 무기가 탄생했다. 천강은 거칠 것 없이 휘둘렀다. 선반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독약 병들과 집기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약 병에 들어있던 것은 한 모금만 들이켜도 죽음에 이를만한 극독들이었다. 액상의 독물이 바닥에 흩어졌다. 독액은 바닥에 기괴한 모양을 그려냈다.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그것이 고수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 방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천강은 달랐다. 숙영의 강제적인 독물 주입과 삼양귀원공의 효과로 인해, 극강의 독인(毒人)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런 것까지 천강이 파악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지긋지긋한 이 방을 없애버리고 싶은 일념에서 충동적으로 사슬을 휘두른 것 뿐이었다. 바닥에 흩어진 독액에서 뿜어 나오는 독무(毒霧)를 보고 일순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시험 삼아 진기를 일주천 시킬 동안 무탈한 것을 보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극적인 몸의 변화에 쾌재를 부르며 천강은 오랫동안 자신을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었던 이곳을 벗어났다.


복도는 길게 이어져 있었다. 복도의 왼쪽의 중정(中庭)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천강이 있는 건물은 'ㅁ'자를 이루고 있었으며, 그 중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슬쩍 열어본 문 밖에는 비교적 화려한 가산이 있고, 엇비슷하게 생긴 건물이 사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각 건물은 회랑으로 이어져 있었다. 건물 사이로 보이는 높은 담은 바깥 세계와의 완전한 차단 벽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위로 보이는 높다란 다수의 전각은, 이곳이 당문의 비처(秘處)임을 짐작하게 했다.


중정은 방안에서 감지했던 것처럼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닫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자신이 있던 방과 동일한 모양의 문들이 길게 도열해 있었다. 천강은 복도의 중간에 있었고 양 옆으로 각각 열 개 남짓의 방문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이 건물에는 얼추 이 십여 개의 방이 있는 것 같았다.


천강은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성큼 성큼 걸음을 옮겨 가장 먼저 맞닥뜨린 방문을 쇠사슬로 날려 버렸다.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독기가 천강에게 몰아쳤다. 독인의 경지에 이른 그로서도 온몸이 저릴 정도의 지독한 독기였다.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방안으로 들어갔다. 천강 자신이 있던 방과 거의 구조가 같았다. 그 지랄 맞은 계집이 마지막 실험을 위해 침상을 치웠던 것과는 달이 이곳은 방 중앙에 그대로 놓여있었고, 그 위에는 얼마 전까지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누워있었다.


주위의 사정을 감지하기 위해 공력을 높였을 때 느꼈던 몇몇 미약한 숨소리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지독한 독기 속에서 그의 피부는 거의 검게 변색되었고, 성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져 있었다. 간신히 뜨고 있는 눈은 초점이 없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천강을 보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천강은 그에게 다가가 혈도 몇 개를 점했다. 눈에 미약하나마 생기가 돌았다.

"살고 싶소?"

천강이 물었다. 그자의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미소 짓다가 눈을 감았다. 천강의 양손에 힘이 들어가고 방안은 온전한 물건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방안의 모든 극독들이 내뿜는 기세는 천강조차 서있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그자에게 바라 마지 않던 영면(永眠)을 선사해 줄 수는 있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증상과 피해 정도는 제각각 이었지만, 죽음을 바라는 점은 모두 같았다. 천강 자신의 경험이 그런 결정에 확정을 주었다. 그들은 즉시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이렇게 일곱 번을 반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한 시진을 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천강을 덮친 독기는 어느새 천강의 몸속으로 갈무리 되어 잠잠해 졌다. 이제 더 이상 가냘픈 숨결은 없었다. 대신 극도로 흥분한 거친 숨소리가 그 것을 대신했다.

"네, 네 이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숙영이었다. 극도로 흥분한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으며, 말끝이 갈라질 정도로 새 된 소리를 냈다. 그녀는 눈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천강이 없앤 일곱 개의 방에서는 당문이 정수를 모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새로운 극독 두 가지를 실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천강은 그 수년 간의 공 든 탑을 눈 깜짝할 사이에 날려버린 것이다.


"훗"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천강은 그녀를 노려본 후, 둘러싸듯 그녀 주위에 시립한 삼인(三人)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도로 보아 꽤 고수인 듯 했으나 그녀를 대하는 거동 등에서 수하임을 알아채었다. 숙영은 천강과 대면하기 직전까지 자신의 힘으로 이 황당한 사고를 처리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내상을 입고 중독까지 당하는 이 초유의 사태에도 당문의 다른 직계들은 물론 부친인 가주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가전(家傳)의 비약으로 내상을 다스린 후, 부러진 늑골을 임시변통으로 접골만 한 채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단지 천강을 제압하면 들고 가는 데 쓸 요량으로 신농거 내에서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는 노복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주인의 신호를 기다리지도 않고 일제히 천강을 향해 달려들었다. 군더더기 없는 가볍고 안정된 신법이었다. 천강의 쇠사슬이 그들을 향해 공간을 갈랐다. 제일 앞선 검의 검극과 사슬의 끝이 맞붙었다. 검이 활처럼 크게 휘어졌다. 나머지 두 검은 여전히 천강의 요혈을 노렸다. 천강은 왼손에 감겨있던 사슬을 풀어 공격해 오는 검 중 하나를 휘감았다. 동시에 우수에는 공력을 더욱 집중하여, 기어이 검을 부러뜨렸다. 사슬은 그대로 검 주인의 가슴을 뚫을 기세로 뻗어갔다.


한편 세 번째의 검은 부러진 파편에 맞아 궤도가 크게 흐트러져 어이없이 허공만 가를 뿐이었다. 노복은 황급히 신형을 수습하여 재차 공격을 하려 했으나 이미 그의 미간으로는 천강의 왼쪽 사슬이 끝에 검 하나를 휘감은 채 쇄도하고 있었다. 세 명은 더 이상 공격의 수가 없었다. 단 한번의 격돌로 두 명이 무기를 잃고, 한 명은 허공에 칼질을 하는 수모를 당한 채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천강은 노복에 불과한 그들이, 세간의 여간한 고수들은 감당하기 힘든 공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자신은 그런 자들을 어린애 놀리듯 희롱했지만-에 적잖이 놀랐다. 천하 오대세가의 일가인 사천 당문의 위세를 능히 헤아려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뭔가 변하는 것은 없었다. 감탄은 감탄일 뿐 그는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당문에 대한 복수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숙영은 세 노복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분기가 하늘을 찔렀다. 하인에 불과했지만 당문의 녹을 먹고 있는 자들이 이렇게 추태를 보였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 개자식을 요절을 내버리란 말야."

세 사람은 천강의 상대가 안되는 줄 알면서도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유일하게 검을 쥐고 있는 자가 다시 천강을 공격했고 남은 두 사람은 품 안에서 암기를 꺼내어 쏟아내었다. 이화침, 철정, 독질려, 비황석, 표창 등등 독과 암기의 명문 답게 화려하고 다양한 암기들이 복도를 가득 채우며 천강을 덮쳤다. 세 사람은 이런 연환 공격에 익숙한 듯, 두 사람이 쏘아내는 암기의 비 사이에서 앞선 검수는 거침없이 공격을 해 왔다. 천강은 귀찮다는 듯 적당히 쇠사슬을 풍차처럼 돌렸다. 요혈을 노리는 암기들은 대부분 막아내었지만 팔다리 등에는 무수한 암기가 꽂혔다.


세 사람은 쾌재를 불렀다. 검을 든 노복은 그대로 천강의 목을 그었다. 곧 그의 뺨에 뜨겁고 진득한 액체가 잔뜩 뿜어질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손의 감각은 너무 가벼웠다. 살을 갈라내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검은 아까와 같이 허공에서 정처 없이 흐르고 있었다.

"끄아아악"

"크헉"

숨을 쥐어 짜는 것 같은 비명이 동시에 두 군데서 들렸다. 천강은 검이 자신의 목을 그어오자 재빨리 철판교의 수법으로 몸을 뉘었다. 속도도 속도지만 팔과 다리에 암기를 가득 꽂은 자가 그런 움직임을 보일 줄 몰랐기에 적들은 모두 시야에서 천강을 놓쳐버렸다. 천강은 그 상태에서 양손의 쇠사슬을 날렸다. 사슬은 영활한 뱀처럼 재빠르고 강하게 뒤에서 암기를 날리던 두 사람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사슬을 타고 붉은 피가 복도를 물들였다. 천강이 신법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검을 들고 멍하게 서 있던 수하와 얼굴이 딱 마주쳤다. 그는 너무나 놀라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이봐 이봐 오줌은 싸지 말아, 오줌에 쩐 바지는 입기 싫다고."

천강은 사지에 박힌 암기를 먼지라도 털어내는 냥 손으로 쓸어 내렸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암기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암기가 빠진 그의 피부는 별 다른 손상을 입지 않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이런 기괴한 광경을 지켜보는 하인의 얼굴은 공포로 창백해 졌다.

"너 말야. 옷 좀 벗지 그래, 보다시피 이 꼴이라서, 좀 그래"

무공은 세었지만, 평생을 하인으로 살았던 자라 무림인 특유의 자존심 같은 건 없었다. 명령에 익숙해서 인지 그 자는 이내 자신의 옷을 벗어 천강에게 건네 준 후, 머리를 긁적거리며 숙영에게로 돌아갔다. 그 일련의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있던 숙영은 수하가 몸을 돌리자마자 가느다란 이화침(梨花針) 하나를 날렸다. 그것은 정확히 수하의 단중혈(檀中穴)을 파고들었다. 그는 머리에 올린 손을 내리지도 못한 채 고꾸라졌다.


"꽤 세진 것 같은데?"

"네 덕분이지!"

천강은 노복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흥. 잘 어울리는 걸. 왜? 내 하인이 되고 싶어?"

"아니 사양하겠어, 나는 적어도 사람 밑에서 일하려고."

"그래? 할 수 없지. 그럼 죽어줘야겠어."

"좋을대로."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양손에 공력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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