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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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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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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2,844,987

작성
15.03.24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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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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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10쪽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9)

DUMMY

아이들이 무작정 숲 속으로 도망친 지도 벌써 수 시간이 흘렀다. 장애물이 있으면 피해서, 수풀이 우거져 있으면 좀 더 걷기 쉬운 곳으로, 그렇게 발걸음이 닿는 대로 뛰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달리다 달리다 지치면 속보로 걸었다. 걷다가 수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라도 들려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닥치는 대로 뛰었다. 혼비백산하여 한참을 달려간 후에야 뭐였나 싶어 얼른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가시에 긁힌 상처가 군데군데 났고, 달리다 넘어져 무릎은 벌겋게 부어올랐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안젤리카가 더 이상은 움직이기가 어려운지 근처에 있던 바위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하악, 하악, 루도, 나 너무 힘들어. 더 이상은 못 걷겠어. 조금만....조금만 쉬었다 가자.”


“후우우, 후웃.”


루도 역시 기진맥진하던 참이라 말없이 그녀 옆에 쓰러졌다. 바위는 햇빛을 받지 못해 서늘했다. 하지만 온몸이 땀범벅이 된 아이들에게는 달궈진 몸을 식혀주는 냉매였다. 숨을 돌리자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억지로 일으켜주지 않는 이상, 다시 걸어갈 기력도 없었다. 둘은 색색거리며 숨을 골랐다.

루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간절했지만, 개울이나 샘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천지가 나무와 꽃이었다. 시야가 탁 트이는 개활지에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하건만, 빽빽하게 들어찬 녹음은 답답하다 못해 목을 죄어오는 느낌이었다.

언제, 어디서 그들이 모습을 나타낼지 모르는 일이었다. 미치광이 버섯의 효능은 루도가 잘 아는 바였지만, 지속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사라지자마자 풀렸을 수도 있었고, 아직도 배를 쥔 채 바닥을 구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지금쯤 불을 켜고 아이들을 쫓아오고 있을 것이다. 루도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으로 도로 붙잡혔을 때의 상황과 이름 모를 오두막에서 이녜스가 죽었을 때의 상황이 겹쳐졌다.

여전히 형편은 열악했다. 루도는 이마에 흥건하게 맺힌 땀을 닦아냈다.


“일단....높은 곳에 올라가자. 그럼 우리가 어디쯤에 와있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아침에 우리가 건너왔던 다리 기억나지? 거기만 찾으면 그다음은 외길이니까 쭈욱 걸어가면 될 거야.”


안젤리카는 힘겹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없는 상황에서 언제 교각을 건널지, 언제 델키아에 도착할지는 알 수 없었다. 이대로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채 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얼어 죽을 확률도 있었다. 봄이라고 해도 숲의 새벽은 어린애들이 견딜 만한 것이 아니었다.

루도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부정적인 생각을 애써 떨쳐냈다. 다리가 풀려 후들거렸지만, 계속 여기서 지체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야무지게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안젤리카의 손을 잡았다.


“이제 가자. 그자들이 오기 전에 움직여야지. 길은 내가 찾을 테니까 안제는 어떻게 하면 맛있는 파이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봐.”


안젤리카는 생긋 웃으며 루도의 손을 당겨 일어났다. 그녀는 옷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파이 타령이야? 약속 안 잊어버렸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니지. 보통 파이면 목숨 걸고 고생한 내가 불쌍해지잖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라즈베리 파이! 어때?”


루도는 양팔을 번쩍 올려 파이의 모양을 그려보았다. 그와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안젤리카의 팔도 덩달아 움직였다.


“푸훗! 그게 뭐야? 루도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파이가 뭔지 먹어보면 알 수 있어?”


“그건....음....먹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난 라즈베리 파이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거든. 예전에 람을 따라 시내로 나갔을 때 노점에서 파는 걸 봤던 것뿐이야.”


루도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안젤리카가 재미있다는 듯 입을 가리며 웃었다.


“우후후, 그럼 내가 맛없는 파이 만들어주고 원래부터 이런 맛이라고 우기면 어떻게 할 건데?”


“열판인데 그중에 맛있는 파이가 한 판은 나오겠지. 그리고 내가 보기에 안제는 간이 콩알만 해서 그런 거짓말 못할 것 같은데?”


“어머? 내가 왜 간이 콩알만 해?”


둘은 실없는 농을 던지며 나아갔다. 가벼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내딛는 발걸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만들어진 길이 없었기 때문에 둘은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헤치며 지나가야 했다. 길을 막는 나뭇가지나 가시덤불이 보이면 미리 주운 나무막대기로 치우며 지나갔다. 이렇다 보니 이동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행여나 근처에 있던 납치범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오진 않을까,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뛰었다.

아이들은 빛이 나는 쪽을 향해 움직였다. 빽빽한 나무들로 하늘조차 가려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밝은지는 구분하기 쉬웠다. 간혹 나뭇잎 사이를 뚫고 한줄기 빛이 쏘아지는 곳을 지날 때면 미묘한 온기가 어깨를 두드리곤 했다.

깊은 숲의 풍경은 아이들이 경험했던 도시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듬성듬성 솟아난 개암나무 밑으로 민들레와 안개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안젤리카는 시야를 가득 채우는 꽃들의 향연을 보며 입을 벌렸다. 한가롭게 소풍을 온 거라면 꽃밭에 앉아 자그마한 꽃반지라도 만들 텐데, 그런 낭만을 즐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주변의 정취에 시선을 빼앗긴 그녀와 달리 루도는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는 불과 며칠 전 늑대에게 습격을 당했다. 람카디스의 불호령을 들은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이번엔 아예 숲으로 걸어 들어오다니, 부득이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왠지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람카디스가 자신에게 혼자 힘으로 일주일을 버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이 나흘째이니, 일주일을 채우기 전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문득 로샤단에서 자신의 실종을 알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나젠크루거가 말한 추격대는 람카디스인지 아니면 안젤리카를 구하러 온 기사들인지 의문이 들었다. 만약 안젤리카 쪽의 사람들이라면, 람카디스는 그를 버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절대로 돌아가 주겠어. 아직 마리네 녀석한테 한 방 먹이지 못했단 말야.”


그는 억지로 기운을 내어 숲 속을 전진했다. 갑자기 뒤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꽤 거칠게 수풀을 헤치는 모양새가 새나 토끼는 아니었다. 루도는 이를 악물었다. 며칠 전의 가슴 떨리던 경험이 다시 떠올랐다. 늑대? 아니면 납치범들? 어느 것이든 희망적이진 않았다.

이윽고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뭇잎을 뱉으며 모습을 드러냈을 때, 안젤리카는 비명을 질렀다.


“여어, 이 개 같은 꼬맹이들. 드디어 찾았군.”


슬라크였다. 그는 칼을 뽑은 채 나뭇가지를 걷어내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아아...아....”


안젤리카는 공포에 질려 신음만 흘리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주저앉으려고 할 때, 루도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뭐해! 어서 달려!!”


둘은 앞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슬라크가 나뭇가지를 닥치는 대로 자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슬라크는 얼굴의 흉터를 기묘하게 비틀며 웃었다.


“크하하하! 아까는 정말 고마웠다! 아직도 뒤통수가 화끈거려 미칠 것 같아! 이 빌어먹을 꼬맹이들!”


그의 섬뜩한 웃음소리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넘어질 듯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멎어갔다. 뒤통수에서는 확실히 자신들을 죽여버리려 하는 살인마가 쫓아오고 있었다. 늑대에게 쫓기는 닭의 심정이 이것보다 절박할까? 앞서가던 루도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넘어졌지만, 아픔조차 잊고 발딱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원피스를 입은 안젤리카가 전력질주를 하지 못해 울상을 지었다. 루도는 거침없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찢었다. 평소 같았으면 뺨따귀를 맞을 행동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안젤리카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 뿐, 땅을 박차고 힘차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빛줄기가 쏟아지는 쪽을 향해 발을 굴렀다. 시야를 막는 나뭇가지들을 뚫고, 이마를 때리는 빛줄기를 향해 달렸다. 마침내 도착한 그곳이 델키아이기를 바라면서.


“아...!”


애석하게도 아이들이 다다른 곳은 막다른 절벽이었다. 만약 안젤리카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속력을 늦추지 않았다면, 둘은 관성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떨어졌을 것이었다. 안젤리카는 바짝 다가온 슬라크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루...루도오, 이제 어떻게 하지?”


“아....젠장.”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람카디스가 말했던 검술가에게 중요한 것이 뭐였더라?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루도는 검술가의 덕목을 되뇔 침착함마저 잃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아 제기랄! 아아아! 어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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