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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님의 서재입니다.

심연의 바다를 항해하는 어느 마왕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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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작품등록일 :
2024.03.29 11:37
최근연재일 :
2024.05.06 14:44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383
추천수 :
40
글자수 :
251,816

작성
24.05.01 09:06
조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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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성마전 - 탐욕의 서 37

DUMMY


[··· 축복을···]

[우리의 어머니··· 자매의 희생을···]

[··· 당신의 능력을···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이엘프들의 경건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수십의 하이엘프들이 한곳에 모여 세계수를 향해 노래 부르고 있었다.


세계수를 찬양하고 지금의 상황을 전달한다.


위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축복을 내려달라 간청하고 있었다.


‘여기는? 나는?’


하이엘프 그라시아가 잠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지금의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아아··· 나는···’


세계수의 외곽에서 일점돌파를 위해 집결하는 제국군, 그리고 그 제국군의 기세에 질린 하이엘프 장로회는 결국 마지막의 마지막에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존재를 다시 찾았다.


그들의 어머니이자 신인 세계수, 그 세계수에 제국을 격파할 수 있는 힘을 빌었다.


‘그래··· 희생의 의식을 행한다 했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나서서 주장했고 스스로를 제물로 선택했다.


일족의 안녕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고, 마침 그녀가 그 상황에 가장 걸맞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아이의 삶에 걸리적거릴 수는 없지.’


그녀가 사라진다면 딸은 슬퍼할 거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과거를 덧칠하고 현실을 바라보게 될 거다. 자신만의 미래를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게 될 거다.


‘나를 원망한다 해도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엘프도 인간도 아닌 존재가 굳이 이 전쟁에 참여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녀 때문에 장성한 딸이 이곳에 묶여 있다면, 그녀 때문에 장성한 딸이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일족의 안녕을 위한 희생은 덤인가?’


그라시아가 피식 실소를 흘렸다.


우선순위가 엉망이다. 하이엘프라면 무엇보다도 일족의 안녕을 우선해야 할 텐데, 그게 겸사겸사 딸려오는 이유라니 말이다.


그녀도 확실히 딸을 키우며 조금은 변한 것 같다. 그리고 변화는 시그리드의 아버지, 그 인간 기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작됐다.


딸 아이는 항상 어미의 엘프다움을 탓하지만, 정작 그리시아 그녀는 스스로가 엘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뭐 어찌되었든··· 이제 나 하나만 희생하면 끝나는 일이군···’


그녀를 중심으로 한 마력진은 지금도 그녀의 생명력을 게걸스럽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손가락 하나 까닥거릴 힘조차 남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을 삶은 이제 고작 몇 초가 전부였다.


이제는 희미해진 시선너머로 죽은 자들이 지나야 한다는 영혼의 강이 보였다.


그리고 영혼의 강 너머에서 오래전 이별한 남편이 그녀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아··· 여보··· 당신 오래 기다리셨죠?’


그리사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그녀에게 남겨진 시간이 끝났다.


그리시아의 손끝부터 희색 먼지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중지해! 당장 의식을 멈추라고!”


시그리드의 거친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메아리 쳤지만, 이미 생을 마감한 그리사아는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체력이 바닥나도 의지의 힘으로 육체를 움직였다.


마력이 떨어지면 생명력을 끌어와 대체했다.


그렇게 단신으로 제국군을 뚫고 세계수로 복귀했다. 그렇게 세계수의 수비병력을 뚫고 중심부인 엘프의 성소까지 도달했다.


“아아··· 어머니··· 엄마··· 어째서?”


하지만 그녀의 손은 어머니에게 닿을 수 없었다. 그녀의 도착은 이미 너무 늦어 있었다.


“엄마··· 왜? 왜 그랬어요!”


그녀의 눈앞에서 어머니의 육신이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 있었다.


다급히 손을 뻗어도 그녀의 손은 허공을 휘저을 뿐, 무엇 하나 잡을 수 없었다.


“엄마! 어째서··· 나는··· 내가 바랬던 것은···”


화목한 가정을 꿈꿨을 뿐이다. 그저 어머니에게 더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을 뿐이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뭔가 대단한 것을 바랬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그녀는 그 조그마한 것도 얻을 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누군가가 방해한 걸까? 누가?


“아아··· 누가··· 누구라도! 누가라도 좋으니 도와줘! 누구라도 좋으니 나오라고!”


엘프들의 어머니이자 신인 세계수는 어째서 이런 모습을 보고만 있는 건가? 자식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면 그건 어머니가 아니고, 자신의 희생을 막을 수 없다면 그건 신이 아니다.


“으아아아악!!!”


시그리드가 손가락으로 땅을 긁어대며 비명일 질렀다. 그녀의 처절한 절규가 그녀를 제지하고 사살하기 위해 다가오던 엘프 경비대의 발걸음마저 묶었다.


[대단한 아이구나. 여러모로 말이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시그리드의 절규도 멈췄다. 아니 시그리드는 자신의 감정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당신은?”


시그리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봤다.


그의 등뒤에서 솟구친 찬란한 후광 때문에 상대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세계수, 엘프들의 어머니이자 전지전능한 신이시여···”


[틀렸다.]


“네?”


[나는 세계수도 아니며 엘프들의 어머니도 아니다. 거기다 전지전능은 더더욱 아니지.]


“그런···”


[나는 그저 세계수에 잠들어 있던 불쌍한 영혼일 뿐이다.]


후광을 휘감은 존재가 시그리드의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지, 세계의 관리자라고.]


“세계의··· 관리자?”


[나는 그저 단순한 관리자일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자칭 세계의 관리자가 그녀에게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나와 계약하겠느냐?]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 계약?”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식어버렸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자신이 잃었던 감정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컥··· 커헉··· 무슨··· 이건 무슨···”


[미안하군. 처음 상태에서는 대화가 힘들 것 같아서 잠시 감정을 식혀두고 있었거든, 그냥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걱정할 것 없다.]


“으읔···”


고통스러웠지만, 확실히 감정은 제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전처럼 격렬하게 타오르지는 않았다.


“당신은···”


그리고 기존의 감정을 대신해서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간단히 조작하면서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관리자의 태도가 두려웠다. 슬쩍 눈을 내리깔자 그제서야 두근거리던 공포심이 조금 약해졌다.


‘그런데 어째서?’


그리고 그제서야 주위가 너무 조용한 것이 신경 쓰였다. 이런 강력한 존재가 세계수의 중심이자 엘프들의 성지에서 갑자기 튀어나왔는데도, 아무 말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설마···’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세계 전체가 색상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해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잡기 위해 달려들던 엘프 경비대가 석상처럼 굳어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 중 일부는 두 다리가 완전히 공중에 떠 있는 상태로 고정되기까지 했다.


“이건···”


[귀찮아질 것 같아서 잠시 세계의 시간을 동결시켰다.]


세계의 시간을 동결했다. 참 쉽게도 말한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그리드는 다시금 끔찍한 공포감을 느꼈다. 자신의 감정을 멋대로 조작했다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는데 이건 이제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수준조차 아니었다.


세계 전체를 자신의 의지만으로 멈춰버렸다는 선언에는 감히 입을 열수조차 없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내리깔고 바닥에 이마를 대었다.


상대가 자신을 뭐라고 소개하던 이제는 상관없었다.


그녀가 보기에 저 존재는 전지전능한 신이 맞다. 신이 아니라면 이런 이적을 이렇게 간단히 사용할 수 없다.


[그래 이제 생각이 끝난 건가?]


그리고 상대는 시그리드의 생각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전능한 신이 미천한 피조물의 생각을 모를 리 없다.


[아이야 간단히 생각하거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시그리드의 앞에서 그 존재는 여전히 한쪽 손을 뻗고 있다.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명백히 그녀를 배려하고 있었다.


‘손을··· 이 손을 잡으면···’


시그리드가 홀린 듯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지만 다급히 멈췄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서로가 원하는 것?”


시그리드가 입술을 깨물었다. 작은 고통과 함께 짙은 피냄새가 밀려 들었다. 동시에 정신이 맑아졌다.


“저에게 뭘 바라시는 겁니까?”


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녀가 원하던 것처럼 어머니를 되살려도 이후에 신이 원하는 것이 세계의 멸망이라면 의미가 없어진다. 아니 세계의 멸망까지 아니더라도 엘프의 소멸이라거나 세계수의 소멸을 말할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는구나. 하지만 틀렸다.]


“그럼?”


[직접 경험해 보거라.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거라.]


신의 손이 다가와 시그리드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시그리드는 자신의 머릿속으로 물밀듯이 밀려드는 무언가를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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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성마전 - 탐욕의 서 41 24.05.05 18 1 8쪽
41 성마전 - 탐욕의 서 40 24.05.04 16 1 5쪽
40 성마전 - 탐욕의 서 39 24.05.03 23 1 9쪽
39 성마전 - 탐욕의 서 38 24.05.02 24 1 5쪽
» 성마전 - 탐욕의 서 37 24.05.01 32 1 9쪽
37 성마전 - 탐욕의 서 36 24.04.30 25 1 12쪽
36 성마전 - 탐욕의 서 35 24.04.29 24 1 17쪽
35 성마전 - 탐욕의 서 34 24.04.28 29 1 18쪽
34 성마전 - 탐욕의 서 33 24.04.27 26 1 11쪽
33 성마전 - 탐욕의 서 32 24.04.26 29 1 13쪽
32 성마전 - 탐욕의 서 31 24.04.25 28 1 12쪽
31 성마전 - 탐욕의 서 30 24.04.24 33 1 9쪽
30 성마전 - 탐욕의 서 29 24.04.23 36 1 17쪽
29 성마전 - 탐욕의 서 28 24.04.22 39 1 11쪽
28 성마전 - 탐욕의 서 27 24.04.21 43 1 21쪽
27 성마전 - 탐욕의 서 26 24.04.20 37 1 14쪽
26 성마전 - 탐욕의 서 25 24.04.19 42 1 14쪽
25 성마전 - 탐욕의 서 24 24.04.18 44 1 12쪽
24 성마전 - 탐욕의 서 23 24.04.17 50 1 20쪽
23 성마전 - 탐욕의 서 22 24.04.16 54 0 10쪽
22 성마전 - 탐욕의 서 21 24.04.15 52 0 13쪽
21 성마전 - 탐욕의 서 20 24.04.14 53 0 8쪽
20 성마전 - 탐욕의 서 19 24.04.13 58 0 15쪽
19 성마전 - 탐욕의 서 18 24.04.12 57 1 14쪽
18 성마전 - 탐욕의 서 17 24.04.11 60 1 17쪽
17 성마전 - 탐욕의 서 16 24.04.10 58 1 15쪽
16 성마전 - 탐욕의 서 15 24.04.09 64 1 10쪽
15 성마전 - 탐욕의 서 14 24.04.08 63 0 12쪽
14 성마전 - 탐욕의 서 13 24.04.07 66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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