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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이아르 님의 서재입니다.

심연의 바다를 항해하는 어느 마왕님의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투덜이아르
작품등록일 :
2024.03.29 11:37
최근연재일 :
2024.05.06 14:44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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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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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글자수 :
25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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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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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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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성마전 - 탐욕의 서 22

DUMMY


공허에는 의외로 제대로 된 상인 연합이 존재한다.


‘시온 상인연합’이라는 이름의 방랑상인들이 소속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이들은 공허의 바다를 넘나들며 공허 곳곳에 자리를 잡은 초월적 존재들과 그 영지를 방문했다.


로메스, 정식 이름은 아쿠아드 폴론 로메스 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젊은 상인도 그 시온 상인연합의 일원이었다.


다만 그는 시온 상인연합 안에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다른 문제가 아닌 그의 외모가 그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털이 복실복실하고 동그란 얼굴, 온순해 보이는 작고 검은 눈, 그리고 입밖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한쌍의 앞니는 수인족, 그것도 비버 수인 특유의 얼굴이었다.


공허로 올라온 초월적 존재의 대부분이 용족이고 나머지도 장생종인 거인이나 신수들이 차지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확실히 수인족, 그것도 주류 수인도 아닌 비버 수인 특유의 외형은 마주치는 존재들의 주목을 받기 충분하고도 남았다.


“하아···”


다만 지금 그 귀여운 외모의 비버수인, 로메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긴 도대체 어디야? 난 또 왜 이런 곳에 있는 거고?”


귀여운 외모와 달리 오랜 경력의 방랑상인인 로메스는 경력만큼이나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단코 지금과 같은 경험은 없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공허의 바다를 이동하며 고객들을 찾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위의 공허가 이상하게 굳어지더니 곧바로 그를 이곳으로 날려 버린 것이다.


경험 많은 로메스가 그 어떤 대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조도 없었고 반항도 할 수 없을 수준의 천재지변이었다.


그렇게 로베스는 이곳으로 이동됐고 지금도 정처 없이 이곳을 헤매고 있다.


“내 능력은 대부분 봉쇄됐고 공간이동도 막혔군.”


한탄하는 그의 눈앞에는 회색으로 죽어버린 대지와 주홍빛의 우중충한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 기괴한 세상을 채운 기운은 공허와 비슷하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공허와는 완전히 달랐다. 마치 기운 자체에 의지가 있는 것처럼 로메스의 모든 권능을 봉쇄하고 있었다.


로메스가 능력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유동적으로 변해서 막아서는 모습에는 로베스도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파훼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저기요! 혹시 듣고 계신가요?”


그래서 대화를 시도해 본 적도 있다. 설마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 세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존재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로메스의 의도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하기야 이 세계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의지가 로메스와 대화를 해줄 건지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뭐 어찌되었든 그렇게 로메스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조차 모른 채 길을 헤매고 또 굴러야 했다. 가진 능력은 모조리 봉인됐고 어떤 위급 상황에서도 시온 상인연합의 본성으로 이동할 수 있다던 아티펙트까지 먹통이 된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구르고 헤매기를 수십일, 드디어 그의 눈앞 풍경이 변했다.


“오옷! 생명이다! 풀이다! 초원이야!”


길다란 선 하나로 죽어버린 세상과 생명 가득한 초원을 분리한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딱 잘라진 두 개의 세계가 서로 붙어 있었다.


“흐음··· 딱히 가리는 막도 없는 것 같은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거지?”


한참 동안 두 세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조사해봤지만, 유감스럽게도 로메스의 능력으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이거 참··· 여기 오고 나서는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이는군.”


그래도 공허에서 기본 분류로 속하는 등급 평가에서 초신룡 등급을 받을 수준인데도 말이다.


“그건 그렇고···”


마치 존재하지 않는 막을 지나온 것처럼 이곳은 또 기운 자체가 틀렸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가 가진 능력 중 공간에 관한 능력이 풀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으음···”


물론 상인연합 본성으로의 귀환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다만 초원지역 내부에서의 이동은 가능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건 세계수 인가?”


보지이 않는 경계를 넘어오니 저 멀리 선명한 기운이 느껴졌다.


생명이 가득한 맑고 청량한 기운이다. 이건 세계수다. 세계수가 확실했다. 로메스도 여려번 느껴봤던 기운이기에 틀릴 수가 없었다.


“간신히 여기 주인장 얼굴을 볼 수 있겠군.”


로메스가 화가 제대로 난 얼굴로 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이동을 시작했다.


“이건 정식으로 항의하고 보상을 받아야 할 사항이야!”


무턱대고 끌고 와 놓고 오랜 시간 방치 플레이라니 이건 도를 넘었다. 이건 명백히 시온 상인연합의 이름으로 항의해야 할 문제였다.


이 세계의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어떤 위대하고 강력한 존재라도 시온 상인연합 전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어··· 항의··· 어··· 보상···”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말이다.


“어··· 저기 안녕하세요?”


생명력이 넘치다 못해 격하게 뿜어내는 수준의 거대한 세계수를 마주하기 전에는 말이다.


“어··· 그게··· 저···”


생명의 기운 자체는 다른 세계수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 기운의 크기와 사용방식이 달랐다.


일반적인 세계수가 공허에서 끌어온 신비를 이용해 세계라는 열매를 맺는 형태라면, 지금 로메스의 눈앞에 있는 세계수는 그 기운을 고스란히 자신의 성장에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다른 세계수와 달리 힘이 넘쳐나는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생명력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대지를 적시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한참동안 주위를 얼쩡거렸는데도 로메스에게 딱히 반응하지 않는 점이 이상하다.


세계수가 이 세계의 주인이고 로메스를 불러들인 존재가 맞다면 뭔가 의사를 표현해야 될 타이밍인데 조용하기만 하다.


“그··· 저기··· 혹시 의지가···”


없는 게 아닐까 했는데 그런 로메스의 생각을 읽은 듯 세계수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이 갑자기 차갑게 변했다. 마치 화를 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화를 내고 있었다.


“아 있으시군요. 당연히 그렇겠죠.”


로메스가 비굴한 표정으로 고개를 굽실거렸다. 이마와 등뒤에서 축축하게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직접적인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세계수는 의지가 깃든 존재였고 그 의지는 초신룡 등급이라 자찬하는 로메스를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어··· 음···’


다만 세계수가 위대하건 말건 그건 후순위고 당장 로메스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건 분명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로메스가 다급히 시온 상인연합의 지침을 머릿속에서 검색하고 있을 때 마치 구원처럼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어라? 시온상단의 방랑상인인가요?”


사용하는 언어는 모르지만, 대화에는 문제가 없다. 그 언어에 담겨 있는 의념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대화가 통하는 존재를 만났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로메스가 감격의 눈물을 터트리며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을 격하게 쏟아 냈다.



***



세계수의 가지에 몸을 기대고 잠에 빠져 있던 존재, 초신룡 엘 크라시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뭔가 익숙한, 동시에 여기서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인?’


시온 상인연합 소속의 방랑상인이 분명했다. 기본적으로 서늘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기운이 조금씩 뒤섞여 있는, 방랑상인 특유의 기운은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호오? 확실히 능력은 좋군.’


엘 크라시아가 가볍게 놀랐다. 솔직히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세계는 다른 곳과 명백히 다른 곳인데 말이다.


어디에나 갈 수 있고 어디에나 있다던 그들의 홍보문구가 단순히 허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거기다···’


사신룡 등급이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도 보였다. 언제나 유들유들하게 웃음짓던 미소 속에 숨겨져 있는 그들의 능력말이다.


‘등급으로 따지면 확실히 초신룡 등급이군.’


공허의 만신전에서조차 위대한 일곱이라 해서 따로 평가받던 존재들과 동급이었다.


이건 엘 크라시아가 초신룡 등급에 이르렀기 때문에 확인 가능한 정보였다.


‘하기야 그 정도 수준이었으니 공허의 바다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동하며 상인 행세를 해온 거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이해되는 강함이기도 했다.


‘다만···’


멋도 모르고 세계수를 향해 대화를 시도하다 세계수의 심기를 건드려 굽실거리는 모습은 그 강대함과 달리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는 했다.


여러모로 특이한 이쪽 세상의 세계수는 오롯이 홀로 존재하는 자에 가깝다. 다른 존재와의 대화를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험 많은 상인이라면 이런 부분은 기본적으로 알아봐야 한다.


엘 크라시아의 마음속에서 방랑상인 로메스의 평가가 한단계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것과 달리 방랑상인에게 구할 물건들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연락을 취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떡 하고 알아서 나타나 주니 반가울 뿐이다.


“시온 상단의 방랑상인인가요?”


그래서 반가움을 담아 상대를 불렀다. 그런데 이번에도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그녀가 예상했던 반응도, 기대했던 반응도 아니었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대화가 통하는 존재를 만났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해요!”


상인이라면 모름지기 얼굴에 가면을 쓰고는 불리할 때도 유리할 때도 감정 표현 없이 그 특유의 유들유들한 모습을 연기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일류 상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상인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뭐지? 이 덜 떨어진 녀석은?’


엘 크라시아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동상인 로메스에 대한 평가치가 바닥까지 수직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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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성마전 - 탐욕의 서 41 24.05.05 18 1 8쪽
41 성마전 - 탐욕의 서 40 24.05.04 16 1 5쪽
40 성마전 - 탐욕의 서 39 24.05.03 23 1 9쪽
39 성마전 - 탐욕의 서 38 24.05.02 24 1 5쪽
38 성마전 - 탐욕의 서 37 24.05.01 32 1 9쪽
37 성마전 - 탐욕의 서 36 24.04.30 25 1 12쪽
36 성마전 - 탐욕의 서 35 24.04.29 24 1 17쪽
35 성마전 - 탐욕의 서 34 24.04.28 29 1 18쪽
34 성마전 - 탐욕의 서 33 24.04.27 26 1 11쪽
33 성마전 - 탐욕의 서 32 24.04.26 29 1 13쪽
32 성마전 - 탐욕의 서 31 24.04.25 28 1 12쪽
31 성마전 - 탐욕의 서 30 24.04.24 33 1 9쪽
30 성마전 - 탐욕의 서 29 24.04.23 36 1 17쪽
29 성마전 - 탐욕의 서 28 24.04.22 39 1 11쪽
28 성마전 - 탐욕의 서 27 24.04.21 43 1 21쪽
27 성마전 - 탐욕의 서 26 24.04.20 37 1 14쪽
26 성마전 - 탐욕의 서 25 24.04.19 43 1 14쪽
25 성마전 - 탐욕의 서 24 24.04.18 44 1 12쪽
24 성마전 - 탐욕의 서 23 24.04.17 50 1 20쪽
» 성마전 - 탐욕의 서 22 24.04.16 55 0 10쪽
22 성마전 - 탐욕의 서 21 24.04.15 52 0 13쪽
21 성마전 - 탐욕의 서 20 24.04.14 53 0 8쪽
20 성마전 - 탐욕의 서 19 24.04.13 58 0 15쪽
19 성마전 - 탐욕의 서 18 24.04.12 57 1 14쪽
18 성마전 - 탐욕의 서 17 24.04.11 60 1 17쪽
17 성마전 - 탐욕의 서 16 24.04.10 58 1 15쪽
16 성마전 - 탐욕의 서 15 24.04.09 64 1 10쪽
15 성마전 - 탐욕의 서 14 24.04.08 63 0 12쪽
14 성마전 - 탐욕의 서 13 24.04.07 66 1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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