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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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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1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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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6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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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람의 계승자 - ep.2 - 루프리모의 아이(1)

DUMMY

“도대체가 말입니다! 애들이 사라진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가크스는 탁자를 내려치며 울분을 토했다. 로샤단 길드원들은 간만에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삼삼오오 자리를 꿰찬 채, 그가 터뜨리는 분통을 잠잠히 듣고 있었다. 놀랍게도, 길드원을 소집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가크스였다.

처음 그가 길드원 전원을 소집했을 때, 사람들은 건방지다며 벼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식탁 위에 올라선 지금, 위계질서를 따지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크스가 저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지금의 그는 흡사 불이라도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그는 주변에 있는 길드원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다들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슬금슬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정말 다들 썩어빠졌어요! 애들한테 관심이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걔네들도 엄연히 로샤단 소속이라고요. 이렇게 무관심한 곳에서 어떻게 전우애가 나옵니까?!”


얌전하던 사람일수록 화가 나면 무서운 법이다. 지금 이 자리에 가크스보다 어린 사람은 아무도 없음에도, 모두 침묵한 채 그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돌크가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어이, 가크스. 이제 그만 해. 다들 반성하고 있다구. 그리고 디리터도 같이 갔다는데, 별일이야 있겠어?”


가크스의 고개가 번개 같은 속도로 돌아갔다. 돌크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며 물러설 정도였다.


“형님도 그러시는 거 아닙니다. 어제 비번이셨지 않습니까? 애들 그림자도 안 보였을 텐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못 받으셨습니까?”


“그야 뭐...발렌스 상회에서 자고 오는 줄 알았지.”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들이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것마저 비번자가 밥을 차리라며 디리터를 깨우러 가지 않았더라면, 여태껏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디리터가 이불 속을 지푸라기로 알맞게 채워놓고 떠나는 바람에, 길드원들은 그저 그가 꽤 몸이 안 좋구나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가 몰래 가출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사라지자 길드는 발칵 뒤집혔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가크스가 미친 듯이 흥분했다는 말이 맞았다. 그는 디리터가 남기고 간 쪽지를 팔랑거리며 말했다.


“오, 맙소사. 이게 디리터가 남긴 쪽지입니다. 들어보시죠. 「람 아저씨와 함께 수도 여행을 떠납니다. 루도와 마리네도 같이 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가능하다면 선물은 사오겠습니다. 먹을 게 없어서 뒤뜰에 심어져 있는 느타리버섯 좀 가져갑니다. 도둑맞은 거 아니니까 찾지 마세요.」 아주 가지가지 하는군.”


“뭣이 어째!!”


이번에는 카토르가 펄쩍 뛰었다. 그는 입고 있던 로브를 걷어붙이며 가크스의 편지를 뺏어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이 망할 땅강아지 자식이! 그걸 캐 가면 어떻게 해! 그거 먹는 거 아니란 말이다!!”


그는 가슴을 두드리다가, 괴성을 지르다가, 이내 졸도하듯이 의자에 쓰러졌다. 잠자코 있던 바트넬이 놀라서 물었다.


“그게 뭔데 그래요? 또 그 예전 독버섯? 하여간 그 변태 같은 실험 좀 작작하쇼.”


“맞아. 거 뭔 독약을 만들려고 만날 이상한 걸 심어대? 이참에 좀 물어봅시다. 형님, 암살자요?”


카토르는 곧장 손에 잡히는 걸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책, 쿠션, 목침 등이 날아오자 길드원들은 키득거리며 피했다. 카토르의 운동신경은 현역 레인저들에게 따라갈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번에 소파에 꽂힌 게 과도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그는 씩씩거리며 외쳤다.


“그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리그니체 연금술 협회에서 거금을 들여 공수해온 거란 말이야! 디리터놈, 감히 잘도 내 피 같은 마비버섯을!”


“조용! 조용들 해요!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경이롭게도, 가크스의 일갈은 발광하는 카토르조차 멈추게 했다. 그는 집중하기 쉽게 손뼉을 몇 번 치고는, 대책을 말하기 시작했다.


“애들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승마술도 안 배운 것들이 말을 타고 갔을 리는 없고, 끽해야 레인스터까지 밖에 못 갔을 겁니다. 말을 달리면 반나절이면 도착할 겁니다.”


돌크가 다시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나마 친한 그라서 분노한 가크스를 상대하지, 다른 길드원들은 꼬리 내린 강아지나 다를 바 없었다.


“저기, 누가 찾으러 간다는 거야? 지금 디리터도 없는 상황에서 또 근무가 구멍 나면 우린 비번이라는 게 사라져버려. 자, 긍정적으로 생각해봐. 납치된 것도 아니고, 고작 람 대장 따라간 건데, 별일 있겠어? 그냥 우린 여기서 차근차근...”


“형님!!”


“아...알았다! 에라 몰라! 난 할 만큼 했어. 가크스가 이렇게 하잔다! 반대하는 녀석 있으면, 직접 나서라.”


그는 진저리를 치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가크스가 제대로 화나면 람카디스조차 버거워하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당해낼 리가 없었다. 그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크스는 다시 한 번 주위를 싸늘하게 훑고는, 헛기침을 했다.


“그럼 결정됐습니다. 제가 지금 당장 말을 구해서...”


그가 말을 맺으려 하는데, 거칠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쾅쾅쾅쾅! 어찌나 다급하게 두드리는지, 길드원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쏠렸다. 에비앙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구지? 이 오밤중에.”


“내가 나가보지! 쥐방울 꼬마들이 돌아온 거면 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카토르는 현관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잠시 후 빗장을 치우는 소리가 들리고, 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길드원들은 아이들이 되돌아와, 카토르의 분노에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기대하며 키득거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대문 쪽은 잠잠했다. 두런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밤이 깊은지라 대문을 두드린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별로 관계없는 사람이다 싶어 가크스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카토르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것은 분노에 찬 고함도, 절규도 아니었다. 그저 ‘뭣?!’ 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듯한 짧은 탄성이었다. 돌크가 드러누운 채 고개를 돌려 대문을 바라보았다.


“누가 왔길래 저래? 빚쟁이라도 온 건가?”


“글쎄요...나가봐야 하는 건가?”


이방인과의 대화는 길게 가지 않았다. 그는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황급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카토르는 비틀거리며 홀 안으로 들어왔다. 단단히 벼르며 나갈 때와는 달리, 그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단지 몇 마디 나누고 온 것뿐인데, 몰라보게 초췌해진 그의 모습에 다들 눈을 깜박거렸다. 가크스가 물었다.


“누구였습니까? 이 시간엔 웬일로?”


“...모두 나갈 준비해라. 아니...이목이 있으니 모두 나갈 수는 없겠군. 별동분대를 짤 거야. 지금부터 호명하는 녀석들은 전부 무장 갖추고 나와.”


“예? 그게 무슨...?”


카토르는 이빨을 짓씹었다. 빠득거리는 잇소리가 어찌나 큰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숨을 죽였다. 하필 람카디스가 없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다잡으며 말했다.


“개 같은 소식이 두 가지. 며칠 전에 마드리고로 출발했던 발렌스 상회 조합원들이 전부 시체로 발견됐다. 생존자는...없다고 하더군.”


“뭐요?!”


홀에 모여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몇몇은 이해를 하지 못해 멀뚱거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또 몇몇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착잡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점점 현실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트넬이 입을 떠듬거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발렌스 상회가 전멸이라니? 그 무슨 난데없는...그럼...후커 영감은요?”


“자세한 것은 가봐야 알 수 있어. 일단 우리는 현장 조사에 전력을 기울인다. 다른 것은 류이너스 교단을 믿을 수밖에.”


“다른 것이라니?”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하던 에비앙이 그의 발언에 의문을 제기했다. 비보가 두 가지라 했으니, 나머지 하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카토르는 거칠게 로브자락을 묶기 시작했다. 그의 긴장을 알아챘는지, 지팡이에 달린 방울들이 요란하게 떨렸다. 그는 짓씹듯 말했다.


“루프리모의 아이가 있는 거처가 습격당했다. 현재 북쪽으로 도주 중이야. 일단...그쪽은 수호기사단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 오, 어떻게 이런 일이?”



****



“아 젠장! 더럽게 안 팔리네. 이거 정말 마법의 버섯 맞냐?”


디리터는 시장바닥 한 모퉁이에 쪼그려 앉은 채 하품을 했다. 시장에 자리를 편 지 어느 덧 두 시간, 버섯은 도무지 팔릴 기미가 안 보였다.

옆에 선 루도 역시 지루함에 몸을 꼬는 중이었다. 물건이 팔려야 파는 사람도 흥이 나는 법인데, 이렇게 인기가 없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마법이라기보다는 독버섯에 가깝지만...어쨌든 효과는 내가 보증해. 정 못 미더우면 먹어보면 알잖아?”


“마리네를 먹여보면 어떨까?”


“우...웃기는 소리 하지 마! 누가 저런 걸 먹는대?”


마리네는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그는 카토르가 심은 버섯의 효능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 중 하나였다. 벌써 수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은 생생한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아침이 밝자 디리터는 미리 훔쳐온 버섯을 먹자고 제의했다. 여행자금이 모자란 상황에서 계속 무턱대고 음식을 사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일행은 순순히 동의했다. 잘 구운 버섯을 입에 물기 직전, 어딘가 미심쩍었던 루도가 그것의 출처를 물었다. 그 출처가 카토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마리네는 대경실색하여 그가 먹으려던 버섯을 빼앗았고, 루도는 요리된 버섯을 모두 짓밟아 버렸다.

일행은 절망했다. 기껏 가져온 비상식량이 쓰레기라니. 처음 의견을 낸 것은 마리네였다. ‘여긴 별의별 것을 다 파는 것 같은데, 그럼 마법 버섯이라고 못 팔 건 없지 않아?’ 라는 그의 발언에 모두 귀가 솔깃해졌다. 어차피 먹지 못할 거라면 시장에 팔아 여행자금에 보태자는 것이었다. 처리하지 못한다면 냄새나는 쓰레기에 불과했으므로, 일행은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자유교역도시이다 보니 자리를 잡는 데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근데 말야, 이런 문구를 써놓으니까 당연히 안 오는 거 아닐까? 우리 좀...너무...뭐랄까...수상해보여.”


마리네는 엉성하게 만든 판매표지판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표지판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마법의 버섯 특가 판매! 먹으면 웃음이 멈추질 않습니다. 웃다 죽어도 책임 못 짐.」이라고 적혀 있었다. 디리터가 말했다.


“그렇다고 독버섯을 느타리버섯이라고 속여 팔수는 없는 거잖냐. 사람이 최후의 양심은 지켜야지.”


“값을 내려 볼까?”


“....아직 얼마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거든?”


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혼잡했으나, 이런 장난감 같은 물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디리터는 다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왠지 이렇게 죽치고 있어봐야 시간낭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잣돈 챙기려다 본전도 못 찾는 수가 있었다. 셋은 쪼그려 앉은 채 처량하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 빨리 람 쫓아가야 하지 않아? 지금쯤 어디까지 갔을까?”


“...처음 감자 파는 마차에 탔을 때부터 볼 장 다 본 거야. 이거라도 팔아야 그나마 수도까지 갈만한 여윳돈이 생기지.”


‘델키아와 수도의 중간지점에서 람카디스를 만난다’ 라는 처음 계획은 어느새 ‘수도에서 만난다’로 바뀌어 있었다. 다들 내색하진 않았으나, 슬슬 이런 ‘낭만’ 없는 여행에 싫증을 내고 있었다. 이건 여행이라기보다 행군에 가까웠다.

이런저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암울해하고 있는데, 누군가 돗자리 앞에서 멈춰 섰다. 또 코웃음 치며 지나가겠거니, 하고 낙담하는데 의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에? 웃음이 터지는 마법 버섯이라? 그냥 독버섯 아니야?”


셋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말을 건 것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여행자용 블라우스에 짧은 맨틀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이국적인 외모도 눈에 띄었으나, 가장 돋보이는 것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하늘색 머리카락이었다.

마리네와 디리터는 그녀의 신비로운 머리색에 잠시 넋을 잃었다. 그녀의 머리칼은 마치 맑은 하늘에 담가 염색해놓은 것처럼 푸르렀다. 머리 색깔만으로도 사람의 인상이 이렇게 시원해질 수 있는 것일까? 두 소년이 그녀의 머리칼에 홀려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루도가 대뜸 말했다.


“독버섯 맞아요.”


그녀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꽤 위험한 거 아니야? 먹으면 큰일 난다던가.”


“죽진 않아요. 절대로. 제가 먹어봤거든요. 너무 웃어서 배가 땅기긴 하지만.”


옆에 있던 두 소년은 루도의 진솔한 홍보에 경악했으나, 그녀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싱글거리며 버섯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흐으응, 웃음 버섯이라, 우리 꼬마한테 먹여보고 싶은데? 저기, 이거 효능은 어느 정도야?”


그제야 그녀 곁에 있는 작은 소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의 인상이 너무 강렬하다 보니 쉽게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도는 그 소년을 흘겨보며 말했다.


“강력하죠. 손톱만큼만 먹어도 너무 웃겨서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


“아하하! 그건 좀 곤란한데? 그냥 기분이 좋아지게 할 순 없는 거야?”


“웃게 되지만 기분이 나아지진 않아요. 웃음이 안 멈춰서 고통스러울 정도니까.”


옆의 일행은 이미 체념한 표정이었다. 재빨리 끼어들어 루도를 막아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루도는 도무지 버섯을 팔 마음이 없어 보였다. 몇 시간 만에 온 손님에게 기껏 한다는 소리가 ‘독버섯입니다’ 라니, 산통이 깨져도 통째로 깨진 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의외로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녀는 루도의 솔직한 평가가 마음에 든다며 버섯을 이리저리 만져보기 시작했다. 극적으로 가격에 대한 흥정이 시작되려 하는데, 제리온과 이칼롯이 나타났다.


“빌어먹을 촌도시 같으니라고! 오늘은 델키아로 가는 상단이 아무것도 없단다. 이젠 꼼짝없이 걸어가야 하나?”


“...그렇다고 계속 이 도시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어. 오후에 바로 출발하지.”


제리온은 투덜거리며 루도 옆에 주저앉았다. 이칼롯은 여전히 무표정했으나,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는 모양새가 그 역시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제리온은 아직도 그득하게 쌓여 있는 버섯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킥킥, 아직 하나도 못 판 모양이네? 그래서 언제 수도로 출발하냐?”


“이 자식이 재수 없게. 겨우 손님 한 분 잡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저리 가라. 훠이~.”


디리터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을 휘적거렸다. 루도 만으로도 골 아픈 판에 그가 옆에서 빈정대고 있으면 버섯장사는 끝났다고 봐야 했다. 다시 가격흥정을 시작하려 하는데, 이번엔 손님의 시선이 이칼롯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가 차고 있는 검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기요, 아가씨? 거기 그 형씨 눈빛 원래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보다 버섯의 가격에 대해...”


디리터가 애써 관심을 돌리려 하는데,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검...혹시 텔슈피드?”


이칼롯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는 흠칫 놀라며 자신의 검을 감싸 쥐었다.


“내 검을 알고 있는 건가?”


“히야! 맞나 보네? 실제로 보긴 처음인데. 그럼 당신은 아마 제르비안 가문의 장자겠군요?”


“...쓸데없는 참견이다.”


그는 이내 그녀에 대한 관심을 거두었다. 아마 소문을 주워듣고 온 뜨내기일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이칼롯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나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옆에 있던 제리온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어느새 소외된 디리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봐요...아가씨? 버섯은...”


“제르비안 씨. 당신, 강하죠?”


마지막 희망마저 묵살되어버리자 디리터는 맥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네...사기 싫다는 거죠? 알겠습니다...」. 마리네가 그의 푸념을 듣고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칼롯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이 일순간 험악해졌으나, 그녀는 생글거리며 그 시선을 받았다.


“여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앉아있는 버섯소년도 꽤 그럴듯한 검을 차고 있잖아? 너 상인 아니지? 직업이 뭐야?”


디리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레인저요....”


“레인저! 안성맞춤이네. 실력은...뭐 있다고 믿어줄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니까.”


“예? 그게 무슨...”


일행 모두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제리온이 뭐라 말하려 했으나, 그녀의 충격발언에 묻혀버렸다.


“제르비안 씨, 그리고 버섯소년. 당신들 나한테 고용되지 않을래? 보수는 두둑하게 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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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9) +3 15.03.21 1,836 54 12쪽
9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8) +2 15.03.21 1,996 52 11쪽
8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7) +3 15.03.21 1,928 62 11쪽
7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6) +2 15.03.21 2,093 57 11쪽
6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5) +5 15.03.21 2,181 58 20쪽
5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4) +2 15.03.21 2,405 58 10쪽
4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3) +4 15.03.21 2,765 72 12쪽
3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2) +3 15.03.21 3,288 92 14쪽
2 람의 계승자 - 꼬마 레인저(1) +3 15.03.21 4,438 88 15쪽
1 람의 계승자 - prologue +23 15.03.21 7,846 11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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