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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연 님의 서재입니다.

람의 계승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저스연
작품등록일 :
2015.03.21 02:01
최근연재일 :
2015.09.01 03:28
연재수 :
3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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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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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7
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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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4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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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람의 계승자 - 생존자니까 살아남는다(18)

DUMMY

람카디스 일행이 납치범들과 조우한 것은 그로부터 세 시간이 흐른 후였다. 말을 타고 달리던 일행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검은 로브의 사내들을 보고 멈춰 섰다. 그쪽에서도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서로에게서 발산하는 적의를 느꼈기 때문일까?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무기를 뽑기 시작했다.

그는 검은 로브의 남자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많이 지친 듯 얼굴이 퀭해져 있었고, 눈 밑에 얼룩덜룩한 것들이 나있었다. 그들은 모두 5명이었다. 마리네가 설명한 인상착의와 똑같은 사람도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은 말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마상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용병들의 특성상 땅을 딛고 싸우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 채 말이 없었다. 람카디스와 나젠크루거의 시선이 교차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참으로 질긴 인연이었다. 따돌리려고 했는데 결국 따돌리지 못했고, 놓쳤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붙잡았다. 하지만 두 남자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자신의 불찰을 탓하지도, 또한 기묘한 행운에 환호하지도 않았다. 람카디스가 턱을 약간 올리며 피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정말 움직임이 빠르더군. 쓸데없이 왔던 길을 돌아오지만 않았더라면 영영 놓쳐버렸을 거야.”


나젠크루거의 얼굴은 후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추슬렀다. 두 시간 가까이 독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아직도 아랫배가 심하게 당겼다. 팔다리가 안 쑤시는 곳이 없었다.


“우리는 너희를 따돌리려고 마차를 버리고, 새벽에도 말을 달리고, 용병까지 고용했다. 그 수고가 헛되이 되어버렸군.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마음 편히 싸웠으면 될 것을.”


그는 나직이 한탄했다. 람카디스와 나젠크루거는 예전부터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스스럼없이 대화했다. 물론, 그 시기가 언제가 됐든 두 무리가 얼마 있어 칼부림을 하게 될 거라는 것은 기정된 사실이었다. 아니, 나젠크루거 쪽은 모르더라도 람카디스의 의중은 확실히 그랬다. 그는 이 납치범 일당을 무사히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다만 목숨을 끊어놓기 전에 묵혀놨던 궁금증을 풀어놓는 것뿐이었다.


“물어볼 것이 산더미야. 일단, 너희들이 납치한 아이들은 어디로 갔지?”


“...고작 꼬마 둘을 되찾으려고 이 먼 길을 달려온 건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건가?”


“정보에 의하면 얼굴에 흉터가 군데군데 난 사내가 한 명 있다고 하던데, 그는 어디로 간 거지?”


“나잔즈 교각에 일련의 용병들을 배치해놨을 텐데, 설마 그들을 뚫고 온 건가?”


대답 없는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이 계속될수록 근처에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도 고조되어갔다. 람카디스는 자신의 앞에 선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상대를 죽이고자 결정했을 때 나타나는 그 특유의 차가운 시선을 그 남자는 피하지 않았다. 그는 추격대에게 주눅이 들지도, 겁을 먹고 있지도 않았다.

람카디스는 그의 마지막 질문에 대답 대신 피 묻은 가죽 장갑을 보여주었다.


“이거면 대답이 되나?”


나젠크루거는 람카디스에게 묻은 피 얼룩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흉터 난 남자는....아이들을 쫓아갔다. 그는 독이 든 스튜를 먹지 않았으니까. 잠시 기절하긴 했지만, 그는 우리 중 회복이 가장 빨랐다. 녀석은....광분하여 아이들을 찾아내면 즉시 죽여버릴 거라고 외치며 사라졌다. 그놈은 아주 질이 나쁜 부류지. 정말로 애들을 죽여버리면 우리도 매우 곤란해지는데.”


“그래서 왔던 길을 돌아오고 있었던 건가?”


“숲 속을 이 잡듯 뒤지기엔 우린 너무 지쳤어. 일단 애들이 나잔즈 교각을 건너기 전에 도착해야 했지. 우리에게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할 테니까. 뭐, 그 덕분에 재수 없게 이렇게 우릴 쫓아온 자들과 마주하게 되었지만.”


나젠크루거는 일부러 람카디스에게 필요한 정보를 흘리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독이 가라앉자마자 그들은 말을 타고 교각을 향해 달려왔다. 만사 제치고 달려왔기 때문에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터였다. 일단은 엉망이 된 몸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며 몸속에 산소를 공급했다. 교각을 뚫고 왔다고 했으니 앞에 있는 자들은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쪽은 몸이 성한 자가 없었다. 싸운다 하더라도 희생자가 나올 것은 각오해야 했다.


“그래. 아이들은 도망갔다는 거군. 그럼 애들을 쫓아갔다는 자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겠나?”


나젠크루거는 나직이 웃었다. 관절에 힘을 주어보니 그럭저럭 전투를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뒤에 있는 동료들의 건투를 기원하는 것뿐이었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군. 그 질문의 대답은 좀 비싼데.”


“그럼 너희들에게 아이들을 납치하라고 지시한 자가 누구지?”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우린 포로가 아니야.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다시 질문해보지그래?”


“좋아. 우리도 이제 시간이 없으니까.”


람카디스는 검을 쥔 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동시에 뒤에 있던 일행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젠크루거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오른발을 어깨 뒤로 내디뎌 무게중심을 잡았다. 차가운 공기가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고 느낀 건 착각이었을까? 서로의 사정거리에 도달하기 직전, 뒤에 있던 가크스가 외쳤다.


“이녜스를 죽인 건 누구냐!”


“....지금 아이들을 쫓아간 남자다.”


말이 끝나는 순간 은색의 검날이 나젠크루거의 목을 노리고 왼쪽에서부터 쇄도해왔다. 엄청난 속도였다. 그는 황급히 검을 들어 람카디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오른발이 휘청, 하고 흔들렸다. 단지 검을 한 번 받아낸 것뿐인데도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두 시간 동안의 광소(狂笑)는 나젠크루거 일행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람카디스의 검이 이번엔 심장을 노리고 정확히 찔러 들었다. 나젠크루거는 가슴이 뚫리기 직전, 검을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잠시나마 람카디스의 팔이 공중에 붕 떴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목을 자를 생각으로 낮게 파고들었다. 분명 손을 잘랐다고 생각했는데,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리며 그의 검이 튕겨져나갔다.


“큭....”


다른 일행의 상황은 훨씬 좋지 않았다. 토드가 나젠크루거를 지원하려고 달려 나왔으나, 그 역시 기력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터였다. 그는 돌진하는 돌크의 일격을 정면으로 받아냈지만,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손목을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케이달과 아카니스는 정면에서, 에비앙과 가크스는 측면의 숲을 달려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미 기력이 쇠진한 나젠크루거 일행에겐 루도의 독버섯스튜가 뼈에 사무치는 순간이었다.

가크스는 평소보다 흥분해 있었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바스타드를 휘둘렀다.


“이녜스 누님은 그런 곳에서 죽으실 분이 아니었단 말이다!”


가크스는 분노한 나머지 다소 동작을 크게 잡았지만, 지친 상대방은 그 빈틈조차 잡아내지 못했다. 그는 검을 세워 가크스의 공격을 받아냈다. 워낙 힘이 실린 공격이라 팔이 순간적으로 기우뚱했다. 반격을 하려고 땅을 차려는 순간, 가크스의 어깨를 밟고 날아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뭐....?!”


에비앙은 미처 자세를 잡지 못한 상대방의 정수리에 에스터크를 찔러 넣었다.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무너졌다. 지휘자가 확정되지 않은 소규모 난전은, 대개 단독행동을 하거나 평정을 잃은 쪽이 먼저 무너지는 법이다. 잘박의 옆에 있던 사내가 그런 경우였다. 동료가 맥없이 쓰러지자 그는 눈을 뒤집고 에비앙에게 돌진했다.


“이 씨발 놈아!!!”


그는 에비앙의 양다리를 절단할 기세로 검을 휘둘렀지만, 에비앙은 검이 닿기 직전 남자의 측면으로 도약했다.


“이 쥐새끼 같은...커??!!”


그가 눈을 돌렸을 땐 이미 자신의 목이 뚫린 후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아카니스는 에비앙의 기민한 솜씨에 감탄했다. 그는 땅에 착지하기 직전, 근처에 있던 나무를 박차고는 그대로 방향을 틀어 상대를 공격했다. 전투 교범에는 나와 있지도 않은, 순간적인 판단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목이 뚫린 남자는 피를 뿜으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아직 숨이 붙어 있었으나, 그는 이미 전투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끄으...꺼...헉...”


그가 쉬이 죽지 못해 괴로워하자 에비앙이 말없이 심장에 검을 꽂았다. 그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이내 숨을 거두었다.


“고맙다 이 개자식아!!”


무기를 주운 토드가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옆에서 내려친 돌크의 핼버드에 놀라 멈춰 섰다. 핼버드의 위력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그는 머뭇거리며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도로 한편에서는 잘박이 케이달과 대치하고 있었다. 몇 번 검을 부딪치던 그는 기묘한 미소를 흘렸다.


“넌....기사로군.”


케이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전투 중에 끊임없이 말을 흘려 상대방을 교란시키곤 했다. 위축되든, 얕보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좋을 것은 없었다. 이번에는 아카니스가 측면에서 베어 들어왔다. 잘박은 뒤로 도약해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상황이 안 풀린다는 듯, 그의 광대뼈가 씰룩거렸다.


“일대일로 하지 않겠나?”


“응? 뭐라?”


아카니스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목숨을 건 사투에서 느닷없이 일대일이라니, 잘 봐줘도 같잖은 수작이었다.


“여보게,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고지식하게 그런 수법에 걸려들진 않아. 혹시 숫자를 살린다는 전법이 비겁하다고는....”


“좋아, 그 제안 받아들이지! 아카니스님은 저얼대 끼어들지 마십시오!”


이건 그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케이달은 아카니스를 전투에서 제외시킬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잽싸게 승부를 받아들였다. 나름 명예를 건 승부였으므로 난입했다간 두고두고 원한을 살 것이 분명했다. 아카니스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거 참...당돌하단 말이야.”


잘박은 쌍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나는 짧은 숏소드(short sword)였고, 하나는 약간 휜 시미터(scimitar)였다. 그는 무기를 교차시킨 채 케이달의 공격을 기다렸다. 케이달은 왼발을 크게 구르며 대각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한 손으로 막기엔 제법 위력이 있었기에 잘박은 두 개의 검을 이용해 공격을 받았다. 채앵! 날카로운 쇳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잘박의 예상과는 달리 주도권은 케이달이 쥐고 있었다. 쌍검을 이용한 다채로운 공격이 그의 특기였으나, 피로가 쌓인 지금은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거기다 케이달이 내지르는 공격은 검격마다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어설프게 막았다간 그대로 무기를 놓쳐버릴 수도 있었다. 일대일까지 유도한 것은 좋았으나, 지금은 한 명만 상대하기도 힘에 부쳤다.

짧은 공격이 몇 번 이어지고, 케이달은 상대방이 주춤거리는 것을 눈치 채고는 허리를 틀며 일직선으로 검을 내찔렀다. 잘박은 검을 모으며 황급히 몸을 가렸으나, 날카로운 일격에 팔이 크게 튕겨나갔다. 케이달의 검은 그대로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끄헉....”


잘박은 피를 왈칵 쏟으며 쓰러졌다. 그는 잠시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케이달은 한숨을 쉬며 주위를 살폈다. 돌크의 핼버드가 막 토드의 옆구리에 꽂히고 있었다. 상황은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크으...하아...하아....”


나젠크루거는 떨리는 팔을 애써 진정시켰다. 이미 몸 곳곳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앞에 선 남자는 그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괴물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은색의 검은 피하지도 못할 정도로 속도가 엄청났다. 거기다 힘겹게 막아낸다 해도 묵직한 무게감에 어깨가 저릿거렸다. 반격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가빠오는 숨을 들이마시는데 다시 은빛 칼날이 쇄도해왔다. 그는 검을 쳐냈으나 이번에는 힘이 모자랐다. 람카디스의 검은 그의 어깻죽지를 베고는 다시 돌아갔다.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런 무력한 상황이라니, 차라리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네 동료들은 모두 쓰러진 것 같군.”


나젠크루거는 뒤를 보지 않았다. 아마 그때가 자신의 생애 마지막 순간이 되리라. 람카디스는 말을 이었다.


“넌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군. 몸 상태가 좋았다면 이렇게 무력하게 밀리진 않았을 거다.”


“후후...패배자에게 해주는 위로인가? ...검사의 실력은 생존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그럼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살아남는 것이 실력이라면.”


그는 빙긋 웃었다. 입속에 피인지 침인지 모를 것이 가득 차 호흡이 곤란했다. 온몸의 상처가 쓰라렸다. 피를 너무 흘려서일까, 아니면 몸을 너무 혹사시켜서일까? 그는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은 이 남자와 싸우고 있는 것일까? 왜 자신은 애꿎은 아이들을 납치한 것일까? 정녕 신의 아이가 각성해야만 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일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하하...하하하핫!”


웃음이 터졌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시점에서 이런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 아까 먹은 버섯의 독이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아니,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젠크루거는 비틀거리며 검을 버렸다. 검이 있든 없든,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사내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을 날려버릴 것이다. 그에게나, 그들에게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슬라크를...찾아라. 놈이 아이들을 죽이기 전에.”


람카디스는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나젠크루거의 눈동자는 흐릿했지만,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의 목덜미를 살짝 베고는, 람카디스는 검을 거두었다. 승부는 났다.


“어디로 갔지?”


“하아...정확한 위치는 나도 모른다. 녀석들은 북서쪽으로 도망갔다. 숲 어딘가에....있겠지.”


나젠크루거는 피를 왈칵 뱉어냈다. 침에 섞인 걸쭉한 핏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는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할 말은 끝났다. 어서 죽이고 아이들을 구하러 가라.”


그의 초연한 모습에 오히려 일행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가크스가 떨어진 그의 검을 치우며 말했다.


“목숨을 구걸하려고 정보를 얘기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별난 사람이군요.”


나젠크루거는 피식 웃었다. 모든 것이 실패했지만, 왠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며칠 내내 그를 괴롭히던 가슴의 응어리가 사라졌다. 대의를 위한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납치했을 때 이미 자신의 운명은 결정 났음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던가.


“아이들은...중요하지. 내 목숨보다도 더. 그래, 중요해. 가린워드의 생존자이건 베릴의 아이이건. 그건 단지 앞에 붙는 수식어일 뿐이야. 왜 죽음을 앞둔 이제야 알게 된 거지? 그들은...단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허공을 바라본 채 자신의 무지를 한탄했다. 그는 전투의지를 상실했지만, 목숨을 구걸하지도, 협상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직이 자신을 자책할 뿐이었다.

람카디스는 그가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케이달과 아카니스님은 주변 처리와 이 자의 후송을 부탁합니다. 나잔즈 교각에서 뵙도록 하죠. 돌크와 에비앙은 북쪽으로 가라. 나와 가크스는 서쪽으로 간다. 어느 미친 자식이 애들을 죽이기 전에 찾아야 해.”


로샤단 길드원들은 망설임 없이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카니스는 순식간에 수풀 너머로 사라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근처에 널브러진 시체들과, 기력이 다해 쓰러진 나젠크루거와, 자신과 같이 멍한 표정을 하고 있는 케이달이 보였다. 그는 숲을 한번 둘러보고는, 호쾌하게 웃었다.


“그래 뭐. 지겨운 숲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보단 여기서 뒤처리하는 것도 괜찮겠군. 역시 람람은 무섭단 말이야. 이 나에게 이런 일을 시키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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