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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님의 서재입니다.

심연의 바다를 항해하는 어느 마왕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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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작품등록일 :
2024.03.29 11:37
최근연재일 :
2024.05.06 14:44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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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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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글자수 :
25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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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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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성마전 - 탐욕의 서 28

DUMMY


벽화를 회수하고 석상을 확인하는 작업이 끝났지만, 그렇다고 모든 작업이 끝난 건 아니다.


혹시라도 발견하지 못했을 비밀 구역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을 추가로 소모했다.


“없네요. 정말 벽화하고 석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군.”


“근데 정말 석상은 안 가져 가시는 건가요?”


벽화는 다 뜯어 가는데 정작 가장 중요해 보이는 석상은 놔두고 갈 분위기라 지투가 질문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묘한 표정으로 석상을 바라볼 뿐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음? 뭐라고 했지?”


“석상 안 뜯어 가실 꺼냐고요?”


“그래.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그렇게 대답하는 그리드도 뭔가 자신의 행동에 의문이 남는 것 같다. 아니 실제로도 그리드는 석상을 보며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익숙함? 경외심? 뭐지 이 감정은?’


어찌보면 반가움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허에서 그리드가 만난 여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신은 커녕 지금까지 동급의 존재를 본 적조차 없다.


‘만난 적 없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여신에 대한 익숙함? 경외심? 이런 게 생길 수 있는 건가?’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로서는 풀 수 없는 문제처럼 보였다.


“어찌되었든, 석상은 놔두고 간다.”


신전의 중심이 되는 석상이다. 그것까지 뜯어 가는 것은 어쩐지 불경해 보였다. 그래서 그리드는 자신도 이해 못할 명령을 내렸다.



***



로메스, 정식 이름은 아쿠아드 폴론 로메스 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시온 상인연합의 방랑상인은 공허의 깊은 곳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없군. 없어. 없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 지 모르겠다. 그 거대한 영지가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작정하고 숨겼다 해도 이렇게까지 찾을 수 없다는 건 뭔가 이상하다. 아니 잠시 잠깐의 대화였지만, [그 존재]는 자신의 영지를 숨길 생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분명 방랑상인의 방문 자체는 반기는 분위기였어.”


비버 수인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신경질적으로 앞니를 갉아 댔다.


“분명 일부러 숨긴 건 아니야. 그렇다면 찾을 수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찾을 수가 없다. 상인연합의 전문적인 수색꾼들이 총동원된 상태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수색꾼들이 전부 떠난 지금은 더더욱 찾을 가능성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해야···”


덕분에 로메스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이대로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다면 당장 상인연합 내부에서도 거짓말쟁이로 몰려 쫓겨날지 몰랐다. 아니 아니다. 그 정도도 다행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상인연합의 신뢰도를 떨어트렸다며 죽이고 소멸시키려 할 지도 몰랐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애초에 상부에 보고를 올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감도 들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다. 그리고 보고를 누락했다가 나중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것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아··· 어찌 되었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위에서는 계속 [그 존재]의 영지를 찾으라고 하지만, 정작 수색작업만 할 수는 없다. 로메스도 스스로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인 자원과 재화가 필요했으니 말이다.


상인연합의 시선이 무서워서 평소보다 움직이는 거리가 좁아지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여기 저기를 떠돌며 상행을 재개했다. 다만 상인연합의 지원이 없으니 팔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살 수 있는 것도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로메스의 입장에서는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느낌이다.


“아아··· 이대로 끝나는 건가···”


공허 최고의 거상을 목적으로 열심히 살아왔던 로메스는 자신의 최후가 생각 이상으로 비참할 거라는 예상에 우울해졌다.


갑자기 다시 [그 존재]의 영지로 끌려들어오기 전 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아··· 여긴 도대체···”


분명 [그 존재]의 영지를 찾고 있던 건 맞다. 다만 이렇게 또 아무 징조도 없이 끌려오는 건 다른 의미다. 거기다 이전에 이곳에 끌려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또 황량한 회색 세계가 그를 반기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방향 잡을 것 하나 없는 넓기만 한 세계 가 말이다.



***



방랑상인 로메스가 또 얼마나 세계를 헤매고 다녀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의 고민과 달리 그가 방문하기 무섭게 지투는 그를 인식하고 있었다.


“오호? 생각보다 방랑상인의 방문이 빠르군. 그런데···”


어째 기운이 익숙하다. 아마도 이전에 왔던 녀석이 또 온 것 같다.


“생각보다 멍청한 녀석이었나? 아니면 억지로 격을 떨어트리고 하던 대화라 대화가 원활하지 않았거나?”


분명히 상위 존재를 데려오라고 했는데도 자기 혼자 떨렁 들어온 걸 보면 어느 쪽이든 의사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건 분명해 보인다.


“뭐 근데 이번에는 상관없으려나?”


저번처럼 다시 억지로 격을 떨어트려야 한다면 당장 저 녀석 주리를 틀어 버리겠지만, 이번에는 그의 주인이 이미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통역기가 있다. 아마도 저런 한심한 녀석이라 해도 문제없이 통역이 가능할 거다. 마왕성에 있는 펫들을 통해 미리 성능도 확인해 뒀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첫 거래다. 제대로 된 거래를 위해서는 주인이 직접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 문제는 정작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고 말이다.


주인의 존재는 느껴지지만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짐작 가는 게 없는 건 아닌데 말이지.”


지투가 한숨을 내쉬며 공간을 넘어섰다. 그가 도착한 곳은 세계수의 뒤를 휘감고 있는 절벽 폭포의 위쪽이다.


그곳에는 처음부터 자그마한 신전 건물이 있었다. 다만 이번에 그 건물이 대폭 확장됐다. 거기다 보호 결계까지 추가됐고 말이다.


“역시 여기 계셨군요.”


결계를 넘어선 지투가 신전 건물로 들어섰다.


원형의 신전이다. 그 신전의 벽마다 이전 ‘이름모를 여신의 신전’에서 가져온 벽화들이 걸려 있다. 그리고 신전의 중앙에는 가져오지도 않았을 여신의 신상이 떡하니 놓여 있다. 그리드가 자신의 권능으로 복제해서 만들어 놓은 신상이었다.


“오늘도 신상을 보고 계신 겁니까? 뭔가 새로운 거라도 발견하셨어요?”


요즘 그리드는 이상할 정도로 신상을 마주보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상한 느낌이 자꾸 들어서 말이야.”


“이상한 느낌이요? 제가 조사해 본 결과로는 저주나 축복이나 어찌 되었든 그런 기운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여기 있는 건 원본도 아니고 복사본이잖아요?”


“아니. 그런 특별한 힘을 말한 게 아니야. 말 그대로 그냥 느낌이지··· 처음 석상을 봤을 때부터 이상했는데 아무리 봐도 마찬가지야, 나는 분명 이 신상의 여신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아.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익숙함이 느껴져.”


“흐음··· 제 기억은 주인님의 탄생과 함께 할 텐데요? 제 기억에는 이런 존재와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째서 이렇게 익숙한 거지? 거기다 느껴지는 감정은 그게 다가 아니야. 그리움이나 경외심 같은 감정도 느껴진단 말이지. 이게 정말 모르는 존재에게 느껴지는 감정인가?”


“다른 감정은 모르겠지만 익숙함은 알겠네요.”


“네가? 어떻게?”


지투가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있는 여신의 신상과 다른 신상들의 차이점은 아시나요?”


“뭔데? 얼굴이 없다는 거?”


“아뇨 그거 말고요.”


얼굴이 없는 건 파손돼서 그런 거고 애초에 다른 신상들과의 차이점도 아니다.


지투가 여신상의 전체적인 자세를 가리켰다.


“제가 지식으로 알고 있는 신상은 근엄하게 서 있거나 단정하게 앉아 있습니다. 대부분이 그렇죠. 신자들에게 권위를 얻어내야 하니까요.”


“그··· 그렇지?”


“그런데 이 신상은 어떤가요? 근엄하게 서 있나요?”


“으음···”


근엄하게는 아니다. 아니 정상적으로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반쯤 눕듯이 등뒤의 벽에 기대고 서 있다. 그런데 지투가 말을 꺼내서 그런지 어째 그 모습이 매우 익숙했다.


“제가 말을 꺼내서는 아니고요.”


지투가 그런 주인의 마음을 읽은 듯이 공중에 이지미 하나를 꺼내 놓았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이미지는 그리드다. 그리드가 용암 욕탕에서 반쯤 드러눕듯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전체적인 자세는 서있는 모습과 앉아 있는 모습으로 달랐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분위기가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그리드도 단번에 알아챌 정도로 말이다.


“그럼 설마 내가 익숙하다는 감정을 느낀 게···”


“실제로도 익숙하시겠죠. 자기 자신과 말입니다.”


놀라운 사실에 그리드가 잠시 말문을 잊었다.


“뭐 어느 쪽이건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나태한 거겠죠. 아마 대부분의 존재들이 이부분에서는 나태 쪽에 손을 들겠지만 말입니다.”


“크흑··· 이해했다.”


그리드가 분한 듯 으드득 이를 갈았다. 하지만 차마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다만 그 한 번으로 충분했다.


용암 대욕탕에 반쯤 누워 있는 저 모습에서는 분명 진한 나태의 기운이 풍겼다.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렇게 제3자의 시선으로 보니 단번에 알아차릴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었다.


“그럼 의문이 해소되셨으면 이제 마왕으로서의 일을 하시는 게 어떨까요?”


그리드는 지투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처럼 지투가 조언자에 적합한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석상을 보며 떠올린 친근감의 원인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뿐이다. 거기다 그리움이나 경외심까지 더하면 쥐구멍이라도 파고 들어야 할 판이다. 이건 진성 나르시즘이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크흠··· 그래. 일··· 해야지. 그런데 급한 일이 있었나?”


“방금 생겼습니다. 방랑상인이 다시 방문했거든요.”


“방랑상인? 오호 실전에서 번역기를 사용해볼 기회가 왔구나!”


“네.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된 물건도 구매하셔야죠.”


전에는 대화 자체가 힘들어서 거래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통역기를 통해서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거다. 당연히 그동안 못했던 거래도 몰아서 해야 한다.


그리드와 지투가 공간을 넘어서 마왕성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세계수의 앞으로 방랑상인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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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성마전 - 탐욕의 서 38 24.05.02 24 1 5쪽
38 성마전 - 탐욕의 서 37 24.05.01 32 1 9쪽
37 성마전 - 탐욕의 서 36 24.04.30 25 1 12쪽
36 성마전 - 탐욕의 서 35 24.04.29 24 1 17쪽
35 성마전 - 탐욕의 서 34 24.04.28 29 1 18쪽
34 성마전 - 탐욕의 서 33 24.04.27 26 1 11쪽
33 성마전 - 탐욕의 서 32 24.04.26 29 1 13쪽
32 성마전 - 탐욕의 서 31 24.04.25 28 1 12쪽
31 성마전 - 탐욕의 서 30 24.04.24 33 1 9쪽
30 성마전 - 탐욕의 서 29 24.04.23 36 1 17쪽
» 성마전 - 탐욕의 서 28 24.04.22 40 1 11쪽
28 성마전 - 탐욕의 서 27 24.04.21 43 1 21쪽
27 성마전 - 탐욕의 서 26 24.04.20 37 1 14쪽
26 성마전 - 탐욕의 서 25 24.04.19 43 1 14쪽
25 성마전 - 탐욕의 서 24 24.04.18 44 1 12쪽
24 성마전 - 탐욕의 서 23 24.04.17 50 1 20쪽
23 성마전 - 탐욕의 서 22 24.04.16 55 0 10쪽
22 성마전 - 탐욕의 서 21 24.04.15 53 0 13쪽
21 성마전 - 탐욕의 서 20 24.04.14 53 0 8쪽
20 성마전 - 탐욕의 서 19 24.04.13 58 0 15쪽
19 성마전 - 탐욕의 서 18 24.04.12 57 1 14쪽
18 성마전 - 탐욕의 서 17 24.04.11 60 1 17쪽
17 성마전 - 탐욕의 서 16 24.04.10 59 1 15쪽
16 성마전 - 탐욕의 서 15 24.04.09 64 1 10쪽
15 성마전 - 탐욕의 서 14 24.04.08 63 0 12쪽
14 성마전 - 탐욕의 서 13 24.04.07 66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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