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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살의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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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링거링
작품등록일 :
2023.02.14 11:50
최근연재일 :
2023.02.24 15:1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525
추천수 :
11
글자수 :
61,456

작성
23.02.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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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01 회귀

DUMMY

001화







칼끝이 떨려온다.


생의 마지막 고동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거센 진동이 손아귀로 울려 퍼진다.


-울컥.


녀석은 거무죽죽한 핏덩이를 토해내는가 싶더니 입가를 뒤틀어 표정을 만들어갔다.


껍질로 뒤덮인 입술 사이로 드러나는 날카로운 송곳니.


그래, 그건 명백한 조소였다.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마. 하지만 네 종족은··· 이걸로 끝이다."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개인이 아닌 종족의 절멸.


험악한 농담이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잡이를 틀어쥐어 녀석의 심장을 터트렸다.


-콰직!


그리곤 녀석의 가슴팍을 발로 밀어 검을 뽑아낸 뒤, 녀석의 머리를 갈랐다.


터져 나오는 뇌수와 푸른색 피.


푸른빛 물결이 허공을 잠시 수놓더니 이내 땅으로 투두둑 떨어졌다.


나는 몸통과 머리가 분리된 녀석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몸통 곳곳에 솟아있는 칼날 모양의 뿔.

꼬리에 달린 가시 돋친 골침.

그리고 도마뱀의 껍질과도 같은 거친 피부.


녀석의 이름은 스테고루스.


날카로운 뿔을 앞세워 지독하리만큼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던 그는, 렉틸리언의 세 번째 레카투스다.


'고작 이런 녀석들 때문에······.'


나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 눈만이 남았을 뿐이지만, 도시의 전경을 담기엔 충분했다.


한때 인간의 일부였을지 모를 파편들이 대로에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고, 백암白巖으로 깔려있던 도로는 온통 검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여태껏 인지하지 못했던 짙은 피비린내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어둠이 걷힌 머릿속에서 튀어나온 첫 번째 감정은.


슬픔이었다.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었나······.'


모두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살아 숨 쉬는 이가 없었다.


온통 적막이 내려앉은 가운데, 도롯가의 배수구만이 꿀렁이는 소리를 내며 검붉은 액체를 꾸역꾸역 집어삼키고 있다.


'빌어먹을······.'


외골수인 성격 탓에 친근하게 지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랜 기간 힘든 전투를 함께 했던 이들이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모두 죽고 없다.


미처 죽지 않고 살아남은 감정의 편린이 심장을 쿡쿡 쑤셔댔다.


목 놓아 울부짖어 쓰라림이라도 털어내고 싶었지만, 성대는 이미 기능을 잃은 지 오래였다.


몸을 움직여보려 했다. 몸을 지탱하던 두 다리는 이제 한계에 달했는지 더는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스테고루스의 사체 위로 풀썩 주저앉았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관통상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와 옷을 붉게 물들였다.


평소라면 손을 덧대 지혈이라도 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그게 뭐 중요하겠는가.


'끝인가······.'


시리도록 청명한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릴 적 보던 하늘과는 사뭇 다른 하늘.


당연했다.


이곳은 내가 살던 지구가 아니었으니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 * *




시작은 단순했다.


어느 날, 네 명의 신이 지구를 찾아와 한 가지 거래를 제안했다.


황금을 줄 테니 우리의 세계로 와서 적들과 싸워달라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달라? 단지 돈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지만, 그 당시엔 퍽 절박했다.


어머니의 암 투병으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쌓여버린 빚, 그리고 아직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하나뿐인 동생.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어릴 적부터 가장으로 살아야 했던 나에게, 녀석의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하게 느껴졌다.


제안에 응한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처의 등쌀에 못 이겨 마지못해 수락한 능력 없는 가장.

흙수저로 태어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청년.

여생을 수감생활로 마무리했어야 했던 범죄자.

단순한 재미를 위해 참가한 이들까지.


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제안에 응했고, 그렇게 게헨나로 넘어왔다.


튜토리얼을 거쳐 가까스로 도착한 게헨나는, 외계종족인 렉틸리언의 침공으로 인해 멸망해가는 중이었다.


여섯 왕국 중 한 곳은 이미 국토 절반을 렉틸리언에게 내준 상태였고, 전선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전력 차이에 자그마한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은 암울한 상황.


그때를 떠올리자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끓어오르는 핏물을 카악하고 뱉어냈다.


그리곤 밑에 깔린 스테고루스의 사체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네 명의 신. 그들이 제안을 건넸을 당시 말해주지 않은 한 가지.


그것은 바로 렉틸리언의 압도적 강함이었다.


게헨나의 신들이 준비해놓은 안배에 따라 지구인들은 강력한 능력들을 빠르게 손에 쥘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


렉틸리언의 단단한 신체와 강력한 주술 앞에, 지구인들은 한없이 무력했다.


그런데도 놈들은 지구인들에겐 자신들이 미처 지니지 못한 '가능성'이 있다며 전선의 최전방으로 나서기를 부추겼다.


'놈들은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어.'


지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위해.

게헨나의 원주민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지구인들.


지구인의 대다수가 렉틸리언의 무정한 발톱 아래 죽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단지 사신四神과 원주민이 다른 행성으로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한 고기 방패에 불과했다는 것을.




* * *




'하지만 그 멍청한 놈들은 계획을 성공시키지도 못했지.'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렉틸리언의 하수인이 된 변절자들.


'행성 이주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간 것은 놈들 탓이었다. 아니, 놈들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렴 어때. 다 죽어가는 마당에.'


그렇다고 변절자들이라고 무사한 것은 아니었다. 렉틸리언은 그들에게 빌붙었던 변절자들까지도 쓸모가 다하면 가차 없이 쳐 죽였다.


놈들은 그런 놈들이었다.


'피곤하군.'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어둑한 수마가 서서히 나를 감싸 안았다.


-쩌저적. 쿵!


그때, 멀리서 건물들이 부서지고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란한 소리에 꺼져가던 정신이 잠시나마 돌아왔다.


어딘가 익숙한 소리였다.


'벌써 테라포밍이 시작된 건가?'


거대식물들이 급속도로 자라나 주변의 모든 것들을 덮쳐온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숱하게 경험했었거든.'


거대식물은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생명체고 건축물이고 할 것 없이, 게헨나임을 증명했던 모든 것들을 없앤다.


-쩌저저저적!


'이제 정말 끝이군.'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웬만하면 뿌리에 꿰뚫리기 전에 편하게 죽고 싶은데 말이야.’


마지막이 찾아오니 가족들 생각이 났다.


'내가 남긴 황금으로 잘살고 있겠지? 엄마도 하준이도. 건강히.'


내 목숨값인데 당연히 잘 살아야지.


'하준이는 이제 직장인이 됐으려나?'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차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웃으면서 가는 게 낫잖아?


얕은 행복감에 젖어 현실을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날아와 나의 마지막 평온을 철저히 깨부쉈다.


[플레이어 백서준.]


거룩함마저 묻어나는 정결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전에서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당연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게헨나의 사신四神 중 한 명, '데이아'였으니까.


'아직도 살아있었나? 네년 제단부터 부셨어야 했는데······.'


[플레이어 백서준. 화가 나신 것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으니 제······.]


'이해하면 닥쳐라. 마지막 순간까지 방해할 셈이냐?'


[시도해볼 방법이 있습니다.]


'네년을 또 믿으라고? 지난 세월을 겪고도?'


분노를 터트려서 그런지 관통상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의식이 점차 꺼져갔다.


['행성 이주 프로젝트'를 실행시키려고 준비해뒀던 막대한 양의 신력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데이아의 말이 들려왔지만, 녀석의 말을 멈출 힘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신력으로 당신을 과거 시간대로 보내려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시간 역행'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확실히, 예상 밖이었다.


신력으로 시간 역행을 시도한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신력의 직접적 사용에는 그 크기에 걸맞은 업이 필요하다.


시간을 역행하려면 얼마나 거대한 업을 쌓아야 할까?


어불성설이었다.


그때, 데이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전 안으로 들어와 저를 죽이십시오. 신살神殺. 시간 역행을 위한 업으로는 충분할 겁니다.]


'뭐?'


[······시간이 없으니, 동의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놀라기도 잠시, 시야가 순식간에 암전됐다.




* * *




눈을 뜨니 그곳은 신전 내부의 백색 공간이었다.


"플레이어 백서준."


호명하는 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바닥까지 닿는 은빛 머릿결과 함께 드레스의 끝자락으로 계단을 쓸어내리며 내려오는 한 여인.


이 모든 사달을 만든 원흉, 데이아였다.


앞으로 다가온 데이아는 공수拱手를 한 채 입을 열었다.


"당신들, 지구인을 속인 것에 대해 사과는 하지 않겠습니다. 돌아가서 직접 죗값을 받아내십시오."


입술을 달싹였지만, 소리가 흘러나오는 일은 없었다.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성대는 떨림을 멈춘 지 오래였다.


"궁금하신 점이 많을 테지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게헨나의 원주민과 저를 비롯한 사신四神은 절대 지구인의 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뭐? 적이 아니야?’


저 가증스러운 입을 당장이라도 찢어야······.


나의 일그러진 표정에도 데이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인간은 자신이 목도한 것만을 진실로 여기지만, 상황은 항상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입니다. 이주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가시면 행성 이주 프로젝트는 막되, 어떤 일이 있어도 원주민을 적으로 돌려선 안 됩니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쿠구구궁.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센 진동이 벽을 타고 울려 퍼져 신전을 뒤흔들었다.


곧이어 신전 벽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거대식물의 뿌리들이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시간이 없습니다. 자, 저를 찌르십시오!"


데이아는 공수를 풀고 양팔을 넓게 벌렸다.


아직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시간이 없었다.


-쿠구구구쿵.


신전이 무너지기 시작했는지 천장에서 돌무더기가 쏟아졌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저리는 손아귀를 억지로 제어해 검을 꽉 쥐었다.


-푸칵!


단박에 꿰뚫린 심장.


그녀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신혈神血이 백색 드레스를 물들였다.


마지막 힘을 모두 쏟아냈더니 온몸에 힘이 풀렸다.


그녀와 나의 신형이 겹쳐 함께 허물어져 갔다.


쓰러져가는 그녀의, 붉은 입술이 달싹이며 작은 소리를 만들어갔다.


"▪▪▪."


'뭐?'


그녀가 남긴 말을 미처 해석할 틈도 없이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신전 내부를 뒤흔들었다.


-「프로젝트 크로노스」 가동.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신전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바닥이 꺼져감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갈라진 틈 사이로 강렬한 빛이 새어 뿜어져 나왔다.


틈은 점차 벌어졌고, 더욱 강렬해진 빛은 광휘가 되어 내게로 쏘아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야가 암전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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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2 튜토리얼 (1) 23.02.15 61 1 12쪽
» #001 회귀 23.02.14 9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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